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추(晩秋)

by. 꽈당

낫섷 in Pistilver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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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에서는 죽을 수 없었다

그 아름다운 천장을 바라보며 죽을 수 없었다

우리는 코피가 흐르도록 사랑하고

코피가 멈출 때까지 사랑하였다

.

.

그 집과 나는 서로 허물어지는지도 모른다 조금씩

조금씩 나는 죽음 쪽으로 허물어지고

나는 사랑 쪽에서 무너져 나오고

알 수 없다

내가 바다나 강물을 내려다보며 죽어도

어느 밝은 별에서 밧줄 같은 손이 

내려와 나를 번쩍

번쩍 들어올릴는지


/ 이문재, 우리 살던 옛집 지붕



피스틸 / 스테먼과의 관계시 등에 꽃이 새겨지는 사람으로 등에 나무가 새겨짐

스테먼 / 피스틸과의 관계시 피스틸 의 등에 꽃을 새기는 사람. 자신의 고유꽃을 새길 수 있음

베놈 스테먼 / 고유 꽃이 독초인 스테먼




01


시간은 곧 죽어도 안 갔다. 느리게 흘러갈 뿐 내 눈에서 초침이 흘러가는 여백을 세고 있노라면 그 하루가 끔찍해지기만 할 뿐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더러워. 더러워. 더러워졌다. 내가. 단정하게 깎다 만 손톱만 물어뜯었다. 시계는 째깍, 째깍, 째깍. 시계를 걸어둔 부드럽던 질감의 벽지는 박성화가 자라는 시간 동안만큼 바래왔던 것이었다. 박성화가 처음에는 침을 뱉었고, 발길질을 해대던 벽은 벽이 일그러진 채로 시계를 붙잡아두기만 했다. 목덜미를 움켜쥐는 듯한 모양새에 덩달아 숨이 막혀왔다. 벽지에는 장미가 수놓여 있었다.

하나, 둘, 셋... 서른.

금방 온댔는데. 업무가 곧이었다. 머리는 단정히 내리고, 향수는 한 번만. 소매는 살짝 걷어 시계를 드러낸 손목과, 어울리지 않는 척추엔 꽃이 피어있었다. 영업이 곧이었다. 간판 불이 켜졌다. 곧 손님이 박성화를 찾을 것이다. 모두가 퇴근하는 시간, 그의 밤은 시작이다. 


"어서 오세요-"


숨이 멎어도 끝나지 않을 극야였다.



02


나와 같이 일주일에 나흘을 일하는 선화는 세 달 전에 입사했다. 회사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부터 목덜미에 보이는 가지들이 형형했다. 그 밑으로 다채로운 꽃이 피어있을 것이었다. 선화는 착하고 밝았다. 술을 잘하지는 못하지만, 사근사근한 말투와 웃을 때 올라가는 입꼬리와 아름다운 보조개는 이따금 선화를 찾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미 담배를 배운 다음에 입사를 하는 것이어서 내가 선화에게 일러줄 것은 몇 가지 없었다. 하나, 토요일에 오는 손님은 2차를 받지 않을 것. (둘, 누구도 믿지 않을 것) 이것이 전부였다. 선화는 들어온 첫날부터 유독 나를 잘 따랐다. 말을 예쁘게 하는 것이 곧 회사의 얼굴마담을 맡을 것 같기도 해 잘해줬다. 매달 1일에 지급되는 대초 몇 개를 속옷에 숨겨 건넸다. 선화는 호들갑 떨며 기뻐했다. 난 많은 대초가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쉬울 것도 없었다. 


여전히 밤은 추운 것이었다. 달빛이 밝았다. 


"등 뒤에 나기 시작했을 때부터 너무 징그러워서 어떻게든 없애보려고 온갖 짓을 다 해봤는데 안 없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상처가 많은 거야?"

"네. 칼로 그어보기도 하고, 아빠 라이터 갖다가 살짝 지져보기도 했는데요."

"...아팠겠다."

"근데 이게 존나 끈질겨요, 잘 안 죽더라고요."

"..."

"오빠. 저는요, 사실 오기 전까지는 술집 여자는 죽어도 싫었거든요."

"...응."

"근데 이제 와서 보니까 이게 사실 나쁠 것도 없는 것 같아요."

