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 가지 경우의 수는 결국 한 가지의 결말로 귀결된다
내 사랑을 돌려주세요 / 부활 / 새로운 시작

⚠️ 사망 소재 주의

 






1.




삐- 삐- 삐-




어, 일어날 시간. 나는 귀를 찌르는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방금 일어나 아직 흐린 시야에 미간까지 좁혀가며 나는 몸을 일으키면 곧바로 시선에 걸리는 시계를 눈에 담았다. 오전 아홉 시. 오늘은 이 월 일 일. 성화 형과의 데이트가 있는 날이었고, 약속 시간은 열 시였다. 씻고, 머리도 예쁘게 만지고, 옷도 예쁜 거 입고. 내가 자기 전에 세웠던 계획과 딱 들어맞는 시간에 저절로 웃음이 피었다. 빨리 씻어야지. 내가 일어남에 따라 흘러내려 다리에 덮여 있던 이불을 걷고 일어나 팔을 머리 위로 쭉 뻗었다. 밤새 한 자세로 누워있느라 살짝 굳었던 몸이 풀리는 느낌이 났다. 아으, 시원해. 냉장고로 걸어가 찬물을 한 모금 마시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꼼꼼히 양치를 하고, 머리를 감고, 샤워도 하고.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습기 가득한 화장실 문을 열자 찬 공기가 훅 끼쳐들었다. 나는 썰렁함에 몸을 한 번 떨어주고 문 앞에 놔두었던 속옷을 주워 입었다. 아홉 시 이십 분. 자기 전에 미리 골라놨던 옷을 입고 드라이기로 머리를 세팅했다. 준비하면서도 괜히 마음이 떨려왔다. 아홉 시 사십 분. 약속 장소까지는 걸어서 십오 분 정도가 걸리는 거리였다. 모든 게 완벽했다, 성화 형을 만나기 전까지는.




성화 형이 죽었다. 그 누구보다 특별했던 형은 흔한 드라마의 클리셰처럼 평범하게 죽었다. 사실, 죽는 방식에 있어서 평범하다는 게 존재할까 싶지만, 흔하디흔한 역사(轢死)라니. 나는 횡단보도에 쓰러져 붉은 피 사이에 놓인 성화 형을 차마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 분명 녹색 불이었던 보행자 신호등에 붉은 색의 차량 신호등이었는데. 그 신호를 무시하고 횡단보도를 제일 먼저 건너던 성화 형을 친 화물 트럭은 어느새 우회하여 사라져 있었다. 갑작스레 일어난 사고에 놀란 사람들이 성화 형을 둘러싸고 앰뷸런스를 부를 때가 되어서야 나는 정신을 차리고 성화 형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형…, 형? 성화 형을 만난답시고 잔뜩 멋 부려 입은 슬랙스가 바닥에 잔뜩 쓸리는 것에도 아랑곳 않고 나는 형의 머리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형, 성화 형. 눈 좀 떠 봐요, 응? 형? 형…. 볼품없는 내 목소리가 허공에 부서졌다. 아마도 형의 몸을 둘러싸고 있는 피 웅덩이 대부분의 근원지일 형의 머리를 꿇은 내 허벅지 위에 올렸다. 그러는 틈에 내 손에도 잔뜩 묻어버린 형의 피가 오히려 형의 볼에 붉은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가만히 눈을 감은 형의 눈꺼풀 위를 몇 번이고 덧그렸다. 형, 일어나 봐요…. 성화 형의 머리를 품에 끌어안고 고개를 떨어트렸다. 내 눈물이 형의 얼굴 위로 떨어져 지나는 자리의 핏자국이 옅어지는 게 보였다. 끌어안은 형의 몸이 아직 따뜻했다. 그래서 더더욱 믿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따뜻한데, 죽긴 뭘 죽어……. 아니잖아요, 형. 이렇게 따뜻한데, 죽은 거 아니잖아요. 이제 일어나요. 사실 알고 있었다. 애써 부정하고 있었을 뿐이지 한편으로는 피가 이렇게나 많이 났는데 살아있는 건 기적을 넘어선 불가능이라고. 인정하기 싫었을 뿐이었다.




2.




삐- 삐- 삐-




어, 일어날 시간. 나는 귀를 찌르는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방금 일어나 아직 흐린 시야에 미간을 좁히고 있었는데, 문득 내 뇌리를 스치는 장면이 있었다. 횡단보도 위에 무릎 꿇고 앉아 피에 절은 성화 형을 울며 끌어안고 있던 나. 꿈이라기엔 지나치게 생생했다. 아직도 내 손에 끈적하게 피가 묻어 있는 것만 같은 느낌에 괜히 머리를 한 번 털었다. 아, 오늘 성화 형 만나는 날인데 기분 나쁘게. 불안한 예감을 떨쳐내고 욕실로 들어갔다. 자꾸만 꿈 생각이 찾아들어 씻는 것에만 집중했다. 약속 시간은 열 시였지만 삼십 분 만에 모든 준비를 마쳤다. 성화 형의 집까지는 걸어서 이십 분이 걸렸다. 빨리 걷는다면 십 분 정도.




