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의 마지막

윤섷

by. 뻔

*

희붐한 어둠 속에서 성화는 한 탱크 앞에 멈추어 선다.

일견 굳게 닫힌 금속제 탱크의 문틈에서는 푸르스름한 빛이 새어 나온다. 그 부연 빛에 의지해 명패에 쓰인 이름을 한 자 한 자 소리내어 읽는다.

정, 윤, 호.

이런 소리가 나는구나, 하고 성화는 생각한다. 이 세상에 마지막 남은 한국인의 이름은, 이런 이름이구나.

 

 

*

긴 잠에서 깨어난 정윤호는 소스라치며 발버둥 쳤다. 생체신호를 측정하는 기계가 다급한 경고음을 뿜어냈다. 이전에 이런 일을 겪어 본 성화는 놀라지 않고 그 귓가에 차분히 속삭여주었다.

괜찮아요, 여긴 안전한 곳이에요.

아직도 녹아내린 냉동 용액으로 번들거리는 눈알이 저를 향한다. 이윽고 말소리 대신 격렬한 기침이 연거푸 터져 나온다. 듣지 않아도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들리는 것 같다. 너는 누구야? 대체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이런 일을 몇 번이고 겪어 보았으므로, 성화는 그의 축축하게 젖은 뺨이며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정한 목소리를 낸다.

기억이 없을 수 있어요. 정상적인 현상이니까 안심하셔도 돼요.

정윤호는 체념이 빨랐다. 이윽고 기계음이 잦아들고, 간헐적인 기침 소리와 색색거리는 숨소리만이 옅은 어둠을 몰아낸다.

이게 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성화를 새삼스러운 애상에 젖게 한다. 두 번 다시 이렇듯 젖은 얼굴을 매만질 일은 없을 것이다. 두 번 다시 괜찮다고, 안심하라고 말해 주는 일은 없을 것이다.

눈을 스르르 내리감는 이 소년마저 떠나고 나면, 제가 두 번 다시 목소리를 낼 일은 없을 것이다.

 

 

*

성화에게 있어 유일한 가족은 그의 어머니였다.

그의 어머니가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해동 기술자였으므로, 소년 역시 해동 기술자가 되었다. 더는 사람이 생존할 수 없는 극단적인 기후를 피해 땅 밑으로 내려오면서도 인류가 이고 지고 온 냉동인간들을 무사히 해동할 수 있는 기술을 알고 있는 지구상의 단 두 사람.

대물림되어 보존되어 온 그 기술이 필요한 적은, 지하 시대가 시작된 이래로 단 한 번도 없었다. 물자가 극도로 제한적인 땅 밑에는 이미 입이 많았다. 냉동인간들도, 성화와 그의 어머니도 자연히 잊혔다. 냉동 시설을 가동하는 태양 에너지 발전 장치가 기적적으로 계속 작동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모자 역시 해동 기술 따위는 잊었을지 몰랐다.

하지만 그들은 기억했다. 인제 와서는 아무런 소용도 없는 이십일 세기의 기술을, 누군가 노래를, 그림을, 춤을 그러하듯 기억했다.

그리고 언어를.

지하로 내려온 인류는 단결이라는 명목하에 공용어를 새로이 만들었다. 한때 어느 민족의 것도 아니었던 인공적인 그 언어를 이제는 유일한 모어母語로 알고 자라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성화와 어머니는 한국어를 잊지 않고 기억했다. 서로와 소통하는 것 말고는 그 무엇에도 쓸모가 없는 언어를, 수백수천 개의 냉동 탱크를 그러하듯 꾸준히 윤을 냈고 보듬어왔다.

그러니까, 어머니가 숨을 거두기 전까지는.

그래서 나를 깨웠구나.

성화의 이야기를 한참 동안 듣기만 하던 윤호가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말한다.

한국어를, 말을 잊지 않으려고, 나를 깨웠구나.

성화는 그 속도에 맞추어 고개를 천천히 따라 끄덕였다.

쉴 새 없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공용어는 생존의 언어. 온 세상에서 그와 어머니, 단둘만 알고 있는 한국어는 무용無用의 언어. 사랑과 상상과 온기와 추억의 언어.

그런 쓸모없는 것들이 소년을 살게 했으므로.

