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 더 문라이트

by. 로라

윤섷 in Omegaverse

포근한 털을 지닌 채 생활하는 게 그다지 나쁜 건 아니었지만, 사람의 언어를 못한다는 건 지극히 나쁘다고 생각했다. 야옹, 하고 말해봤자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니 말이다. 

 

신은 인간이었던 나를 길 위의 고양이로 다시 태어나게 만들었다. 온 몸은 짧은 까만 털에 덮여 있고 눈동자는 노랗게 빛난다. 아직은 몸집이 작은 새끼 고양이임에도 나를 낳아준 어미는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 다른 길고양이들을 간혹 볼 때도 있지만 길 위의 생활에 익숙한 그들은 매우 사납고 거칠기 그지없었다. 어느 것도 나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공간에 오래 있고 싶진 않았기에 나는 내게 안전한 곳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물론 그렇다고 나를 주워 가는 사람은 없었기에 나는 아무도 없는 구석진 곳만 골라 잠을 청했고, 다른 길고양이들처럼 쓰레기봉투를 뒤져서 먹을 것을 찾아내려고 했다. 마주치는 사람들 중 몇몇은 나를 내쫓아내려고 했고, 성묘들도 나를 내치거나 야박하면서도 음험한 스트리트 라이프에 나를 끌어들이려고 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내가 인간으로 살아있을 적에 가장 좋아했던 남자의 집으로 갔다.

 

정윤호가 사는 곳은 주로 알파들이 모여 사는 부촌의 아파트였다. 가족과 함께 사는 그가 나를 받아줄 리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내게는 희망이 필요했고, 생전에 알았던 그의 따듯한 마음을 믿고 싶었다. 알파였음에도 다른 성별들을 차별하는 일 없이 모든 사람들과 잘 어울렸고, 오메가인 나와도 가깝게 지내려고 했으니까. 

 

몰래 정윤호를 좋아하고 있긴 했지만, 알파와 오메가 사이에서 형성될 수 있는 의도치 않은 성적 관계를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정윤호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둘 수밖에 없었다. 괜히 원하지도 않는 임신을 하는 것도 그랬지만, 기본적으로 사람에게 애정을 갖는 정윤호의 밝고 맑은 마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정윤호는 그런 내 마음조차 헤아리지 못한 채 자주 내 옆에 있곤 했다. 어느 샌가 멋대로 선배라는 호칭 대신 형이라고 부르면서 그는 강의실에서도, 과방에서도, 학생식당에서도, 집으로 가는 길에도 내 옆을 꿰차려고 했다. 오메가와 어울리면 괜히 생명을 두 명이나 책임지게 된다는, 다른 알파 선배들과 동기들의 만류에도 그는 집으로 향하는 길을 찾듯 내게로 다가왔다. 성화 형도 사람이잖아요, 라고 하면서.

 

그럴수록, 나는 더더욱 그를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평소에는 페로몬향이 그다지 짙은 편이 아니지만 히트 사이클만 오면 머리가 아플 정도로 향이 진해지는 게 나였기에, 나는 어떻게든 히트 사이클 기간만은 피하면서 학교를 다녀야만 했다. 교수들도 그런 점을 다 이해하고 내 출석 점수를 깎지 않았으며 내가 사유서를 작성해서 낸 날에는 일부러 내 출석을 부르지 않았다. 동기들과 선배들 또한 내가 며칠간 말없이 오지 않으면 히트 사이클 기간이라는 걸 알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하자면 내 주변의 모두가 금기시된 비밀을 품고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오메가였으니까.

 

정윤호가 오메가의 히트 사이클에 대해 모를 리는 없었다. 중고등학생 때 받는 성교육을 아예 듣지 않더라도 마치 저절로 모국어를 배우는 것처럼 모든 성별은 오메가의 히트 사이클에 대해 다 알고 있었고, 히트 사이클 때 알파가 접근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도 다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나름대로 열심히 정윤호와 거리를 두려고 노력했건만, 그런 노력이 무색하게 정윤호는 어떻게 주소를 알아낸 건지 내가 사는 자취방 건물 앞까지 찾아왔다. 나에게 먹일 2인분의 야채죽을 든 채로. 

