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기에 젖었구나
자존심

⚠️ 과격한 언행




정우영은 자존심이 세다. 주변인에게서 항상 듣는 말이었다. 정우영 자신 역시 인정하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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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영은 평범했다. 공부도 그럭저럭, 성격도 특별히 모난 데 없이 그럭저럭, 주변 관계도 특별히 골머리 썩는 것 없이 그럭저럭. 그런 정우영에게 있어 그럭저럭으로 수식할 수 없는 것이 자존심이었다. 애초에 자신이 사과를 해야 할 상황을 잘 만들지 않았지만 설사 그럴 일이 생긴다 해도 절대 먼저 굽히고 들어가는 성격이 아니었다. 절대로. 이런 성격 때문에 문제를 빚은 것도 여러 번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정우영을 아는 주변인들은 절대로 정우영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짓을 하지 않았다. 그랬다간 어떤 일이 일어날지 직접적으로, 간접적으로라도 경험해보았기 때문에. 그렇게 자란 정우영이 선택한 길은 아이러니하게도 조직의 길이었다. 더하면 더했지, 절대 덜하지는 않은 그 약육강식의 세계로.




정우영은 조직에 몸담은 이후 자존심을 굽히는 법이라는 걸 배웠다. 물론 오래 가지는 못했지만. 나쁘지 않은 실력, 나쁘지 않은 실적, 나쁘지 않은, 오히려 좋은 쪽에 속하는 충성심 등등. 그렇게 정우영은 스물셋이 되던 해, 비교적 빠르게 꽤 높은 자리에 올라섰다. 그에 따라 슬금슬금 고개를 드는 정우영의 자존심은 자연스러운 것. 그때 나타난 것이 박성화였다. 어디서 굴러먹다 온 것인지도 모르는 예쁘장하게 생긴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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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화는 누구인가.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조직에 들어오겠다는 박성화를 데리고 직접 보스의 눈앞에 데려다 놓은 한 조직원도, 박성화의 바로 밑에서 일하는 따까리도, 정우영이 아는 사람 중 가장 정보력이 좋다는 한 해커도. 박성화를 받아들인 보스만이 알고 있을 터였다. 출신도 모르는 조직원이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단번에 높은 자리에 올라갔다. 이 한 문장으로 박성화를 시기하는 조직원이 많아지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한 쪽에서는 박성화가 보스에게 몸을 팔아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라는 소문도 돌았다. 보스는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하지만 너무도 건강해서 탈이다-, 노년에 가까운 중년이었다. 이러한 조직 내의 분위기에도 사실, 정우영은 박성화에게 딱히 적대감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박성화와 자신은 크게 마주칠 일이 없다고 판단한 정우영이 관심을 꺼버린 탓이었다. 박성화가 돈을 갖다 바쳤든, 사람을 죽여 바쳤든, 자신을 바쳤든. 정우영에겐 상관없는 일이었다. 위기감을 느낄 포인트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정우영을 아끼며 끼고 돌던 보스의 관심이 박성화에게 옮겨지는 것. 이 하나가 정우영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계기가 되었다. 중요한 거래 때문에 외국에 나가야 했던 보스가 항상 데려가던 정우영이 아닌 아무것도 아닌 고작 박성화를 데리고 갔다는 소문. 그제서야 정우영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소문들에 신경 쓰기 시작했다. 박성화가 보스에게 몸을 팔았다더라, 사실은 어디 집창촌에서 굴러먹다 온 남창이었는데 보스가 반해서 데려왔다더라. 그래서 박성화가 누군데? 정우영이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헤집었다. 박성화가 도대체 누군데 내 자리를 뺏으려 들어. 더군다나 박성화의 편에 붙는 조직원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소식은 정우영을 더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누구는 있는 자존심 없는 자존심 모조리 굽혀가며 힘들게 올라온 자리인데, 노력 하나 없이-적어도 정우영의 눈에는 그렇게 비쳤다- 똑같은 것을 이루려 해? 우습지도 않아. 정우영의 스위치가 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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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열어. 홧김에 박성화의 사무실 앞까지 찾아간 정우영이 문 앞을 지키고 있던 한 조직원에게 말했다. 지금은 어렵…, 문장은 완전히 끝맺어지지 못했다. 문 열라고! 사납게 소리 지른 정우영에 곧 문은 열렸다. 매섭게 치켜뜬 정우영의 눈에 걸린 것은 박성화의 입술이었다. 눈동자만을 굴려 더 위를 쳐다보았다. 그래, 사실, 맨 처음에는 자존심이 상했다. 힘주어 뜨인 개 눈깔은 집요하게 박성화의 얼굴만을 짚어내고 있었다. 할 말 있으세요? 나긋나긋 큰 고저 없이 부드럽게 귀에 박히는 목소리였다. 좀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이를 악문 탓에 발음이 뭉개졌다. 그럼요. 옅게 웃는 박성화가 몸을 물려 들어올 길을 만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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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할 말이 있으셔서 여기까지 오신 건가요.”




