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섷

Not Enough

by. 파토

* FTISLAND - Not Enough


*


처음부터 관중을 압도하는 찢어지는 기타소리. 환호가 절로 나오게 하는 화려한 속주와 흥분을 가중시키는 아밍까지. 홍중의 퍼포먼스는 오늘도 최고였다. 초대석에 앉아 소녀마냥 두 손을 모은 성화는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홍중의 모든 것을 꼭꼭 기억에 새겼다.


오늘 연주는 어땠고, 시선처리며 마이크 넘기기며 무대매너는 어땠고 보컬 라이브는 또 어땠는지 홍중에게 전해줄 피드백과 칭찬을 빙자한 주접이 벌써부터 성화의 마음에 한 가득 쌓여 터질듯 빵빵했다. 소리없이 입술만 달싹이던 성화가 한 곡이 끝나자마자 크게 환호성을 질렀다.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에 관객석의 시선이 쏠렸지만 성화는 개의치 않았다.



"홍중아 수고했어~ 오늘도 최고! 완전 멋있었어!"


"으응 고마워. 고마운데, 소리는 좀 작게 지르면 안되겠니 성화야? 너 일부러 안 쳐다보는 것도 힘들다 야."


"너가 이렇게 멋진데 어떡해!"


"악!"


홍중이 힘겹게 등 뒤로 손을 뻗어 성화에게 맞아 얼얼한 곳을 문질렀다. 통증에 찡그려진 눈이었지만 이내 속눈썹 긴 그 눈매가 기분좋게 휘어졌다.

하여간, 못 말린다니까. 오늘도 꽃다발과 그보다 환한 미소를 들고 와준 성화를 향해 홍중도 마주 웃었다. 복도를 지나치는 시선들을 확인한 성화가 아무도 몰래 홍중에게 짧게 입맞췄다. 쪽 떨어지는 소리 뒤 보이는 홍중의 놀라 동그래진 눈에 성화가 쿡쿡 웃었다.


공연을 끝낸 홍중은 늘 매니저의 권유에도 스스로 운전해 퇴근하길 고집했다. 그도 그럴것이 그의 조수석에는 늘 성화가 앉았기 때문이다. 운전 불편한 빗길 속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무료한 시간에도 성화가 있어 홍중은 제 퇴근길이 조금도 지치지 않았다. 성화의 나긋한 목소리가 달콤한 사랑을 담고서 제게 속삭여질 때 홍중은 가장 큰 활력과 영감을 얻었다.


"사랑해 홍중아아."


"나도. 사랑해."


늘 그렇게 인사하며 애틋하게 헤어지는 게 그들의 당연한 일상이었다. 그만큼 순수한 사랑이었기에 돌이켜보면 참 바보같이 느껴질 것이라는 생각조차 할 틈이 없었다.


...그들도 그렇게 뜨거웠던 때가 있었다.


[홍섷] Not Enough

w. 파토


*


눈을 뜨자마자 홍중이 몸을 일으켰다. 고개를 약간 돌리자 아직 잠들어있는 성화의 얼굴이 보였다. 홍중은 저도 모르게 흘러나온 한숨을 듣고서 흠칫 등을 굳혔다. 내가 언제부터 얘 앞에서 한숨을 쉬게 된 거지. 잠시 생각하다가 이내 뒤통수를 벅벅 긁곤 담배를 꺼내물었다.


불씨와 함께 숨을 삼킨 홍중이 후 뿌연 연기를 길게 뱉었다. 들어올 때부터 담배 쩐내 진동하던 자취방이었으니 실내흡연이고 뭐고 불평하는 이도 별로 없었다. 어느새 또 멍하니 앉아있는 자신을 발견한 홍중이 탁상 위 종이컵에 담뱃재를 털며 뒤를 돌아봤다.


잠결에 뒤척였는지 성화는 홍중을 향해 툭 튀어나온 날개뼈를 드러낸 채 마른 등을 들썩이고 있었다. 나른하게 처진 어깨 뒤에서 홍중은 고요히 숨을 멈췄다. 또다시 멍해진 홍중의 눈은 성화의 뒷모습에 내려앉지도 못하고 침대맡 어딘가만 서성였다.


"잘 잤어?"


"웅."


"밥은."


"시켜 먹자."


"그래."


"..."


"..."


첫날밤 다음의 아침도 아니거늘 주변을 맴도는 어색한 기류. 더 뭐라 이어질 길 없는 짧은 대화. 침묵 속에서 홍중은 느릿하게 생각한다. 기시감이 느껴진다. 이런 대화는 종종, 그렇게 끝나곤 했는데.


