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서로를 포기해야만 했다. 어쩌면 그때 우리의 우정은 우정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어릴 적 우리는 사랑을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했다. 종종 우리의 주변 사람들은 우리에게 물었다.
“너 정윤호랑 사귀냐?”, “너 박성화 선배랑 사귀냐?”
이런 부질없는 말을 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마치 짠 것처럼 말했다.
그냥 나는 형, 동생이라고. 그냥 친구라고. 변명 후에는 같은 얘기를 했다. 마치 그것마저 서로 짠 것처럼.
나는 좋아해.
걔는,
그 형은,
모르겠지만 나는 좋아해.
우리의 대답에 질문하던 사람들은 사귀라고 우리를 부추겼다. 어쩌면 우리는 같은 생각을 했었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정말 좋을 텐데...’ 같은 그런 부질없는 생각들 말이다.
-
성화와 윤호는 일명 불알친구였다. 부모님이 처음에 배가 잔뜩 불어 오른 상태로 이사를 왔다고 했다. 그때부터였다. 두 가족의 첫 만남이었다. 성화가 돌잔치를 할 때 윤호가 옆에서 응애했다. 성화가 노란빛의 유치원 가방이 아닌 파란색 책가방을 메고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는 윤호가 엄마 손을 붙잡고 자신도 학교에 가겠다고 찡찡댔다. 그럴 때마다 성화는 윤호의 어깨를 잡고 말했다.
우리 멋진 윤호가 안 울고 유치원 다녀오면 형아가 오늘 놀아줄게. 알았지?
성화의 한 마디에 윤호는 눈물을 쓱쓱 닦고 고개를 끄덕였다. 성화의 형은 지각하겠다며 성화의 손을 잡고 뛰었다. 성화가 아파트를 나가자 윤호가 유치원 빨리 가고 싶다고 엄마한테 매달렸다. 학교가 끝난 성화가 윤호가 오기까지 그네에 앉아서 기다렸다. 끼익끼익 소리를 내며 그네가 움직였다.
형아!
윤호였다. 성화가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윤호는 성화의 품에 꼭 안겼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지내왔다. 윤호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날 성화는 꽃다발을 들고 윤호의 입학식을 바라보았다. 체육관 2층 난간에 기대어 윤호를 찾았다. 이모. 윤호 어딨어요? 성화가 저깄다! 하면서 윤호를 찾고 싱글벙글 웃었다. 성화가 졸업할 때는 윤호가 울었다.
“야 니가 왜 울어...”
“형 이제 못 보잖아요.”
“나 죽는 것도 아닌데. 그리고 보고 싶으면 나 찾아와.”
이 이후로 윤호는 시도 때도 없이 성화를 찾았다. 전에는 아무렇지도 않던 것들이 윤호가 고등학교에 올라오면서부터 달라졌다. 전에는 목욕탕 가서 고추만 달랑 내놓고 씻어도 아무렇지도 않던 게 지금은 달랐다. 하루는 성화가 밤 11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에 윤호의 집 문을 두드렸다. 윤호가 반바지 차림으로 문을 열었다. 윤호의 눈에서 빛이 났다. 성화는 인사만 하고 윤호의 방으로 들어갔다. 윤호의 부모님은 가족인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성화를 받아들였다. 성화가 윤호의 침대에 누워서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달았다. 윤호가 성화를 앉혀놓고 왜 우냐며 윤호가 성화를 달랬다.
“싸웠어. 엄마랑 그래서 나 오늘 하루만 재워줘라.”
성화를 달랜 윤호가 성화를 눕히고 그 옆에 누웠다. 좁아터질 것 같은 크기의 싱글침대였지만 윤호는 내려갈 생각을 안 했다. 성화가 내려가서 자겠다고 말하자 윤호는 안된다며 성화를 껴안았다. 성화의 심장이 쿵쿵쿵 뛰었다. 성화가 몸을 뒤척였다. 성화가 뒤척이면 뒤척일수록 윤호는 성화를 더 세게 안았다. 성화가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윤호의 발등을 쓰다듬었다.