정우영 씨. 이어져 나오는 자신의 이름에 정우영은 잠시간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서로 관심 없는 줄 알았는데. 헛웃음을 터트린 정우영이 다리를 꼬았다. 호기롭게 들이닥친 것과는 반대로 막상 할 말이 없는 정우영이 입술을 물었다. 당당한 표정 아래로는 당혹감이 가득 들어찬 상태였다.




“요즘 그렇게 이름을 날리는 분이 계시다길래, 한 번 와 봤는데요.”




정우영 제가 생각해도 별로인 말이었다. 자신만 박성화를 지나치게 의식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대한 증거였으므로. 업소에서 몸 팔다 왔다면서요? 생각과는 다르게 입이 멋대로 말을 뱉어냈다. 그런 정우영의 마음을 다 안다는 듯 웃는 박성화의 낯짝이 뻔뻔하다고, 정우영은 생각했다.




“할 말 없으시면 이만 가보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자리 비워봤자 좋은 거 없잖아요.”




하, 정우영이 헛웃음을 쳤다. 그대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정우영이 박성화의 사무실을 나섰다. 나가기 직전 시야에 담긴 박성화의 얼굴이 웃는 표정이었다는 게, 끝까지 정우영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정우영 자신의 완벽한 패배라고, 정우영은 생각했다. 아, 진짜 좆같아. 박성화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가능하다면 눈에 안 보이게 치워버리고 싶은데. 정우영 마음처럼 잘 되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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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영과 박성화가 그간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던 과거가 무색하게, 그 이후로 정우영은 박성화와 마주쳤다, 그것도 꽤 자주. 박성화가 작정하고 정우영에게 관심을 주지 않아서 둘이 얼굴을 맞대지 않았다는 그 사실이 정우영의 머릿속에 박혔다. 가면 갈수록 마음에 들지 않는 것 투성이었다. 별 것 아닌 사람 하나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 자신의 꼴도, 이런 고민을 안겨준 박성화도. 머리끝까지 짜증이 솟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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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정우영이 향한 곳은 박성화의 사무실이었다. 지금은 들어가지 말라는 조직원의 말을 무시하고 직접 문을 열고 들어가 사무실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자리에 박성화가 없었다. 그러다 시야에 걸린 문이 하나 있었다. 저번에 왔을 때는 보이지 않았는데. 정우영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문고리를 돌렸다. 아무것도 없이 덜렁 침대만 하나 놓인 방이었는데, 이불에 파묻힌 형상에 이어진 팔이 보였다. 내가 들어오지 말라고 했…. 문이 열리는 소리에 몸을 일으킨 박성화는 말을 끝마치지 못했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이 예상치 못한 얼굴이었기 때문이었다. 일으킨 상체를 따라 흘러내린 이불을 다시 끌어올려 벗은 상체를 가린 박성화가 표정을 가다듬었다. 왜 오셨죠?




진짜였네. 박성화의 말을 무시하고는 정우영이 중얼거렸다. 미처 가리지 못한 목덜미와 어깨에 가득한 붉은 자국과 헝클어진 머리, 허리를 짚고 있는지 뒤로 돌아간 한쪽 손이 정우영에게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대로 문을 닫지도 않고 뒤돌아 나온 정우영의 심장이 다른 의미로 세차게 뛰고 있었다. 정말로 보스에게 몸을 팔아 그 자리까지 올라간 것보다도, 자신을 보고는 순간 지었던 당혹스러운 표정이 오히려 정우영의 뇌리에 짙게 남아 빠지질 않았다. 온 몸에 자리할 붉은 쪼가리들을 달고 답지 않게 당황한 표정을 짓던 박성화. 곱씹을수록 호흡이 불규칙해졌다. 정우영은 또다시 헛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내가 언제부터 이런 더러운 취향을 가지고 있었는지. 우습게도, 반했다는 말밖에는 설명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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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정우영에게 있어 어려운 감정이었다. 자존심을 제외한 모든 것이 그럭저럭이었던 정우영은 딱히 무언가를 좋아하는 감정도 그럭저럭이었다. 같은 학교 여자애들이 고백해오면 받아주었고, 대충 만나다 차였다. 정우영의 연애 루트는 항상 그러했다. 그렇지만 자신이 정사 직후 다 벗은 박성화를 보며 느낀 감정은 분명 좋아하는 감정이었다. 정우영 역시 당황스러워 머리가 어떻게 될 지경이었다. 박성화를 보기 바로 직전까지의 감정은 짜증과 분노였던 것 같은데, 어째서. 제 사무실로 돌아간 정우영은 의자에 앉아 머리를 싸맸다. 박성화는 정말,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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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로 박성화를 대하는 정우영의 태도가 달라졌다. 예전과는 다르게 박성화에게 건네는 말투가 누그러졌다. 묘하게 삐걱대는 구석이 있는 탓에 아무리 눈치 없는 사람이라도 제게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짐작이 갈 정도였다.




