블루 하이웨이

by. 찌개

윤섷 in Post-apocalypse

1.

 

처음으로 푸른 달이 뜨던 날을 기억하십니까.

목사가 운을 뗐다. 기도소에 앉은 스물 남짓의 사람들은 모두 침묵을 지키고 앉아 양손 가지런히 무릎에 얹은 채 목사의 설교를 경청했다. 이 열로 배치된 벤치의 중 오른쪽 마지막 열 끄트머리에 성화 역시 같은 자세로 앉아 그 설교를 들었다. 목사는 매주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지금의 재난은 창세기 대홍수의 재현이며, 하느님이 푸른 달을 보내심은 인류를 멸망시키고 하나님의 천국을 지구상에 재건축하기 위함이라,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생존자들은 하나님의 길을 따라 그 심판을 면해야 한다는 것이 그 골자였다. 성화는 목사가 번복하고 있는 창세기 구전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집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거처에 보관한 식량과 새로 배급 받을 식량을 합치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계산했다. 끽해봐야 2주였다. 아직 상하지 않은 곡물, 통조림, 육포, 가끔은 사탕. 어떤 형태든 상관없었다. 식량이 더 필요했다. 그것이 바로, 설교에는 일말의 관심도 없으면서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연유였다.

이 기도소에선 매달 마지막 예배에서 소량의 식량을 배급했다. 대신 헌금으로 생필품을 비롯하여 담배, 술, 그리고 총기 소지 금지 국가였던 대한민국에서 어떤 경로로 구했는지 도저히 모르겠으나 총알까지도 수거해갔다. 헌금으로 낼 만한 것이 없으면 노동력을 제공해야 했다. 성화는 교회의 일을 거들고 그 자격으로 이 기도소 한켠을 차지하고 앉아있었다. 화폐가 가치를 잃은 지금, 현찰로 구할 수 있는 식량은 전무하였으니 듣기 지루한 설교를 두 시간가량 듣고 있는 것쯤이야 수지 남는 장사였다. 그나마 이 마을의 종교 행사는 재난 전 기독교식 예배에서 그 형태가 크게 달라지지 않아 견딜 만했다. 이곳에 의탁하기 전 거쳤던 생존자 무리는 푸른 달을 신으로 섬겼고 예배 방식은 가히 고대 문명의 제사와 다름없어 광신도들 사이에서 제정신을 유지하기조차 어려웠다. 버티다 못하고 성화가 그곳에서 도망친 것은 종국에 교주가 인신 공양에까지 손대려 한 탓이었다.

묵도합시다.

예배가 끝을 향해 달려갔다. 성가대 없는 찬송가로 찬양까지 마치면, 성화는 이곳에 온 목적을 달성한다. 슬슬 몸이 근질거리기 시작하여, 모두가 고개 숙여 기도를 웅얼거리는 지금 성화는 곁눈질로 생존자들의 옆모습을 구경했다. 성화로부터 세줄 앞에 앉은 한 씨 아주머니는 진심으로 목사의 설교에 감복했는지 눈물 훔치며 손에 쥔 십자가를 꾹 쥐고 하나님의 길을 따르겠음을 맹세했다. 매달릴 것이 필요한 시기임은 맞았다. 내일이면 다시 푸른 달이 뜨므로.

 

단순히 태양계를 스쳐 지나가리라 생각했던 소행성이 불현듯 태양의 중력에 이끌려 궤도를 틀었다. 이 소행성은 서서히 궤도의 반지름을 좁히더니 3년 전부턴 대략 일 년 주기로 긴 타원형 궤도를 돌았다. 문제는 이 소행성이 기존 달의 크기와 매우 흡사하였으며, 어떤 순간에는 달보다도 지구에 근접한다는 점에 있었다. 외계에서 왔다는 티라도 내는 것인지 기묘한 푸른 빛을 띠는 이 소행성이 지면 위로 솟을 때 사람들은 감탄하며 소행성을 두 번째 달 혹은 푸른 달이라고 불렀다. 지구 각지에서 이 특이한 천체 현상의 출현을 시간 맞추어 기다렸다. 이 불청객이 세계를 전복시킬 것이라는 사실을 꿈에도 예상치 못한 채였다.

푸른 달은 지구의 중력장을 뒤흔들어놓았다. 지구를 공전하던 수천 개의 인공위성을 궤도에서 이탈시켜 우주 쓰레기로 전락시켰으며, 지각과 수면을 끌어당겨 지진과 해일을 일으켰다. 인공위성이 사라지니 통신이 끊겼다. 가끔은 서로 부딪혀 산산이 조각난 위성의 잔해가 거주 지역에 떨어져 사람이 수십에서 수백까지도 죽었다. 수면이 바뀌고 지형이 바뀌니 국가 개념이 희미해졌다. 어느 달엔 물에 잠겼다가, 어느 달엔 뭍으로 드러나니 이 땅이 내 땅이요, 주장하기 애매해진 탓이다. 다음엔 도시가 사라졌다. 시도 때도 않고 해일이 도시를 삼키자 건물을 비롯한 모든 기반 시설이 무너진 것이다. 인류가 수년간 도시를 복구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공사가 진행되어간다 싶으면 다시 도시가 물에 잠겼다. 모든 권력 기관이 두손 두발 다 든 것이 당연했다. 푸른 달이 공교롭게도 지구의 궤도를 지나다 충돌하는 순간, 그것이 인류의 묵시일 것이다. 누군가는 전복된 세상에서 근근이 목숨 붙들고 살아가느니 차라리 그 편을 기다렸다. 어찌 됐든 인류의 일부는 살아남았고, 생존자는 무리를 이루거나 각자도생을 꾀했다. 성화는 전자를 택했다. 이 마을에 정착한 지가 벌써 2년째였다. 이제 이곳이 성화의 집이었다.