너는 어째서 계속 커지냐... 나보다 훨씬 커지겠다.
성화가 자는 윤호의 귀에 말했다. 밝게 빛나는 스탠드의 불빛이 성화를 잠에 들지 못하게 방해했다. 여전하네. 잘 때 스탠드 켜고 자는 거. 성화가 한 쪽 팔을 빼내어 윤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성화가 윤호의 숨소리가 성화를 잠에 들 수 있도록 도왔다. 성화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 윤호는 침을 줄줄 흘리며 잠을 자고 있었다. 방문 밖에서 들리는 시끄러운 티비소리와 웃음소리에 성화는 밖으로 나왔다. 윤호의 어머니가 성화를 바라보며 엄마랑 싸웠다며? 하며 웃었다. 성화가 머쓱하게 웃었다.
“죄송해요, 제가 갑자기 찾아와서 자기까지 해서...”
성화가 말끝을 흐렸다. 그러자 윤호의 어머니는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가 하루 이틀 만난 사이도 아니고 괜찮아.”
성화가 화장실에서 세수했다. 찬물이 성화의 잠을 달아나게 만들었다. 성화가 윤호의 위로 올라가 누웠다. 정윤호오 하며 윤호의 목에 얼굴을 묻었다. 윤호의 숨소리가 들렸다. 윤호가 성화의 엉덩이에 손을 올렸다. 성화가 화들짝 놀라며 윤호에게 소리쳤다.
“야. 정윤호 너 자는 거 아니지!”
윤호가 들켰다며 헤실헤실 웃어댔다. 성화가 윤호의 볼살을 잡고 말했다.
“너 이러니까 애들이 좋다고 따라다니지.”
윤호가 놀란 강아지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성화가 됐다. 말을 말자.라며 윤호를 한심하게 바라봤다. 성화가 윤호한테 고맙다며 슬리퍼를 직직 끌며 집으로 갔다. 집에 가자마자 성화가 죄송하다고 말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윤호에게 전화가 왔다.
“너는 방금 보고서 왜 또.”
-형. 내 슬리퍼 바꿔신고 갔잖아.
성화가 신발장에 있는 슬리퍼를 바라봤다. 슬리퍼 안쪽에 까만 매직으로 정윤호라는 이름이 떡하니 쓰여있었다. 성화가 슬리퍼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윤호가 성화의 슬리퍼를 신고 나왔다. 윤호가 슬리퍼를 벗어 성화에게 줬다. 성화가 슬리퍼를 바꾸고 빠르게 집으로 들어왔다. 성화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심장아 진정해. 성화가 심장을 부여잡았다. 성화의 형이 성화의 방으로 들어왔다. 성화한테 데이트룩 좀 봐달라며 옷을 여러 벌 들고 왔다. 성화가 자신의 옷장에서 흰 티와 재킷 그리고 슬랙스를 쥐여주며 나가라는 손짓을 했다. 성화의 형이 나가려고 하자 성화가 형을 불렀다.
“사랑이 뭐야?”
“음…. 그냥 보면 가슴이 몽글몽글해지는 거 아닐까?”
“그럼 이것도 사랑이야?”
성화가 최근에 윤호에게 느낀 감정을 설명했다. 이게 심장이 빨리 뛰고 자꾸만 생각나고 머리는 노를 외치는데 가슴은 예스를 말하는 이게 무슨 감정이야? 막 그 사람 웃으면 나도 행복하고 막 그래. 이게 뭘까? 성화가 쉴 틈 없이 말했다. 성화의 형은 사랑이겠지. 하며 방을 나가며 소리쳤다. 엄마! 박성화 좋아하는 사람 생겼대! 성화가 밖으로 소리쳤다. 아니라고! 성화가 의자에 앉아 골똘히 생각했다. 책상 한쪽에 있는 강아지 모양 인형을 봤다. 윤호가 성화한테 주겠다며 인형 뽑기에서 뽑은 인형이었다. 성화가 턱을 괴고 인형을 바라봤다.
나 걔랑 볼 꼴, 못 볼 꼴 다 본 사이인데...