[형 나 지금 형네 집 앞으로 갈게요] 09:32 1




성화 형에게 카톡을 보내 놓았다. 채팅방 맨 위에 찍힌 날짜는 이 월 일 일. 마지막으로 거울을 보며 매무새를 정리한 후 집을 나섰다.




거의 뛰다시피 걸어 성화 형의 집 앞에 도착했다.




“형. 저 도착했어요.”

 

“응, 금방 내려갈게.”




전화를 끊고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이내 현관 유리문을 밀며 나오는 성화 형이 보였다. 걱정도 잠시, 형이 오늘 입은 옷이 내가 제일 좋아한다 했던 그 옷이라 나는 그저 함박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윤호야. 두리번거리던 형이 나를 발견하곤 곧장 내게 다가와 안겼다.




“영화관 앞에서 만나자니까 왜 여기까지 왔어.”




추웠을 텐데. 나는 꿈 얘기를 말하지 않기로 했다. 괜히 좋은 날에 그런 불길한 소리를 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냥요, 형 더 빨리 보고 싶어서. 성화 형의 허리를 꼭 끌어안았다 놔주며 자연스레 손을 잡았다. 이제 영화 보러 갈까요? 좋아. 사실, 억지로 밀어둔 것뿐이지 절대 불안한 그 마음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 예감을 무시하면 안 됐는데. 나는 꿈속에서의 나와 똑같이 허망하게 성화 형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횡단보도 앞에 나란히 서서 오늘 볼 영화에 대해 얘기하고 있던 성화 형은 누군가에게 밀쳐진 것처럼 횡단보도로 떠밀렸다.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 잡아당기려던 성화 형의 손은 순식간에 내 시야 밖으로 사라졌다. 꿈에서 봤던 그 트럭이었다. 갑작스레 일어난 사고에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환청처럼 느껴졌다. 발걸음이 나도 모르는 새 성화 형을 향했다. 형의 손을 잡았다. 아직 피가 도는 사람의 그것처럼 따뜻했다. 누군가가 앰뷸런스를 부르는지 멍한 정신에 사람이 차에 치였어요, 라는 외침이 귀를 스쳤다. 형, 형…? 울컥 차오르는 눈물에 눈을 깜빡이지도 못했다. 또 문득, 눈앞에 한 장면이 겹쳐 보였다. 바라보고 있는 방향은 달랐지만 똑같이 피 웅덩이에 누워 있는 성화와 그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울고 있는 나. 머리가 아파왔다. 누군가 내 어깨를 치며 아는 사람이냐고 물었다. 대답할 정신도 없이 너무 많은 자극이 내 머릿속을 뚫고 지나갔다. 꿈이 아니었다. 그 와중에도 이 생각만은 똑똑히 들었다. 꿈이 아니다. 하지만 이 이상으로 생각이 진행되지는 못했다. 때맞춰 들려오는 앰뷸런스의 사이렌 소리가 귀를 찢을 듯이 울렸다. 그러고는, 암전이었다.




3.




삐- 삐- 삐-




헉! 알람이 채 세 번을 다 울리기도 전에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쉬며 몸을 일으켰다. 다시금 내 방 내 침대 위였다. 머리맡에 놓인 휴대폰을 집어 들어 홀드 버튼을 눌렀다. 켜진 화면에 보이는 날짜는 이 월 일 일을 나타내고 있었다. 몇 번이나 반복되는 토요일, 몇 번이나 죽는 성화 형. 같은 장면을 끝으로 자꾸만 같은 시간으로 돌아가는 게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반사적으로 드는 생각은 성화 형을 살려야 한다, 였다. 그냥. 이유는 없었다. 이 무한한 시간의 반복을 인지한 사람이 나밖에 없는 것이라면 이걸 풀 수 있는 사람도 나밖에 없을 거라고. 아직 두 번뿐인 반복임에도 나는 성화 형이 어떻게 죽는지를 눈치 챘다. 영화관 앞 횡단보도, 열 시 직전, 큰 트럭. 어떻게 된 건지 알아냈으니 막연히 막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4.




결론만 말하자면, 실패했다. 달리는 트럭에 몸을 던져보기도 했고, 성화 형의 손을 잡고 같이 걷기도 했고, 성화 형을 칠 것 같은 트럭이 모두 지나가고 나서 걸어보기도 했고. 하지만 그 중 성공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내 노력이 무색하게도 끝은 항상 성화 형의 죽음이었다. 한 번만, 한 번만, 되뇌며 끝없는 시간의 반복 속에 갇혀 성화 형을 구해내려 시도한 게 몇 번째인지, 횟수를 세는 것을 그만두고도 나는 계속 같은 시간만을 살아내고 있었다.




