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옥상에는 히어로가 산다. 구라가 아니고 진짜다. 정윤호 17년 인생 다 걸고 증명할 수 있다. 긴 인생은 아니지만 전부 걸 수 있다. 영웅의 방에는 번쩍이는 금색 트로피가 가득하다. 대충 제27회 순천만 국가 정원 컵 전국유도대회 1등 상, 서울 특별시장 배 청소년 부 금상 같은 나와는 거리가 먼 것들이 잔뜩 쓰여 있다. 그뿐만 아니라 게임도 무지하게 잘했다. 수십여 번을 들여다봤지만 게임하는 티는 딱히 나지 않았는데 매번 나를 이기는 게 신기했다. 어쩌다 한 번 이기는 날이면 그는 엎어치기-평소에 하지 않았다. 애걸복걸 보여달라 애원하면 한 번 보여줬다. 당하는 상대는 당연히 나였다- 를 보여주었는데 그어지는 포물선은 퍽이나 완벽해 아팠음에도 해달라 늘 졸라댔다.
17살, 갓 중학교 졸업한 나한테는 뭐든지 잘하는, 옥탑방 사는 스무 살 박성화가 영웅 같아 보였다.
방구석 로맨스
단비
"형, 엄마가 이거 드시래요!"
윤호의 어머니는 반찬을 할 때마다 성화에게 나눠주곤 했다. 혼자 사는 애가 뭣도 못 먹고 살 거 아니야. 그러니까 나누고 살아야지. 처음에 윤호는 동의하지 않았으나 성화를 본 뒤로 생각을 달리하게 되었다.
그가 성화를 처음 본 건 이 주 전이었다. 빈 옥탑방에 성화가 세 들어온 지 좀 되었지만 좀처럼 마주하지 못했다. 윤호는 야자는 당연히 째 주는 고등학생이었던 반면에 성화는 늦은 밤에 집에서 출근하는 사회인이었기 때문이다. 처음 마주한 계기는 우습게도 윤호의 꾀병이었다. 학교가 가기 싫었던 고등학생은 어머니께 머리가 아프다는 핑계를 대었다. 윤호야, 옥탑방 총각한테 죽 부탁해놨으니까 얻어먹어. 여우 피하려다 호랑이 만난 격이었다. 어색함에 무시하려 했으나 그럼 윗집 사람이 곤란해질 것이 두려워 올라가기로 결심했다. 가파른 계단에 녹슨 쇠 난간을 잡고 오르자 초록빛 페인트가 칠해진 옥상이 보인다. 어릴 적 자주 놀던 곳이다. 그리고 거기에선,
옥탑방 형이 운동을 하고 있었다. 혼자서 스쿼트도 하고 윗몸일으키기도 하고 근력운동이란 운동은 다했다. 늘어난 러닝에 세 줄 바지 걸치고 있었는데 뭔지 모를 아우라가 느껴졌다. 미형의 얼굴 흘러 나는 땀방울이 반짝였다. 가슴팍도 중간중간 엿보였다. 땀방울은 그 사이를 흐르며.. 그만, 거기까지. 윤호는 사고의 흐름을 애써 정지시킨다. 민망함에 온 낌새를 나름 여러 번 냈으나- 나름 발소리도 내고 계단도 오르락내리락거렸다. - 불행히도 알아채지 못한 듯했다. 성화가 잠시 숨을 돌리려 바닥에 털썩 주저앉을 때야 말을 건넬 수 있었다.
" 죽... 엄마가 얻어먹으라고 해서.."
"아. 맞다. 들어와"
멋쩍은 듯 웃어 보이며 내뱉는 한마디에 윤호는 성화의 방에 첫 발자국을 내딛을 수 있었다. 방이 좀 더러운데 괜찮아? 윤호는 고개를 돌려 방을 구경했지만 먼지 하나라곤 보이지 않았다. 책이 열 맞춰 정렬돼있었고 왠지는 모르겠지만 트로피도 오질라게 많았다. 이게 더러운 거면 자기 방은 돼지우리가 틀림 없다. 앉은뱅이 책상 앞에 앉자 성화가 죽을 내왔다. 아무것도 안 든 흰 죽이었다.
