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에 우리를 제외한 지적생물체가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은 이상하다. 우리는 존재가 증명된 것에 의문을 가지지 않는다. 불가사리는 바다에 사는가, 종이는 물에 닿으면 젖는가에 대한 의문을 가지지 않듯이 우주에는 생명체가 확실히 존재한다. 내가 태어난 날, 엄마는 병실 TV에서 우주의 어떤 행성에서 보낸 전파가 우리나라 천문연구원에 닿았다는 뉴스를 봤다고 했다.
그 행성의 사람들은 어떻게 생겼을까? 어떤 말을 쓸까? 글씨는 어떻게 쓸까? 만화에 나오듯이 큰 눈, 초록색 피부, 감정을 나누는 더듬이를 가지고 있을까? 몇 년간의 교류로 우리가 알아낸 것은 그들이 우리와 굉장히 비슷하게, 아니 어쩌면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 사용하는 문자도 똑같아 보인다는 것이다. 다른 것은 우리는 바닷속에서, 그들은 육지에서 산다는 점이었다. 그러니 바닷속에 페러테라포밍 기술(*행성의 일부에 돔과 같은 시설물을 건축하고, 그 안에 사람이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지구인보다 우리가 월등히 뛰어나다. 뭐, 내가 개발하고 그런 것도 아니고, 난 그저 이 안에서 살고 있을 뿐이지만... 안타깝게도 우리의 기술은 딱 거기까지였다. 육지를 활용하는 기술도 없었고, 큰 어항 같은 이 안은 거의 텅 비어 있었다. 유로파인들이 여러 기술이 있는 지구인들을 동경하게 되는 건 어쩌면 당연했다.
“같이 쓸 수도 있지.”
“아니 걔네는 훨씬 좋은 데서 온 애들이라며. 우리랑 같이 있으면...”
“같이 있으면 뭐. 우리가 병이라도 옮기냐?”
“아니 뭐... 나라면 좀 싫을 것 같은데?”
“아 됐거든. 똑같이 생겼고, 말하는 것도 똑같고, 어? 고작 얼음 좀 뚫고 들어왔다고 뭐 엄청나게 되는 것처럼...”
“고작이라 할 건 아니지 않나...”
“...”
“야, 난 좀 무서워. 막 뭐라고 하고 이것저것 시킬까 봐…”
“아오. 쫄지 좀 마.”
“안녕하세요, 박성화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목에 아가미의 흔적이 없는 지구인이라는 존재가 처음으로 우리 학교에 들어왔다. 반 아이들은 선생님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다들 온 관심이 전학생에게 쏠린 티가 났다. 나는 안 그런 척 턱을 괴고 고개를 창가 쪽으로 돌린 채 밖에 있는 해파리의 마릿수나 세고 있었지만, 곁눈질로 계속 보게 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밝은 표정으로 손을 흔들면서 반 아이들을 쳐다보는 전학생, 성격 자체가 소심한 건 아닌데 낯을 가리는지 약간은 어색한 표정. 자신에게 쏠린 낯선 시선 탓에 전학생의 귀가 붉어지는 걸 보니 웃음이 나와 턱을 괴던 손으로 입을 가렸다. ‘지구인도 민망하면 귀가 빨개지는구나.’
“성화는 지구인이야. 원래는 지구인 학교를 다녀야 하는데...”
그 이후부터는 제대로 선생님 말씀을 듣지 않았다. 붉어지는 귀, 갈 곳을 잃고 헤매다가 이내 바닥으로 떨어지는 눈빛에 이상하게 시선이 쏠려 제대로 집중이 안 됐다. 선생님의 말씀이 끝나고 내 앞에 있던 친구가 슬쩍 눈치를 보더니 박수를 쳤고, 다들 그를 나름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하필이면 이 반에서 나만 짝꿍이 없었고, 하필이면 내가 반장이었기에 너무나 당연하게 전학생은 내 짝꿍이 됐다. 박성화라는 애는 역시 낯가리는 성격이 맞았는지 선뜻 인사를 건네 오지는 못했다.
어색한데 묘하게 반짝이는 눈빛으로 앞만 보고 있는 전학생의 귀를 보면서 ‘어, 점점 빨개졌던 거 사라지네?’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혹시 내 얼굴에 뭐 묻었어?”
“…쳐다봐서 미안.”