 

당연했지만 나는 벨소리를 못 들은 척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내가 깨어 있었다는 걸 안 건지 정윤호는 네 번이나 전화를 걸었다. 휴대폰이 다섯 번째로 진동했을 때, 한 번 받아주면서 매몰차게 거절을 하면 더 이상 전화를 하지 않을 거란 생각에 나는 통화 버튼을 눌렀다. 심한 감기에 걸린 것 마냥 열이 오른 상태였기에 여보세요, 라는 간단한 말에도 가쁜 숨이 섞였다. "왜 전화 안 받았어요? 나 집 앞에서 기다렸는데." "왜 우리 집까지 찾아와……. 내가 어떤 상태인지 뻔히 다 알면서……." "어차피 집 안까지 들어갈 생각도 없었는데, 괜찮잖아요. 페로몬향만 안 맡으면 되니까. 원룸 입구에 죽 두고 왔어요. 꼭 챙겨가요."

 

불만을 토로하는 것처럼 나는 물었다. "왜 나한테 잘해줘?" 정윤호는 당연한 걸 묻는다는 듯 대답했다. "그거야, 난 사람 대 사람으로 형이 좋으니까요."

 

연인으로 본다는 얘기는 아니었지만 '사람 대 사람'이라는 어구가 가진 인도주의적 힘이 한없이 단단하고 포근해서, 마치 소리없이 멋대로 사랑하는 걸 허락받은 것 같아 나는 너무 기뻤다. 그런 티를 내지 않으려고 해도 아픈 탓인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심장이 뛰면서 입꼬리가 올라가고 병적일 정도로 달아오른 얼굴이 더욱 뜨거워지면서 페로몬향이 강해졌다. 나 혼자 방에 있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정윤호에게 "고마워" 라고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것으로 모든 대화를 끝내고 싶었다. 혹여나 내가 너무 기뻐하는 것이 정윤호에게 완연하게 전해질까봐. "고마우면 죽 가져가요. 알았죠?" "응." "2인분이니까 꼭 다 먹고요." "응." "다 먹고 나면 나한테 말해요. 잘 먹었다고." "응."

 

반복되는 짧은 대답을 하는 것마저도 조심스러웠지만, 그럼에도 정윤호의 말이 달아서 계속 대답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남들에게 자주 눈총을 받는 성별로 태어났음에도 알파의 호의를 살 수 있다는 건, 어쩌면 그와 성적인 결합을 할 수 있는 오메가이기에 가능한 일인지도 몰랐지만, 정윤호는 그런 결합을 목적으로 두는 알파는 아니었기에 나는 좀 더 그의 호의를 믿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비록 그것이 연인으로서의 호감은 아니었을지라도 말이다.

 

만나게 되면 죽 잘 먹었다는 얘기 말고도 많은 말을 하고 싶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비언어적 수단을 통해 나의 기쁨과 고마움을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나의 한정된 삶은 그런 사소한 교류마저도 원치 않았던 것 같다. 

 

히트 사이클이 거의 지나가던 밤에 잠시 바람이라도 쐬고 싶었을 뿐인데,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 위에서 나는 음주 차량에 치여 죽었다. 말 그대로 즉사였기에 내 생명을 구제할 순간은 없었다. 운전자는 달아났고 나의 죽음은 다음날 뉴스로 보도되었다. 아주 절친했던 사람들을 제외하면 모두가 알기 싫은 불편한 일을 겪은 것처럼 찝찝해 했다. 정윤호는, 적어도 자기 자신은 나와 매우 절친하다고 생각해서였는지, 빈소에서 자주 그리고 많이 울었다. 그러다가 탈수 온다고 누군가가 말해주지 않으면 눈물을 멈추지 않을 것처럼 서럽게 울었다. 더할 것도 그렇다고 덜할 것도 없는 온전한 진심이었다.

 

그런 진심 덕분에, 신은 한 번 정도는 눈 감아주겠다는 듯 내게 환생의 기회를 준 것인지도 몰랐다. 내 의사는 묻지도 않고 고양이로 환생시켜준 건 전혀 마음에 안 들었지만 말이다. 사람으로 태어났다 죽으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영화도 있는데, 영화와는 달리 그런 건 하늘의 법으로 금지되어 있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세상만 불공평한 줄 알았더니 하늘 위의 사정도 딱히 다르진 않은 것 같았다.

