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의 숨
신비
단아

 

 

 

#1

나는 바다가 좋았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끝을 알 수 없는 저 풍경이, 집 밖을 나서기만 해도 나를 감싸는 바닷바람과 바다 냄새가 좋았다. 바닷가 하늘을 날며 나를 반기듯이 우는 갈매기 소리와 나를 삼킬 듯이 다가오던 큰 파도가 발 언저리에서 부서지며 내는 소리가 좋았다. 바다에 오면 항상 설렘으로 가득 찼고, 매일매일이 새롭게 다가와 가슴이 벅찼다.

어머니는 늘 바다를 조심하라고 말씀하셨다. 바다 깊은 곳, 인간의 능력으로 다다를 수 없는 심해 속에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고 하셨다. 개중엔 인어와 관련된 이야기도 있었다. 인어와 눈을 마주치면 죽는다고 했던가, 죽음이 그저 멀게만 느껴졌던 어린아이는 죽음보다는 바다를 자유롭게 누비며 바다 생물들과 어울리는 인어의 존재 자체에 더 관심을 가졌다.

한때는 인어를 찾고자 바닷가에 홀로 나서 밤을 지새운 적도 있었다. 어린아이가 사라진 집안은 난리가 났고 다음 날 아침에 집으로 돌아갔을 땐 '바다가 그렇게 좋으면 바다에서 살아라!'라는 아버지의 말씀을 그대로 이행했다가 영영 보금자리를 잃을 뻔하기도 했다. 추운 바닷가에 홀로 앉아 밤을 꼬박 지새운 후엔 독감에 걸려 몇 날 며칠을 앓아누운 적도 있다. 그 뒤로 몇 번을 더 시도했을까, 기약 없는 기다림 끝에 어린 내가 내린 결론은 '인어 같은 건 없다,' 였다.

인어의 존재에 대해 다시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초등학교 입학 후 3년이 지나서다. 태초에 인간과 인어가 공존하던 때가 있었다고 했다. 그들은 인간의 언어를 구사할 줄 알았으며 '세이렌'이라고 불렸다. 바닷속 깊은 곳 심해의 어딘가에 서식하는 '세이렌'은 인간의 모습을 하였으나 물고기와 같은 하반신을 가졌으며, 어딘가 이질적이고 신비하여 사람을 홀렸다고 한다. 바다를 항해하던 수많은 선원은 그들의 신비에 홀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바닷속으로 끌려들어 갔고, 바다를 항해하기가 두려웠던 인간은 인어와의 전쟁을 일으켰다. 수십 년간 이어지던 그 전쟁은 인간의 승리 후 인어가 종적을 감추었다는 것을 끝으로 한다. 몇천 년도 훨씬 더 지난 옛날이야기, 문자가 겨우 존재하던 시절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이 이야기는 초등학교 저학년 필독 도서에나 잠깐 나오는 전설이자 배경지식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 관심도 잠시였다.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 인어를 찾겠다고 바닷가에 한참을 앉아있다가 다음날 앓아누웠던 적이 있었지. 그때 아버지께 많이 혼났는데, 하고 희미한 기억을 더듬는 계기가 되었을 뿐이었다. 부모님께서 친구들을 많이 사귀라고 지어준 우영이라는 이름답게 나는 친구를 많이 사귀었고, 그들과 어울리며 인어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레 뒷전으로 밀려났다.