“어? 아니, 괜찮아. 내 귀 혹시 빨개졌어?”
“어… 별로?”
다시 귀를 슬쩍 보자 금세 다시 빨개진 귀가 보였지만 입을 다물었다.
“아 그래? 다행이다... 내가 낯을 좀 가려서... 앞에 나가 있을 때 좀 민망하더라.”
“어어… 그래…”
어색한 대화가 끝났다. 반 아이들은 우리 둘이 대화하는 모습이 흐뭇한 지 실실거리면서 쳐다보고 있었고, 괜히 ‘뭘 봐.’라고 입모양으로 말하자, 오히려 더 즐거워하기만 하고 웃는 걸 멈추지는 않았다. 사실 더 예민하게 굴고 싶었는데, 애매한 표정으로, 애매하게 앉아있는 전학생 앞에서 짜증을 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박성화는 의외로 친구들과 금방 친해졌다. 물론 몇 주 동안은 우리 반 아이들이 묘하게 박성화를 조금 불편해했다. 어쩌면 당연하다. 사회적으로 자신들보다 우위에 있다고 느껴지는 존재가 반에 떡하니 앉아서 친해지자는 눈빛을 보내 봤자 부담스럽기만 할 테니까. 그런데도 그 애는 모두와 친해질 만큼 성격도 좋았고, 다른 애들이 유로파인인 것은 그 아이에게 별로 크게 영향이 없는 듯 보였다. 근데 정말 이상하게도 나는 박성화와 친해지기가 힘들었다. 우리 반에서 박성화랑 어색한 건 나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쉬는 시간에 각자의 친구들과 신나게 놀기도 하고, 다 같이 놀 때는 옆에 있기도 했는데, 막상 종이 치고 같이 옆자리에 앉으면 선생님이 들어오시기 전까지 할 말이 없었다. 그저 조용히 할 일을 했다. 애초에 나도 사람한테 친해지자고 애쓰는 타입도 아니고, 방법도 모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친구가 되기에는 너무 과하게 의식됐고, 내 이미지를 챙겨야 할 것 같아서 이상했다.
오늘도 다같이 놀다가 수업 종이 쳐서 자리로 돌아와 교과서를 준비하고 앉아 각자 책상만 바라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박성화가 말을 걸었다.
“너, 내가 싫은 건 아니지?”
“어?”
선생님이 들어오셔서 제대로 된 대답도 못 하고 입을 닫았다. 사실 선생님이 들어오셔서 말 못 했다는 건 핑계고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정리가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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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파괴, 지구온난화, 그리고 맞물려버린 지진과 화산활동 때문에 지구는 더 이상 사람이 살아갈 수 없는 행성이 됐다. 인간들은 지구를 다시 살리기 위한 방법들에 대해 연구했었다. 하지만 근 몇 년간 사람들은 이미 늦어버렸다는 걸 깨닫고 우리는 지구를 나갈 방법을 빠르게 고안해내기 시작했다.
우리가 목성의 위성인 유로파와 통신을 해 온 지는 꽤 오래됐다. 행성도 아닌 조그만 위성에 우리가 쓰는 언어와 동일한 언어를 쓰는 인종이 존재한다는 걸 안 학자들은 유로파를 일종의 평행지구라고 부르기도 했다. 제대로 만나보기 전까지는 몰랐지만, 생김새도 섞여 있으면 누가 지구인이고 유로파인인지 모를 정도로 유사했다. 다만, 우리는 육지에서만 살아왔고 유로파인들은 상대적으로 최근까지도 조상들이 물속에서 수영하며 살았기 때문에 여전히 그들에게 아가미의 흔적이 있다는 것이 달랐다. 하여튼 우리가 도망칠 곳이라면 거기가 적합할 것이다. 우리가 면역이 생겨 인지하지 못한 채 지니고 있는 병균이 그들에게 어떤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것 따위의 고민을 할 만큼 지구의 인간들은 이타적이지가 않았다. 일단 살 곳이 필요했기에 어쩔 수 없는 걸까 생각했다.