 

종종걸음으로 벤츠나 아우디 같은 차량들이 주차된 공터를 맴돌다가, 정윤호가 산다는 104동 앞에 멈춰섰다. 불이 들어오는 집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집도 있었다. 안개처럼 밤의 공기가 자욱했으니 못해도 밤 열 시는 넘어있겠지, 하고 생각하며 나는 불이 들어오는 집들 중 어느 한 곳을 바라보았다. 6층의 높이였고 아직 불이 켜져 있었다. 내가 알기론 정윤호는 603호에 산다고 했는데. 내가 보고 있는 것이 603호의 창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나는 조그맣게 야옹, 하고 울면서 정윤호를 불러보았다. 603호에 있을 정윤호가 내 목소리를 들을 리가 없을 텐데도 나는 야옹, 야옹, 하고 울었다. 자취방에 누워있던 나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처럼, 내가 밖에서 자기를 기다리는 것도 정윤호는 알아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환생을 하게 해주었다는 건 무슨 경로로든 두 사람이 만나라고 해주었다는 뜻이니까, 그 곳에 있다 보면 반드시 정윤호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나마 날씨가 춥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도시의 탁한 공기 속에서도, 하늘에 걸린 보름달은 창백하리만치 하얀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아파트 단지에 가려 잘 보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달은 나에게만큼은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듯, 천정부지로 솟은 아파트의 높이에 가려지지 않은 채 굳건하게 빛나고 있었다. 나는 달을 보면서 몇 발짝 앞으로 다가섰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말랑할 것 같은 척추가 꼿꼿하게 펴지면서 다리와 발 또한 좀 더 커지는 느낌이었다. 그저 검은 털 끝이 반짝이도록 달빛을 받는 것만으로도 성묘로 자라나는 듯한 느낌이 좋아서, 나는 좀 더 허리를 펴고 꼬리를 위로 올리면서 은은하면서도 찬란한 달을 바라보았다. 야옹, 하고 우는 목소리가 더 이상 새끼 고양이의 그것처럼 들리지 않을 때, 현관문이 자동으로 열리는 기척에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재활용 쓰레기가 가득한 봉투를 들고 있는 정윤호는 나를 보자마자 툭, 하고 손에서 봉투를 떨어뜨렸다. 그리고는 헐레벌떡 다가와 나의 손을 꼭 잡았다. 고양이의 털은 흔적도 찾아볼 수가 없는, 완벽하게 다섯 손가락을 펼칠 수 있는 인간의 손을. "형, 돌아온 거야?"

 

입을 여는 순간 야옹, 이라는 말 대신 응, 이라는 언어가 흘러나왔다. 아까는 그저 고양이였을 뿐인 내가 갑작스럽게 인간이 되어버렸다. 반길 만한 기적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당혹스럽기도 했다. 어떻게 다시 사람으로 돌아왔지? 하지만 놀란 낯으로 나를 보는 정윤호의 앞에서 그런 당혹감에 빠질 만한 여유 같은 건 없었다. 그래서 생각을 바꾸었다. 고양이로 다시 태어난 것이 신의 뜻이라면 달빛을 받아 인간으로 돌아온 것도 신의 뜻일 거라고. 

 

그제야 현실을 자각한 듯 정윤호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돌아와줬구나, 형.”

 

“응.”

“내가 보는 게…진짜로 형이구나.”

“응.”

“이제 어디 가지 않는 거죠?”

“응.”

“정말…이대로 있어줄 거죠?”

 

문득 내가 얼만큼 오래 인간으로 있을 수 있는진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다시 고양이로 되돌아가 버린다면?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도 못한다면? 신이라는 존재가 변덕을 부리기 전에 할 수 있는 걸 전부 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자, 나는 반짝이는 눈동자로 정윤호를 바라보며 내 페로몬을 발산했다. 정윤호에게 진심을 전하려면, 그리고 조금이라도 나를 더 좋아하게 만들려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알파들이 오메가들에게 갖게 되는 호감 중의 구십 프로 이상은 오메가의 페로몬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고, 나를 사람으로서 본다지만 정윤호 또한 알파이기에 오메가가 대놓고 흘리는 페로몬의 유혹을 거부할 순 없을 것이었다. 내 페로몬을 맡은 정윤호는 흠칫, 당황한 기색이었다. "형, 이거……." 

 

"내가 얼마나 너랑 오래 있을지 몰라서 그런데, 내가 여기서 널 좋아한다고 얘기한다면 넌 어떨 것 같아?"

 

정윤호는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채고 있었다. 잡은 손을 뿌리치지 않은 채 무언가를 분명하게 바라는 눈빛이, 내가 내뿜는 벚꽃향 페로몬이 주는 오감의 자극이, 이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를 그에게 이해시키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것이 그의 당혹감만을 불러내는 건 아닌 것 같았다. 달만큼이나 하얗던 정윤호의 얼굴이 점점 붉어지고 있었다. 입술을 달싹이며 무언가 말을 하려는 걸 물끄러미 보는 것만으로도 내 속에서는 짜릿한 긴장감과 무언의 희열이 솟구치고 있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내가 말했다. "말하고 싶은 거 아무거나 말해도 돼. 말했잖아. 내가 얼마나 너랑 오래 있을지 모른다고."