"..."

"더 나빠질 바닥도 없어서 그런가?"


나한테는 이게 최선인가 봐요- 하며 호호거리는 입에서 연기가 숨소리 맞춰 흘러나왔다. 자조였겠지. 내 느린 눈 깜빡임에 선화는 대초를 집게 손가락으로 집어 새로 불을 붙였다. 형광노랑 플라스틱 라이터가 달빛에 빛났다. 감질맛나게 짧은 대초는 타들어가는 속도가 야속하기만 하다고 선화가 말했다. 공감하는 눈빛을 지어주려 나는 선화에게 말없이 손을 내밀었다. 라이터 심지에 점화된 불꽃은 안정적으로 타올랐다. 하나를 더 꺼내 손가락 사이에 끼워줬다. 내 손등에 막힌 바람으로 인해. 달칵- 업무를 앞둔 10분의 시간은 담배를 태우기엔 길었다. 내가 뱉은 숨에 섞여 나오는 숨이 매캐했다. 오늘도 그만 살아야지. 오늘도 그만둬야지. 오늘 끝내야지. 내일은 없어야지. 나는 흔적도 없이 재가 되고 말아야지-


"오빠는 여기 언제 왔어요?"

"몰라. 기억 안 나."

"대충이라도 기억 안 나요?"

"카운터 벽지 바른지 얼마 안 됐을 때, 그때 들어왔어."

"벽지 곰팡이 슬었던데. 그럼 완전 오래된 거 아녜요?"

"대충. 그쯤."


열여덟부터 시작한 다섯의 계절이 흘렀다. 난 산 듯이 죽겠다고. 사라져버리겠다고 다짐한 후로 새로운 만추였다. 끊어질 숨을 붙잡은 후로 두 번의 장마를 보냈다. 긴 날숨에 섞인 한숨이 저무는 노을에 번져 흩어졌다. 나무에 걸린 낙엽이 떨어질 즘이면 꿈에 산이 날 찾아왔는데, 이번은 오지 않을 것 같았다. 


"이거 너 할래?"

"비싸 보이는데. 소중한 거 아녜요? 앞에 새가 있네요, 독특하다."

"별로. 그래도 비싼 건데, 버리긴 아까워서."

"나 줘도 돼요?"

"...어. 이만 가자. 오픈해야 돼."



03


0번부터 길게 늘어진 복도는 끝을 알 수 없었다. 끝을 마주하기에 통로는 너무 어두웠다. 입사한 모든 사원은 0번을 맡았다. 입구와 맞닿은 곳은 밝았고 통로 깊숙한 곳으로 들어갈수록 조명은 어두워졌다. 회사의 직원은 적지 않았다. 여느 피라미드 구조와 다를 바가 없었고 모든 사원은 0번 내지 5번에 머물렀다. 어두울수록 은밀했다. 같이 일하는 후배가 나에게 일러줬다.


"박팀장님. 오늘 거래처 오사장님 오세요."

"어... 몇 시에?"

"회식 끝나고 오신댔으니까 열 한시 언저리 되지 않을까요."

"13번 방 잡아줘."

"근데요 팀장님. 제가 거기 오사장네 담배 회사에 아는 친구 하나 있는데,"


오늘 거기 난리났다던데요. 그래서 오사장 개빡쳤다고-


지난밤은 재수가 없기로서니 꿈자리가 사나웠다. 딱 박성화가 혼자 남겨진 밤이었다. 산의 흔적은 온데간데없고 시뻘건 불길에 저 혼자 남아 연신 기침만 해댔다. 화염에 덮인 천장은 주저앉아 내 허리께를 짓눌렀다. 온통 재로 뒤덮인 샤쓰는 불쏘시개로 타기에 충분했다. 그 쓰임을 다하고 남은 나뭇가지가 다음이었다. 연기에 질식해 엎어져 기어 다니는 성화의 위로 찬장이 무너졌다. 돋아난지 얼마 되지도 않은 고동색의 가지에 화염이 옮았다. 살갗은 붉게 익어 말려 들어갔고, 방을 벗어나려 짚은 바닥에 손이 익었다. 산아, 내가 더는 힘들다.