 

목사가 정확히 내일 푸른 달이 뜰 것이라 예견한 것은 목사를 생존시키기로 결심하신 전지전능하신 유일신께서 그의 부름에 응답한 것이 아니다. 푸른 달은 정해진 궤도를 따라 재해와 함께 주기적으로 돌아왔고, 이제 그 시기가 돌아온 것뿐이었다. 정확한 궤도의 예측은 궁색하게나마 버티고 있는 몇 없는 관측소에서나 가능했다. 살아남은 과학자 집단이 아직 작동하는 위성을 물색하여 전파로 푸른 달의 궤도를 예측 보도했다. 피해 지역을 예측하고 사람들을 피신시켜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각고의 노력이겠으나, 이렇다 할 관측 기기도 없이 휴대가 가능했기에 살아남은 개인 노트북으로 계산한 예측에는 항상 오차가 있었다. 그 예측 마저도 기꺼웠으나 전파를 수신할 수 있는 기기 역시 소수만이 향유했다. 성화는 누구도 들이지 않는 목사의 방에 라디오 기계가 하나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그는 푸른 달의 출현 시각을 정확히 알림으로써 고작 신앙심을 부추기는 데에나 써먹었지만, 적어도 그가 주거지를 옮겨야 한다고 선동하지 않을때까진 이곳이 안전하다는 사실을 확신 받을 수 있었다. 실상 그가 식량 배급권을 가지고 있는 이상, 누구도 그의 정보독점에 불만을 표출할 수 없겠지만 말이다.

예배가 끝났다.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배급 줄을 서기 위해 작은 수선이 일었다. 모두가 목사가 들여오는 상자에 불을 켜고 앞 순서를 차지하기 위해 신경전을 벌일 때, 성화는 조용히 뒷줄에 가서 섰다. 예배 인원을 진작에 파악한 목사는 항상 최소한의 물량으로 동일하게 배급했으므로, 성화는 줄 순서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다. 남의 몫을 빼앗아서라도 더 배급받기 위해 선처를 구하는 이들로 앞이 소란했다. 그들이 한심해 보이진 않았다. 거동이 불편해 예배에 오지 못한 가족을 돌보는 이도 있었다. 다만, 성화는 제가 풀칠해야 할 입이 그 자신 하나임을 감사하며 소란이 진정되기를 기다렸다. 그리하여 그 소요 속에서 성화는 기도소 안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한 것을 발견하고 만다.

제대의 그림자가 흔들렸다.

 

/

 

예배가 없을 때 기도소의 정문은 잠겼다. 열린 장소인 듯하다가도 허락한 때가 아니면 철옹성으로 변하는 이곳, 기도소의 지하에는 이 마을에 배급해야 할 공용 물자와 식량을 쌓아두었기 때문이다. 목사가 보급 장소를 순순히 공개한 이유에는 여럿이 있다. 첫째로 모두가 남은 자원의 양을 파악하게 해 누군가 정해진 정량 이상의 자원을 훔쳐 가지 않았는지 시시때때로 확인하게끔 만들고, 둘째로는 혹여 외부의 침입이 있을 때는 누구나 이곳으로 달려와 공동체의 자원을 지키게 하기 위함이었다.

이런 걸 주인 의식이라고 한다지? 재난 전, 잦은 회식으로 늦은 시간까지 술을 마시다 들어오시던 아버지는 지금은 폐허가 된 회사에 뼈를 묻겠다며, 요즘 것들은 회사에 주인 의식이 없어 틀려먹었다고 씹어대다 침대에 엎어져 코 골으셨다. 이제 먹을 것 하사 받음으로 떠받쳐야 할 주인이 바뀌었을 뿐, 윗선이 노동자들에게 원하는 것은 같았다. 서로를 감시하여 이 공동체를 위해 일신 바치라는 것이었다.

성화 역시 중앙 창고의 보초를 서곤 했다. 대체로 기도소에서 주는 일은 둘 중 하나였으니까. 외지에서 자원이든 구해오거나, 구해온 자원을 창고에 옮기고 지키거나. 마을 외부로 나가기 위해서는 총을 쥐어야 했기에 목사의 신임을 얻어야 했지만, 보초를 서는 것 정도면 마을에 일정 기간 머무른 이라면 누구든 가능했다. 오늘 밤 자정부터 새벽 3시까지, 성화가 해야 할 일 역시 같았다. 그 뒤 타임보다는 졸음을 참을 만했고, 야간 근무의 고생을 참작해서 곡물 한 되든 육포 한 덩이든 뭐라도 하나 더 끼워주었으니 꽤 수요가 있는 보직이었다.

한참 해 중천일 때 예배가 끝났으니 낮잠 늘어지게 자다가 때맞춰 오면 되는 것을 성화는 해 질 녘 전부터 주변에서 알짱거렸다. 괜히 의심을 사기는 싫어서 순찰하는 보초들의 시선에는 걸리지 않는 폐건물 옥상에서였다. 대부분의 건물이 지진으로 내려앉아 주변에 이보다 높은 건물이 별로 없었으므로 기도소 주변이 대중 한 눈에 들어왔다. 아직까진 기도소에 들어가고 나오는 이 중 성화가 모르는 얼굴은 없었다. 지루한 기다림이 이어졌다.

그림자가 길어졌다. 산을 타고 바람의 방향이 바뀌는 시간이었다. 바람에 머리카락 나부끼자 금빛으로 물든 짙은 눈썹과 시원한 이마가 드러났다. 지독히 배곯았던 겨울도 가고 봄이 오기 시작했는지, 해가 기대했던 것보단 오래 머물렀다. 해가 더 길었으면 좋으련만. 사방에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면 지금처럼 동태를 살피기는 어려웠다. 지금부터 자정까지는 운에 맡겨야 하나…. 성화는 아쉽다는 듯 입 다시며, 아직은 차가운 밤이슬을 피해 건물 안으로 숨어들었다. 적어도 아직은 제 시나리오대로였다.

