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것 같아요. 형을.”
우영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다시 천천히 숨을 내뱉으며 우영은 성화의 표정을 살폈다. 한참 동안이나 성화가 말이 없자 우영은 급하게 농담이라며 넘길 생각이었다. 대답을 기다리며 바닥만 바라보고 있던 시선에 성화의 신발이 걸려 우영은 고개를 들었고,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놀란 우영의 눈이 동그래진 것은 이미 성화의 입술이 우영의 입술 위에서 뭉개지고 난 후였다. 여린 두 손 사이에 가두어진 우영의 얼굴은 식을 생각을 안 했다. 자신의 바로 앞에서 눈을 꼭 감고 제게 입을 맞춰오던 그날의 성화를 우영은 잊을 수 없었다.
사랑하는 마음
벵갈
진심이 되면 안 되는데, 마음은 제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 우영은 자취방 침대에 대자로 누워 천장을 보며 생각했다. 그러다 슬며시 눈을 감았다. 우영과 성화가 처음 만난 것은 대학 오리엔테이션 때였다.
*
우영은 조금 긴장된 상태로 자리에 앉았다. 다니던 고등학교에서 이 대학교에 입학한 사람은 우영 본인 밖에 없었으므로 우영은 아는 얼굴이 하나도 없었다. 대충 의연한 표정을 지으려 노력하며 주위를 슬슬 둘러보는데 누가 오른쪽 어깨를 툭 쳐 고개를 돌려 올려다 본 우영이었다.
“혼자야?”
“어.”
“그럼 나 여기 앉는다.”
먼저 다가와 옆자리에 앉은 애의 이름은 최산이라고 했다. 우영도 통성명을 했고, 둘은 자연스럽게 오티 내내 같이 다니게 되었다.
우영은 워낙 숫기가 없었다. 그리고 산도 평범한 편이었다. 어떤 자리에서 나서고 튀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둘은 꽤나 성격이 잘 맞아 서로가 편한 절친이 되었다. 물론 호들갑을 떨며 친하게 지내자는 둥의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산도 우영 외에 다른 친구가 없었기에 둘의 카톡 대화 창은 항상 제일 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큰 강당에서 반별로 뭉쳐 앉아 레크리에이션이 진행되었다. 우영과 산은 박수를 치라면 치고, 손을 들라면 들고, 그렇게 눈에 띄지 않게만 대충 장단을 맞추고 있었다.
“자, 가장 잘생긴 사람을 가운데로-!”
레크리에이션 강사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웅성웅성 대는 소리가 커졌다. 우영은 별안간 머리채가 잡혔다.
“우영아, 너 서라!”
“에? 저, 저요?”
같은 기수지만 재수해서 들어온 한 살 많은 형이 선동하자 다른 애들도 박수를 치며 맞장구를 쳤다. 다들 팔을 잡아당기는 바람에 일어나버린 우영이 옆에 앉아있는 산에게 도움의 눈빛을 보냈지만 이미 눈이 접히게 웃으며 깔깔대고 있는 산이었다. 아, 저 새끼가...
댄스 대결이랍시고 노래가 바뀌며 아이즈원의 라비앙로즈가 흘러나왔다. 우영이 머쓱하게 주위를 둘러보는데 옆 반 가운데에 세워진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엄청 곱게 생겼다고 우영은 생각했다. 그 남자는 잠깐 수줍어하는 듯하더니 바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야야, 저기 봐 봐, 대박이야. 옆에 앉아있는 여자애들이 그 남자를 보며 수군댔다. 우영은 홀린 듯 멍하니 그 남자를 바라봤다. 양쪽에서 뭐 하냐, 노잼이다, 등등의 말이 나오기 시작했지만 우영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음악이 꺼지고 징그러웠던 레크리에이션 시간이 끝났다. 우영은 산과 함께 강당을 나오며 조심스레 주위를 살폈다. 그 남자가 춤을 추고 나서 부끄러워하며 자리로 돌아갈 때 눈이 마주쳤던 찰나의 순간이 우영의 머릿속에서 잊히지 않았다.
“아까 그 사람?”
캔음료를 들고 와 우영에게 건넨 산이 말했다. 난간에 양 팔을 걸쳐 기댄 채 잠시 사색에 잠겨 있던 우영은 고개를 들어 음료를 받아 들었고, 뒤돌아 등을 기댔다.