흐윽, 하-

눈을 뜬 천장은 누런 황색을 가진 별과 달 스티커가 듬성듬성 붙어 있었고 나는 내 두 손으로 제 숨통을 쥔 채 헐떡였다. 허억, 헉. 다급히 손에 가득한 힘을 풀어 또다시 기침을 해댔다. 목에 붉게 물든 손자국은 제 등에 돋아난 붉은 꽃과 같은 색이었다. 더럽기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13번 방이다. 오사장은 열 한시에 온댔으면서 또 지각이었다. 또 여깄었다. 내 목숨줄을 쥔 개새끼가. 


"왔어?"

"늦었네요."

"회사에 일이 좀."

"왜요?"

"회사 일이 다 그렇지 뭐. 그거 좀 처리하느라."


러그 바닥에 박성화의 구둣발 소리가 들리지도 않았다. 기척도 없이 걸어와 침대 옆 의자에 앉았다. 티테이블 위에 놓인 조촐한 짜가 크리스탈 재떨이와 콘돔이 전부였다. 오사장은 박성화에게 이것저것 다 말했다. 오사장에 따르면 쥐새끼가 딱 몇 년 전에 들어온 짬 좀 차는 애가 일을 기깔나게 한다고 했다. 나이는 어린 것이 사업 수완이 뛰어나서 여기저기 데리고 다녔더니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다 안다고, 서당 개 삼 개월 만에 풍월 다 읊었다고(멍청한 새끼) 하더군. 최대한 편한 자세로 다리 꼬고 앉아 발을 까딱거렸다.  


"가게 주인이랑은 어때?"

"...뭐 똑같죠."

"담배 몇 개 더 줘?"

"아뇨. 실장님이 사다 둔 거 많아요."

"야, 너 그거 관리 제대로 못 하면 큰일 나."



그러게요. 큰일 나면 어떡하지. 생각을 해 본 적은 있다. 대초란 것이 개발된 지는 좀 됐는데 마약이래서 여간 구하기가 어려웠다. 근데 등에 독 박고 있으면 살 수 있는 방법(좀 덜 아프다)이 그것뿐이라서. 박성화도 안다. 얼마나 남았는지. 누가 저를 버려도 탓할만한 입장이 못 되었다. 등 뒤로 맞닿은 가슴에서 심장 소리가 쿵, 쿵 전해졌다. 목덜미에 닿은 숨이 저의 체취를 빨아들인 후에 껴안아 결박했다. 

내 의지대로 팔조차 움직일 수 없는 상태는 실로 처참했다. 감옥도 이런 감옥이 있을 수가 없었다. 향취를 맡기 싫어 반대편으로 목을 일부러 더 꺾었다. 몸에 독초를 새기는 것은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고통이었다. 차라리 살갗을 도려내 달라 하는 것이 더 나았다. 아까 선화와 대초를 태웠으니 오늘은 아주 조금 덜 아플 것이다. 오사장은 이빨로 절취선을 잡아 뜯었다. 박성화는 개미였다. 


오늘은 어디서 해요? 벽 짚어요?


오지 않는 이를 위해서 나는 오늘도 일을 열심히 해야만 했다.



04


산의 어린 시절도 유복하지 못했다. 잠시 출장을 다녀온다는 말을 남기고 떠난 산의 모친은 그날로 해가 뜨고 지길 열 번, 돌아오지 않았다. 산은 아침 닷새부터 뜬 눈으로 마당의 철문을 응시했다. 사실 그 버려진 날로부터 열흘 정도 전부터 돌아오지 않을 장기 출장인 것도 알고 있었다. 쪼그려 앉은 몸뚱어리는 다리가 저리다고 아우성이었지만 저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다리는 것뿐이라 그 자리서 멍청하게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해가 산의 정수리 위를 지나 서쪽으로 지기까지 그렇게 꼼짝 않고 떠나버린 주인을 기다렸다. 꼭 철창에 갇힌 개가 된 기분이었다. 산의 나이 열일곱이었다.

시설에서 만난 박성화는 어여쁜 사람이었다. 저보다 한 살 많은 박성화의 마른 팔과 벨트를 꽉 조여 맨 허리는 품이 남아 바람에 옷자락이 펄럭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에게 막대 사탕 하나를 건네던 성화의 눈은 빛났다. 이 나이에 사탕은 무슨 사탕이람. 제 휑한 손바닥을 채우는 박하사탕을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했더랬다. 다이아몬드 박하사탕 세 개. 박성화의 눈이 꼭 그 사탕 같았다.