 

 

*

성화는 어머니 없이 홀로 한 달가량을 버텼다. 그러나 애초에 배식을 받아먹고 냉동 탱크를 문질러 닦고 잠을 자는 것 외에는 별달리 할 것 없는 삶이었기에, 그 모든 일상에 어머니가 남긴 빈자리는 오래 견디기에 너무도 크고 차가웠다.

유난히 외로웠던 어느 날 밤, 성화는 일평생 써볼 일이 없을 것 같던 해동 기술을 처음 사용했다.

약 반세기 전의 기록적인 태양 플레어로 모든 식별 데이터가 날아가, 냉동인간들을 구분 짓는 것은 탱크 앞에 붙은 손가락만 한 명패뿐이었다. 식별 번호, 출신 국가, 그리고 이름이 각각 그들의 모국어와 영어로 새겨진 금속 조각. 성화는 어둠 속에서 그 조그만 명패를 하나하나 더듬어가며 읽어 내려갔고, 그렇게 찾아낸 한국인을 해동했다.

첫 번째 한국인은 이제 막 중년에 접어든 남자였다. 자신이 유망한 물리학자였다는 사실을 기억해 낸 남자는 깨어난 지 세 달이 조금 넘었을 무렵 갑작스레 죽었다.

처음에 성화는 저 자신을 탓했다. 제 해동 기술에 어떤 심각한 결함이 있어 그를 불완전한 몸으로 깨어나게 한 것 같았다. 한동안은 냉동 탱크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벅차, 성화는 몇 날 며칠을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었다. 두려움이나 죄책감보다 외로움이 커졌을 때에야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두 번째 한국인은 백발이 성성한 노년의 여자였다. 그녀는 끝내 자신이 누구였는지는 기억해 내지 못했지만, 저를 포함해 다른 냉동인간들이 탱크 안에 들어가기로 선택한 이유는 기억해 냈다. 미래 의료 기술의 발전 가능성만을 믿고 잠들어 있는 이들은 대부분 이십일 세기의 불치병에 걸린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발전은커녕 사멸하기 직전의 지하 인류에게는 의료 기술이랄 만한 것이 남아 있지 않았고, 그 사실은 여자를 절망케 했다. 때때로 극심한 두통을 호소하던 그녀는 어느 날 지상으로 끝도 없이 이어져 있는 계단을 오른 뒤 떨어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즈음부터 성화는 슬퍼도 울지 않게 되었다.

세 번째 한국인은 저보다도 어린 소녀였다. 자신이 무엇을 잊어버렸는지도 몰랐던 소녀는 반년이 넘도록 살아 있었다. 이 아이라면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해서 제 곁을 지켜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무렵, 소녀도 죽었다.

그 뒤로 꼭 일 년을 성화는 다시 한번 홀로 보냈다. 눈물이 마른 눈을 하고, 절망적인 미래보다 더 유독한 것은 조그마한 희망이라고 생각하면서. 건더기라곤 없는 묽은 배식을 입안에 오래 머금으면서 마지막 남은 한국인의 탱크 앞에 앉아 말을 걸었다.

내가 당신을 깨우면, 당신은 얼마나 오래 내 곁에 있어 줄 건가요?

당신마저 죽고 없어지면, 나는 얼마나 오래도록 이 말을 기억할 수 있을까요?

다시금 잠에 빠진 윤호를 내려다보며, 성화는 같은 질문을 속으로 던진다. 몇 세기를 넘어온 자의 피로를 눈두덩이에 인 소년은 아무것도 모른 채 잠들어 있다.

 

 

*

이건 공용어로 뭐라고 해?

성화가 반으로 나누어준 배식의 농도를 확인하듯 숟가락으로 연신 떠 올리며 윤호가 물어온다. 성화는 그 단어를 공용어로 발음해 보인다.

그렇구나, 신기하다. 죽이라는 뜻인가?

천진한 윤호의 질문에 성화는 고개를 젓는다.

아뇨.

그럼?

정확히 느낌이 일치하는 단어는 없지만, 굳이 찾자면… 음식? 하지만 그것보다는 생명의 원천이라는 느낌에 가까워요.

…생명의 원천치고는 별 맛이 없네.

농담과 함께 웃으며 윤호가 숟가락을 다시금 입으로 가져간다. 깨어났을 때 체념이 빨랐던 만큼 그는 적응도 빨랐다.

놀라지 않으시네요.

성화의 말에 윤호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응?

아무래도 여긴 이십일 세기의 세상이랑은 많이 다를 텐데.

