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3원색. 빨강, 초록, 파랑의 빛을 겹쳐 비출 때 가장 많은 색깔을 만든다. 같은 빨간색이어도 적색, 진홍색, 선홍색, 다크레드, 버건디 등 색깔의 명도에 따라 나누어진다. 다양한 색상이 조화를 이루는 세상을 보며 많은 사람들은 하늘과 바다, 산은 푸른빛이 돌아 아름답다고 한다.
하지만 모노는 그런 세상을 바라볼 수 없다.
모노란, 세상이 모든 색을 잃은 채 흑백색의 삶을 산다. 모노가 바라보는 세상은 흰색과 검은색이 명도에 따라 다르게 보일 뿐이다. 대부분 선천적으로 태어날 때부터 색을 잃지만, 정말 드문 경우로 가끔가다 후천적으로 사고 또는 어지러움과 눈의 초점을 잃다 쓰러져 갑자기 어느새에 색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아이가 커가며 색의 구분 못함을 인지하면 부모들은 검사를 통해 발현된다. 그런 모노는 운명의 짝이라는 소울메이트. 즉, 프로브라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색의 점점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 정우영은 그런 세상은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평화롭고 알록달록했던 나의 일상은 하루아침에 칙칙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저 어둡고 색이 없는 형태로 먹먹할 뿐인데. 뭐가 아름답다는 건지. 이제는 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다. 세상의 모든 색을 잃어버렸다. 중학교 3학년이 끝나가기 무렵 제법 어리고 미래의 꿈만 바라보고 나아가고 있던 나에게는 절대 상상도, 있었어도 안될 일이었다.
어느 날 오한이 찾아와 학교 중간에 조퇴를 한 후 집에서 하루를 보냈던 날이었다. 너무 춥고 어지러운 나머지 교복을 갈아입을 틈 없이 침대에 기절하듯이 쓰러져 오들오들 떨며 잠이 들었다. 뭐, 어쩌면 기절했다가‘ 정확할 수도 있지만. 햇빛이 쨍쨍하며 밝았던 낮이 지나 어둡고 캄캄한 저녁, 일을 마치고 들어온 엄마는 급히 저녁밥을 준비한 후 잠이 든 나를 깨웠다.
“우영아, 밥 먹어야지. 언제까지 잘 거야!“
”으응,,”
“또 잠 못 자고 학교 가서 자지 말고!“
엄마, 불 끄고 요리했어? 다치면 어쩌려고 깜깜한 채로 요리를 해. 계속 감기는 눈을 찌푸리며 나왔을 때는 분명 아무 생각 없었다. 뭐라는 거야 헛소리하지 말고 밥이나 먹어. 그냥 아직 내가 잠이 덜 깼다고 생각했을 뿐, 하지만 엄마가 내 앞에 앉자 왜 엄마가? 왜 반찬 색들이? 한참 생각을 했다. 계속 눈을 비비며 머리를 한 대 톡톡 치자 엄마의 왜 그러냐는 질문에 내 머리채를 잡고 현실을 부정했다.
“엄마, 안 보여 색이..”
프로브의 운명
정우영 X 박성화 X 김홍중
그때부터 였을까? 연습생 생활을 하고 있던 나에게 없었던 카메라 공포증이 생겼다. 아니, 무슨 아이돌이 카메라 공포증.. 회사에서 카메라 테스트를 할 때, 그 카메라의 불빛이, 모형이 마치 사람의 눈 같았다. 많고 빛나는 카메라들이 나를 둘러쌓았고 어리바리 떠는 나를 보고 야유를 떠는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우영아, 무슨 일 있었어? 갑자기 왜 그래. 원래 잘 했잖아. 데뷔해야지.”
“하, 죄송합니다.. 다시 한번 해보겠습니다.”