성화가 단어장을 펴 단어를 봤다. 모든 단어들이 춤을 췄다. 단어들이 제멋대로 조합되었다. 성화의 머릿속처럼 뒤죽박죽이었다. 성화가 머리를 헝클었다.
-
윤호가 보고 싶을 때 찾아오라던 성화의 말에 지금 나오라고 해도 되나 마나를 고민했다. 평소에는 안 만나는 것도 아니지만 밤 12시가 되기 전에는 특히 더 보고 싶었다. 똑똑똑 하고 소리를 내는 문에 윤호의 심장도 톡톡톡 뛰었다. 문을 열자 보이는 성화의 눈가에는 눈물 자국이 있었다. 성화가 윤호를 지나쳐 윤호의 방으로 쏙 들어갔다. 윤호의 어머니가 윤호를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윤호가 성화를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는 성화가 눈꼬리에 눈물을 매달고 훌쩍거리고 있었다. 윤호가 그런 성화를 앉혀 성화를 달랬다. 성화의 몸에서 향기가 났다. 성화의 피부 깊숙이에서부터 나는 향기는 어릴 때나 지금이나 여전했다. 윤호가 성화의 몸 위로 다리를 둘렀다. 친구 같은 형이라는 이유로 윤호가 가라앉혔던 감정이 다시 밀려왔다. 윤호가 성화가 움직일 때마다 더 세게 끌어안았다. 형이 알아주기를 바라며 윤호가 성화를 더 끌어안았다. 잠에서 깨어난 성화가 윤호를 깨우고는 슬리퍼를 직직 끌고 갔다. 신발장에 보이는 슬리퍼에는 별이 그려져 있었다. 윤호가 성화에게 전화해 성화와 슬리퍼를 바꿨다. 윤호가 집에 들어와서 베개에 얼굴을 박았다. 창가에 앉아있는 토끼 모양 인형에 괜히 짜증을 냈다. 무해한 표정을 하고 앉아있는 토끼 인형이 미웠다.
“박성화는 바보야. 내가 좋아하는 걸 알면서 모르는 척 하나 봐.”
토끼 인형이 멀뚱멀뚱 앉아있는 게 괜히 자신을 놀리는 것만 같았다.
“근데 형은 내 친구잖아. 내가 착각하는 거겠지?”
윤호의 생일이었다. 그날은 윤호가 성화의 침대에 누웠다. 어릴 때와 다를 게 없었다. 딱 두 개만 빼고. 나이랑 감정이었다. 어릴 때는 재밌어서 함께했는데 지금은 아니었다. 좋아서. 서로를 포기해야만 했다. 성화가 커다란 앨범을 가져와 윤호의 다리 위에 올렸다. 앨범 첫 장에는 배냇저고리를 벗지도 못한 윤호 옆에 성화가 기저귀를 차고 누워있는 사진이었다. 성화가 웃었다.
“야 너도 쪼만할 때가 있었어. 완전 신기해.”
“형도 쪼만하잖아요.”
성화가 다른 페이지를 폈다. 성화가 윤호의 볼에 뽀뽀하는 사진이었다. 윤호의 눈이 땡그래졌다. 윤호가 옆에 있던 휴대폰을 들어 사진을 찍었다. 프사해야겠다. 하며 윤호가 카카오톡 프로필을 바꿨다. 윤호가 성화를 바라봤다.
“형 우리 이거 똑같이 따라 하자.”
“어?”
“이때처럼 뽀뽀해줘. 응?”
“아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마.”
성화가 다음 장으로 넘겼다. 윤호가 성화의 얼굴을 돌렸다. 성화의 볼을 잡고 성화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성화가 뻥진 얼굴로 윤호를 바라봤다. 성화가 윤호의 어깨를 밀어냈다. 어릴 때는 살짝만 힘줘도 넘어가던 윤호가 움직이지 않았다. 어느새 성화보다 키도, 몸도 더 커버린 윤호를 이제는 이길 수가 없었다. 몇 초간의 키스였지만 좋았다. 상상했던 키스보다 훨씬 더. 윤호는 성화한테 툴툴거렸다.