그래, 성화는 제대 아래서 꾸물거리던 그 그림자의 주인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 쥐새끼를 적발하지 않은 것은 다분히 계산적인 이유에서였다. 성화는 영웅담이 필요했다. 목사의 선민의식에 의해 거두어져 이 마을에 얹혀살고는 있으나, 성화는 여태 이곳에서 외지인이었다. 이는 생존자 무리가 다른 무리에 비해 유별나게 외지인에 경계심이 심해서라기보다, 재난 이전부터 기원한 유대감에 있었다. 이 마을의 생존자 대부분이 재난 이전 한 교회의 교인이었다. 그러니까, ‘우리 함께 똘똘 뭉쳐서 살아남아 봅시다.’라며 의기투합하기도 전에 저들끼리 ‘우리는 하나님 아래 한 가족입니다.’ 하고 있었단 뜻이다. 마을의 어린아이들은 피 나누지 않아도 어릴 적부터 교회에서 알고 지낸 어른들, 예를 들면 한 씨 아주머니를 이모라 부르기도, 목사를 할아버지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 빌어먹을 가족 안에 성화의 자리는 없었다. 먹을 건 나누어주어도, 그리하여 오늘은 어디에서 잤는지, 언제 끼니를 챙겨 먹었으며,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들여다보고 물어봐 주는 이 없단 뜻이었다. 함께 있으나 그 어디에도 기댈 곳이 없었다. 사람 마음 참 우습지. 살아남기 급급한 와중에도 사람다운 삶을 살고 싶어 타인의 온정을 기다렸다.

그리하여 어린 마음이 한 시나리오를 그린 것이다. 만약 마을에 숨어든 침입자를 잡았다고 하게 되면 어떨까. 단박에 없던 신임이 생기기를 기대하진 않았다. 그렇게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면 오히려 맥이 빠졌다. 그러나, 성화는 계속 문을 두드리고 싶었다. 나는 꽤 쓸만할 뿐만 아니라, 이 마을 사람들과 편을 같이 한다고. 그러니, 이곳의 아이로 받아달라고.

 

/

 

순찰 인원에게 주어지는 호신용품이라고는 마을 사람들을 불러 모을 수 있는 경보기가 다였다. 아무래도 총기와 같이 들고 도망갈 수도 있을 만큼 가치가 있거나, 변심하여 다른 누군가를 치명에 이르게 할 수 있는 무기를 개인에게 선뜻 쥐여주기에 흉흉한 시국이니 모두가 납득했다. 성화에게는 하나가 더 있었다. 유품이라고 하나 있는 잭나이프였다. 재난 전엔 그 부모 품에서 벗어나려 안달이었는데, 그 노력이 모두 무색하도록 쉽게 세상을 떠버렸다. 너 같은 자식 둔 적 다던 그런 부모도 죽기 직전엔 자식새끼가 눈에 들어왔는지 살아남으라고 칼 한 자루 쥐어준것이었다.

전복된 세상에 방생된 것은 타의였으나, 칼 품고 어떻게든 이곳에서 살아나가려함은 자의다. 성화는 제단 위 제대로 걸어갔다. 그 그림자는 아직 기도소를 빠져나가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그 그림자가 노렸을 지하실 문은 자물쇠 걸려있어 쉽게 따기 어려웠고, 종일 좁은 제대 아래 꿈쩍 않고 숨어 버틸만한 독기라면 목표를 달성하기 전에 쉽게 포기하지 않으리란 판단이었다. 미안하지만 그 계획도 여기까지이다. 경보기를 주머니에 넣은 뒤 한 손에 잭나이프 꽉 쥐고 제대를 덮은 벨벳 천을 잡아당겼다. 그 위에 놓였던 촛대와 성경이 천에 쓸려 바닥에 나뒹굴었다. 벨벳 천이 시야에 아직 걸쳐있을 때 아래에 숨어 있을 침입자를 향해 칼을 들이 밀었다.

칼은 허공을 갈랐다. 아래엔 아무도 없었다.

숨을 곳이 따로 없을 텐데? 성화는 다급히 기도소 전경을 둘러보려 몸을 틀었다. 진작 도망쳤나. 아니면 이미 창고에 숨어든 것은 아닐까. 성화의 순번에 식량이나 물자를 도둑맞았다면 그것만큼 곤혹스러운 일이 없었다. 성화는 제단에서 내려와 이 열 좌석 가운데 복도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십자가 뒤에서 인영이 걸어 나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기도소에 정문으로 들어오자마자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지하실로 통하는 계단과 철문이 있었다. 예배 전부터 숨어있었다면, 박스를 나르는 것을 보았을 테니 이곳을 지나치지는 않았으리라. 자물쇠는 멀쩡했다. 성화는 잠깐 나이프를 주머니에 넣고, 양손으로 자물쇠를 따 문 밀어젖혔다. 지하에서 올라온 쾌쾌한 먼지 냄새가 훅 끼쳤다.

숨이 턱 막혔다. 지하실 공기 탓이 아니다. 누군가 덜미를 있는 힘껏 내려치고 벽으로 성화를 밀어붙였다. 컥, 충격에 목구멍에서 공기 헛 빠지는 소리만 울리고 비명 지르기도 전에 입이 틀어막혔다.

“시키는 대로 하겠다고 약속하면 풀어줄게. 알겠으면 머리 끄덕여. 싫으면 여기에서 뒤지는 거고.”

살벌하지만, 어딘가 산뜻한 리듬을 탄 문장. 소년의 목소리였다. 많아 봤자, 성화 또래. 그러나 근질부터 성화의 우위에 있었다. 몸 옴짝달싹 못 하도록 밀어붙이는 압력이 대단했다. 무엇보다도, 성화는 저를 밀어붙일 때, 벽과 부딪히던 쇠붙이 소리를 들었다. 어느 쪽인지 몰라도 총칼이 저 애 손이 있었다. 성화는 얌전히 고개 끄덕였다.

“좋아, 나도 사람 죽이긴 싫어.”

몸을 누르던 무게가 사라지자마자 몸을 틀어 등을 숨겼다. 대치 자세를 취했으나 뒤 돌자마자 눈에 들어온 것이 소년의 손에 들린 총이었다. 그다음에서야 해진 청바지에 흰 티셔츠 그리고 검은 점퍼가 눈에 들어왔다. 정리되지 않아 복슬복슬한 갈색 머리 소년이 무감한 표정으로 성화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누구나 배곯는 세상, 똑같이 말라도 뼈대부터가 달랐다. 저걸 어떻게 뚫고 지나가지. 순순히 따르는 척 도망치려고 했는데, 영 각도가 안 나왔다. 틈새를 봐. 저 총구만 피하면…….

“죽이기 싫다고 했지 못 죽인단 소린 아니니까 머리 굴리지 마.”

눈알 굴러가는 거 다 티나. 소년이 비식거렸다.

“원하는 게 뭐야.”

“너희 목사님 방에 데려다주는 거.”

“뭐?”