결과는 같았다. 카메라 공포증에 무대 공포증까지.. 그동안 쌓았던 노력도, 실력들도 물거품이 되었다. 월말평가만 되면 나는 돌멩이 마냥 온몸이 굳었다. 그때마다 한동안 눈물을 쏟아내며 나날들을 후회했다.
그냥 모든 걸 그만두고 싶었다. 함께 연습했던 동생과 형들, 친구가 한 명씩 떠나가기 시작했다. 제일 친한 친구마저 떠나자 자존감은 하루빨리 바닥을 쳤고 아이돌을 그만 둘 생각으로 하루를 보내던 날,
“우영아!”
“오, 강여상 오랜만이네. 무슨 일이야?”
“잘 지내고 있지?”
“…당연하지! 나 정우영이잖아”
“다행이네, 나 KQ라는 회사로 왔어! 너도 나중에 오디션 보러 와!”
“아 그래? 근데 나 무대 공포증 있는 거 알고 있지?”
“기다리고 있을게~”
여보세요?? 아 뭐야 강여상, 또 지 할 말만 하고 끊네
선택해야 했다. 혼자 연습하다 그동안 쌓아온 꿈을 이대로 그만둬야 할지, 강여상을 믿고 다시 한번 꿈을 향해 나아갈지.
* * *
평화롭다고 말할 수도 있고, 그냥 경쟁이 오간다고 말할 수도 있는 연습생 생활을 이 회사에서 한지는 1년조차 안 돼, 피곤한 나날들을 보내도 곧 다가오는 데뷔조 편성에 들어갈 수 있다는 한 마디, 데뷔가 코앞이라는 희망에 그냥 악으로 깡으로 버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오늘도 다른 날과 다를 게 없이 평범하게 흘러갔다. 아니, 오늘은 좀 다르다고 할 수도 있으려나. 문이 열리고 정결하게 교복을 차려입고는 두 손을 모아 바짝 긴장한 채로 연습실을 훑어보는 한 고딩과 익숙한 여상이가 서있었다. 여상이를 보면 저런 아이가 아이돌을 하는구나.. 싶은 생각이 오늘도 내 머리를 훑어 지나갔다.
“안녕하세요! 정우영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 고딩, 우영의 목소리 톤은 높고 밝아 보였다. 매니저님은 친해지고 열심히 연습하라는 말 뒤로 문을 열고 나가자 어색한 분위기에 홍중이 먼저 자기소개를 하자며 분위기를 띄었다. 아, 나는 박성화야 저기 홍중이랑 동갑. 각자 자기소개를 맞춘 후는 각자 연습하기에 바빴다. 정우영의 첫인상은 의젓한 동생 같았다.
그 이후로는 우영의 모습을 많이 보지 못했다. 정확히 우영은 내가 생각했던 첫인상의 반대였다. 우영은 학교 갔다 중간에 나와 연습하였다면 나는 주로 모두 집을 갈 시간인 저녁과 새벽에 연습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가끔 마주칠 때 낯을 가리는 나와 다르게 우영은 낯을 안 가리는 듯했다.
성화형?! 오늘은 일찍 나오셨네요! 수고하세요 등등 먼저 말을 걸어줬고 스킨십이 많고 장난기가 많은 애인 거 같았다. 근데 분명 대화할 때는 멀쩡하던데 유독 나와 접촉이 있을 때마다 어딘가 아파 보인다. 그럴 때마다 연습에 의한 스트레스로 오해 같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다.
새벽에 나오는 나와 같이 매일 회사에서 밤늦게까지 연습하고 작업하는 동갑, 홍중과 같이 연습도 하고, 밥도 먹고, 서로 수다를 떨며 친해졌다. 점점 나도 모르게 홍중에게 호감이 쌓였고 곡작업을 하는 모습을 보고 왠지 모르는 가슴이 떨려와 나는 그 감정이 사랑이라고 결정을 내렸다.