“누구.”
“엄청 뚫어져라 보드만.”
“뭐래.”
음료를 한 모금 마신 우영이 무심하게 받아 쳤다.
“고민 생기면 언제든 얘기해. 난 남자끼리 붙어먹든 뭘 하든 신경 안 쓰니까.”
“야 진짜, 놀릴래?”
산이 큭큭큭 하고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리고는 덧붙였다.
“진짜야.”
나 먼저 들어간다. 우영은 건물 안으로 사라지는 산을 바라보았다.
개강을 하고 나서 본격적으로 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우영은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 첫날부터 주어진 과제들과 여기저기서 부르는 술 약속, 그리고 아르바이트까지. 우영은 스스로 삶을 사는 게 아닌 삶이 우영을 끌고 가는 기분을 느꼈다. 오늘은 1교시부터 교양수업이 있었던 우영이 피곤한 몸을 이끌고 강의실을 향해 가고 있었다.
퍽.
집에서 조금 빠듯하게 나와 시간을 확인하려 핸드폰을 보며 걷던 중 우영은 누군가와 부딪혔다. 고개를 들자 후두두둑. 하고 알록달록한 색의 종이들과 커다란 부직포들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죄송합니다...!”
“아뇨, 괜찮....”
‘그 사람이다.’ 생각하며 우영은 안경을 고쳐 썼다. 그리곤 정신을 차리고 쭈그려 앉아 바닥에 떨어진 종이더미를 함께 주웠다. 뭐가 이렇게 많지? 전공 과제인가? 무슨 과지? 우영은 계속 생각하며 흘끔흘끔 그를 쳐다봤지만 그가 떨어진 종이를 다 주운 후 우영이 주운 종이까지 건네 받고 ‘감사합니다’하며 가던 길로 사라질 때까지 말을 건넬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날로 우영의 삽질은 시작되었다.
“야, 나랑 술 마시는 동아리 들어갈래?”
“술은 무슨 술이야.”
“후회 안 할 텐데.”
우영은 우여곡절 끝에 그 남자의 정체-라고 하기엔 첩보 영화도 아니고-를 알아냈다. 그는 유아교육과였으며 우영보다 한 살 많고, 이름은 박성화라고 했다. 처음에 우영은 성화와 마주치기 위해 매주 월요일 1교시를 들으러 갈 때마다 일부러 부딪혔던 장소에서 자연스럽게 기다리곤 했지만 그날 이후로 도통 마주치는 일이 없었다. 그런 우영을 한심하게 본 산이 결국 없는 지인을 동원해 찾아낸 것이 바로 술 동아리였다. 우영과 산 모두 술을 즐겨 마시는 편이 아니었기에 우영은 산의 뜬금없는 제안에 코웃음을 쳤지만 이어지는 말을 듣고는 바로 동아리 지원서를 내러 달려갈 수밖에 없었다. 박성화가 그 동아리에 있다는 것 하나 때문이었다.
술동-술 동아리- 부원들과는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남녀 성비도 괜찮았고, 다들 착하고 잘 대해 주었다. 우영과 산이 지원서를 내러 갔을 때 성화는 우영을 알아봤다. 저번에 부딪혔지 않냐며 먼저 말을 걸어오는 성화에 우영은 속으로 연신 아싸를 외쳐댔지만 현실은 어버버 거리며 본인이 입으로 말을 하는지 코로 말을 하는지도 알 수 없을 정도로 떨려했다. 하지만 유순한 성화의 성격 덕에 우영도 곧 아무렇지 않게 장난을 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지게 되었다.
성화는 모두에게 친절했다. 그게 우영이 술동에 죽을 치며 성화를 지켜본 결과였다. 심지어 인기도 많았다. 애초에 오티 때부터 잘생긴 오빠로 점 찍어 둔 여자들이 많았던 것 같았다. 박성화 옆을 졸졸 따라다니면 이런저런 핑계로 다가오는 여자들만 한둘이 아니었다. 가끔씩은 성화가 아닌 우영에게 찝쩍대러 오기도 했지만 말이다. 어쩔 때에는 따가운 시선을 받는 날도 많았다.
“둘이 사귀는 거 아냐?”