“내가 저기 숨어 있으면서 다 듣고 있었는데, 그 목사 되게 재밌는 얘길 하더라. 그 사람 라디오를 가지고 있지? 라디오가 아니면 어떤 통신 기기든.”

“그건 나도 몰라. 목사님 방에는 아무나 못 들어가고, 나도 들어가 본 적이 없어.”

“그럼 잘 됐다. 너도 이번 기회에 들어가 보면 되겠네.”

“차라리 지하실에서 식량이나 가져가. 목숨 단축하지 말고.”

“그것도 좀 끌리긴 하는데, 당장 급한 건 아니라 사양한다.”

이 애, 은근히 재수 없네. 소년의 말에는 여유로움이 묻어있었다. 지금 당장 성화를 이겨 먹을 수 있다는 자신감 외에도, 재난이 일어나고 제일 귀해진 먹을 것과 생필품을 눈앞에 두고 마다하는 게 그랬다.

“아, 혹시 저 안에 퓨즈나 전기선 같은 것도 있나?”

“그런 걸 모은 적은 없어.”

“아쉽네…. 마을에 철물점도 없지?”

철물점 같은 건 대형 마트에 밀려 재난 전에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있다고 해도 해일에 한 번 침수된 지역이라면 바닷물에 부식되어 쓸만한 걸 찾기 어려울 터였다. 성화가 고개 끄덕이자 소년은 어깨 으쓱였다. 그럼, 어쩔 수 없네. 소년은 길을 비켜서더니 고갯짓했다.

“뭐 해? 걸어.”

여전히 총구 겨눈 채였다.

 

등에 총을 두고 걸었다. 정문을 벗어나 조금만 더 걸으면 순찰 교대를 하는 장소였다. 그러니까, 다음 교대 조를 포함하여 마을의 누구든 경보 소리를 들으면 달려오기 좋단 뜻이다. 돌아가는 발전기라는 게 없으니 기도소에서 조금만 멀어져도 길을 밝히는 가로등 하나 없었다. 어둠이 내려 시야가 좁아지는 타이밍을 노리면 총구를 피해 경보기를 울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무려 날이 그믐이었다.

기도소 문을 열고 나올 때까지만 해도 꽤 가능성 있는 계획에 평정심을 찾았던 성화는 이내 당황했다. 지평선 위로 거대한 푸른 달이 솟았다. 작년보다도 그 크기가 더 컸다. 이런, 재수 없게……. 소년이 중얼거렸다. 성화 역시 같은 생각이다. 지금 꼬인 계획을 차치하고서라도 푸른 달이 더 가까이 왔다는 것은 무슨 이변이든 그 피해가 예년보다 상회할 것이란 뜻이었으니까. 괴이한 푸른 빛이 둘이 걷는 길을 밝혔다.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이미 경보를 울리려던 구간이 코앞이었다.

이 애가 정말로 총을 쏘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어디에서 생겼는지 성화 자신도 알 수 없었다. 돌연 미친 짓을 하지 않고도 살아남기에는 척박한 세상이었다. 마을에 머물며 다 흐려졌다고 생각했던 뱃심이라는 게 피에 흐르고 있었던 모양이다. 하나, 둘, 셋. 심호흡과 함께 성화는 바닥으로 몸을 굴렸다. 뭐야. 일순 목표점 잃은 총구가 다시 성화를 찾아내고자 홰홰 공중을 휘저었다.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경보기를 꺼냈다. 온 마을에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달빛을 받아 당황한 표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흙먼지에 구르고도 통쾌했다. 지척에서 웅성거리는 소리와 발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제 눈 딱 감고 달리기만 하면 됐다. 그때 찢어질 듯한 총성이 울렸다. 놀란 성화가 그대로 몸을 움츠렸다. 미친……, 진짜 쐈어. 빗맞았지만 발치에서 흙먼지가 튀어 오른 게 다분히 의도적인 겨냥이었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얼얼해진 고막에 귀 감싸고 주저앉았다. 몸이 굳어 소년이 다가오는 데에도 눈 끔뻑이는 것밖에 못 했다.

“너, 진짜 귀찮다. 왜 한 번에 말귀를 못 알아듣고 그래.”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하는 성화의 허리를 감아 일으킨 소년은 성화의 관자놀이에 다시 겨눴다. 모여들고 있는 사람들이 두렵지도 않은지 오히려 당당히 어깨 펴고 그들을 기다렸다. 

“이번엔 말 좀 잘 듣자.”

“무슨….”

“뭐긴 뭐야. 납치극이지.”

 

 

2.

 

하얀 탑차가 텅 빈 고속도로를 달렸다. 푸른 달은 한쪽 끝자락을 지평선에 걸치고 동서로 천천히 하늘을 걷고 있었다. 푸른 달이 지구와 가장 가까워지는 기간, 지구의 공전 궤도를 지나 외행성 궤도에서 내행성 궤도로 접어드는 기간엔 지구 어느 곳이든 강도 높은 지진과 해일로 시끄러웠다. 하루가 시작되고 저물 때마다 지구의 면면이 푸른 달 앞에 드러나고, 그곳의 지반과 수면은 곧 강한 중력에 이끌려 요동쳤다. 그렇다면 따라잡힐 때까지 반대로 달려야지. 12년 된 낡은 트럭으로는 하루가 저물 때쯤이면 끝끝내 달에 따라잡히곤 했지만, 끊임없이 서쪽으로 이동하는 것은 윤호의 망해버린 세계에 대한 마지막 반항심이었다. 적어도 대륙 안쪽을 향해 달리면 당장 수장되는 것만큼은 면할 수 있으니 윤호는 끊임없이 이동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었다.

크게 움푹 팬 도로에 잠깐 차를 멈추었다. 이제 약진은 일상이라, 금이 가거나 끊어진 도로를 만나는 것이 예사였다. 이대로 방향을 틀어 가장 가까운 도시로 들어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화물칸에 기름통이 몇 통 더 있었지만, 지금쯤이면 예비로 기름을 더 채워야 했다. 라디오를 고칠 수 있다면 더 좋고.