사실 내가 배고파서도 있지만 항상 작업한다고 밥을 거르는 홍중이 생각나 같이 먹을 도시락을 들고 가는 내내 집중한 모습을 볼 생각에 설레는 발걸음으로 작업실을 찾아갔다. 심호흡 한번 내쉬고 노크를 한 뒤 문을 열었다.
홍중아, 밥 먹었어?”
“어? 아, 아니 아직 안 먹었지”
“그럴 줄 알고 도시락 사 왔지! 같이 먹자”
내 예상과 같이 밥을 안 먹었다는 홍중에 신나게 작업실을 들어가 문을 닫았다. 조용해진 방에 어색해 나는 배고팠다고 중얼거리면서 도시락을 까, 젓가락을 주며 잘 먹으라고 하자 고맙다는 말을 듣고 헤시시 웃으면서 밥을 먹었다.
“성화야”
“어, 어??”
“맨날 생각했는데 너 진짜 잘 먹는다.. 그렇게 말랐는데 진짜 많이 먹네”
어.. 칭찬이지? 먹던 젓가락질과 씹던 입을 멈추고 빤히 쳐다보자 홍중은 피식 웃고는 보기 좋아서, 많이 먹어.라는 말에 다시 기분 좋게 젓가락질을 시작했다. 젓가락질을 별로 하지 않은 홍중은 벌써 배가 부르다며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뭐야 반 밖에 안 먹었으면서‘
”양이 많네..! 나 저거 작업 마무리해야 하는데..“
”어, 어! 빨리해 나 먹고 있을게“
”미안.“
괜찮아! 괜찮아, 너 작업하는 모습이 제일 좋거든.. 마음속으로 생각하곤 뒷모습을 바라봤다. 궁금하다. 집중하고 있는 저 앞모습이, 평소 연습할 때와 다른 표정을 짓고 있을까?
”성화야.. 성화야??“
”어.. 어?!“
”어디 아파? 얼굴이 많이 빨간데“
다가와 이마에 손을 얹자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게 느껴졌다. 심장 소리가 홍중이한테도 들릴 정도로 크게. 정적이 흐르는 작업실. 그 작업실의 소음을 채우는 건 성화의 심장소리뿐이었다. 눈이 마주치고, 나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입을 맞췄다. 본능적으로.
홍중이는 놀란 듯 보였다. 그게 당연한 반응일 거다. 함께 지내왔던, 함께 연습하고 친구처럼 지냈던 우리였는데 그 사이를 내가 깨버렸다. 후회했다. 앞으로 홍중이와 함께 시간을 못 보낼 거 같아서. 함께 데뷔하지도 못 하고 이대로 끝나버릴 거 같아서.
“.. 미안. 나 먼저 가볼게”
성화야. 급하게 일어나 나가려는 날 붙잡았다.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내가 생각하는 거 맞지?”
너가 생각하는 게 뭔데? 내가 널 좋아하는 거? 나는 말을 못 했다. 상처받고 싶지 않은 마음에 그 물음에 정적으로 답을 전했다. 너가 거절해도 상관은 없었다. 예상했던 대답이었으니까, 언젠가는 고백할 생각을 갖고 있었지만 그게 오늘, 입맞춤으로 고백할 생각은 없었다.
“맞나 보네..”
“미안해. 오늘은 그냥 실수였어. 못하겠지만 오늘 일은 잊어줬으면 좋겠어.”
“어떻게 잊어.”
“어..?”
어떻게 잊냐고, 오히려 내가 당황스러웠다. 많이 보지 못한 정색한 모습에 나는 말이 잘 안 나왔다. 이대로 끝이구나 다른 회사를 알아봐야 할 거 같다는 생각뿐이었다.
“너, 나 좋아해?”
라는 물음에 내 뇌가 정지됐다. 나는 그저 미안하다는 말 밖에 못 하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릴 뿐이다. 지금 홍중이 표정이 너무 궁금했다. 당연히 미간을 찌푸리고 화난 표정일 거 같아 그 궁금함을 접어두었다.