우리나라의 기술력으로는 유로파의 얼음을 뚫어내기에 충분했다. 과거에는 몇 년씩이나 걸려 도착하던 목성을 우리는 몇 개월이면 도착할 수 있었고, 궤도만 잘 맞는다면 유로파에 도착하는 건 그것보다도 더 빨라질 수 있다. 유로파를 덮고 있는 얼음벽을 뚫고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그 구멍에 투명한 막을 씌운 뒤 착륙한 우리를 보는 그들에게 눈으로 직접 검은색으로 뒤덮인 우주를 처음 본 황홀함, 그리고 그걸 볼 수 있게 한 지구인들에 대한 동경이 느껴졌다. 지구인과 유로파인은 어른들 간의 이야기로 중심 쪽에 지구인들이 살고, 그것을 둘러싼 위치에 유로파인들이 살기로 했다. 몇 가지 기술을 알려주는 대신 이 커다란 투명 돔에 어떤 일이 생겼을 때, 유로파인들이 먼저 피해를 당하게 하는 것으로 합의한 것이다. 자연스럽게 지구인들은 돔 중심에 학교를 짓고 살아갔는데, 우리 부모님은 내가 유로파인들과 섞여 살기를 바라셔서 입학하고 며칠 안 있어 유로파인들만 다니는 외곽의 학교에 날 보내셨다.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뭐라도 된 듯 기세등등한 지구인들 사이에서 사는 것이 나에게는 더 불편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낯을 조금 가리는 편이긴 했으나 사람을 대하는 게 어렵지는 않다. 지구에 살 때도 항상 친구들은 많았고, 유로파인들만 다니는 학교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선생님과 아이들 모두 초반에 나를 조금 대하기 불편해하는 모습이었지만, 다행히 내가 조금만 노력하니 다들 편하게 대해주기 시작했다. 창밖을 쳐다보면 돔 밖의 바다 세상이 보이는 이 학교가 마음에 들었다.
친구들을 사귀어 놓으니 안심이 되겠다고 묻는다면 사실 그건 아니다. 짝꿍인 김홍중이라는 애는 나에게 별로 관심이 없거나 어쩌면 싫어하는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짝꿍인데도 몇 주 동안 제대로 이야기를 해본 적도 없고, 가끔 서로 어색하게 눈 마주치는 일만 여러 번이었다. 다른 친구와는 단둘이 있어도 신나게 웃는 저 애가 왜 내 옆에서만 굳는 건지 궁금해서 충동적으로 입이 열렸다.
“너, 내가 싫은 건 아니지?”
김홍중이 대답은 했는지, 어떤 표정으로 날 보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내가 말해 놓고도 당황해서 때마침 교실 앞문을 열고 들어오시는 선생님만 한 교시 내내 바라보다가 우리 둘은 질문에 대한 의문, 대답에 관해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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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에서는 가끔 고래 울음소리가 들리곤 한다. 그때마다 우리는 조용해졌다. 수업 중이던 선생님들도 그 순간에는 잠시 수업을 멈췄다. 고래의 덩치로만 봐서는 돔 정도는 거뜬히 깰 수 있을 것 같았고, 그걸 깨면 당연히 우리 학교도 바로 무너질 텐데 고래는 우리가 여기서 살아가는 걸 알고 있는 듯 항상 조심히 피해 가면서 눈인사를 건넸다.
우리한테는 익숙한 그 풍경을 박성화는 오늘 처음 봤다. 다 같이 창밖을 볼 때 나는 박성화를 봤다. 누가 봐도 아름다운 것을 보고 있어서 황홀하다는 표정이 너무 솔직해서 계속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박성화의 옆모습 뒤로 창문에 생기는 공기 방울, 느리게 움직이는 고래의 지느러미, 고래 밑에 붙어있는 작은 빨판상어들을 보니 오늘따라 어둡고 푸른 이 바다가 아름다워 보였다. 몇 주 전부터 유로파가 새로워 보인다. 유로파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주변에 하나 생긴 탓인지 괜히 내 주변에 있는 신기한 것들, 에쁜 것들, 지구와는 다른 것들이 눈에 띄었다.
고래가 사라지고 친구들은 대화를 다시 시작했다. 나는 멍해져 있는 그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너 고래 처음 보는 거야?”
“응... 제대로 본 건 돌고래밖에 없어. 저렇게 큰 고래는 항상 사진으로만 봤지.”
“지구 진짜 별거 없네?”
“어, 별거 없어. 고래도 못 보고... 지구 사람 중에 바다에 제대로 들어가 본 사람들은 거의 없어. 분명 티는 안 내도 다들 여기의 바다가 너무 신기했을 거야.”