이유 없이 친절을 베풀던 박성화가 산의 세상이 되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하루는 시설에 난리가 났던 적이 있었는데, 원장실에 있는 금두꺼비 하나가 사라졌다는 것으로 온 학생들이 강당에 모였다. 손바닥만도 못한 금두꺼비 하나는 산의 캐비닛 안쪽 회색 양말 안에 숨어 있다. 저 하나 때문에 단체 기합을 받게 된 모든 아이들로, 산은 손에 땀을 쥐었다. 입이 바싹 말랐다. 마른 목구멍으로 올라오는 위액 냄새가 역했다. 몸의 모든 수분을 밖으로 뱉어내는 중이었다. 학생들이 줄지어 선 사이사이로 사감이 돌아다니며 학생들의 눈을 똑바로 쳐다 보았다. 저는 자수할까 싶다가도, 그럴 깜냥이 못 되는 탓에 이따금 저릿한 손만 쥐었다 펴길 반복할 뿐이었다.


"제가 그랬습니다. 죄송합니다."


산의 왼편에 서 있던 아이는 땅에 고개를 처박고 몸을 파르르 떨기 시작했다. 박성화의 목덜미는 식은땀으로 가득 차 셔츠 깃이 젖어갔다. 그 시선을 올곧이 세우고 숨을 고르던 아이와 산의 눈이 마주쳤다. 괜찮을 거야- 라던 입모양을 마지막으로 성화는 다음 날 저녁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저녁을 먹고(급식으로 나온 고기의 누린내가 역해 다 토해냈다) 방으로 돌아온 산의 침대에 박성화가 앉아있었다. 얼굴은 멀쩡했다. 송구스런 마음과 동시에 화가 치미는 감정에 산은 성화의 손목을 쥐었다. 움찔거렸다. 아차, 황급히 쥔 손을 놓았다.


"왜 그랬어요."

"그냥."

"그거 내가 한 거잖아요."

"내가 한 걸로 하자, 응?"


차마 마른 어깨를 끌어안아 송구스런 울음을 낼 수 없었다. 저는 무슨 자격으로 앞에서 빙긋 웃는 얼굴을 마주할 수 있을지, 들어 올릴 낯이 없었다. 


"다음부턴 그러지 마요."

"응. 안 그럴게."

"이러면 내가 형 얼굴을 어떻게 봐요."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바닥에 흘리던 산이 고개를 들어 보였다. 아픔을 이겨내기 위해 짓이긴 입술이 피딱지로 덮여 있었다. 내가 쥘 수 없는 손목을 들어 대신 내 손목을 잡아주었다. 성화는 산에게 가족이 되었다. 



***



하루는 세상이 왜 박성화라는 인간과 최산에게만 가혹한 것일까 생각해봤다. 머리를 짜내어도 산과 저는 잘못한 것이 없었는데 우리는 너무 아팠다. 그런 생각을 시작했을 무렵부터 옆구리에 작은 새싹이 돋아났다. 대개 작은 점에서 시작해 끝도 없이 자란다는 말에 두려웠고, 그날 밤 저는 산을 붙잡아 안고 엉엉 울었더랬다. 소리는 낼 수 없었다. 원장의 "몇몇 발현인들은 팔려가야 한다."는 통화를 들었다고 산이 말해줬기 때문이었다. 먹은 숨을 잠시 멈췄다가 몸에 공기가 가득 차 뱉어낼 수 없을 때에 산의 어깨에 조금씩 쏟아냈다. 


"산아. 우리 어떻게 하지?"

"형."

"나 이거 들키면 어떻게 하지."

"..."

"원장님 통화하는 거 엿들었는데, 피스틸은 거의 다 팔려간대."