“사귀자.”
“응..미아안…?”
가리던 손을 내려놓고, 놀라 동그랗게 뜬 두 눈으로 바라봤다. 내가 잘 못 들은 걸까? 이런 상황에서 환청까지 들리는 건가? 싶은 마음에 홍중이한테 다시 물어봤다. 뭐라고..? 조심스레 다시 물어봤지만. 쪽, 하는 소리와 함께 볼에 입술이 닿았다.
“나 먼저 가볼게”
나는 혼이 나간 상태로 입을 틀어막고 멍하니 앉아있었다. 이게 진짜 실제 상황인 건가? 꿈이 아닌가 홍중이가 나한테 뽀뽀를.. 내 뺨을 톡톡 치기도 해보고 허벅지를 꼬집어 봐도 느낌이 너무 생생하게 너무 아팠다. 그래, 이게 꿈이겠어?! 내심 짝사랑이 이루어진 현재 상황에 기쁜 성화는 자리를 벅차고 일어나 발을 동동 굴렸다.
“미쳤다.. 진짜..!!”
* * *
홍중이와 성화가 다른 멤버와 직원들 몰래 알콩달콩 사귀게 되었다. 어쩔 수 없이 다른 눈들을 피해야 하고 바쁜 나날들을 보내는 홍중을 위해 주로 작업실 데이트를 많이 했다.
성화는 항상 똑같은 장소와 바빠 신경을 못 써주는 홍중에게 섭섭했지만 우리는 아직 데뷔도 하지 않은 그저 연습생일 뿐이라 생각하기에 잠시나 마라도 붙어있는 게 소확행 아닌가 싶었다. 그래도 홍중이 작업을 할 때는 성화도 작업실을 나와 홀로 연습을 했다.
시간이 흐르고 KQ 엔터테인먼트에 첫 번째 데뷔조가 결성되던 날이었다. 연습생 중 총 9명의 연습생이 데뷔조가 되었다. 홍중과 성화, 우영 모두 한 팀을 이루었고 그 외 6명도 함께 기쁨을 나누었다.
데뷔조가 결정되고 홍중과 성화의 사이는 평소와 같지는 않았다. 데뷔를 위해 각자 연습하는 시간도 늘어나고 함께 연습하는 시간도 늘어난 만큼 일상이 연습에 다른 사람에게 노출되어 있는 상태라 가끔 밤에 작업실에서 만나던가 연습 중간에 화장실에서 잠깐 만나는 게 다였지만 홍중과 성화는 그것만으로도 행복한 연애를 해왔다.
* * *
"애들아 조금만 쉬고 다시 시작하자"
반복되는 연습에 지친 애들을 위해 연습을 잠시 중단하여 쉬는 시간을 가지자 바닥에 쓰러지듯 눕는 애들과 무릎을 짚어 숨을 고르고 물을 마시러 간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홍중.
흐르는 땀을 티셔츠에 닦는 우영은 물을 마시러 복도로 나갔다. 옆에 있던 종이컵을 들어 힘들고 정신없던 탓에 냉수와 온수를 구분을 못하고 온수를 눌러버렸다. 으악! 뜨거!! 입술에 닿은 뜨거운 물에 깜짝 놀란 우영은 종이컵을 놓치고 뜨거운 물이 덮쳐졌다.
물을 마시러 나온 성화는 멀지 않은 곳에서 들리는 고함에 소리가 들린 쪽으로 달려가니 바닥에는 흥건한 물과 종이컵과 고통스러워 보이는 우영을 일으켜 데인 손을 정수기 냉수에 갖다 댔다.
“괜찮아?”
"형.."
응? 성화의 손이 닿자 우영은 서서히 어지러움을 느끼며 눈의 초점이 나가더니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우영을 받친 성화.
"정신 차려봐, 우영아!! 정우영!!"