“내 첫 키스 상대가 형이라니.”
“어이없어. 니가 한 거잖아.”
“내 첫 키스 돌려내,”
성화가 옷을 끌어당겨 얼굴을 가렸다. 윤호가 옷을 잡아당겼다. 그리고는 윤호가 성화한테 매달렸다. 형. 볼 뽀뽀해달라니까? 하고 다가오는 윤호의 모습에 성화의 얼굴이 빨개졌다. 성화가 이불을 끌어당겨 얼굴을 가렸다. 윤호가 옆에서 계속 성화를 놀렸다.
“형. 설렜어요?”
“뭔 소리야. 아니거든?”
“형 나 좋아해?”
“뭐래. 니가…. 갑자기 그러니까... 아 몰라”
윤호가 앨범을 침대 끝으로 밀어냈다. 그리고 이불을 잡아끌고 머리에 뒤집어썼다. 성화의 얼굴이 보였다. 성화의 옆구리를 윤호가 간지럽혔다. 그리고는 성화에게 말했다.
“나 오늘 선물 없어요?”
“없어.”
성화가 말도 안 되는 장난을 쳤다. 성화가 항상 윤호의 생일에는 작은 사탕이라도 줬기에 윤호는 믿지 않았다. 성화가 진짜 없어.라고 말하며 서랍을 열어 연필을 찾았다. 엄지손가락만 한 몽당연필이었다.
“이거라도 줄까?”
“아 형 장난치지 말고.”
성화가 얼굴 밑으로 꽃받침을 했다. 그리고는 하는 말이 윤호를 웃게 만들었다.
“나?”
윤호가 성화를 잡아끌었다. 침대 위로 올라오게 손을 끌었다.
장난하지 말고.
장난 아닌데?
그러면 나 소원 들어줘요. 뽀뽀.
윤호가 침대 위에 누웠다. 그러자 성화가 윤호의 옆에 누웠다. 정말? 하며 성화가 다시 묻자 윤호는 성화의 손을 잡고 성화의 손에 입을 맞췄다. 그리고 한 쪽 손으로는 성화의 옷 안으로 손을 넣었다. 성화의 등을 손가락으로 살짝 꼬집었다. 성화가 몸을 뒤틀었다. 윤호가 해달라고 어린아이처럼 찡찡댔다. 성화가 윤호의 볼에 살짝 입 맞췄다. 윤호의 양 귀가 새빨개졌다. 성화가 윤호의 모습을 보고 웃었다.
“너 나 좋아해?”
성화의 갑작스러운 물음에 윤호는 그렇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좋아한다고 말하면 그들은 더는 지금처럼 지낼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윤호가 성화를 보고 웃었다. 성화가 잠이나 자자며 좁디좁은 침대를 파고들었다. 둘은 서로를 마주 보고 손을 잡은 상태로 잠들었다. 그들이 자는 모습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했다. 침대 끝 쪽에 있던 앨범의 사진에는 어릴 적 그들이 파란색 내복을 입고 서로를 바라보며 잠을 자고 있는 사진이 꽂혀있었다.
-
종종 그들은 어디에서든지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사랑이 넘쳐났다. 그럴 때마다 주변에서 묻는 말은 항상 같았다.
너 걔랑 혹은 그 선배랑 사귀는 거야?
이런 의미 없는 말이었다. 그럴 때마다 그들은 항상 말했다.
그냥 나는 형, 동생이라고. 그냥 친구라고.
그렇게 답하는 그들의 표정에서는 아쉬운 표정이 돌았다. 변명 후에는 같은 얘기를 했다. 마치 그것마저 서로 짠 것처럼.
나는 좋아해.
걔는,
그 형은,
모르겠지만 나는 좋아해.
좋아하는 사람을 놓치기 싫다는 이유로. 우정을 위함이라는 변명 같은 사실을 이유로. 그들은 사랑을 포기했다.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위장한 사랑이라서. 그때의 그들이 믿은 우정은 우정이 아니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