우영이 일방적으로 붙어 다니는 관계였기에 우영은 성화가 본인 때문에 피해를 받고 있다는 생각을 지우지 못 했다. 박성화는 여자를 좋아할 테니까. 내가 이상한 새끼인 거니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우영은 일부러 더 성화에게 붙어 과감한 스킨십을 하기도 했다. 다들 그냥 친한 사이로 볼 게 뻔하니까. 라며 우영은 비겁하게 구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했다. 누군가가 흑심이 담긴 질문을 뱉어 분위기가 얼 때면 그 분위기를 다시 풀어 놓는 것은 성화였다. 게다가 워낙 화도 내지 않고 기분 나빠하는 티도 낸 적이 없는 성화였기에 우영의 속앓이는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었다.
*
우영은 자신이 왜 이토록 여자도 아닌 남자에게 집착하는지 스스로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처음부터 우영은 성화를 친한 형 정도로 두고 싶어 다가간 게 아니었으며, 친해진 지금도 성화가 그저 형으로만 보이지 않았다. 가끔씩은 성화를 제 밑에 두고 범하는 징그러운 생각도 해 봤다. 정우영 인생이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우영은 자취방 침대에 대자로 누워 천장을 보며 생각했다. 진심이 되면 안 되는데, 마음은 제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
“형... 혀엉...”
“저 새끼 취했다.”
올해의 마지막 날이었다. 술동이 어김없이 모였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신나게 마셨다. 술집에 들어올 때부터 자연스럽게 성화의 옆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우영은 산의 주도로 술 게임에서 몰이를 당해 잔뜩 취한 상태였다. 우영은 성화의 왼팔을 붙잡고 징징대기 시작했다. 용건도 없으면서 형, 형, 하고 불러대는 우영에 성화는 그때마다 응, 응, 하며 답했다. 우영은 마음이 아렸다. 이러면 내가 안 좋아할 수가 없잖아요. 하고 속으로 말했다.
새해가 밝았다. 어젯밤 술동 애들과 카운트다운을 하고 새벽까지 달렸더니 머리가 찌르르 아파 온다. 우영은 핸드폰을 켜 카톡 친구 목록을 확인했다. 우영은 설날에나 본가에 내려갈 계획이었고, 한동안 나갈 일이 없게 된 우영은 성화의 프로필을 발견했다. 어젯밤 취해 옆에 앉은 성화에게 말도 안되게 꼬장을 부린 일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우영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한 번만 시도해 보고, 실패하면 후회 없이 접자.
[형]
[해장하러 갈래요?]
우영은 성화와 친해진 이후로 한 번도 캠퍼스 밖에서 둘만 따로 만났던 적은 없었다. 우영이 용기 내어 성화를 불러냈고, 성화도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의외로 캠퍼스 밖에서 둘만 있으니 묘하게 어색한 기운이 감돌았다. 성화는 평소와 같아 보였지만 적어도 우영은 그랬다. 조용한 거리를 나란히 걸으며 옆에 있는 형을 힐끔힐끔 쳐다본 우영의 눈에 학교에서와 달리 살짝 부시시한 머리에 안경을 쓴 성화가 오늘따라 유난히 포근하고 예뻐 보였다.
국밥 집에 들어가 마주앉아 콩나물 국밥을 먹는 데에도 우영은 밥을 입으로 먹는지 코로 먹는지 모를 정도였다. 그런 우영의 눈에 성화의 손가락 이곳저곳에 붙인 뽀로로 밴드가 보였다.
“형, 손은 왜 그래요?”
“아, 이거 과제 하다가...”
“유아교육과라면서 험한 거 많이 시키네요.”
헤헤. 하며 성화가 무해하게 웃는다. 내가 이 형을 놓을 수 있을까? 우영은 더욱더 빠져드는 느낌이 들었다.
밥을 다 먹고 나와서 둘은 잠시 걸었다. 아침 공기가 차가웠다. 대낮이라 그런지 다니는 사람도 없었다. 온통 세상에 둘뿐인 기분이라고 우영은 생각했다. 우영은 뭐라고 말을 꺼내야 할지 고민했다. 원래 고백하기 전에 다들 시뮬레이션 정도는 몇 번 하고 실전에 들어가는 것 아니었나, 대책도 없이 나온 우영은 조금 후회했다. 성화는 그런 우영을 기다려주기라도 하는 듯이 말없이 우영의 옆에서 걸었다. 몇 걸음 더 걷고, 조금만 더 걷고. 우영은 발을 멈췄다.
“좋아하는 것 같아요. 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