눈을 감고 조용해진 우영의 어깨를 잡아 흔들지만 아무 답이 없자 핸드폰이 없던 성화는 급하게 매니저를 불러 우영을 엎고 차에 태워 응급실로 향했다.
병원 침대에 누워 팔뚝에 링거를 맞고 있는 우영이 깨어날 때까지 기다리는 성화는 의자에 앉아 침대에 엎드려 잠시 눈을 감았다. 그렇게 잠이 들고 약 20분이 흐르고 우영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더니 세게 빛나는 빛에 우영은 미간을 찡그리며 눈을 떴다.
“성화형?”
주위를 둘러보는데 평소에 보지 못한 오색달록한 색상들에 눈이 아려왔다. 안 보였던 색상들의 세계가 펄쳐지니 소리를 지를 뻔했다. 와.. 이게 뭐야? 지금 꿈인가? 눈을 아무리 비벼보고 팔을 꼬집어도 현실이 맞구나..라는 생각에 신난 마음으로 곤히 잠든 성화를 깨웠다.
“형, 형! 나 색들이 보여.. 대박 겁나 신기해!!”
“우영이..? 언제 일어났어? 괜찮아?”
“아니, 형! 나 색깔들이 보인다니까??”
그게 무슨 소리야, 머리도 아파?? 성화는 저렇게 신나하는 우영이 이해가 안 돼, 쓰러지더니 진짜 머리에 문제가 간 건가 생각했다. 우영은 점점 사라지는 색상들에 우영은 안된다면서 눈을 더 비비자 성화는 그만하라며 손을 붙잡았다. 우영은 다시 어지러움을 느끼자 성화의 손을 떼어냈다.
“아, 미안..”
“아니, 형 그게 아니라”
“알아, 너 모노인거.”
네?! 어떻게 알았어요?! 큰 목소리로 외치자 성화는 조용히 좀 하라며 등짝을 때렸다. 여상이 빼고 아무도 모르는 비밀을 성화가 알고 있으니 놀라고 당황할 우영이다.
의사선생님한테 들었어. 우영이 링거를 맞고 성화가 잠들기 전, 의사선생님이 성화를 찾아와 말했다. 우영이 모노인 걸 알고 있냐고, 설명해 줬다. 모노의 대한걸 예민한 사람은 눈만 마주쳐도 옷깃 사이로 닿아도, 보통 사람들은 맨살이 닿을 때, 예민한 부위일수록, 접촉의 시간이 늘어날수록 색을 볼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난다.
그 상황이 방금 우영이 뜨거운 물에 데었을 때, 성화가 우영의 손을 잡고 있었을 때 일어났고 그런 걸 처음 느낀 우영은 익숙지 않아 정신을 잃고 쓰러진 거였다. 우영은 의아했다. 그니까, 그걸 왜 갑자기 느꼈을까? 설마..?
“..나였나 봐, 프로브.”
다짜고짜 우영의 손을 잡고 정신 똑바로 잡으라고 했다. 성화의 살이 닿자 머리가 핑 하더니 어지러움이 심해지자 손을 더욱 꽉 잡았다. 질끈 감았던 눈을 뜨자 마치 다른 세계가 펼쳐지듯 세상이 물들어져 있다.
내 손의 색들, 내 옆에 있는 성화형의 머리카락, 얼굴의 눈동자, 입술색들 창문 너머로 보이는 푸른 하늘의 풍경까지 생생하게 보였다. 마치 어린아이가 놀이공원을 처음 간 듯 신나고 신기한 마음으로 여기저기 둘러보는 우영에 성화마저 기분이 좋아지는 느낌이었다.
“형, 진짜 신기해..”
* * *
그 후로 우영과 성화가 붙어 있는 시간은 홍중과 성화가 붙어 있는 시간보다 더 많았다. 성화를 졸졸 쫓아다니며 스스럼없이 스킨십이 늘은 우영에 성화는 그저 홍중의 눈치를 볼 뿐이다. 하지만 성화도 우영의 심정을 알고 있으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우영은 그저 색들이 가득한 일상을 살아가고 싶을 테니까.