꿈틀대는 나무는 양분을 빨아가 저의 몸집을 불려갔다. 하루가 다르게 굵어지는 가지는 몸을 파고들었다. 발현통은 살갗을 뚫고 들어가 고동색의 가지를 새기고 꽃을 매달 준비를 하는 것 같았다. 원장실에서 산이 통증약을 훔쳐다 줬는데 이젠 그마저 듣질 않아 밤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소리를 먹는 수밖에 없었다. 시설은 방음이 좋지 못해 새어 나오는 작은 소리도 들릴까 불안에 떨었다. 산의 팔에 나란히 새겨진 손톱 달 다섯 개는 성화를 향한 연민이었다.


"형."

"응?"

"내가 뭘 하면 돼요?"

"..."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나 진짜 미칠 것 같아요."



윽, 하... 입술을 깨문 이빨의 치악력에 치아 사이로 비릿한 향이 들어왔다. 뱉는 숨에 산에게도 혈향이 닿았다. 귓가에 가까이 닿은 입술 사이로 더운 숨이 차올랐다. 




05


그 무렵부터 박성화는 종종 사라졌다. 건물 안에서 자취를 감췄다가 나타나듯 실종되었다가 발견되길 반복했다. 통증 연고를 발라준대도 괜찮다고 자꾸 몸을 뺐다. 친구들 말이, 가지가 자라나는 속도에 비례해서 아프다고 했다. 분명히 주기적으로 통증이 찾아올 텐데. 새벽만 되면 두어 시간을 사라졌다가 나타났다. 입술은 멀쩡할 때가 언제였던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사나흘에 하루는 나가서 두 시간가량을 돌아오질 않으니 형이 왜 저러는지 이유를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하루는 기척 없이 박성화를 관찰했다. 숨소리 죽이고 문고리를 돌려 침대에 돌아눕는 박성화의 뒤통수에 대고 물었다. 박성화는 최산의 물음에 대답이 없었다. 재차 제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도 목까지 끌어올린 이불만 꼼지락거리며 자기 잔다는 시늉을 온몸으로 해대는 것이 화가 났다. 최산의 언성이 조금 높아졌다. 척추가 조금 드러나게 목이 늘어나 있었다.


"형."

"...응."

"왜 말 안 했어요?"

"뭐 좋은 일이라고 말을 해."

"..."

"...말하면 뭐가 달라져?"

"형, 진짜-"

"그 금두꺼비 팔았다고 했는데."

"..."

"원장님이 네가 그런 거 다 알고 계셔."

"..."

"그냥 덮자."

"...형."

"그렇게 하자, 제발. 형 부탁. 응?"




***



성화의 등에 그려지던 독초는 주기적으로 하나씩 늘어났다. 박성화의 얼굴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그냥 보는 저만 매일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그러면서도 새벽에는 저 몰래 닿지도 않는 등 뒤로 팔을 꺾어 새겨지는 부위를 잡고 신음했다. 기껏해야 해줄 수 있는 것이 같은 침대에 누워 피어나는 꽃을 대신 어루만지는 것이었다. 원장은 박성화에게 새겨지는 독초의 통증은 날이 갈수록 더해진다고 말했다. 박성화는 이제 평생 대초를 달고 살아야 할 것이었다. 


"형, 그냥 듣기만 해요."

"..."

"...우리 여기서 나갈래요?"

"..."

"미안해요.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이 그거밖에 없어요."



두 소년은 해방을 꿈꿨다. 그로부터 정확히 일주일 후에 원장실이 타올랐다. 시설은 온통 난리였고, 원장실과 같은 층을 쓰고 있던 성화와 산의 방도 금세 옮겨붙은 불로 연기가 자욱했다. 물로 적신 손수건을 서로의 입에 대어주고 손을 맞잡은 채 건물을 벗어난다. 맞은 곳이 욱신거렸고, 자라나는 꽃잎은 성화를 뒤처지게 했다. 잠시 앞을 보고 오겠다던 산을 보내고 의식을 잃은 것 같다. 기억이 흐릿하기 때문이다. 쓰러져 기울어진 시야로 산이 사감에게 붙잡혀 갔다. 시야가 더욱 흐릿해졌다. 내 등으로 작은 기둥 하나가 불에 타 떨어졌다. 가지가 타들어가는 느낌은 생생했다. 이젠 산의 얼굴이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06


불길을 등지고 박성화를 눈에 담은 채 끌려 나오던 날, 산은 목에 얼룩덜룩한 화상 자국이 남았다. 내가 형 꼭 찾으러 다시 올게. 산의 눈에 담긴 박성화의 죽어가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산은 성화의 얼굴이 가물가물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시간은 훌쩍 지나 있었다. 내가 일을 하고 있었다. 주로 대초 구매자 수금 업무를 맡았다. 내 기억 한켠 어딘가에 숨은 사람은 온데간데없고 나도 남아있질 않았다. 산은 부지런히 일을 하고 있었다. 정신 차려보니 사장은 저를 꽤 신뢰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내가 뭐였더라. 나 누구였더라.