중학교를 입학한 지 두어 달쯤 지났을 때였다. 하늘은 맑아 구름 한 점 없었고, 바다는 잔잔하게 흘렀다. 항해사였던 아버지는 나와 어머니를 두고 배에 오르셨고, 끝없는 지평선을 향해 나아가시는 그 뒷모습은 내 기억 속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날 이후로 난 바다가 싫었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끝을 알 수 없는 저 풍경이, 집 밖을 나서기만 해도 나를 덮쳐오는 바닷바람과 그 바다 냄새가 싫었다. 지긋지긋하게 울어대는 갈매기 소리가 싫었고, 아버지를 집어삼킨 파도가 나를 집어삼킬 듯이 다가오는 것이 무서웠다. 바다를 향한 설렘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어서 성인이 되어 이 지긋지긋한 바다마을에서 떠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로부터 5년이 더 흘렀다. 시간이 약이었을까, 더 이상 바다가 무섭진 않았다. 꼴도 보기 싫었던 바다는 그저 지겨운 일상 속에 녹아 아무런 감정조차 들지 않는 익숙한 배경이 되었다.

 

 

 

 

 

 

 

 

#2

그날도 지긋지긋한 바닷가에 대충 앉아 캔 음료를 따 마시고 있었다. 파트타임으로 일하던 물류창고에서 가끔 이렇게 앉아서 지평선 너머로 지는 태양을 바라보는 것은 나쁘지 않았다. 석양에 붉게 물든 바다가 햇빛을 받아 시야 가득 반짝였고, 젖은 바닷바람이 불어 머리를 아무렇게나 헝클였다. 더럽게 예뻤다.

석양은 순식간에 사라져 어둠을 끌어들였다. 붉은 물결 위에서 춤을 추며 반짝이던 별빛은 이제 밤하늘 가득 수 놓으며 어둠을 비추었고, 차디찬 바람은 나를 밀어냈다. 더 어두워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던 찰나, 바닷가의 암초 뒤에서 첨벙, 하는 소리가 들렸다. 눈을 게슴츠레 뜨고 소리가 난 방향을 응시했다. 달빛을 받아 빛을 내는 무언가가 움직이는 것 같았다. 파도에 밀려온 물고기인가? 바다 쓰레기일 수도 있겠다. 같은 생각을 하며 바짓단을 대충 걷어 올리고 암초를 향해 걸어갔다.

깊지 않은 바닷물을 찰팍이며 간간이 퍼덕이던 그것은 단순히 파도에 떠밀려온 물고기도, 바다 쓰레기도 아니었다. 나체의 인간, ...이었다면 차라리 좋았을지도 모른다. 갑작스럽게 마주한 검은 머리 남자의 벗은 상체에 놀라 시선을 아래로 내렸을 땐, 인간의 다리가 아닌 태어나서 처음 보는 어떤 것ㅡ물고기의 꼬리와 같은, 달빛을 받아 차갑게 빛나는 비늘로 덮여 숨을 쉬는 그것ㅡ과 마주했고, 그만 들고 있던 캔을 던져버리고 말았다.

 

#3

- 아!!

 

그것은 이미 내 손을 떠나버린 빈 캔에 이마를 맞았는지, 제 머리를 손으로 감싸며 짧은 비명을 내뱉었다. 사람인가? 귀신일지도 모른다. 내가 헛것을 보고 있는 건가?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싶어 입 안쪽 여린 살을 깨물어 보아도 아프기만 했다. 몇 번을 고쳐봐도 어렸을 적 전설에서나 보던 인어였다. 사람의 얼굴을 가지고 사람의 말을 구사하지만, 물고기의 비늘을 갖고 드넓은 심해를 헤엄치는 자들. 인어가 분명했다.

인어가 실존한다는 것에 대한 놀라움보다 이상하게 아름답다는 생각이 먼저였다. 물에 젖어 힘없이 눌어붙은 그의 머리카락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조차 스스로 빛을 내는 듯했다. 동화 속 인어의 모습에 가까운 그것, 인어 그 자체가 제 이마를 두 손으로 감싼 채 눈동자만 위로 굴려 나를 흘겨보았다. 그제서야 나는 캔을 던져버린 것에 대해 사과 한마디 건네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 어.. 괜찮아요??

- ...괜찮아 보여?