안정적인 삶을 살게 됐을 때부터 우영은 카메라 공포증이 점차 살아져가고 있었다. 무채색이 뒤덮여있던 세상에 카메라는 그저 사람들의 눈이 크게 날 둘러쌓았다면, 이제는 그렇지 않았다.
연습 시간도 쉬는 시간도 숙소마저도 붙어있는 둘을 보며 홍중은 아무리 가깝고 친한 동생, 같은 팀원 사이여도 자기 애인이랑 스킨십을 하니, 모르게 질투심이 지배를 해가고 있다. 하지만 성화와 사귀고 있으니 적당히 좀 하라고 말도 못 하고 거절이 쉽지 않은 성화의 성격을 알기 때문에 그저 멀리서 째려보고 혼자 한숨만 쉬는 홍중이다.
그 질투를 느낄새도 없이 데뷔를 앞둔 총 8명의 연습생들. 데뷔일이 하루하루 다가올수록 모두 연습에 몰두를 했고 홍중과 성화는 연애를 할틈 조차 없었다.
2018년 10월 23일. 그들은 이날을 위해 자신과 남들과 경쟁을 해왔고 남들한테 부끄럽지 않을 정도의 노력과 열정을 더해, 내일이 그토록 바라왔던 우리들의 꿈을 이루는 날이다.
“내일이 데뷔니까 오늘 푹 자고, 그동안 준비해온 것들 다 보여주자!!”
* * *
2018년 10월 24일 우린 이루어냈다. 데뷔한 이후로 각종 음악방송과 라디오, 여러 행사와 예능까지 바쁘지만 꿈을 이뤄내 만족한 삶을 살고 있었다. 물론 성화와 홍중의 연애는 더 어려워졌지만. 그래도 남들 몰래 연습실에서, 차 안에서, 대기실에서 소소한 연애를 이어왔다. 아, 물론 우영과 성화도 무대를 올라가기 전엔 어깨동무를 하듯 목과 얼굴에 손이 닿고 또는 꼭 손을 잡아왔다.
활동이 끝나고 잠시나마의 휴식기간이 주어졌다. 설날이 껴있는 기간이었기때문에 숙소에서 짐을 싸고 잠시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들자 문에서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웃으며 들어오는 우영은 성화가 누워있는 침대 옆에 끼여 누워 성화의 손을 꽉 잡았다.
“뭐야, 왜 그래”
형, 나 할 말이 있는데.. 우영과 성화의 눈이 마주쳤다. 성화의 방에 정적이 흘렀다.
“성화야!”
그때 홍중은 신나게 성화를 불러대며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해맑은 표정은 어디로 갔는지 한 침대에 우영과 성화가 심지어 손을 깍지를 끼고 잡은 모습을 보자 쎄한 표정을 들어냈다.
“아, 미안”
호,,홍중아..! 성화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몸을 일으켰다. 그게 아닌데. 오해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재빠르게 방을 나가는 홍중에, 오히려 사과를 하는 홍중에 몸이 굳었다. 이대로 끝나는 걸까. 나가려고 일어나자 우영은 잡고 있던 손을 더 꽉 잡았다. 어디 가냐는 우영에 성화는 우영의 손목을 잡고 놓으라고 말했다.
‘왜, 왜 그러는 건데요?“
“우영아, 그니까.. 네 마음도 잘 알겠는데, 나는 부담스러워. 미안해..”
꼭 잡고 있던 손을 놓아주고 등을 돌리고 나가는 뒷모습만 바라보는 우영. 침대에 털썩 누워 팔로 눈을 가린 채 눈을 감았다.