"윤호 맞지? 사모님한테 이야기 많이 들었어."
"네."
이어진 적막에 윤호가 먼저 말을 붙인다. 원체 어색한 걸 못 견뎌하는 성격이기도 했으며 처음 본 형, 아까 운동하는 것이 굉장히 멋있었다. 그것도 그랬고 흰 죽은 맛없다. 솔직히 먹기 싫었다.
" 형, 근데 운동하셨어요?"
"옛날에, 조금."
윤호가 무슨 운동을 했냐 캐묻자 성화는 유도라 답했다. 저 트로피도 다 유도하다 딴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윤호는 조금 존경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원래 사춘기 소년 마음 한편에 무술 하나쯤은 품고 있기 마련이다. 짱 세져서 악당들을 물리치고 돈과 명예와 미인을 쟁취하는 삶. 또래보다 어른스럽긴 했으나 윤호 역시 고작 열일곱 소년일 뿐이다. 형 멋지다. 진심 섞인 감탄사를 내뱉자 성화는 부정하며 곱게 웃어 보인다. 이런저런 대화가 오가는 중 성화는 줄어들지 않은 윤호의 밥그릇을 보았다.
"라면 먹고 갈래?"
물론 사모님한테는 비밀로.
성화의 말에 윤호는 열렬히 고개를 끄덕인다. 갑자기 집에서 시작된 인스턴트 박멸 운동에 한 달 쯤은 라면 코빼기도 못 본 것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붉어진 귀를 감추기 위함이 컸다. 분명 같은 거 달린 남자인데 뭔가 다른 뉘앙스로 들렸다. 약간 오묘하고 간질거리는, 더 무겁고 처음 느껴보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흔히들 나오는 대사인데 직접 들으니 묘해서 그런 거라 생각하기로 했다. 슬쩍 보이는 장난스런 미소에 고개를 더 깊이 숙였다.
성화는 창문을 열고 버너를 켜 누런 양은 냄비에 라면을 끓인다. 빨간 신라면 봉지를 뜯고, 수프를 넣고 물을 올린다. 일련의 동작을 윤호는 멍하니 바라본다. 뭘 그렇게 봐. 성화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하는 말에 그제야 시선을 돌리고는 큼큼거린다. 나도 네 나이 때 아플 때 죽 먹는 거 진짜 싫었어. 맛도 없는데 그렇지? 나이 차이는 세 살인데 당하는 애 취급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되려 좋았다. 호호 불어가며 라면을 먹는 동안, 다니는 학교나 나이 같은 매가리 없는 대화가 몇 번 오갔다. 다 먹었을 때쯤이야 윤호는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었다.
“다음에.. 또 와도 돼요?”
“응. 너 맘대로 와. “
성화가 활짝 웃어 보인다. 서울에 상경한 지 얼마 안돼 심심했는데 귀여운 동생이 하나 생긴 느낌이었다. 윤호는 그 얼굴에 고개를 처박고 다시 라면을 열심히 먹었다. 곱게 휘어지는 눈매, 고르게 빛나는 하얀 치열, 엺게 패이는 볼우물은 열일곱 소년의 마음을 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윤호는 종종 성화의 옥탑방에 올라갔다. 엄마의 잔소리를 피하기도 좋았으며, 그곳은 어른의 세계처럼 느껴졌다. 윤호가 오면 급하게 꺼지는 담배도 좋았고 남은 잔향도 좋았다. 담배와 향수가 오묘히 섞인 냄새가 났는데 형 냄새랑 똑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또한 거기엔 라디오와 카세트테이프가 있었는데, 마치 한 세기 전 유물처럼 느껴져서 종종 틀어보곤 했다. 지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흘러나오는 여가수의 목소리가 편안하다. 더 좋은 건 같이 들리는 낮은 허밍 소리였다. 성화의 목소리는 낮지만 무겁지는 않아 듣기 좋았다. 가만히 쿠션에 기댄다. 편안히 자리잡은 윤호의 귀에 조용히 흥얼거리는 가락이 내려 앉는다.
"이거 무슨 뜻인지 알아요?"