“그래?”
“응.”
말을 끝내고 다시 창밖을 바라보는 박성화의 귀가 붉어졌다. 바람 한 점 없는 실내인데 그 아이의 머리가 살랑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가끔 턱턱 숨 막히는 이 남고 교실의 공기가 잠시 편안해졌는데, 그 순간 이상한 시선들이 너무 느껴져서 친구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왜 그렇게 다들 쳐다보고 있는데?”
“너네 둘이 말도 하냐?”
“당연하지...”
당연하다고 대답했지만 생각해보니 제대로 말 걸어본 것도 두 문장 이상 말해본 것도 처음일지도 모르겠다. 보통의 친구였으면 이 기회로 확 친해지겠지만, 나와 박성화는 그럼에도 단계적으로 차근차근 친해졌다. 어느 순간부터 어색함은 사라졌지만, 내가 이 아이를 대하는 게 다른 친구들을 대하는 것과 조금 다르다는 것이 계속 느껴지는 것이 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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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라는 걸 제대로 본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몇이나 될까? 지구에서는 당연히 보기 힘들겠지만 사실 유로파에서도 중심부에서 살다 보면 돔 위로는 고래가 잘 안 돌아다니는지 볼 일이 없었다. 쉬는 시간에 친구들과 장난을 치면서 떠들고 있는데 ‘고래 울음소리인가?’ 싶은 소리가 났고 창밖에는 고래의 눈이 있었다. 처음보는 큰 동물에 무서웠지만 동시에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로파인들은 이런 걸 보고 살았구나. 부럽다고 생각했다.
고래가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고 있을 때쯤 황홀했던 감정이 조금 진정돼서 다시 옆쪽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홍중이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홍중이랑 눈이 마주칠 때는 참 많았다. 궁금한 게 많아 보이는 그 큰 눈으로 매번 먼저 쳐다봐 놓고 제대로 말 한 번 안 걸지 않았었는데 오늘은 달랐다. 전학 오고 첫날 교탁 앞에서 인사를 하던 그날처럼 갑자기 긴장되는 내 자신이 웃겼다.
의외로 그 이후에도 우리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주변에서 어색해 보인다는 말을 좀 듣고, 우리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까 의식적으로 더 친해지려고는 하는 것 같은데 그래서 분위기가 괜히 더 이상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이제 더 이상 둘이 같이 자리에 앉아있다고 뻘쭘하지도, 어색하지도 않지만 기분이 간질거리고 손을 가만히 둘 수 없어 꼼지락거리게 되는 것은 점점 심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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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는 완전 중심지에 살고 나와 원래 친했던 세 명은 중심부 바로 근방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 다섯은 자주 같이 하교하곤 했다. 근데 나머지 세 명이 전날 교실 청소를 땡땡이치는 바람에 오늘 벌로 청소하게 됐고 처음으로 성화랑 둘이 하교하게 됐다. 교문을 나서면서 돔 위를 쳐다보는 성화가 말을 걸던 순간, 나도 자연스럽게 고개를 젖혀 위를 쳐다보게 된 그때부터 내 눈은 성화의 모든 행동을 담으려고 바빠졌다.
“하늘에 별들 떠 있는 것 같지 않아?”
“뭐가?”
“저기 불가사리들.”
돔 바깥쪽이라 천장이 그렇게 높지 않아서 돔에 붙어있는 불가사리들이 잘 보였다. 근데 별은 저렇게 안 생기지 않았나?
“별이 무슨 저렇게 생겼어. 동그랗게 생겼지.”
“아니, 유로파 사람들은 별 그릴 때 동그랗게 그려?”
“애초에 그렇게 생겼는데 그럼 어떻게 그려.”
“불가사리 모양으로 그려야지.”
“보러 갈래? 별이 어떻게 생겼나?”
“별이 생긴 게 문제가 아니라...”
“아 몰라. 보러 가자고 일단.”
