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시여.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제가 그에게 고백하기 전으로 돌려주시고 만일 시간을 되돌리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제게 제 사랑을 돌려주세요.
비바람이 치는 밤. 우영이 두 손을 모으고 십자가 앞에 섰다. 우영은 두 눈을 치켜뜨고 기도했다. 신도 우영의 기도를 들었는지 번개가 쳤다. 창문 밖으로 밝은 빛이 들어왔다.
신이 있다면
신이 과연 있는 걸까?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사람들은 누군가를 믿고 싶어 하는 것이다. 절대로 신은 없다. 만일 있었다면 나를 이렇게 나락으로 떨어트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는다.
성화가 교회 한 가운데에 걸린 십자가를 노려보며 생각했다. 모든 사람들이 앞에서 기도문을 외는 목사의 기도에 맞춰 ‘아멘’을 외칠 때 성화는 속으로 ‘지랄’을 외쳤다. 기도하면 뭐든지 예수님이 들어주신다는 목사의 말은 전부 틀렸다. 성화도 다른 신자들처럼 신을 믿으며 살아가던 그때가 있었다. 3년 전까지만 해도 성화는 망할 신을 믿었다.
어릴 적부터 성화에게 교회에 나가는 것은 당연했다. 성화가 해야만 하는 일 중 하나라는 것을 알기에 성화는 매일 신에게 기도했다.
우영이 성화를 처음 봤을 때도 성화는 기도하는 중이었다. 살며시 감은 그 눈도 입만 뻥긋뻥긋 벌리며 기도를 하는 모습이 예뻤다. 이거야말로 엄청난 아멘이었다. 우영은 평생 믿을 것이라고 상상도 못 한 신을 믿었다. 우영이 짝사랑을 시작했다. 성화와 같은 교회를 다니는 윤호한테 부탁해서 우영은 성화가 다니는 교회에 갔다. 우영은 몰랐던 척 성화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성화는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성화가 우영에게 자신을 아냐고 묻자, 우영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전 정우영이에요. 선배도 여기 다니세요?”
성화는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우영이 낯설어서 반갑다는 말 한 마디도 못 하고 어색한 웃음만 보여줬다. 성화는 뒤에 서 있던 윤호와 눈이 마주쳤다. 우영이 윤호를 따라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보통 친구들 데려온 아이들의 표정은 밝던데 윤호는 못마땅한 얼굴로 우영을 바라보고 있었다, 성화는 윤호에게 살짝 웃으며 손을 들어 인사했다. 윤호도 성화의 인사를 받아줬다. 윤호가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와 우영의 어깨를 잡고 몸을 틀어 데려갔다.
“형 미안해요. 제 친구가 좀 미쳐서. 우영아, 제발 좀 가자.”
“아냐 괜찮아. 예배 시작하겠다. 들어가자.”
윤호가 우영을 데리고 가는 모습을 보며 성화는 조용히 웃음 지었다. 귀여웠다. 우영이 끌려가는 모습이 성화의 눈에 귀여워 보였다. 예배당에 들어가 앉았을 때 우영과 윤호가 옆에 앉았다. 설교를 들을 때 집중한 표정이 우영을 한 번 더 설레게 했다. 성화가 우영의 허벅지를 툭툭 쳤다.
“우영아, 앞에 봐.”
성화가 조용히 속삭였다. 앞에서 기도하라는 목사의 말에 성화는 눈을 감고 기도를 했다. 성화를 따라 우영도 기도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성화형도 저를 사랑하게 해주세요. 이민? 에멘? 아멘?
아멘-
그렇게 우영이 윤호를 따라 교회에 다니게 된 것도 3달이 지났다. 윤호는 우영에게 교회를 성화형 때문에 다닐 거면 다니는 의미가 무엇이 있냐며 우영을 말렸지만, 우영의 고집은 꺾일 기세가 보이지 않았다.
“성화형, 좋아해요.”
“어?”
“사귈래요?”
창문 밖으로 내리는 소나기처럼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들이닥친 고백은 비에 흔들리는 나뭇잎처럼 성화의 마음을 흔들었다. 머리로는 안된다는 사실을 알면서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마음이 시키는 대로 움직였다.
“어? 어. 좋아.”
우영은 그날부터 신을 믿었다. 하나님이 있기에 내 기도를 들어주심이 분명하다고 우영은 생각했다. 그때의 행복이 평생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이 불행의 시작일 것이라는 것은 몰랐다. 그 누구도 불행을 경험하고 싶지는 않았을 테니. 알고 싶지 않았을 테니.