 

누군가에게 떠밀리는 듯한 위태로운 눈빛이 곧 결심에 찬 단호한 그것으로 바뀌는 건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날 떠날 수도 있단 말이라면, 그렇게 못하게 하고 싶어요. 한 번 이별한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요."

 

"무슨 뜻이야?"

"계속 사랑해왔다는 말이예요."

 

확, 하고 정윤호의 페로몬향이 콧속으로 가깝게 다가오면서 후드티 속에 얼굴이 파묻히는 순간, 그 때서야 나는 비로소 세상의 일부가 된 것만 같았다. 다른 성별들로부터 소외되는 한 명의 오메가가 아닌, 누군가의 품에 수용되는 한 명의 사람으로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인격체가 된 것 같았다. 다시 고양이로 돌아갈까 걱정스럽긴 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 모습에서도 박성화라는 인간의 존재감이 남아 있고 그걸 정윤호가 알아챈다면, 계속 그의 곁에 머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무턱대고 믿는 것이라도 해도 좋을 희망이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인간이었을 때 가졌던, 내심 정윤호가 날 좋아해주길 바랐던 희망도 지금 이루어졌으니까.

 

정윤호의 품 안에서 나는 고양이가 가르랑거리듯이 간드러지게 웃었다. 샌달우드향과 비슷한 묵직한 나무향 같은 페로몬이 콧속을 감도는 것이 무척이나 기분 좋았다. 오로지 관계를 위해 남을 유혹하는 페로몬이 아닌 정말로 사랑을 전달하기 위한 페로몬이었으니까. 그 때 나는 결심했다. 알파에 대한, 정확히는 정윤호에 대한 경계심을 가졌던 나날로 되돌아가는 일은 없을 거라고. 투명한 막처럼 걷어진 그 마음은 어쨌거나, 일종의 거짓이었으므로. 

 

정윤호가 비밀을 털어놓듯, 조용하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들어가요. 우리 집, 아무도 없으니까." 가히 검푸른 밤하늘을 닮은 아름답고도 황홀한 제안이었다.

 

 

* * *

 

 

페로몬이 흩날리다 못해 사물 이곳저곳에 묻어나는 것이 아닐까 조심스러웠던 밤이 지나갔다. 은밀하면서도 노골적이고 따듯하면서도 정열적인 시간을 보낸 날의 아침, 나는 아쉽게도 다시 고양이로 돌아와 있었다. 이불을 허리까지 덮은 채 맨몸으로 자고 있던 정윤호가 복슬복슬한 고양이 털의 느낌을 감각하자마자 곧바로 눈을 떴다. 나는 야옹, 하고 울면서 정윤호의 어깨에 작은 발을 얹었다. 나야, 라는 말 대신 야옹, 이라는 울음소리가 나오는 건 대단히 좋지 않은 일이었지만 정윤호는 머리가 좋았다. 정확히는 머리와 직감이 좋았다. 단박에 나라는 걸 알아채면서 "성화 형?" 이라고 날 불렀으니까. 나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고개를 몇 번이고 끄덕이자 정윤호는 몽롱한 미소를 지으며 커다란 손으로 나를 감싸며 제 품 속에 끌어당겼다. 밤 아래에서 느꼈던 기분 좋음이 털 끝으로부터 다시 전해져오자 사랑스러운 감정이 샘솟았다. 너는 내가 오메가여도 고양이여도 날 받아주는구나. 정말이지, 바보라고 여겨질 만큼의 관대함이자 아가페적인 사랑이었지만 그래서 나는 정윤호가 좋았다. 내가 고양이든 사람이든 여전히 나를 나로서 대해주었으니까.

 

달빛을 받았을 땐 분명 사람이 되었는데 거짓말처럼 또 고양이로 돌아오다니. 이쯤되면 하늘 위 세계의 법이 엉망진창이 아니라 신 자체가 엉망진창일만큼 짓궂은 존재인 게 틀림없었다. 창백한 달빛이 또 다시 내게 내려오길 바라는 밤을 기다리며, 나는 한동안 정윤호의 품 안에서 골골 소리를 내며 잠을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