인어가 미간을 구기더니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인어는 사람 말을 할 줄 안다더니.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비현실적인 상황뿐이라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 진짜 인어에요? 고민 끝에 내가 물은 말이었다. 인어가 고개를 갸웃했다. 육지에 사는 사람들은 우릴 그렇게 부른다더라,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인어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인어가 짓는 미소는 어딘가 아파 보였고, 젖은 그의 눈빛에 홀려 잠식해 버릴 것만 같았다. 제 눈앞의 광경이 믿기지 않아 차오르는 바닷물에 내 옷이 다 젖고 있었다는 것도, 집에 들어갈 시간이 훌쩍 지나 있다는 것도 잊고 있었다.

인어는 수면 위를 동경했다고 한다. 인어가 수면 아래에서 보는 수면 위가 얼마나 아름다운지에 대해 서술했다. 빛이 쏟아지는 수면 위의 모습이, 수면 위에서 내려다보는 바다의 모습이 궁금했다고 했다. 태어나지도 않았던 시절 있었던 인간과의 전쟁에서의 패배한 이후 남은 인어들은 수면 위로 향하는 것을 두려워했고, 물 밖으로 나서는 것은 엄격하게 통제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을 가지 못하게 하다니, 말도 안 된다며 인어는 투덜거렸다.

 

- 바다 좋아해?

인어는 잠자코 이야기를 듣던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물었다. 바다를 좋아하냐고? 그럴 리가. 내 인생에서 가장 지긋지긋한 것이 바다였다. 떠날 수 있다면 당장이라도 떠나고 싶을 정도로 지겹고, 아쉬울 것 하나 없는 동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대답하지 않는 내 표정이 석연치 않자 눈에 띄게 시무룩해진 그의 표정을 볼 수 있었다. 인어가 내 표정을 살피며 날 올려다보았다.

 

- ...싫어해?

- ...어렸을 땐 좋아했어요. 

거짓말은 아니었다. 어렸을 땐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인어가 되어 바닷속에서 사는 게 꿈일 정도였으니까. 인어가 그 정도면 되었다는 듯 바보같이 웃어 보이더니 내게 말했다. 

 

- 보여주고 싶은 게 있어.

- 뭔데요,

- 바닷속.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곳이야, 그 말을 끝으로 인어가 양손을 뻗어 내 뺨을 잡아 끌어내리더니 내게 입을 맞춰왔다. 물에 젖은 인어의 입술은 차가웠고, 그 속은 따뜻했다. 인어가 끈적하게 내 입술을 삼켜왔다. 정확히는 숨을 불어넣은 것에 가까웠던 것 같다. 왜였을까, 충분히 힘으로 그를 밀어 떨어뜨릴 수 있었음에도 나는 그러지 않았다.

 

 

 

 

 

 

 

 

#4

가쁜 숨을 내쉬었다. 누구의 것인지 모를 타액이 길게 늘어져 인어와 나의 사이를 연결하다 끊어졌다. 아, 이거 내 첫 키스인데. 살다 살다 인어랑 키스도 해보네, 같은 생각을 하며 인어를 바라보았다. 눈을 뗄 수 없었다. 발갛게 상기된 얼굴을 한 인어는 어딘가 신나 보였다.

 

- 헤엄 칠 줄 알아?

- 어.., 조금?

인어는 내 양 뺨을 잡은 손 그대로 나를 바닷속으로 끌어들였다. 인어와 눈을 마주치면 죽는다는 말이 이런 것일 줄은 몰랐다. 내가 미쳤지, 이대로 익사하는 게 아닐까. 인어의 손에 이끌려 바다 깊은 곳으로 끌려 들어가던 어느 순간, 바닷속에서 자연스럽게 숨을 쉬고 있는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내 뺨을 톡톡 건드리는 손길에 물속에서 천천히 눈을 떴을 때도 아무런 불편함이 없었다.