아직 동이 트기 전이었다. 가까워지는 도시에는 불빛도 연기도 보이지 않았다. 얼핏 보기론 그곳에 살고 있는 생존자가 없거나, 있어도 그 수가 많지 않은 모양이었다. 무리 짓지 못한 자들은 적들로부터 최대한 기척을 숨기려 추운 겨울에도 이 딱딱 부딪히며 불 없이 추위를 버텼다. 세상이 뒤집히고 제일 위험한 게 사람이었다. 피하지 못할 파고의 해일이나 꺼지는 땅을 마주하면 이곳이 내 무덤이로구나 받아들이겠지만, 군인이나 범죄 집단을 만나면 목숨만 붙은 채 사느니만 못한 처지로 느리게 죽어가는 수가 있었다. 도시로 진입하는 도로를 타면서 자동차 전조등을 껐다. 외곽에 차를 숨긴 후, 걸어서 이동할 생각이었다.

“도시로 들어갈 거야.”

“…….”

“차에 있고 싶으면 있어도 상관은 없는데, 따라가고 싶으면 풀어주고.”

계획 밖의 동행인은 한참 전부터 말이 없었다. 내려달라 발악할 줄 알았는데, 가만 앉아 창밖만 바라봤다. 숨소리조차 안 들리게 기척을 죽여 언뜻 혼자 도로를 내달리고 있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그렇기에 윤호는 조수석의 소년이 운전하는 저와 함께 밤 꼴딱 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재수 없는 달이 너무 밝았던 게 문제였다. 윤호는 인질을 잘못 골랐다. 마을에 숨어 들어간 것을 그 마을 생존자 모두에게 들켜놓고 이렇게 쉽게 빠져나온 것이 어이없을 정도로 그들은 윤호를 순순히 보냈다. 사지 앞의 소년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으나, 목사가 되어서 품은 체면이라는 것 때문에 소년의 목숨 희생해서라도 침입자를 잡으란 명령을 못 내린 게다. 열린 지하실 창고 속 상자의 수를 세어보고 사라진 것 하나 없다는 게 확인되고 나면 그저 해프닝 하나로 넘겨질 인질극이었다. 침착함으로 포장된 평온한 목사의 얼굴과 외면의 낯빛 수십이 달빛 아래에 명명히 드러났다. 그 누구도 소년을 구하려 들지 않았다. 그러니 마을을 빠져나오는 순간, 소년은 깨달았을 것이다. 이제, 돌아갈 곳도 없다는 것을.

시동을 껐다. 이제 둘 사이를 빈약하게나마 메워주던 엔진 소리마저 없어졌다.

“성화야.”

창에 콕 이마 박고 있던 소년의 등이 흠칫했다. 그들을 처음 발견한 중년의 남자가 그리 소년을 불렀다.

“못 들은 척하지 말고.”

사람 이름을 불러 본 게 너무 오랜만이라 속이 울렁였다. 재난이 일어나고 윤호는 항상 혼자 움직였다. 재난 이전에도 마찬가지였다. 윤호는 또래랑 어울릴 시간에 물류 창고에서 상하차나 배달 알바 뛰었다. 나이 열여덟. 보육원에서 등 떠밀려 자립해야할 시기는 다가왔고, 정부에서 주는 자립 수당으로는 바깥에서 자리 잡기에 턱도 없다는 사실 역시 잘 알았던 탓이다. 함께 일하던 아저씨들과 말은 트고 지내서 아예 입 마를 날은 없었지만, 간지럽게 또래 이름 부를 일도 거의 없었다.

여전히 묵묵부답, 요지부동이었다.

“손목 아플 것 같은데.”

운전 중에 급습당하기는 싫어서 손을 차 문에다 동여매 놓았다. 피가 안 통해 벌겋게 부어오르기 시작한 손목은 보고 있기 조금 미안했지만,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잖은가. 재난의 가장 무서운 점은 거리에서 만난 사람을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다는 것에 있었다. 마지막으로 찔러보자는 생각으로 던진 그 회유엔 답이 돌아왔다.

“묶어놓은 게 누군데.”

소년이 고개만 꺾어 윤호를 돌아봤다. 눈빛 형형한게 밤 꼴딱 새고도 기세가 안 죽었다.

“좀 봐주라. 우리 만난 지 12시간도 안 됐는데, 네가 내 목을 딸 줄 어떻게 알고 그냥 둬?”

“그러게 믿지도 못할 놈을 왜 달고 다녀.”

“원한다면 여기에 버려주고 갈까?”

그건 또 싫은가보지. 혀로 마른 입술 축였다 눈을 피했다. 윤호 스스로 생각해도 고약한 제안이었다. 성화의 마지막 무기였던 잭나이프는 지금 제 손에 있었다. 스스로를 지킬 날붙이 하나, 식량 한 줌 안 쥐어주고 길 위에 내리라는 것은 곧 죽으라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마치 선택권을 준다는 양 굴었으니 말이다. 그말에 곧장 꼬리 내려버리는 성화를 보니 되레 겸연쩍어졌다.

“거기서 끌고 나온 건 미안하게 됐는데…. 아, 그러니까 그냥 가만히 그 목사 방만 알려줬으면 좋았잖아. 왜 널 구해주지도 않을 사람을 믿어서 이 지경을 벌려.”

“목사님을 믿은 게 왜 내 잘못이야. 적어도 그 사람들은 내 목숨을 한 번 구해준 적 있어.”

“뭘 모르네. 세상이 뒤집히기 전에도 사람은 함부로 믿는 거 아녔어.”

“…….”

“…….”

“그러는 넌. 널 뭘 믿고 따라 오라는 거야.”

“나도 널 혼자 차에 남겨 두기 좀 찜찜해서.”

“…….”

“싫다는데 끌고 가는 건 그거대로 또 귀찮으니까. 물어본 거고.”

그래서 가겠다는 건지 말겠다는 건지. 성화는 다시 입 꼭 다물어버렸다. 싫다는 뜻인가 보지 뭐. 대답 듣기를 포기하고 차 문 열어젖히고 발 땅 디뎠을 때야 나지막한 목소리가 차 안에서 새어 나왔다.

“언제 돌아올 건데.”

“나도 몰라. 저녁이 될 수도 있고. 내일이 될 수도 있고.”