윤호가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 주변을 관찰한다. 낮게 내려온 천장, 벽에 줄지어 늘어서 있는 낮은 조도의 램프 주변이 아니면 완벽한 어둠에 잠겨 있는 실내, 지하의 습기로 축축한 공기와 항상 젖어 있는 지반. 성화가 그간 세상으로 알아 온 곳의 모습을 눈에 담은 윤호가 이내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글쎄, 그동안 내가 상상했던 이십오 세기는 아니긴 하지만, 그냥 땅속 동굴이잖아. 크게 놀랄 것까진 없는 것 같은데.

그러더니 멋쩍은 미소와 함께 덧붙인다.

그리고 사실, 아직 기억나는 게 많이 없거든. 서서히 돌아오는 거 맞지?

기억나는 게 없으면 그만큼 더 불안할 텐데도, 윤호는 태평하리만치 차분한 손길로 음식을 떠먹으며 웃어 보인다.

용감한 사람이구나, 하고 성화는 생각한다. 이십일 세기에서 온 이 남자애는, 나랑은 다르게 용감한 사람이구나.

 

 

*

정윤호는 궁금한 게 많았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가리키며 공용어로 무어라고 불리는지 물었다. 성화가 단어를 알려주면 입속으로 몇 번 되뇌더니 곧잘 기억해 다음날 이게 맞느냐고 물었다.

물리적으로 가리킬 수 있는 것이 더는 없어졌을 때에야 그는 지하 세계에 없는 것들에 관해 물었다.

하늘은 뭐라고 해?

윤호의 질문에 성화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는 되묻는다.

하늘이란 건, 태양이 떠 있는 곳을 말씀하시는 거죠?

응, 뭐 그렇지.

성화는 그 단어를 공용어로 발음해 보인다. 언제나 그랬듯 성화를 따라 중얼거린 윤호가 이어 묻는다.

그럼 땅은?

땅이란 건, 저 위를 말씀하시는 거죠?

성화는 손가락을 들어 천장을 가리켜 보인다. 윤호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확인한 성화는 그 단어를 공용어로 발음해 보인다.

하늘이랑 똑같네.

맞아요, 바깥이라는 뜻이에요.

그 말에 이번에는 윤호가 짧게 생각에 빠진다. 이윽고 물은 질문은 한껏 조심스럽다.

그럼… 이제 더는 바깥에는 나갈 수 없는 거야?

네, 자외선과 방사능, 대기오염으로 그 어떠한 생명체도 살 수 없는 환경이 되어서 사백 년 전 이 지하로 내려온 거니까요.

…그렇구나.

그렇게 하나 마나 한 말을 하고 다시 생각에 잠기는 윤호의 표정을 성화는 찬찬히 살핀다. 그 소식이 윤호를 특별히 절망케 한 것 같지는 않다. 안도가 가슴께에 가라앉을 무렵, 작은 중얼거림이 들려온다.

…하느님…….

……?

하늘이 없으면, 하느님도 안 계시겠네.

그 순간, 성화는 살아생전 어머니가 해 주었던 이야기를 떠올린다. 지상 인류에게는 아주 오랫동안 종교라는 게 있었다고, 그것 때문에 서로를 죽이고 또 죽였다고 했다. 개인의 생존이 아닌 이유로, 그것도 명백히 사실이 아닌 것 때문에 그렇듯 살생하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성화의 의문에 어머니는 웃었다. 그런 거에라도 매달리고 싶어지는 날이 오는 법이란다.

윤호도 그런 것에 매달리고 싶었을까. 언제든지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병을 기적적으로 이겨낼 수 있기를 바랐을까. 바깥의, 하늘 위의 전지전능한 존재에게 빌었을까. 궁금했지만 아직 기억이 온전히 돌아오지 않은 그에게 그런 것들을 다 물어볼 수는 없었다.

어쩌면 기억이 영영 돌아오지 않는 것이 요행일지도 모르는 세상에서, 차마 그럴 수 없었다.

 

*

그런데 있잖아, 너는 왜 나한테 존댓말을 해?

잠에 빠질락 말락 하던 차에 갑자기 날아온 윤호의 질문에 성화는 어둠 속에서 서서히 눈꺼풀을 들어 올린다.

…존댓말은 상대를 존중하는 화법이니까요. 그리고 저는 윤호 씨를 존중하고요.

성화의 담담한 대답에 윤호는 한동안 말이 없다. 이불 밑에서 뒤척이는 소리를 뚫고 그가 이내 물어온다.