눈을 떴을 때 마주한 그의 모습은 물 밖에서의 모습보다 신비로웠다. 물속으로 투과되어 일렁이는 달빛은 그를 더 애처롭게 빛나 보이게 했고, 저 빛이 달빛이 아닌, 뜨겁게 쏟아지는 햇빛이었다면 더 눈이 부셨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인어가 수면 위를 동경했던 이유를 알려주는 것 같은 광경이, 물결에 따라 흔들리는 그의 머리카락이, 내 눈앞에서 움직이는 비현실적인 그의 꼬리가 마치 이것은 현실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계속해서 인어의 손에 이끌려 심해 속으로 향했다. 꽤 멀리 왔다고 생각했을 때 내 눈을 덮어주며 눈을 감으라는 인어의 손짓에 눈을 감았고, 다시 눈을 떴을 땐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심장이 뜀을 느꼈다. 본적도 없는 천상계의 폭포를 그대로 가져다 놓은 듯한 느낌이었다. 바닷속에 이런 공간이 존재할 수 있었나, 이게 꿈이 아니라면 정말 노벨상 수상감인데.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동안 인어는 빛을 내는 무언가를 들고 돌아왔다.

인어는 내게 스스로 빛을 내는 작은 진주를 쥐여주었고, 무어라 뻐끔거렸다. 말을 하는 건가? 들리지 않았지만 대충 선물이라는 것 같았다. 고맙다는 의사를 표현하기 위해 고개를 까딱였다. 빛이라 곤 하나 없는 깊은 바닷속에서 작은 진주는 홀로 빛나 나와 인어의 사이를 밝혔다. 인어가 해저 바닥을 뒤적이더니 작은 유리병을 찾아 그 진주를 담았다. 신기하게도 딱 알맞은 크기였다.

인어가 환하게 웃었다. 인어가 웃으며 내뱉은 숨 방울들이 수면 위를 향해 떠올랐다. 인어가 다시 내게 입을 맞춰왔고, 정신이 아득해짐을 느꼈다.

 

 

 

 

 

 

 

 

 

 

#5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눈을 따갑게 비추는 태양과, 내 귓가에서 생생하게 부서지는 파도 소리에 눈을 떴다. 상체를 일으켜 세워 앉자 젖은 모래들이 옷과 몸 여기저기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말라붙은 눈이 뻑뻑했고 옷은 축축하게 젖어 무거웠다. 언제부터 이러고 있었지, 설마 여기서 잔 건가? 아씨. 미쳤나 봐, 오늘 학교 가는 날인데.

문득 어젯밤의 기억을 떠올렸다. 꿈이라고 하기엔 내게 입을 맞춰왔던 그 인어의 모습과 입술의 감촉이 생생했다. 고여 있는 바닷물에 대강 흙을 씻어낸 손으로 입술을 매만지다 젖은 머리를 거칠게 쓸어올렸다. 미쳤지 진짜. 그게 꿈이 아니면 뭐겠어. 뒤늦게 현실을 자각하고 서둘러 일어나 여기저기 붙은 모래를 대강 털어내자 작은 유리병이 툭 떨어져 내가 누워있던 모래 위를 두어 바퀴 굴렀다. 작은 유리병 안의 작은 진주가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6

- 정우영, 너 어제 왜 학교 안 나왔냐?

아슬아슬하게 지각을 면하여 자리에 앉자 산이 다가와 말했다. 같은 반은 아니었지만 어렸을 때부터 함께 자란 탓인지 가끔 우리 반으로 와 날 보러오곤 했다. 뭔소리야? 어제 일요일이었잖아. 나 알바 주말에만 하는데. 내가 답했다. 뭐? 어제 월요일이었잖아! 오늘은 화요일이고. 너 어제 학교 안 왔어! 집도 안 들어갔다며, 너희 어머니께서 너 걱정하시더라. 대체 어디 있었던 건데? 나를 다그치는 산의 목소리에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그 사이 하루가 흘렀다고?

 

- 야.

- 왜. 대답이나 해, 어디 갔었냐니까?

- 넌 인어를 믿냐?

- 뭐?