* * *
그 일이 있었던 날 이후, 홍중과 성화, 우영 모두 서먹한 채로 설날을 맞이해 각자 본가에 내려갔다. 설날 동안 한 통의 연락도 없는 홍중에 한동안 폰을 붙잡고 있었다. 나쁜 놈.. 아무리 애인이 딴 남자랑 손을 잡고 있다고 해도 내 말은 들어줘야 하는 거 아니야? 생각하지만 용기가 없던 성화는 그저 핸드폰만 들어다보고 있다.
휴가가 쥐어졌다고 해도 연습을 소홀히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틀을 본가에서 지낸 후 저녁이 되어야 들어가기 싫은, 숨 막히는 숙소로 돌아왔다. 조심히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었다. 조용한 숙소에 안심하고 발을 들이는데,
“어? 형 일찍 왔네?”
고개를 내밀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말을 걸어주는 우영에 안도를 하는 성화, 한편으로는 걱정이 됐다. 아무래도 우영은 성화가 꼭 필요한 존재니까.
“박성화! 밥 먹으려는데 형도 먹을래?”
“아니, 괜찮아..”
고기인데. 고기라는 말에 홀리듯이 식탁에 앉아버렸다. 우영은 성화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다. 어쩌면 홍중이보다 더 많이. 수비드 기계에 알람이 울리고 성화는 우영을 도와 식탁을 차렸다. 맛있게 먹을게. 어색하다고 느껴지던 식탁은 우영의 질문 폭탄에 쏟아졌다. 본가에 내려가서 뭐 했냐부터 가족들은 잘 계시는지, 왜 이렇게 일찍 왔는지까지 두 볼에 음식을 한가득 넣어 발음이 다 뭉개ㄱ진 성화의 답을 다 알아들은 걸까? 우영은 성화의 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형, 맛있어요?”
“응, 오랜만에 너가 해준 거 먹으니까 맛있네.”
형, 제가 진지하게 할 말이 있는데요. 그 분위기에 짐작이 간 성화였으니, 듣고싶지 않았다. 빌었다. 그 말만 아니길. 같이 몇 년 동안을 함께 지겹도록 붙어서 일을 해야 하는 사이니까. 뭔데..? 떨리는 목소리를 숨기려고 일부로 고개 숙여 작은 목소리 대답을 했다.
“저랑 사귀면 안 돼요?”
예상대로였다. 우영이는 성화에게 고백했다. 성화는 애인이 이미 있는 상태다. 그냥 친하고 좋은 팀 사이로 지낼 줄 알았는 동생이 모노였고 그의 소울메이트, 프로브가 나였다고 한다.
“저.. 형 없으면 안 돼요. 저 형이 없을 동안 한참 카메라들이 온통 사람들 눈 확대해놓은 것처럼 절 둘러쌓아서 카메라 공포증에 무대공포증까지 있었어요. 근데 형 덕분에 다 극복한 거 알아요?.”
순수한 마음으로 형 좋아해요.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느껴졌다. 우영의 진심이. 하지만 성화는 홍중을 잊어서는 안된다. 성화는 먹었던 음식들이 다시 올라올 거 같음을 느낀다. 머리를 식히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져 자리를 일어섰다.
“미안. 나 먼저 방에 들어가 볼게”
* * *
”성화야 나랑 얘기 좀 해.“
”홍중아, 내가 지금 피곤해서“
박성화. 침대에서 일어나 낮은 목소리로 성까지 붙여가며 성화에게 다가가 손목을 잡아당기곤 침대에 강압적이게 앉히자 눈을 감고 한숨을 쉬었다. 혼란스러운 성화는 무엇이 됐든 현재, 혼자 머리를 식히고 싶은 마음이다. 홍중은 성화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상체를 숙여 눈높이를 맞췄다. 어깨에 올린 손에 힘을 가해 서서히 아파지기 시작했다.