"아니. 그냥 들리니까 부르는 거지."
성화가 다시 한번 후렴구를 반복한다. 열일곱 패기 넘치는 윤호는 밑에 내려가면 컴퓨터로 꼭 찾아봐야겠다고 다짐했다. 오늘은 짜장면 시켜줄까? 나 돈 벌었다. 윤호가 좋아요 활기차게 답하자 성화는 중국집에 전화를 건다. 평소와 다른 점은 탕수육 소자도 추가 된 거다. 윤호의 귓가는 그새 또 발갛게 달아오른다. 누르면 터질 벨 같았다. 세 살이나 많은데 돈 벌었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건 또 뭐냐고. 진짜 귀엽다. 윤호는 속으로 어머니께 깊은 사죄를 드리기 시작했다.
엄마 미안해. 정 씨 집안 대 끊겼어.
성화는 주로 밤에 나갔다. 집에서 윤호랑 노닥거릴 때랑은 다르게 정장도 차려 입고 멋지게 향수도 두 번 칙칙 뿌리고. 윤호가 이걸 본 횟수는 딱 한 번이다. 우연히 야자 일찍 끝난 날에 봤었다. 형 좀 달라 보여요. 솔직한 감상에 성화는 민망한 듯 머뭇거린다. 일찍 들어가. 가서 공부해. 이 말만 남기고 재빨리 도망갔다. 신데렐라도 놀랄 속도였다.
가는 방향이 어째서 동네에서 제일 질이 나쁘다는 유흥가인지는 알 수 없었다. 윤호는 제자리에 서서 성화의 뒷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어쩌면 형도 일반 사람 같을지도 몰라. 처음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한 달간 둘이 제대로 마주하는 일은 없었다. 윤호가 성화의 자취방에 찾아가면 굳건히 닫힌 문이 있었고, 문 안에는 아무런 인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어쩌다 문이 열리는 날이면 성화가 일이 있다며 자리를 피했다. 성화가 윤호를 일방적으로 피했다. 그것이 꼭 제 가설, 성화 형이 질 나쁜 곳에서 일한다는, 을 증명해주는 것 같았다. 그렇게 겨울이 갔다.
떨어져 있는 동안 윤호는 뜻하지 않은 유흥거리를 찾았다. 인터넷에 박성화 세 글자를 쳐본 것이다. 유도 선수라고 했었으니까 영상이 있을지도 몰랐다. 그렇게라도 얼굴이 보고 싶었다. 원래 치기 어린 첫 사랑은 치열하고 치졸한 법이다.
다행히 대련 영상이 있었다. 흐릿한 화질에다가 잔뜩 흔들렸지만 윤호는 날마다 반복해 봤다. 상대를 매섭게 몰아붙이고 공중에서 넘어트리는 그는 윤호가 알던 성화가 아닌 것만 같았다. 걸을 때면 다리 한 쪽을 약간 느리게 떼는 형이 아닌 것 같았다. 바람처럼 잽싸고 날렵했다. 그게 멋져서 돌리고 또 돌려봤다. 학교에 가서도 그 생각뿐이었다. 방 구석에서, 얼굴은 못 보는 동안 마음은 농도를 더하기만 했다. 18년도부터 경기 영상이 뜨지 않아 네이버를 뒤진 결과 청소년 국가대표 박성화, 발목 부상으로 돌연 은퇴라는 타이틀을 가진 기사 서너 개를 보았다. 마음이 하늘에서 땅까지 쿵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가끔 보여달라 졸랐을 때 그의 마음이 어땠는지 상상이 안 갔다. 사과하러 가야지. 열 여덟 첫 결심이다. 얼굴 볼 핑계거리를 드디어 찾은 것 같았다.
쾅쾅-.
윤호는 한 달 여만에 계단을 오르고 낡아빠진 문을 두드린다. 담벽 위에는 눈이 하얀 자태 뽐내며 보송보송 쌓여있다.한참을 두드려도 나오지 않자 윤호는 문을 한 번 밀어보았다.잠금이 풀려있었는지 힘없게 밀린다.