"헤어질까, 우리."


"..."


맞아. 이렇게.


또다시 시작이다. 성화의 한탄같은 물음에 대한 답을 미루며 홍중은 눈을 감았다. 답답함에 제 머리채를 쥐어뜯기도. 또 왜, 같은 짜증 섞인 되물음으로 받아치기도 이제는 지쳤다.


*


언제부터 이런 반복이 시작되었는지 따져볼 정신도, 굳이 그럴 필요도 없다. 홍중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이 지긋지긋한 반복을 어떻게 끝마칠지에 대한 것 뿐이었다.


홍중과 성화가 교제를 시작한지도 어언 4년. 이제는 예전처럼 마냥 설레고 가슴 두근거리는 일이 드물 거라는 것도 안다. 권태기에 빠진 연인들이 종종 어떤 결말을 맞게 되는지도 모를 리 없다.


그 모든 걸 알면서도 박성화는 제 입에 이별을 담는다. 어쩌면 알기에 그리하는 걸지도. 멎어버린 호흡 속에서 홍중은 지그시 제 속입술을 짓씹었다. 아파오는 마음은 왜냐는 물음을 끝없이 소리쳤지만 입밖으로 나오는 소리는 그 한 음절조차 없었다.


"갈게."


필터까지 타고 내려와 끝내 꺼져버린 담뱃불을 든 홍중을 향해 성화가 짧게 말했다. 홍중이 퀭한 눈을 들었다. 어느새 말끔하게 씻고 옷도 차려입은 성화가 이쪽을 향해 울듯 말듯 애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 성화를 늘 붙잡지 못했던 홍중이었다. 오늘도 침묵만으로 일관하는 홍중을 바라보던 성화가 고개를 떨궜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침묵이 주변을 둘러싼 공기를 무겁게 했다.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당겨 겨우 웃는 얼굴을 만들어낸 성화가 고개를 들었을 때에, 그는 홍중이 숨을 들이키는 소리를 듣고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정확히는 그 들숨에서 느껴지는 결심을 눈치채고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 그만하자."


잘 때도 씻을 때도 심지어는 이렇게 잠깐 헤어질 때조차도 빼지 않았던 커플링이 홍중의 넷째 손가락에서 빠져나와 탁상 위에 놓였다. 탁 하는 간결하고도 가벼운 소리가 앗아가는 것들은 무엇이고 불러일으키는 감정들은 무엇일까.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 상황 속에서 성화는 모든 것이 낯설었다.


-


"...뭐야?"


"뭐냐니."


"원래 안 이랬잖아, 너."


"내가 언제까지고 매달릴거라 생각하는 것도 웃긴다."


헤어지자 운운하면서 주도권 쥐려는 거. 진짜 최악이야, 성화야. 낮게 읊조리는 홍중 앞에서 일갈이라도 들은 것마냥 성화는 주춤 뒤로 물러났다. 그만큼 정곡이 찔렸다는 의미겠지.


마음을 정한 홍중은 더 이상 제 숨결을 멈추지 않고 한숨을 푹 쉬었다. 성화의 눈동자가 속절없이 흔들리고 침대에 걸터앉은 홍중 앞에 성화가 무릎꿇어 앉았다. 약지에 반지자국만 남겨진 홍중의 왼손을 두 손으로 붙잡고 성화가 물었다.

홍중이 눈을 깜박여 멍한 시선을 성화에게로 옮겼다. 바닥에 엎질러진 물을 억지로 움켜내는 꼴이 애잔하긴 했다.


"왜 이러는 거야 홍중아."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인데."


"잘못했어. 다시는 안 이럴게."


"그래. 더는 이럴 필요 없어."


"김홍중!"


잘한 게 뭐가 있다고 성화 쪽에서 먼저 목소리를 높였다. 그 데시벨에 표정을 굳힌 홍중이 성화를 향해 고개를 디밀었다. 서로의 입술이 닿을 듯 가까운 거리에서 성화가 작게 숨을 삼켰다. 홍중의 오른손이 제 가슴팍에 올라오는 것을 성화는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이런들 아무 감정 없잖아."


"아ㄴ-"


"아닌 척 하지마. 슬픈 척 하지도 말고."