"야, 최산."

"예."

"그 화선루 좀 다녀와라. 거기 부장이 돈을 안 주네."


우리 사장이 요즘 애용한다던 술집은 꽃 냄새가 지독했다. 익숙하기도 한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꽃받이들이 모인 곳은 대초가 엄청나게 팔리기 때문이었다. 거북한 향에 손을 들어 코를 슬쩍 막고 숨을 참은 채 말했다. 부장을 찾으러 왔다고 하니 오사장네 사람이냐고 묻길래 그렇다고 했다. 키가 큰 여자를 따라 통로 깊숙이 들어간 곳에서,



"그 성화라는 애 있잖아."


"누구?"


"왜 예쁘장한 해 있잖냐."


"예쁜 애가 한둘이어야지."


"그 왜, 등에 가지 난 애."



요즘에 사장님이 그 기집애한테 꽂혀가지고 이번 거래 파토났잖냐,



형은 어디 갔지?


"이 바닥에서 암만 친해도, 거래는 거래야. 빼먹지 말고 다 받어."

"예, 알겠습니다."



형은 왜 거기 있어?

문을 열고 들어온 남자는 서로에게 익숙한 사람이었다. 문 열어재낀 13번 방은 창문도 닫아놓은 채(아니 창문도 없었다) 태운 대초로 연기가 자욱했다. 그 모습이 꼭 이계에 온 모습이라 산은 눈을 두어 번 정도 더 깜빡였다. 물기 없는 서로의 눈동자를 바라보곤 무슨 생각을 했는지도 모를 정도로 정적이었다. 꼭 딴 사람 같아-



"야, 성화야. 그 저번에 말했지? 그 서당개, 얘야."

"...네."


"자주 볼 텐데 인사라도 해 둬."

"..."


"야, 새꺄. 넌 인사도 안 박냐?"

"처음 뵙겠습니다."

"...."

"최산이라고 합니다."

"박성화입니다."



언젠가


"산아, 넌 여기 나가면 뭐부터 하고 싶냐?"


"왜?"


"왜긴 왜야. 나가서 할라 그러지."


"형은?"


"응?"


"형은 뭐 하고 싶은데?"


"음..."


"봐봐 형도 없잖어."


"나는 너랑 놀이터에서 비 맞으면서 놀고 싶어."


"왜?"


"비가 좋으니까."




"야."


"어."


"너는 왜 나한테 잘해줘?"


"잘 해주는 거 아니야."


"그럼 네가 나한테 하는 건 뭔데?"


"형이니까."


"..."


"가족은 잘 해주는 거 아니고, 그냥 원래 그런 거야."


"..."


"내가 형 좋아하는 건 당연한 거라고."


그와 했던 얘기가 떠올랐다.


06.3


산은 그날 이후로 매일 박성화를 보러 갔다. 처음 본 날 이후로 일주일이 지났을 때는 최사장에게 요즘 정신 못 차린다고 얼굴을 맞았다. 그 몰골로 또 박성화를 찾아갔다. 서로를 잊어버렸던 시간을 얘기하면서도 서로의 삶이 꽤나 처참했던지 각자의 얘기에 연신 얼굴을 찌푸리기도 했다. 

성화의 담배 냄새는 그래도 좋았다. 그래, 이대로 죽어도 좋았다. 제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죽어가는 삶을 연장하는 담배를 공급해주는 그뿐이었다. 잠시도 따분할 틈이 없었고, 가슴팍에 얼굴을 박고 서로를 탐하고 있노라면 모든 생각이 사라졌다. 


"형, 우리 한 약속 기억나?"

"응. 그건 왜?"

"그거 아직 유효해?"