그럼 다른 사람들한테도 다 존대했어?

다른 사람들…?

나 말고 이전에 깨웠던 다른 사람들.

순간적으로 당황한 성화는 곧바로 대답할 수 없다. 말해준 적이 없는 일을 윤호는 어떻게 알았을까. 그의 왕성한 호기심과 관찰력으로 추론한 것일까? 아니면 과학과 이성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러니까 마치 하느님이 일으킨 기적이 일어나서 윤호가 잠들어 있던 냉동 탱크 앞에서 제가 읊조렸던 혼잣말들이 전부 다 그에게 닿은 것일까. 어느 쪽이든 제 슬픔과 외로움을 그에게 모조리 들켰다는 생각에 얼굴이 달아오른다.

…나는 네가, 나한테 반말로 얘기했으면 좋겠어.

혼란을 뚫고 윤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반말은 친밀함을 표현하는 화법이니까. 나는 너랑 친하게 지내고 싶어.

성화는 선뜻 대답하지 못한다. 짧은 침묵 뒤에 윤호가 고백한다.

네가 하는 잠꼬대를 들었어. 계속해서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면서 미안해요, 미안해요, 하더라.

…….

네가 나한테는 미안해, 라고 했으면 좋겠어.

…….

미안할 일이 없는 게 제일 좋겠지만.

농담처럼 웃은 윤호의 잘 자, 하는 인사 뒤로 그의 규칙적인 숨소리가 어둠과 함께 성화의 가슴 위로 내려앉는다. 그 무게 아래서 꼼짝하지 못한 채로, 성화는 입술만 달싹여 말한다.

미안해. 미안해, 윤호야.

 

 

*

나, 내 꿈이 기억났어.

꿈?

응, 부모님은 날더러 의사가 되라고 하셨는데, 사실 난 축구 선수가 되고 싶었어. 그게 떠올랐어.

…축구, 가 뭐야?

아, 축구를 모르는구나. 열한 명씩 두 팀으로 나뉘어서 공을 발로 차서 상대방 골대에 넣는 게임이야.

……그런 게 재밌어?

엄청 재밌지. 상대 선수를 이리저리 피해서 공을 차면서 골대까지 달려갈 때 엄청 짜릿하거든. 그럴 때면 내 숨소리랑 심장이 쿵쾅거리고 뛰는 소리만 들려. 언제까지고 그렇게 바람을 가르면서, 공을 차면서 달려 나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잘 모르겠어. 그래도 달려 나간다니 좋을 것 같아.

너는 꿈이 뭐야?

꿈?

나처럼 나중에 되고 싶은 거나, 아니면 소원 같은 거.

소원…… 하고 싶은 건 있어.

뭔데?

바깥을… 하늘을 보고 싶어.

…….

파란 하늘을 보고 싶어.

 

 

*

우와.

암벽을 타고 끝없이 위로 이어지는 계단을 올려다보며 윤호가 작게 탄성을 뱉는다.

여기로 올라가면 바깥인 거네.

지금껏 올라간 사람은 없고 내려온 사람만 있는 계단을 응시하며 성화는 고개를 끄덕인다.

올라가 본 적은 없어?

그렇게 물으며 몇 계단을 더 올라가는 윤호의 소매를, 성화는 저도 모르게 붙잡는다.

올라가지 마.

그렇게 만류하는 목소리가 볼품없이 떨린다. 평소 같았으면 성화를 놀리듯 몇 계단 더 디뎌보았을 윤호도, 무언가 심상치 않은 낌새를 눈치챘는지 도로 유순하게 내려온다.

왜, 뭐가 그렇게 무서워.

그렇게 다정한 목소리를 내는 소년을 성화는 양팔을 벌려 끌어안는다.

네가 날 떠날까 봐.

그렇게 솔직히 고백하는 성화의 등을 윤호의 손이 다정하게 쓰다듬는다.

내가 널 왜 떠나겠어.

너는 날 떠나게 되어 있어, 라는 말을 성화는 차마 꺼내지 못한다. 제 말이 사실이 되었을 때 저를 잠식해 버릴 고독을 마주할 용기가 없다. 윤호의 말이 사실일지도 모른다고,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것만이 지금 소년을 숨 쉬게 한다.

윤호야.

응.

아무 얘기나 해 줘.

무슨?

아무거나, 더 생각난 것도 좋고.