단호한 말 한 마디에 분하다는 듯 아랫입술을 짓씹는다. 한 꺼풀 가면이 벗겨진 성화가 매섭게 눈썹을 세운 채로 홍중을 노려봤다. 곧바로 돌변하는 제 애인의 모습에 홍중은 슬픔을 느꼈지만, 그를 티낼 여유따위 없었다. 고통스러워 몸부림치는 마음의 외침을 무시한 채 홍중이 말을 이었다.


"헤어졌다 다시 만나길 반복하면서 유치하게 싸우는 거, 그만하자. 우리. 이별을 입에 올릴 정도로 끝이 다가왔다면 그걸로 이미 끝난 거야."


"기다리지도 않는 거야?"


"뭐를?"


"그래. 내 멋대로 헤어지자 내지르고 내가 다시 만나자고 매달린 거 정말 지독한 짓이었단 거 인정해. 그런데, 내가 이렇게 널 기만하고 있지만 넌 아직 나 좋아하잖아. 남은 희망마저 붙들지 않는 거냐고."


"..."


홍중이 성화에게 몇번을 차이면서도 다시 다가오는 성화를 밀어내지 못했던 이유. 죽음을 직감하고 추악한 본성을 드러내는 영화 속 악당처럼, 성화는 끝내 잔인한 말로 홍중을 베어낸다.

홍중도 더는 견디지 못하고 미간을 찌푸려 질끈 눈을 감았다. 성화의 뺨을 갈길까 멱살을 틀어쥘까 고민하던 홍중이 제 손을 잡은 성화의 손을 거칠게 뿌리치는 것으로 분풀이를 대신한다.


눈을 세게 감으면 눈물이 새어나가지 않을까. 미련한 생각을 하며 홍중이 침대에서 일어섰다. 성화의 얼굴을 보면 더는 참을 수 없는 울음이 터져나올까봐 여전히 눈을 꾹 감은 채였다.


"넌 좋은 사람이었어, 성화야. 지금은 못돼처먹은 나쁜 놈이지만. 한때는 정말 과분하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좋은 사람이었다고."


"홍중아."


"지금도 그런 느낌이 들어.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넌 내 분에 넘치는 사람인가봐. 그리고-"


나는 너에게 충분하지 못한 놈이고. 꾸역꾸역 마지막 문장까지 힘겹게 완성한 홍중이 스스로의 얼굴을 감싸쥔 채 풀썩 주저앉았다. 성화가 홍중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무릎에 손을 올려 상태를 살폈지만 홍중은 숨 막힌 등을 들썩이며 고개만 저었다.


그래. 제아무리 변덕과 기만을 일삼는 질나쁜 애인이라 할지라도, 더 좋아하는 쪽이 지는 연인관계 속에서는 성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홍중이 부족한 것이었다. 사랑이란 원래 비합리적이고 불공평한 것이니까.

즉 이것은 을의 위치를 견디지 못한 홍중의 일방적인 항복선언이었다. 그러니 지금의 성화가 할 일은 단 하나뿐이었다. 홍중 앞에서 설레이지 않는 그 싸늘한 심장처럼 매몰차게 돌아서는 것.


"그런 말 하지 마."


하지만 마지막 남은 양심의 파편이 성화를 짓누르는 것일지 성화는 제 마음처럼 홍중을 그대로 등질 수 없었다. 그의 양심이 찔리지 않는 방향으로 성화는 끝까지 위선을 떨었다. 이미 홍중의 마음을 산산이 부숴버린 제 손으로 할 수 있는건 무엇도 없었지만 이대로 홍중을 떠나기엔 지금의 그가 너무 가여웠다.


하지만 성화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할짓 못할짓 다 저지른 나쁜놈이 되어버린 이상 눈앞에서 꺼져주는 것이 홍중에게 있어 가장 자비로운 행동이라는 걸. 그게 악당이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걸.

결론에 도달하자 그제서야 지독했던 자신에 대한 자기 혐오감이 성화의 목울대를 치고 올라왔다. 게워낼 수도 없는 역겨움을 성화는 제 입을 틀어막아 억지로 삼켜냈다. 흠칫 제게서 물러나는 성화의 기척을 느낀 홍중이 쇳소리에 가까운 음성으로 문장을 만들었다.


"제발 가."


"홍중ㅇ-"


"숨,"


호흡까지 멈춰가며 울음을 참는 압박 속 희미하게 새어나오는 홍중의 말을 들은 성화가 이내 떨어지지 않는 걸음을 옮겨 완전히 홍중의 곁을 떠났다. 제 자취방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은 홍중은 그제서야 안심하고 완전히 무너질 수 있었다.


"숨 막혀 죽을 것 같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