작은 방에는 끙끙거리는 밭은 호흡소리가 가득했다. 바닥에 깐 요에 혼자 누워 몸을 웅크리고 있는 청년에 정윤호의 눈이 돌아갈 것 같았다. 드라마에서 본대로 수건을 빨아 그의 이마에 얹어주고 웬일로 어질러진 방을 청소하고 주방에 흰 죽도 끓여놨다. 인터넷에 검색해 겨우 끓인 죽이었다. 사과하라고 왔던 의도는 잊힌 지 오래였다. 대놓고 피하는 성화인데 더 불편해 할거 같았다. 환자를 위해 발걸음을 떼려는 찰나, 실낱같은 목소리가 귓가에 속삭인다
윤호야. 형 아파. 가지마 윤호야....
계속 어린애 엄마 찾듯 들려오는 음성에 윤호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인생 가장 많이 들어온 두 글자가 머리를 어지럽히기 시작한다. 한 달만에 마주하는 꼴이 이런거라니. 성화는 열에 어지러운지 색색거리면서도 알 듯 모를 듯한 소리를 내뱉었다. 형이 술집에서 일해도 몸은 안 팔아. 그러니까 나 안 더러워. 안 더럽다고... 이어지는 말에 윤호는 누군지는 몰라도 말을 내뱉은 새끼의 모가지를 비틀어버리고 싶었다.
성화가 다음 날 아침 눈을 뜰 때까지 윤호는 옆에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조는 윤호를 성화가 발견했다. 그래도 물수건은 미지근하게 잠든 지 얼마 안 된 것 같았다. 너밖에 없다. 윤호야. 가족도 없고 가오도 없는 성화의 삶에 유일하게 참견하는 사람이다. 손가락 사이 사이로 윤호의 고운 모발이 엉켜왔다.
서빙만 하면 된다던 사장이 룸으로 성화를 들여보내려 하자 그는 급하게 도망쳐 나왔다. 비가 오는 날이었다. 며칠 째 힘든 몸과 환장할 정신의 콜라보였는지 몸이 으슬으슬하더니 곧 눈 앞이 어지럽기 시작했다. 혼자 아픈 것이 너무나 서럽던 찰나에 온 윤호가 고맙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실 온 적에 얼굴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으나 가족도 없는 저에게 찾아 올 사람이라고는 윤호밖에 없었다.
깨어난 윤호는 어리바리하게 주변을 살펴보다가 쥐 기어가는 소리로 미안해요 한마디 하고 재빨리 방을 나갔다. 왜 그러는지 성화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 뒤로 일주일은 윤호가 성화를 피했다.
*
"좋아해요."
첫눈 내리는 날 대뜸 나타나 윤호가 전한 말이다. 진한 감정이 음절마다 묻어났다. 생각지도 못한 고백에 성화의 동공이 이리저리 흔들린다. 윤호는 손을 가만히 두지 못하고 꼼지락 된다. 성화는 한참 할 말을 찾다 떨리는 목소리로 차근차근 진심을 내뱉는다.
"나 네가 생각하는 만큼 멋진 사람이 유도는 발목 부러져서 그만뒀고, 남자 좋아하는 거 들켜서 집에서 쫓겨났고, 음... 담배도 피우고 또 배운 것도 없어서 술집일이나 하고 있고.."
그래도 다시 돈 벌면 꽃집 할 거야. 구구절절한 자기 고백은 결국 희망으로 마무리 지어진다. 그때 찾아와. 내가 너한테 떳떳해지면. 이 말에 윤호의 심장이 다시 한번 덜커덩거리기 시작한다.
유도를 못하면 어떠랴. 남자를 좋아하면 어떠냐.(어차피 자기도 좋아하는데 별 상관없는 것 같았다.) 돈이 없든 뭘 하던 다시 한번 일어설 줄 아는 보잘것없는, 나만의 히어로인데. 윤호의 큰 손이 성화의 가는 목덜미를 휘잡는다. 손가락 사이사이로 가는 모발이 엉켜 들고 춥춥대는 민망한 소리가 빈 옥상을 가득 채운다. 성화의 내리감은 긴 속눈썹 위로 햇살 한 조각이 내린다.
긴 짝사랑의 첫 번째 성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