삐- 삐- 삐-




또 알람이 울렸다. 하지만 이젠 알람 없이도 그 시간에 눈이 떠질 만큼 셀 수 없이 반복해온 나는 몸에 배인 것처럼 의식하지 않은 채 알람을 끄고 일어섰다. 양치를 하고,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고, 물기를 닦고 나와 옷을 입고. 일련의 과정들이 의무적으로 행하는 것인 마냥 껄끄러웠다. 기분 진짜 별로네. 괜히 밀려오는 짜증에 한숨이 나도 모르게 푹푹 튀어나왔다.




[형 그냥 제가 형네 집 앞으로 갈게요] 09:32 1

[제가 전화하면 나와요] 09:32 1




허리를 숙여 신발을 꿰어 신고 밖으로 나왔다. 느리게 발걸음을 옮기는 내 머릿속이 복잡했다. 아무리 정해진 결과를 바꿀 수 없다고 해도 똑같은 장면만을 반복해서 보는 것은 감정소모가 심한 일이었다. 정신없이 걷다 보니 어느새 성화 형의 집 앞이었다.




“형. 저 도착했어요.”

 

“응, 금방 내려갈게.”




조금 더 기다리니 환히 웃으며 뛰어내려오는 성화 형이 보였다. 휴대폰을 넣느라 주머니에 들어가 있던 손을 빼 한 품에 형을 안았다. 왔어요, 형? 응. 추운데 왜 왔어, 그냥 영화관 앞에서 보자니까. 형 빨리 보고 싶어서 그랬죠. 되도 않는 애교도 좀 부려봤다. 눈꼬리 접어 웃은 형이 내 팔에 팔짱을 꼈다. 가자, 윤호야. 손끝으로 더듬어 형의 손가락 사이사이로 내 손가락을 얽었다. 꼭 쥐기까지 한 후 내 코트 주머니로 이끌었다. 손 시리죠, 형. 응? 아냐, 괜찮아. 빨리 가자, 늦겠다. 슬슬 손에 땀이 찰만도 했는데 끝까지 놓지 않는 것은 형도, 나도 마찬가지였다. 오늘 볼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걷다 보니 어느새 문제의 그 횡단보도 앞이었다. 나도 모르게 긴장해 몸에 힘이 들어간 게 느껴졌다. 형을 잡은 손에도 힘이 더 실렸는지 고개를 돌려 날 올려다보는 성화 형의 시선이 내 옆얼굴에 박혔다. 시선을 내려 그 눈을 마주보자니, 왜 이렇게 손을 꽉 잡냐며 웃어오는 얼굴이 보였다. 아니에요, 그냥, 좋아서. 애써 불안한 마음을 감추고 나도 마주 웃어주었다. 뭐야아. 간질간질하게 닿아오는 목소리 하나하나가 다 좋아서,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이제는 형이 죽는 모습을 그만 보고 싶었다. 윤호야, 신호등 초록 불이야. 건너자. 고개를 끄덕이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사람들 틈에 섞여 횡단보도의 흰색 선만을 밟으며 걸어가던 중 순간 클랙슨이 들려왔다. 소리의 근원이 트럭일 것이라 보지 않아도 알아챈 나는 트럭에 치이기 직전에 성화 형을 길가로 밀쳤다. 윤호야! 귓가로 날카로운 외침이 꽂혀들었다. 그도 잠시, 온몸을 관통하는 듯한 고통에 절로 입에서 단말마의 신음이 튀어나왔다. 다음 순간 나는 도로 한복판에 누워 있었다. 몸 어딘가에서 피가 빠져나가는 느낌이 생경했다. 윤호야! 나를 부르는 성화 형의 목소리와 거의 동시에 겨우 뜨고 있는 눈에 비치는 형의 얼굴이 보였다. 그 뒤로는. 암전이었다.




5.




1.




삐- 삐- 삐-




평소에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던 알람이 왜 이렇게 거슬리는지, 홀드 버튼을 눌러 알람을 끄고 몸을 일으켰다. 깍지를 껴 머리 위로 크게 기지개를 켜자니 아까 전의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트럭에 치여 저 멀리 날아간 윤호와 다급하게 뛰어간 나. 무릎을 모아 끌어안았다. 또 실패했네. 알람을 끄고 엎어두었던 휴대폰 알림이 울렸다.




[형] 09:00

[저 지금 일어났어요] 09:00

[좀 이따 봐요!] 09:00




무기력하게 앉아만 있을 때가 아니었다. 윤호를 살리려면, 뭐라도 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