- 아니이, 인어가 실존할 것 같냐고~

- 뭔 소리야, 왜 갑자기 인어 타령이야?

 

더 말해봤자 나만 이상한 놈이 되는 것 같아 그냥 말하는 것을 그만뒀다. 됐다, 내가 너한테 뭔 말을 하겠냐. 혀를 차며 돌아섰다. 왜 시비야, 뜬금없이 인어 이야기 꺼낸 게 누군데, 미친 거 아냐? 산이 말했다. 그렇게 몇 마디 더 투닥거리다 내가 책상에 엎드려 눕는 것으로 시시한 언쟁은 끝이 났다. 아, 정우영 이 양아치야! 출석이나 제대로 해, 또 학교 무단결석 하지 말고! 멀어져가는 친구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싱숭생숭한 마음에 괜히 바지 주머니 속에 넣어둔 작은 유리병만 만지작거렸다. 헛것을 본 걸까? 진짜 미친 걸지도 모른다.

그날 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인어를 처음 만났던 그 장소로 향했다. 어머니께는 밤늦게까지 놀다 들어간다고 둘러댔다. 어제는 말도 없이 집에 안 들어오더니, 오늘은 놀러 나가!? 학교도 안 갔다며!! 자꾸 속 썩일래? 아, 아! 때리지 마요! 암튼 늦게 들어올 거에요. 내 등짝을 향해 날아오는 어머니의 손을 피하며 대충 답하고는 서둘러 문밖을 나섰다.

 

해는 이미 져 밖은 어두웠고, 어제와 미묘하게 다른 달만이 둥글게 떠 바다를 비췄다. 사람이 없는 바다는 파도가 방파제에 부딪혀 부서지는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인어와 같은 생명체라고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잔잔하고 어두운 바다만이 눈에 담겼다. 그럼 그렇지. 애초에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집 가다가 잘못 넘어져서 기절했던가? 인적이 드문 동네에 위치한 바닷가라 발견되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안 죽은 게 천만다행이다. 그렇게 결론짓고 주머니에 있던 작은 유리병을 꺼내 들었다. 잘 만들어진 진주가 작은 유리병 안을 굴러다녔다. 꿈속에선 빛이 났는데. 이제 쓸모없어진 작은 유리병을 쥐어 바다를 향해 멀리 던졌다.

유리병은 얼마 가지 못하고 바다에 떨어졌다. 유리병이 떨어진 곳에서는 서서히 빛이 피어났고, 바다를 밤하늘 삼아 피어난 별은 은은하게 빛나며 밀려오는 파도를 따라 내게 돌아왔다. 그 유리병이었다. 유리병을 다시 주워들자 은은하게 빛나던 작은 별은 평범한 진주가 되어 있었다. 꼭 그 인어같았다.

 

- 버리려고 하는 줄 알았어, 슬플 뻔했네.

갑작스러운 목소리의 출현에 놀라 소리가 난 쪽을 향해 돌아보았다. 인어였다. 달빛을 받아 차갑게 빛나는 비늘로 된 하반신을 가진 인어는 여전히 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버리려 던 거 맞는데. 내 쪽으로 헤엄쳐 다가오는 인어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며 차마 입 밖으로 뱉을 수 없었던 말이 잇새에서 맴돌았다. 

 

- 내가 사는 곳 구경하러 갈래?

내 코앞으로 다가온 인어가 양팔을 뻗어 내 뺨을 쓸며 물었다. 점차 깊이 들어오는 인어의 숨을 느꼈다. 미쳤지, 내가 홀려도 단단히 홀렸구나. 한 손을 들어 인어의 얼굴을 감쌌다. 다른 한 손을 인어의 허리에 올려 등허리의 곡선을 따라 쓸어 올렸다. 인어의 차가운 피부가 움찔거렸다. 깊은 심해로 가라앉고 있음을 자각하며 생각했다. 나, 바다가 정말 싫었는데. 당신 때문에 다시 좋아질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