등을 토닥거려 주던 윤호의 손길이 서서히 느려진다. 뒤이은 그의 목소리는 꼭 성화가 갈구하던 온도다.

우리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네가 나한테 별로 놀라지 않는다고 했던 거, 기억나?

……응.

그때… 네가 너무 불안해 보였어. 그래서 내가 불안해하면 너까지 무너질 것 같았어.

그랬구나, 다 티가 났구나. 몇 번을 겪어도, 제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결국은.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이 성화의 목구멍을 틀어막는다. 이래서야 정말 윤호가 떠나게 되면 어떡하지. 다시금 가슴께를 후벼파는 듯한 두려움에 성화는 가까스로 목소리를 쥐어짠다.

한 번만……

응?

한 번만 더 말해 줘. 떠나지 않겠다고 해 줘.

나는 널 떠나지 않아, 성화야.

그 말은 성화의 다음 호흡을 이어지게 한다.

안 떠나.

그다음 호흡도,

절대 안 떠나.

그리고 그다음 호흡도.

 

 

*

윤호가 격렬한 기침과 함께 잠에서 깨어난 것은 그로부터 며칠 뒤였다.

침대 머리맡에서 물컵과 수건을 든 채로 어쩔 줄 모르는 성화를 향해, 가까스로 기침이 멎은 윤호가 미약하게 웃어 보인다.

나, 기억났어.

그렇구나, 기억이 났구나. 절대 떠나지 않겠다는 말이 거짓말이 될 수밖에 없다는걸, 너도 결국 알게 되었구나. 그런 원망 섞인 말들을 도저히 한국어로 할 수는 없어서, 성화는 잠자코 컵을 건넨다. 천천히 물을 마신 윤호가 잔뜩 갈라진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영영 축구선수는 될 수 없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을 때 느꼈던 절망이 기억났어.

어떤 감정들은 사백 년이 지나도, 영하 몇백 도의 냉혹한 얼음 밑에서도 끈질기게 살아남는다. 하물며 성화가 고작 지난 몇 년간 느꼈던 상실감은, 불과 어제의 일처럼 생생해서. 성화 스스로 제어하기도 전에 입술 사이에서 말이 새어 나온다.

그래도…

응?

그래도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해.

…….

못 지켜도 좋으니까 약속해 줘.

…떠나지 않을게.

그 말이 제게 일시적이나마 안정을 줄 거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마음이 와장창 깨어지듯 아프다. 그 조각들을 밖으로 뱉지 않으려, 성화는 윤호의 목을 끌어당겨 안는다.

떠오른 절망이 그의 물리적 질량을 앗아가기라도 한 듯, 이십일 세기 소년의 머리통은 맥없이 품속으로 떨어진다.

 

 

*

성화는 이별이 머지않았다는 것을 느낀다.

그간의 경험이 날카롭게 벼려둔 제 더듬이가 그렇게 말해준다. 속일 수 있는 성질의 이별이었더라도 어김없이 알아챘을 텐데, 마지막이 될 이 이별은 그 누구도 속일 수 없다.

미처 준비할 수 없었던 어머니와의 이별이나 다른 사람들과의 이별과는 달리, 이제는 그 결말을 성화는 안다. 시작하기 전부터 가슴이 미어지도록 잘 알고 있던 결말.

잠결에조차 어깨를 들썩이며 잔기침하는 소년의 뺨에 살포시 손을 올려본다. 따뜻해. 문득 두 번 다시 젖은 얼굴을 매만질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첫 만남을 떠올린다. 그렇다면 두 번 다시 부드럽고 따뜻한 얼굴을 매만질 일도 없을 테다. 두 번 다시 사랑의 언어를 입에 올릴 일도.

사랑해.

성화는 소리 내 발음해 본다. 소리를 부여받은 감정은 구체적인 형상을 띠고 가슴을 옥죈다. 오로지 각기 다른 언어로만 전해져 내려오는, 빠르게 꺼져가는 구시대의 신화 같은 감정.

그러니까, 눈앞의 소년은 성화에게 있어 이 세상의 마지막 사랑이다. 다음 세상이 있더라도, 이 세상에서는 마지막 사랑.

문득 파란 하늘을 보고 싶다는 '꿈'이 절실해진다. 파란 하늘에는 윤호가 말하던 하느님이 계셔서, 제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실 것만 같다.

꿈, 기도, 소원, 약속. 사랑. 희망. 그런 것들이 파란 하늘 아래에는 있을 것만 같아서.