도시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윤호도 확신할 수 없었다. 한 번은 총기 잔뜩 든 무리에 퇴로가 막혀 폐건물에서 숨죽이고 이틀 버틴 적도 있었다. 모든 변수 뛰어넘어서라도 제시간에 돌아오겠노라 약속하고 거기에 목숨 걸 이유 또한 윤호에게 없었다. 성화는 그 말에 동요했는지 머뭇거리다, 문을 닫기 직전에서야 느지막이 대답 꺼내 들었다.

“…라…ㄱ…래.”

“뭐라고?”

“따라간다고.”

혼자서의 기동성과 효율성을 사랑하는 윤호에겐 기다려주기 참으로 기나긴 결단이었다.

 

/

 

길바닥이 버석히 말라 있었다. 침수로 무너진 도시는 아니었는지, 조각난 콘크리트 더미 위로 마른 풀숲만 무성했다. 적어도 지지난번 들른 마을처럼 쇠붙이라고는 다 부식되어있던 것보다는 멀쩡한 라디오 부품을 찾기 좋아 보였으므로 수색에 의욕이 났다. 차를 주차해둔 곳을 오가며 조금씩 수색 영역을 넓혔다. 성화는 항상 윤호의 몇 걸음 뒤에서 따라다녔다. 바싹 붙어오지는 않아도 무기 한 점 없는 지금 윤호와 떨어지는 것이 오히려 위험하다는 것을 알아서인지 발걸음 게을리 하지 않고 간격을 유지했다.

기름이 남아 있는 주유소를 찾아 드럼통을 채우고, 차로 옮기느라 사흘을 머물렀다. 성화는 군말 않고 그 작업을 도왔다. 적응력이 좋았다. 조수석에 쪼그리고 앉아 머리 박고 있던 것도 하루 만에 관둬버린 것이다. 덕분에 모자란 기름을 채우는 작업이 예상했던 것보다 두 배로 일찍 끝났다. 도시 안을 쏘다니며 다음 도시까지 이동하기에 불편함 없을 정도로 화물칸을 채운 날 둘은 특식으로 소고기 통조림을 하나씩 깠다. 화물칸 문을 열어두고 그 끄트머리에 걸터앉아 다리 달랑이며, 별미로 지는 해와 떠오르는 푸른 달을 봤다. 그때 이름이랑 나이를 텄다. 누가 먼저 물었는지는 불분명했다. 스물하나, 정윤호. 스물둘, 박성화. 재난이 일어났던 열여덟과 열아홉에 기억이 머물러 버리는 바람에 각자 지금의 나이를 셈하기 위해 조금 뜸 들여야 했다.

“형이었네.”

“그 말 오랜만에 듣는다.”

“높임말 써드릴까요?”

“징그러워. 됐어.”

“그 말은 좀 상천데.”

“윤호야-.”

“……. 네, 형.”

“되지도 않는 소리 말고, 정리나 해.”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것도 낯간지러웠지만 누군가가 부르는 제 이름을 듣는 일은 더 간지러웠다. 누구든 마지막으로 제 이름 부드럽게 불러줬던 날이 언제였더라. 꼬박 삼 년을 이름 밝히지 않은 채, 옆에 사람 하나 두지 않은 채 살았더니 귓가를 두드리는 목소리가 낯설었다.

“형, 내 이름 한 번만 더 말해봐.”

”진짜 왜 이래.”

“아니 듣고 싶어서. 형 목소리 듣기 좋네. 노래 잘 부르겠다.”

“……. 윤호야.”

”응.”

”이거부터 씻어.”

설거지거리 한아름 받았는데도 웃음이 실실 났다. 입꼬리 당겨 웃느라 볼이 아프다는 감각이 생소했다. 성화를 데려온 게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는 생각을 아마 그 때 처음 했을 것이다.

 

/

 

새로운 도시에서 일주일째, 성화가 무너진 백화점을 찾아냈다. 윤호는 쾌재를 불렀다. 식품관에서 남은 식량을 챙길 수도 있었고, 잡화 코너엔 윤호가 찾고자 하는 부품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람이 없는 곳에 이런 노다지가 남아있기 쉽지 않았다.

“저기 들어가려고?”

사거리에서 방향을 틀어 백화점을 향하는 윤호에 성화가 물었다.

“무너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아직 안 무너진 거 보면 시도해 볼 만해.”

“저 안에 사람이 있을 수도 있어.”

“그러니까 조용히 들어가야지. 지금처럼 떠들지만 않으면 될걸?”

조심성 없이 발을 끌어 조각난 콘크리트가 발에 채는 소리, 서로를 지척에 두고 텅 빈 도시에 왕왕 메아리치도록 소리 높인 대화 방식. 그리고 결정 하나에 따라오는 여러 딴지 거리. 윤호는 이미 평소보다 비효율적인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었고, 보다 요란하게 도시에 제 존재를 신고하고 있었다. 여기까지 와서 더 지체할 수는 없었다. 입씨름의 마지막은 이랬다.

“형은 여기에서 기다려도 돼.”

성화가 주저하자 윤호가 주머니를 뒤지더니 무언갈 꺼내 성화에게로 던졌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온 그 물건은 그대로 성화의 손에 안착했다. 오, 순발력 좋네. 휘파람 휙 분 윤호는 성화가 물건의 정체에 놀라는 사이 다시 만날 거면 시계탑에 있으라는 소리만 남기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걸 순순히 돌려줄 줄은 몰랐다. 성화는 제 손에 쥔 것과 멀어지는 윤호의 등을 번갈아 보며 갈등했다. 어쩌면 이건 기회였을지도 몰랐다. 각자 돌아서서 제 갈 길 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 짧은 찰나 첫째로 가늠해본 것은 양 선택지의 생존 확률이었다. 저 애를 믿어보는 것과 더 이상 그 누구도 믿지 않는 것. 달리 무엇이겠는가. 성화는 원체 외로움 앞에 맥을 못 췄다. 죽어도 누군가의 곁에서 죽는 게 좋았다. 손아귀에 힘주어 윤호가 돌려준 것을 쥐고 성화는 윤호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됐어, 그게 더 무서워.”

손에 잭나이프 꼭 쥔 채였다.