”너는 나랑 사귀면서 왜.. 왜 자꾸 정우영이랑 붙어있어. 내가 좋다고 고백할 때는 언제고.. 너가 자꾸 걔한테 마음을 주니까, 거절을 안 하니까.. 누가 보면 너랑 정우영이랑 사귀는 줄 알겠어“
”홍중아, 아파.. 이거 좀 놓고“
평소 같았으면 질투하는 홍중을 귀여워하는 성화일텐데 지금 상황이 그럴 수 없는 상황이다. 현재 홍중과 사귀고 있는 성화는 우영에게 고백을 받은 상태이니까.
”성화야 그냥 여기까지 하자. 애초에 우리는 팀인데 사귀는 게 말이 안되는 일이었어.“
애써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쓰담아주는 홍중의 손길은 덜덜 떨렸다. 홍중에게 성화는 자기 자신도 모르게 일상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나가려는 홍중을 불러 세웠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너는.. 모르잖아.”
“뭐라고?”
“너는 리더면서 아무것도 모르잖아. 너가 맨날 작업실에만 있어서 내가 항상 이해해 주면서 숙소에서 얼마나 기다렸는데 며칠을 안 오고. 애초에 우리 사이가 말이 안된다니? 그냥 사귀어줬던 거야? 맨날.. 항상 너 할 말만 하고 내 말은 안 들어주지. 오늘도 말이야.”
“…”
김홍중. 너 우영이가 모노인건 알고 있었어? 방문 앞에 서서 듣다 모노 소리가 나오자 뒤를 돌아보니 쭈그려앉아 눈을 가리고 있는 성화가 보였다.
”우영이 모노래. 근데 내가 우영이 프로브라는데 어떡해. 우영이는 내가 없으면 아이돌도 못 하겠대. 근데 우리 팀이잖아. 나, 우리 팀 한 명도 잃고 싶지 않아. 걔가 살아가지도 못하고 너무 힘들다는데 어떡하냐고. 나는 너가 좋은데 나도.. 나도.. 너무, 힘들고 심란스러워 홍중아“
참았던 눈물을 흘리자 홍중은 성화에게 발걸음을 돌려 침대에 걸터앉아 성화를 안아줬다. 서럽게 우는 성화에 홍중도 울컥했다. 성화가 그렇게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처음 봤다.
우영이 그렇게 성화한테 붙어있던 이유, 집착 아닌 집착을 했던 이유들의 조각들이 퍼즐처럼 맞춰졌다. 홍중은 자신이 미워졌다. 리더로서 멤버들의 사정도 제ㅈ대로 모른 채 남들의 말도 잘 안 들어줬다는 사실에 한 번 더 좌절한다. 오늘의 성화 솔직한 말을 듣고 느꼈다.
훌쩍임이 줄어드는 성화에 마지막으로 머리를 쓰담아주고 의자를 끌고 와 성화 앞에 앉았다. 알 수 없는 정적이 흘렀다. 그건 아마 서로 미안함의 정적일것이다. 내가 너를 신경 못 써줌의 미안함, 내가 너에게 솔직하게 말을 못 했던 미안함 들.
“다 들었어. 우영이가 너한테 고백한 거. 그래서 더 화가 났었나 봐. 미안해. 나도 애들에 대해 잘 알고 있었어야 했는데 리더가 돼서는..”
“그게 아니라, 홍중아..”
“내가 너무 막말한 것도 미안해. 근데..”
이제 너한테 상처 주고 싶지 않아. 고개를 푹 숙이던 성화는 고개를 들어 홍중을 바라봤다. 멈췄던 눈물이 다시 흘렀다. 그 말은 헤어지자는 말과 다름없었으니까.
그게 무슨 의미야 홍중아. 홍중은 잘 알았다. 성화는 아직 자기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홍중도 성화가 아직 마음 한 곳에 자리를 크게 차지하고 있지만, 하지만 놓아주고 싶었다. 더는 외롭지 않도록. 애써 미소를 띄었다.
“그래도 예전처럼 친하게 지내줄 거지, 성화야?”
“사랑했어. 지금도 여전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