"응."





06.6


"형은 우리 떨어져 있을 때 얘기 듣는 거 불편해?"

"어."

"...그럼 이제 그 얘긴 안 할,"

"그래도 하자."

"...왜?"

"서로 모르고 있는 시간이 있다는 거, 싫어."





06.8


"산아."

"응."

"옛날에 했던 얘기 기억나? 비 오는 날 나가서 놀자고 했던 거."

"근데 그건 왜?"

"일기예보에서 그랬는데, 올해는 여름에 비가 별로 안 와서 가을에도 평년보다 비가 자주 내릴 거래."

"..."

"그때 놀러 가자."





06.9


"나는 시 읽는 게 좋았다?"

"형이 책 좋아하는 줄은 몰랐네."

"뭔가 글에서 나오는 말은 현실성이 있거든. 나는 현실성이 없는데."

"형이 살아있는 게 현실이지, 그럼 뭐야."

"아니 그런 거 말고."

"그럼 뭔데?"

"...나 대초 끊은 지 좀 됐어."

"...형."

"나 얼마 안 남았대. 독 다 퍼졌다고."




07 


요즘에 최산 이 새끼 똑바로 일 안 하던데요? 라는 동료의 말에 사장에게 불려갔다. 근무 태만이 죄목이었다. 아무래도 동료의 입김보단 화선루 부장이 꼰질렀다는 편이 더 일리있었다. 사실 오사장은 다 알고 있을 것이었다. 축 처진 몸 위로 땅을 향해 처박은 얼굴은 벌건 액체에 뒤덮이어 얼굴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였다. 불행 중 다행은 두 손 두 발은 자유로웠다. 


"야, 새끼야. 박성화 얻다 숨겨놨냐?"

"..."

"넌 그 새끼 있는 곳만 말하면 돼. 그럼 그냥 풀어준다니까?"

"..."

"그 새끼가 금 들고 튀는 바람에 우리 다 좆됐다고."

"..."

"왜 대답을 안 해."

"난,"

"어 그래 터진 입이면 변명은 해야지."

"몰라."


난, 소중한 걸 지키고 싶을 뿐인데.


같이 도망치기로 한 날과 같았다. 창공은 높고 푸르렀다. 그날 우리는 오사장 금고를 털어 달아났다. 침대에서 오사장의 어깨를 수없이 할퀴며 외워뒀던 번호였다. 최산이 쓰던 집은 작지만, 그 어떤 곳에 비해 안락했다. 산은 나오면서 집 안에서도 옷은 따뜻하게 입고 있으라 일러뒀다. 

만추였다. 겨울은 곧이었다. 날이 추워지기 시작했다. 날이 갈수록 박성화의 통증 주기는 짧아지는 듯했다. 말은 안 해도 산은 다 알았다. 눈만 보면 다 알 수 있었다. 그만큼 산은 낯선 박성화를 잘 안다고 생각했다. 이번엔 갈비뼈가 나간 것 같았다. 호흡이 불안정해지는 와중에도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해방될지를 생각했다. 복부를 감싸 안고 신음했다. 이 정도 아픈 건 아픈 것도 아니었다. 



이곳은 옛 대초 생산 공장인데, 사업이 커져서 현재는 대초 저장창고로 쓰이고 있다. 나는 여기서 어떤 해방을 꿈꿀까. 이곳을 중심으로 반경 일 킬로미터 안쪽은 인가가 드물다. 사방이 갈대로 덮인 황무지는 불쏘시개로 딱 좋았다. 걸레짝이 된 몸을 이끌고 마대 자루에 가득 쌓여있는 대초를 바라보았다. 이것들은 불길을 머금고 삽시간에 반경을 불바다로 만들 것이었다.

세상만사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쉽다. 형 갖다 줄 마대 하나 끌어다가 대초를 품 안에 가득 쥐었다. 끊었다지만 참을라면 많이 아플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많이 담지도 않았다. 진짜 박성화가 얼마 남지 않은 걸 저도 잘 알고 있어서. 가져가봤자 다 못 피우고 죽을 걸 알아서. 