약간의 어색함에 묘하던 분위기는 고작 불가사리와 별 이야기로 풀려서 충동적으로 우리는 별을 보러 중심가로 향하던 발을 돌렸다. 유로파에서 별을 볼 수 있는 곳은 오직 돔의 북쪽 가장자리, 지구인들이 뚫고 들어온 그 구멍밖에 없었고, 학교에서 꽤 거리가 있는 곳이었다. 바다를 보면서 가다 보니 돔 바깥쪽으로 걷게 돼서 평소보다 훨씬 오래 걸렸지만, 이야기하는 시간은 즐거웠다. 유로파에 살면서 본 유로파의 모습 중 오늘 성화와 걸으면서 본 유로파의 모습이 제일 다채로웠다. 하늘이 있고, 구름이 있고, 초원이 있다는 지구가 부럽지 않을 정도로 성화가 손가락으로 짚어보는 유로파의 바다는 아름다웠다.
“유로파도 언젠간 지구처럼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될까?”
“음... 인간이 사는 곳은 결국 전부 그렇게 되지 않을까? 근데 유로파가 우리만큼 환경에 죄짓는 기술들이 많은 것 같지는 않아.”
“그런가?”
“응, 애초에 자동차를 하루에 다섯 번 이상 본 적도 손에 꼽고, 돔으로 돼 있어서 대기오염은 아예 억지로라도 막으려고도 하고...”
“음...”
“난 지구에서 여기에 올 때 하나도 아쉽지 않을 정도로 지구가 살기 좋은 행성은 아니야. 인간은 아등바등 살아왔어도 우리보다 역사가 긴 동물들은 이미 다들 멸종된 지 오래고, 유로파에서 전달받던 푸른 지구 사진은 애초에 먼 과거야. 지금 보면 화성 수준으로 붉을걸?”
“화성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는데 그리 잘 살지는 못 했나 봐?”
“난 유로파가 좋아. 푸르고, 건물도 별로 없고. 지구보다 조용하고.”
생각보다 얼음 구멍까지는 금방 도착했다. 유로파에서 별이 보이는 곳은 이곳뿐이다. 두꺼운 얼음 때문에 시계가 없으면 시간이 어찌 흘러가는지 모르는 폐쇄된 이곳에서 유일하게 투명한 곳은 지구인들이 뚫어 놓은 이 구멍뿐이다. 이 구멍으로 별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별을 보는 건 언제나 신기하고 좋지만, 오늘에서야 지구인들이 별 보는 데에서 낭만을 느끼곤 했다는 이야기가 어떤 느낌인지 이해가 됐다. 별을 올려 보는 성화의 옆모습에 오늘도 살짝 붉은 귀에 시선이 꽂혔다가 목에 시선이 갔다. 목에 아가미 흔적이 없는 지구인 뒤로는 끝이 안 보이는 바다가, 그 위로는 바다보다도 더 어둡고 광활한 우주가 펼쳐져 있었다. 유로파에 온 지 꽤 됐는데도 아직도 신기한 거 투성이인 듯 보이는 반짝이는 눈빛에 나까지도 너무나 익숙한 이곳이지만, 유로파에 애정이 점점 쌓여갔다.
“그거 알아? 지구에서 내가 살던 곳은 빛이 너무 많아서 별이 잘 안 보여. 밤에도.”
“그건 조금 의외네.”
“응. 근데 지금 보니까 지구인들이 왜 별을 불가사리 모양으로 그리는지 모르겠다.”
“빛이 번져서 반짝거리는 걸 그런 모양으로 그린 거 아닐까?”
“그냥 동그랗게 보이는데?”
“아니, 불가사리 모양으로 그리는 게 나름 설득력이 있다니까.”
“언제는 별을 왜 그렇게 그리냐며...”
“그냥 그럴 수도 있다는 거지.”
“…”
“너, 나 안 싫어하네?”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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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사리를 보고 별 같다는 유치한 말을 고등학생인 내가 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냥 이 분위기에 온몸이 간지러운 기분이라 두리번거리다가 아무 말이나 한다는 게 그런 말이 나왔다. 생각보다 홍중이는 진지하게 내 말에 대답했고, 어쩌다 보니까 진짜 별을 보러 가게 됐다. 이 상황이 재밌었다. 어쩌면 유로파에 온 이후로 제일 재밌는 날은 오늘일지도 모른다. 길을 걷다가 보는 유로파의 모습은 여전히 적응이 안 될 만큼 아름다웠다. 물고기가 지나다니고, 돔 내부와 외부에서 산소 펌프가 느리게 움직였다. 평생을 여기서 살아온 홍중이도 여전히 유로파를 구경하는 것이 즐거운지 목소리가 높아지고 즐거워 보였다. 바다 속을 신기하게 쳐다보다가 나에게 대답할 때마다 마주치는 눈, 가로로 길어 웃으면서 말할 때 유독 예쁜 입이 나를 신나게 했다.