어느새 눈에 차오른 눈물이 윤호의 뺨에 떨어질세라, 성화는 서둘러 눈가를 훔친다. 언제 다시 흐트러질지 알 수 없는 고른 호흡을 방해하지 않으려, 입술을 내려놓고 싶은 충동을 한껏 억누르면서.

 

 

*

성화야.

응.

우리 올라가자.

……?

바깥에, 올라가자.

……바깥에서는 죽고 말아.

응, 기억해. 하지만 나도 너도, 이제 시간이 얼마 없잖아.

…….

파란 하늘, 보고 싶다며.

……식물이 자라지 않는 지상에는 모래바람이 몰아친다고 했어. 파랄 리가 없어.

그걸 어떻게 알아. 직접 보지 않고서는 모르는 거잖아.

그렇게……

응?

그렇게 생각해서, 냉동 탱크에 들어갔구나.

…….

그렇게 생각해서 냉동 탱크에 들어갔는데, 우리가, 내가, 널 실망하게 했구나.

…….

나는 실망하고 싶지 않아, 윤호야.

…후회하는 건 괜찮고?

뭐……?

내가 죽고 나면, 그때 같이 올라가 볼 걸, 하고 후회하는 건 괜찮고?

…….

……미안해.

…….

미안해, 성화야.

 

 

*

성화는 한나절 꼬박하고도 얼마간을 윤호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침묵을 지키고 있으면 있을수록 윤호와 말을, 한국어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상처받은 마음은 소년을 구석에 몰아넣었다.

바깥에 올라가도, 파란 하늘 따위를 볼 수 있을 리가 없다. 황폐해진 대지 위에는 모래 폭풍이 휘몰아치거나, 생명체가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는 태양 광선만 작렬할 것이다. 몇천 몇만 개인지도 모를 계단을 무사히 올라가더라도, 퍼석퍼석한 땅 위에 발을 딛고 얼마 안 있어 두 사람의 몸은 바스러질 것이다. 확실한 죽음을 위해 윤호와의 마지막 순간들을 희생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제가 지금 하고 있는 건, 마지막 순간들을 낭비하는 게 아닌가?

가자.

희게 질린 얼굴로 침대 위에 웅크린 채인 윤호에게 성화는 손을 내민다.

같이, 위에 올라가 보자.

폐부의 통증과 싸우면서도 윤호는 가까스로 웃어 보인다.

그래, 올라가 보자.

 

 

*

첫 계단 앞에 서서 주저하는 성화의 손을 윤호가 잡아끈다.

뭐가 그렇게 무서워.

…….

나도 너도, 같이 떠날 건데 뭐가 무서워.

그러면서 몇 계단을 앞서 오른다. 강한 힘이 아닌데도, 성화는 이끌리듯 따라 오른다.

……여기서 떨어져 죽은 사람이 있었어.

성화는 그렇게 여자의 이야기를, 남자의 이야기를, 소녀의 이야기를 소년에게 풀어놓는다. 계단을 오르면서 이야기하느라 숨이 턱끝까지 차올랐지만, 윤호 역시 중간중간에 주저앉아 숨을 고르지 않으면 안 되었으므로 두 사람의 속도는 서로에게 꼭 알맞다.

미안해.

성화의 이야기를 다 들은 윤호가 사과한다.

그런 줄도 모르고, 미안해.

……괜찮아.

이제 와서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겠어. 그렇게 말하는 대신 성화는 다시 한번 말해 준다.

이젠 괜찮아.

 

 

*

계단을 오르는 여정은 길고 험했다. 위로 갈수록 더 오래전에 빚어둔 계단은 관리의 손길이 닿지 않아 금이 가고 부서져 있었다. 손전등 빛에 의지해 한 계단 한 계단을 두드려 가며 오르느라 시간은 더 지체되었다. 매일 정해진 양만 배급되는 음식은 챙겨올 생각조차 하지 못했고, 가져온 물은 바닥난 지 오래였다.

하지만 앞으로 나아갈 길이 있는 이상, 폐가 찢어질 듯 아프거나 무릎이 바스러질 듯 시큰거려도 마음이 절망스럽지는 않았다.

이게 마지막 여행이겠다.

앞장서 끝이 보이지 않는 계단을 오르다 윤호가 한숨 섞인 웃음을 짓는다.

인류 역사상 마지막 여행, 그치?