 

1층 식품관에서 건질만한 것은 거의 없었다. 있는 통조림이라고는 발 빠른 사람들이 먼저 채갔고, 나머지는 썩어 못 먹게 된 지 오래였다. 주류 매장에서 증류주나 좀 챙겼다. 좋은 현실 도피 방법이기도 했지만, 달리 위생을 챙기기 어려워진 세계에서 알코올은 좋은 소독 도구이기도 했다. 이제 올라가자. 그 말에 옆 진열장을 구경하고 있던 성화가 코너를 돌아 빠져나왔다. 카레 가루와 바질 가루 따위의 향신료 몇 병을 손에 가득 차도록 든 채였다.

“짐이야. 그거.”

“그럼 넌 먹지 말던가.”

“형 싣고 다녀야 하는 건 나야. 이 시국에 무슨 맛을 따져.”

“두고 봐라, 잘 쓰면 이제 못 먹을 것도 목구멍에 넘기게 될걸.”

그리곤, 제 웃옷 양 주머니에 그 유리병을 죄다 쓸어 넣었다. 따라 걸을 때마다 유리병 부딪히는 소리가 달그락달그락 났다. 어린아이에게 삑삑 소리 나는 신발을 신겨 놓은 듯 눈으로 좇지 않아도 성화가 따라오고 있다는 게 다 들렸다. 그래, 적어도 형 잃어버릴 일은 없겠다. 포기한 윤호가 더 따지는 대신 멈춘 에스컬레이터를 걸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 뒤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따랐다.

3층 캠핑용품 매장에서는 쓸만한 것들을 더 건졌다. 주유 도구라던가, 아직 액체 찰랑이는 가스통을 건진 게 제일 좋았다. 휴대용 배터리 충전기를 보고는 잠깐 고민했다. 들고 가기엔 손이 너무 무거워질 것 같아, 아쉽지만 기회가 있을 때 다시 오기로 했다.

5층 잡화 코너 옆에는 서점이 있었다. 문고라고 이름 붙이고, 책, 음반, 문구류 모두 걸어두는 곳이었다. 윤호는 아직 불쏘시개로 전락하지 않은 책이 남아있다는 것에 내심 놀라며 곧장 잡화 코너로 향했다. 그곳에 발 붙들린 것은 성화였다. 달그락달그락 따라오는 소리가 안 들려 진열장 사이로 얼굴 빼꼼히 내밀었더니, 매대에 서서 뚫어져라 표지 훑고 있었다.

“구경할 거면 거기에만 있어.”

성화가 말없이 끄덕였다. 그래, 나보다도 일 년 밥그릇 더 챙겨 먹은 사람인데 내가 뭘 걱정하냐. 윤호는 곧장 진열장 사이로 사라졌다.

수확이 좋았다. 윤호는 그토록 찾아 헤매던 전자 부품을 배낭에 쓸어넣고 진열대를 빠져나왔다. 이제야 고장 난 차량 라디오를 고칠 수 있게 된 것이다. 영 고칠 방도를 못 찾아 성화의 마을에 숨어든 것이었는데, 그것도 시원하게 실패해버렸으니 이제 진정으로 발 닿는 곳 안전한지 아닌지 알 수 없는 확률 게임을 시작해야 하나 했다.

성화는 여전히 서점 그 자리에 있었다. 소설 하나에 빠진 건가 싶었는데 엉뚱하게도 성화가 서 있는 곳은 문제집 코너였다. 그것도 표지에 3년 전 연도가 찍힌 수능 특강 문제집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뭐 하러 풀지도 않을 문제집을 그렇게 들여다보고 있어.”

먹고 사는 법칙이 달라진 세계에서 이제 존재하지도 않는 수능 답안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는 모습은 희극 같다. 성화는 별안간, 수특 표지를 보고 3년 전 본 모의고사 제일 마지막 문제 답이 궁금해졌단다.

“내가 3년 전에 그걸 못 풀어서 등급이 깎였거든.”

“그때 본 그 문제가 지금까지도 생각나다니 범생이었네.”

“그땐 집을 떠나는 게 간절해서 그랬어.”

성화는 푸른 달을 처음 본 날을 똑똑히 기억했다. 6월 모의고사 성적표가 나온 날이었다. 3월 모의고사보다도 성적이 떨어져서 문 잠그고 책상 앞에 앉아있었다. 밥 먹으러 나와보라는 소리도 귀에 안 들어왔다. 부모님 성정에, 성에 안 차는 서울권이나 경기권 대학 가느니 그냥 집과 가까운 지거국 대학에 등록하라고 할 게 뻔했다. 숨이 턱턱 막혔다. 그땐 그 집안에서 탈출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 대학 합격밖에 없었으니까. 저녁 시간이 한참 지나도록 책상 앞에서 혼자 눈물 짜고 있는 것도 배고프고 서러워서 냉장고를 털고 싶었는데, 부모님이 연속극 보시느라 잠에 안 드셔서 할 일 없이 밤하늘이나 내다봤었다. 울어서 띵해진 머리, 눈물을 말리기엔 습해진 초여름의 밤바람, 눈물 젖어 조금 흐릿해 보였던 하늘, 그 위에 푸른 달이 걸려있었다. 초점 나간 망막에 가득 들어찰 정도로 커다랗던 바로 그 소행성이.

“겨우 성적 하나에 세상 다 무너지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진짜 눈앞에서 건물이 무너져 내릴 줄이야 알았겠어.”

“나에겐 잘 안 와닿는 이야기네.”

중얼거리는 윤호에 성화가 큭큭 웃었다.

“아 아깝다. 윤호도 세상이 망해버리기 전에 고삼 한 번은 해봤어야 하는데.”

“그건 별로 해보고 싶지도 않고. 아무튼 수능 얘기 아니야.”

“그럼 뭔데?”

“집을 떠나고 싶다는 거.”

“…….”

“나는 떠나지 않아도 되는 집이 있었던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어.”

 

/

 

형은 왜 그렇게 집을 떠나고 싶었는데? 그 질문을 하지 말았어야 했을까. 성화는 그 질문에 한껏 당황하더니, 때늦은 사춘기 탓 아니겠냐며 횡설수설 말을 돌렸다. 그리곤 탑차로 돌아올 때까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으니 그 질문이 성화의 속을 어지럽혔음이 분명했다.