지포를 마대 언덕에 던져두고 발을 바삐했다. 새가 그려진 지포였다. 집에선 형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다. 끌려온 지 족히 나흘은 되었다. 갇혀서 맞는 와중에도 그건 다 세어뒀다. 정확하지는 않아도 대충은 나흘 지났다. 시간이 촉박했다. 걸음을 더욱 바삐했다. 산의 등 뒤로 불기둥이 솟았다. 이번에는 정말 늦으면 안 됐다. 


늦었다. 산은 또 늦었다. 오 년 전이나 지금이나 최산은 늦었다. 집에 돌아왔을 즈음 품에 가득하던 대초 갑들은 바닥에 다 흘리고 와 몇 개 없었다. 문을 열어 재끼자 보이는 바닥에 뒹구는 형의 모습에 울음이 터져나왔다. 막을 새도 없이 떨어졌다. 뒹구는 머리통 주변에는 형이 쏟아낸 혈액이 낭자했는데, 싸늘해진 형을 붙들고 울었더랬다. 



"늦었네. 기다렸는데."

"나 사실 하나도 안 슬퍼. 기분 존나 좋아."

"말이 불행한 거지, 우리 그냥 불쌍한 새끼들이었잖아."

"솔직히 내 인생 다 말아먹기로 작정하고 뒤지자 생각했고, 다짐했는데."

"죽는 게 왜 이렇게 무섭냐."

"눈 딱 감고 죽자 했는데, 나 이제까지 그거 못해서 살고 있더라."

"사는 게 나한테만 힘들더라고. 내가 이러고 죽는 건 내가 약해서 그렇지, 오 년 전 네 탓은 아니야." 

"내가 정말 좋아했어. 넌 나처럼 살지 마."

"넌 살아서 내 장례 꼭 치러라." 

"산아, 최산. 형 봐."

"한 번 더 보고 싶었는데, 다행이네. 만나서 반가웠다."


몸이 차게 식었다. 아직 입동도 전인데 많이 추웠다. 어디 하나 온기를 찾을 수가 없어서 형을 붙잡고 온기를 찾았다. 마른기침을 쏟아내는 형을 품에 안느라 옷에 혈액이 흥건했다. 유일한 온기 있는 그것조차도 차게 식었다. 최산에게 남은 것이 없었다.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Last.


상의를 들춰내어 거울 앞에 선 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오른쪽 옆구리에서 돋아난 가지는 작은 싹에서 시작해 반대편 어깨까지 생명을 뻗어내었습니다. 나의 생명은 곧 그것의 생명임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것이 너무나도 미웠습니다. 내 살을 파고들며 끊임없이 제 존재를 드러내던 그것은, 사람들 말로는 한 달을 꼬박 채운 시간 동안 자란다고 하더군요. 공생의 관계에서 나는 항상 그것에게 져 왔습니다. 나는 항상 지고, 그것은 매일 이겼습니다. 나를 잠식시킨 그것은 순식간에 내 몸의 대부분을 덮었습니다. 나는 그것을 증오했습니다. 그러다가도 그것이 일으키는 통증을 통해 살아있음을 느꼈습니다. 나는 오늘도 살아는 있습니다.

처음에 그는 나를 보고 괜찮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다음에 그는 나를 보고 괜찮다고 했습니다. 그다음에 그는 나를 보고 이름을 불러주었습니다. 그다음 날에 그는 나를 보고 아무 말도 없었습니다. 마지막엔 나를 안아주었습니다. 같이 비를 맞자고 했는데, 약속을 지키지 못해 많이 미안한 마음입니다.

그는 나를 보고 이곳을 떠나자고 하였고, 나는 그러자고 했습니다. 곧 사라질 나는 남아있습니다. 그의 몸이 떨리던 나와 같아 보이던 느낌도 손끝에 여전합니다. 등에 있는 그것 또한 생명이라 잎새가 떨어지는 계절이 되면 몸을 떱니다. 나는 그제야 비로소 겨울이 다가옴을 느낍니다. 내 삶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평생을 고민해봐도 여전히 모르겠는 것입니다. 아직도 잎이 달랑거리면 그곳은 쓰라립니다. 다음 봄이 저에겐 과분한가 봅니다. 맞이할 준비가 되지 못하여 이만 정리하려고 합니다. 내가 아닌 나, 많이 애증했습니다.


우리의 해방은 이루어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