…그러네.

지하에 두고 온 사람들에게는 미래가 없으므로, 그들의 모든 말과 행동, 모든 생각이 인류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

마지막 여행, 마지막 희망, 마지막 사랑.

 

 

*

얼마를 올랐을까. 더는 다리를 움직일 수 없다고 생각될 때쯤, 계단이 불쑥 끝나고 좁은 평지가 시작된다.

쓰러지듯 다져진 땅 위로 몸을 내던지는 윤호의 낯빛이 희다 못해 푸르다. 그 옆에 같이 몸을 내던지며 성화는 다급하게 어른다.

윤호야, 다 왔어.

대답 대신 까끌거리는 숨소리만이 돌아온다.

같이 올라가자며, 응?

윤호의 얼굴을 뒤덮은 식은땀에 흙먼지가 뒤엉킨다. 성화의 손길이 닿으면 닿을수록 더 얼룩덜룩하게 물드는 뺨이 속상하다. 한동안 숨만 몰아쉬던 윤호가 서서히 몸을 일으킨다.

응, 가자.

지하에 인공적으로 다져둔 평지를 걷는 걸음은 느릿느릿해도 확고하다.

이윽고 위로 난 거대한 철문이 두 소년을 맞는다. 외부로부터의 침투를 막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 문에는 아무런 잠금장치도 없지만, 인류가 자초한 자연재해를 막아내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으므로 무척이나 무겁다. 윤호와 함께 문을 몇 번 밀어보던 성화의 가슴께에 그제야 까만 절망이 밀려든다.

윤호야, 이건…….

안 될 것 같아. 그렇게 말하려던 성화는 저를 마주 보며 환하게 웃는 흙투성이 얼굴에 그만 말을 맺지 못한다.

마지막 힘을 내 보자.

분명 다음 숨을 들이쉬는 것조차 어려울 소년이 그렇게 웃어 보이는 데에 대고 차마 포기의 말을 할 수 없어, 성화는 억지웃음을 지어 보인다.

그래, 마지막 힘.

 

 

*

두 소년이 마지막 힘을 낼 때, 성화는 하느님에게 빌어보았다.

이 문이 열리게 해 주세요. 저 밑에서는 멀어서 들리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이만큼이나 가까워졌으니 들리겠지요? 이 문을 열어주세요.

꿈쩍도 하지 않던 문이 열리려면 하느님이 실존하는 정도의 기적이 필요했으므로, 성화는 그렇게 기도했다.

 

 

*

그리고 문이 열렸을 때,

두 소년의 머리 위에 펼쳐진 것은 하늘이었다.

동그란 문 모양으로 난, 흙빛 하늘.

……파랗지 않네.

그렇게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제 목소리인지 윤호의 목소리인지 구별이 되지 않는다. 귓가에서 심장이 쿵쾅거리고 뛰는 소리가 세상과 성화의 경계를 흐려놓는다. 시야에 눈물이 가득 들어차 잘 보이지 않는 것도 한몫한다.

뭐야, 뭘 기대한 거야. 당장 모래 폭풍에 휩쓸려 죽지 않은 게 어디야. 이 문이 열리지 않아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죽지 않은 게 어디야. 그런 말들을 한없이 떠올릴 수 있었지만 그중 무엇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 윤호의 끝이 정해져 있는데, 하늘이 파랗건 흙빛이건 다 무슨 소용이야.

아직도 위를 올려다보고 있는 윤호의 옆모습을 바라보니 그만 눈물이 굴러떨어진다. 내 '꿈'이 다 뭐라고. 원망에 못 이겨 윤호의 가슴팍이라도 한 대 때리려던 성화를, 윤호의 목소리가 가로막는다.

어, 저기, 파란…….

위로 뻗은 윤호의 손가락을 따라 성화의 시선도 위를 향한다. 여전히 낮게 가라앉아 있는 흙빛 하늘만이 둥그렇게 나 있다.

뭐야, 장난치지 마.

아니야, 진짜로, 보고 있어 봐.

바로 그 순간, 궂은 하늘을 파란 선 하나가 유유히 가로지른다. 성화가 알기로, 그렇듯 하늘을 날 수 있는 건 날짐승뿐이었다.

오래전 멸종해야 했을 새가, 하늘을 날고 있었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소년들의 입에서 동시에 소리가 터져 나온다.

파란 새다.

파랑새다.

사랑과 상상과 온기와 희망의 언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