얼음 구멍에 도착해 별을 보면서 이야기하다가, 문득 이 애가 나를 싫어하는 건 절대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모든 친구와 친하게 지내기를 바랐고, 홍중이와는 짝꿍이니까 더 친해지고 싶었다. 근데 친구라는 사이가 “너, 나 싫어해?”라고 하는 순간부터, 어쩌면 친구가 되기 위해서 어색한 분위기를 타파하려 했으나 묘해지기만 한 그 순간부터 친구가 되기는 글렀다고 생각했다. 유로파에서는 모르겠는데, 그 말을 뱉은 나는 지구인들이 그런 말을 단순 친구에게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어쩌면 나는 홍중이가 날 싫어하지 않는다는 것도 진작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너, 나 안 싫어하네?”
“뭐?”
“싫어해?”
“아니?”
“그럼 좋아해?”
“…위에 고래들 지나간다.”
위를 보는 순간 별들이 보이는 구멍 밑으로 한 쌍의 고래가 느리게 지나가고 있었다. 우리가 본인들을 쳐다보고 있는 걸 알았는지 조금 아래쪽으로 내려와 돔을 지느러미로 살짝 쓸었다. 말을 돌린 홍중이가 미웠는데도 눈을 뗄 수 없는 광경이었다. 두 고래가 연인인지 친구인지는 잘 모르겠다. 확실히 계속 붙어있는 게 친한 사이 같았다. 고래 눈에는 우리 둘이 어떤 사이로 보일까 궁금했다. 의외로 먼저 입을 땐 건 홍중이었고 나랑 똑같은 것이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저 둘은 무슨 사이일까?
“글쎄? 부부? 아니면 친구?”
“음...”
“저 고래들 눈에 우리가 친구처럼 보일까?”
“어떨 것 같은데?”
“서로 좋아하는 사이인 줄 알고 웃고 있을 것 같아.”
“그럴 것 같아. 고래는 똑똑하잖아.”
“그럼 넌 저 고래들이 어떤 사이인 것 같은데?”
“둘이 좋아하는 사이일 것 같아.”
이게 홍중이가 마음을 전하는 방식이라는 건 우리 머리 위에 있는 고래들도 눈치를 챘을 정도로 이 아이의 주변 공기가 핑크 빛이었기 때문에 금방 알 수 있었다. 입으로는 빙글빙글 돌려 말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전학 첫날 때부터 귀가 화끈거리게 만들던 홍중이의 눈빛은 여전히 곧게 나를 향하고 있었기에 마음은 충분히 알 수가 있었다.
우리를 지켜보며 멈춰 있던 두 고래는 돔을 툭툭 치다가 울음소리를 작게 한 번 내고 구멍 쪽으로 헤엄쳐 갔는데, 그 모습이 마치 고래들이 우주에서 유영하는 것 같아 보였다.
“넌 항상 고래를 그런 표정으로 봐.”
“어떤 표정인데?”
“잘 모르겠는데, 기분 좋은 표정?”
“기분이 좋긴 해.”
“유로파가… 네가 그렇게 쳐다 볼만큼 아름다운 곳이라 다행이야. 나도 이렇게 예쁜 곳인지는 몰랐어.”
“응. 여러모로 유로파로 와서 다행이야.”
“오글거리는 말이 계속 나올 것 같아서 말을 못 하겠어.”
“아, 나도. 이제 그만하자.”
비웃기라도 하는 듯 작게 들려오는 고래 울음소리에 마주보고 있던 우리는 푸스스 웃었다. 우리가 지금까지 느끼던 어색함은 아마 과하게 배려하려는 마음 때문에 생긴 무언가였을 것이다. 부끄러운 건 부끄러운 거고, 하고 싶은 건 또 해야 되는 홍중이 성격을 어느 정도 파악은 하고 있었지만, 귀가 불이 난 듯 빨개진 주제에 손이라도 잡으면 안 되겠냐고 손을 내미는 모습이 어이가 없었다. 아마 지금 이 시간만큼은 온 우주에서 유로파만큼 낭만적인 곳은 없을 거라 생각하며 내민 손을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