그러나, 윤호는 실로 궁금했다. 떠나고 싶은 마음도 떠나갈 곳이 있어야 생기는 법이었으므로. 윤호는 이제 기억이 나지도 않는 어린 나이에 보육원에 맡겨졌으니 윤호에겐 집이라고 할 만한 곳이 없었다. 보육원을 떠나는 것 역시 정해진 절차였다. 벗어나지 못해 힘에 겨운 무게의 관계는 감히 상상해본 적도 꿈꿔 본 적도 없었다.

처음 만났던 날과 같은 침묵이 이어졌다. 말 트기 시작한 지 겨우 일주일인데 다시 찾아온 정적에 입이 바싹바싹 말랐다. 결국 답답증에 자리를 먼저 피했다. 부품도 구했으니 차량 라디오를 고쳐야 한다는 좋은 핑계도 있었다.

라디오는 안테나가 아니라 스피커가 문제였다. 끊어졌던 앰프의 퓨즈를 갈아 끼우니, 스피커가 먼지를 토해내며 진동하기 시작했다. 화물칸에서 눈이나 좀 붙이겠다고 했던 성화가 운전석으로 찾아온 것은 라디오 잡음이 잡히기 시작했을 때였다.

“아, 시끄러웠어?”

“아냐, 눈뜰 때 돼서 깬 거야. 라디오 잘 고쳤네.”

“응, 이제 다음 보도가 잡히면 이동할 방향을 정해보려고.”

“가고 싶은 곳이 있는 거야?”

“글쎄. 처음엔 그냥 저 달이 안 보이는 데까지 가보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어.”

“꿈이 컸네.”

“그치. 그래도 혼자서 몇 시간씩 운전하다 보니까 생각할 시간이 생기더라고. 어디로 가면 좋을지 처음으로 고민해봤어.”

재난 전엔 이런 꿈을 꿀만한 겨를이 없었다. 10년 후를 생각하기엔 당장 6개월 후가 더 급했다. 당장 길바닥에 나앉고 싶지 않다면 보증금과 월세를 마련해야 했다. 학교에서는 잤고, 저녁부터 새벽까지 아르바이트를 했다. 깨어있는 동안은 코 앞의 반복 노동이 생각할 수 있는 전부였다. 곧 6개월 후를 걱정하는 것도 사치가 됐다. 다음 날에도 일당을 받을 수 있길. 한 시간 뒤에 배달 건이 잡히길. 10분 뒤 배달 박스를 쌓아야 할 곳을 착각하지 않길. 그렇게 한 번에 담을 수 있는 시간의 폭이 좁아져만 갔다. 그러니 윤호는 세상의 규칙에 맞출 필요가 없게 되었을 때야 꿈을 꿀 수 있게 된 것이다.

버려진 주유소에서 지도 뭉치를 발견했다. 내비게이션도 없던 시절 책자 형태로 접어진 전국 지도였다. 그 지도로 가장 가까운 도시를 찾고 그곳 서점에서 다시 세계 지도를 찾았다. 이제 국경도 시간도 돈도 윤호에게 문제가 아니었다. 지도 위에선 손가락 한 번 훑는 것으로 나라가 바뀌었다. 세상이 휙휙 바뀌었다.

“북서로 가다 보면, 세상에서 제일 큰 호수가 있대. 너무 넓어서 바다 같은.”

성화는 어느새 조수석에 앉아 윤호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얼마나 걸리든 나는 거기에 갈 거야. 마음 먹고 얼마 안 되어 차 라디오가 고장 나는 바람에 좀 지체됐지만. 그렇게 말하는 윤호의 눈은 빛이 났다. 그다지 거창하진 않았지만, 성화도 꿈이 있었다. 인서울 대학에 들어가서 부모 품을 벗어나는 것. 재난이 부모를 앗아가고는 다 쓸모없게 된 꿈이었다. 그 다음에는 꿈을 생각해본 적이 있었던가. 살아남는 것이 급급해서 그런 생각들은 항상 뒤로 미뤄뒀었다. 생존과 직결되지 않은 생각은 죄다 사치 같았던 시절이었다.

“형은 어디로 가고 싶었어?”

가족을 떠나서, 가고 싶은 곳이 어디였을까. 돌고 돌아 같은 질문으로 돌아왔다. 성화의 말문을 앗아버렸던 그 질문으로. 눈을 들여다 본다고 답이 들리는 것도 아닌데, 운전석과 조수석에 앉아 옆으로 기대어 서로의 눈만 들여다 봤다. 잡히지 않는 라디오의 소음 사이로 긴 한숨이 샜다. 성화는 시트에 파묻었던 몸을 일으키며 엉뚱한 이야길 꺼냈다.

“사람이 다른 사람 눈을 일 분 이상 바라보고 있으면 그 사람과 키스하거나 죽이고 싶어진대.”

성화의 등 뒤로 지는 햇살이 쏟아졌다. 달싹거리는 입술 모양이 쉽게 읽히지 않았다. 윤호는 라디오 볼륨을 줄이며 성화의 말에 귀 기울이려 애썼다.

“……. 그래서?”

성화는 대답 대신 윤호의 재킷을 쥐고 가볍게 당겼다. 순순히 딸려가자 그 다음엔 마른 입술이 윤호의 입술에 닿았다. 따갑게 때리는 햇살과는 다른 말랑하고 부드러운 온기가 살짝 앉았다 이내 도망쳤다. 찰나라 실로 닿은 것이 맞는지도 되짚어야하는 담백한 입맞춤. 그 행위의 의미를 채 되짚기도 전에 몸을 물린 성화가 물었다.

“너도 내가 더럽다고 생각해?”

“…….”

“나는 그냥 나로 있을 곳이 필요했어.”

우리 부모님은 그게 어려우셨나봐.

이상하게 그 물음에 답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세상이 망해버렸는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

세상은 뒤집혀 버렸고, 이제 성화가 틀렸다 정의할 이도 사회도 사라져버렸다. 그렇다면, 윤호는 이렇게 답하기로 했다.

“나랑 함께 갈래?”

아니, 함께 가자. 나아갈 길 위의 세상에는 단 둘 뿐일 것이므로, 이 세계의 법칙은 이제 성화가 묻고 윤호가 답하는 대로 정해졌다. 둘 뿐이기에 한 없이 작고, 발 닿는 대로 확장하기에 광활했다.  세상의 정답인 오직 서로 뿐인 세상을 만드는 것. 그 결심이야 말로 푸른 달이 가져온 진정한 창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