그리고 박성화는…, 그런 정우영이 싫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좋은 것도 아니었다. 세상천지 어떤 골 빈 새끼가 저를 싫어한다고 할 말 못할 말 다 해가며 이를 드러내던 미친놈을 좋아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보는 재미는 있었다. 박성화가 정우영에게 적대감을 드러내지 않는 이유는 단지 그것이었다. 재미있어서. 단지 그 사이에 예상치 못한 일-보스와의 정사 직후 들이닥친 정우영-이 있었을 뿐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 일 덕분에 정우영이 박성화를 좋아하게 되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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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화, 스물넷, 구 소매치기 현 조폭. 고아였던 박성화는 살기 위해 익혔던 절도 기술을 살려 조직에 들어갔었다. 예쁘장하게 생긴 탓에 보스의 총애를 받아 마음대로 보스의 방에 들어갈 수 있었던 박성화는 개 버릇 남 못 준다고, 그곳에서도 값이 되는 물건을 훔치다 걸렸다. 시체로 쫓겨날 위기에 처한 박성화는 무엇이든 하겠다며 빌었고, 그 결과 원래 몸담았던 조직의 라이벌인 정우영의 조직에 들어와, 말하자면 스파이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정우영의 조직에서 무언가 쓸모 있는 것을 가져온다면 계속 조직에 있게 해주겠다는 보스의 명령을 받들어 정우영의 조직에 잠입한 박성화는 이전 조직에서 그랬던 것처럼 몸을 팔아 보스의 신뢰를 얻었다. 어차피 날 때부터 시궁창이었던 인생이었던지라, 몸뚱이 따위는 죽지만 않는다면 어떻게 굴려지던 상관하지 않았다. 그렇게 대충 지내다 큰 정보 하나 얻어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 박성화의 목표였으나, 정우영이 끼어들었던 것이었다. 도움도, 방해도 되지는 않지만 보고 있으면 재미는 있는 치기에 젖은 어린 애. 여태껏 정우영을 봐온 박성화의 감상평이었다. 자신 때문에 애 타는 모습을 계속 볼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테지만, 이제 슬슬 끝낼 때가 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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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영은 멍한 눈으로 박성화를 좇았다. 매일 정장만 입던 박성화는 잠입조가 입는 테크웨어에 허리춤에는 카라비너까지 걸려 있는 상태였다. 유에스비를 지퍼 달린 주머니에 넣은 박성화가 제 앞에 있는 정우영에게 미소를 보였다. 평소의 유한 웃음과는 결이 다른 웃음이었다. 뭐, 하는 거야. 어쩐지 평소보다 눈꼬리가 더욱 올라간 것 같은 느낌에 정우영이 겨우 입을 떼 한 문장을 내뱉었다.




“왜, 몰랐어? 참, 너네 보스는 어떻게 의심 한 번 안 하냐. 덕분에 쉽게 쉽게 간다. 감사하다고 전해줘.”




뭐, 그 전에 죽을 수도 있겠지만. 잘 있어, 정우영. 덕분에 재밌었어. 카라비너를 다시금 손 본 박성화가 열려있는 창문 밖으로 몸을 던졌다. 보스의 방은 칠 층이었다. 급하게 창문 밖으로 고개를 빼 아래를 내려다본 정우영이 본 것은 저 아래에서 달랑거리는 카라비너와 헬멧을 쓰고 이미 대기하고 있던 오토바이의 운전대를 잡고 있는 사람 뒤에 올라타는 박성화였다. 전조등의 빛 때문에 눈이 부셔 잠깐 눈을 찡그린 사이 박성화가 타고 있던 오토바이는 사라져 있었다.




하, 정우영이 헛웃음을 내뱉었다. 끝까지 기분 좆같이 만드네, 박성화. 이내 벽에 기대며 무너지듯 앉아 미친 듯이 웃음을 터트리는 모습에서 일종의 광기가 느껴질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