우영이 윤호의 집으로 갔다. 윤호에게 해야 하는 말이 있다며 무작정 찾아갔지만, 윤호는 우영을 한심하게 보며 들어오라고 말을 했다.
“너는 갑자기 왜 오고 난리냐?”
“윤호야. 이 형님이 드디어 성화 형이랑 데이트를 한다 이 말이야.”
“아 그래서?”
“성화 형한테 가기 전에 잠깐 왔지. 너희 집이랑 성화형 집이랑 가까우니까 잠깐”
우영이 잔뜩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 윤호는 그런 우영을 한심하게 바라보며 우영에게 말했다. 사람들이 알면 어떻게 될지 알고는 있냐고 말하자 우영은 뭐가 중요하냐며 윤호의 말을 무시했다. 때마침 성화에게 온 전화에 우영은 윤호에게 인사를 한 뒤 밖으로 나갔다. 윤호는 창문 밖으로 우영이 성화에게 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우영이 성화의 손을 잡았지만, 성화는 우영의 손을 뿌리쳤다. 우영이 불편하냐며 묻는 말에 성화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대답했다. 성화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우영과 연애를 한다는 사실을 알면 부모님과 목사님이 가만히 둘리가 없다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었다.
“우영아 우리 사귀는 거야? 그때 그 말 진심이었어?”
“응. 형은 싫어?”
우영의 불안해 보이는 말투에 성화는 아니라고 말했다. 성화도 싫은 건 전혀 아니었다. 성화도 우영이 좋았다. 사랑이라고 말하기에는 애매했지만, 우영의 진심 어린 말에 성화는 흔들렸다.
“그러면 우리 비밀로 하자. 사귀는 거 비밀로 하자.”
성화의 단호한 말에 우영은 알았다고 했다. 우영은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과의 연애라는 것부터 엄청난 일이었기에 성화가 어떤 말을 하든지 우영은 좋았다. 우영과 성화가 길을 가다가 성화가 우영의 어깨 위로 자연스럽게 팔을 올렸다. 우영은 성화의 팔을 내려 손을 잡았다. 우영은 또다시 성화가 손을 놓을까 겁먹었지만, 성화는 우영의 손을 좀 더 꽉 잡았다.
사귀기 시작한 지 100일 되는 날 우영이 성화의 입술에 뽀뽀했다. 성화가 우영의 손을 끌어 기둥 뒤로 숨었다. 우영은 성화에게 무슨 일 있냐고 물었지만, 성화의 눈에는 두려움이 가득 차 있었다. 우영이 성화의 입술에 뽀뽀를 할 때 성화는 같은 교회에 다니는 김 씨 아주머니를 봤기 때문이었다. 김 씨 아주머니는 독신한 신자였기에 성화가 우영과 입을 맞췄다는 사실을 알면 교회에 그 소문이 퍼질 것이고 결국에 성화는 부모님을 보기 힘들 테니까.
“우영아...”
성화가 떨리는 목소리로 우영을 불렀다. 우영의 표정에 성화는 그냥 우영을 안았다.
“우리 오래오래 사랑할 수 있을까?”
“나는 형 오래오래 사랑할 수 있어.”
성화는 웅웅대며 울리는 휴대폰을 들어 화면을 보고는 우영에게 미안하다며 자신의 집으로 뛰어갔다. 제대로 된 인사도 못 한 우영은 윤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윤호는 급한 목소리로 우영에게 말했다.
-성화 형은? 괜찮아?
“야 그게 뭔 개소리야 방금까지 나랑 있었는데.”
-너 성화 형이랑 뽀뽀했어?
“왜?”
-너 지금이라도 성화 형이랑 헤어져. 성화 형을 위해서라도 헤어져.
“그게 뭔 개소리야. 내가 얼마나 힘들게 고백했는지 알잖아.”
-난 헤어지라고 말했어.
우영은 홧김에 윤호의 전화를 끊었다. 우영은 바닥에 떨어진 돌멩이를 발로 찼다. 우영이 집 도어락을 눌러서 집으로 들어갔다. 방에 들어가 침대에 누웠다. 휴대폰이 쉴틈없이 윙윙 울렸다. 우영은 휴대폰에 온 알림을 확인한 후 휴대폰을 껐다. 다음 날 학교에서 마주친 성화의 모습은 멀쩡해 보였다. 성화가 어느 순간부터 우영의 눈을 피하기 시작했다. 우영은 성화의 팔목을 잡고 사람이 거의 오지 않는 곳으로 성화를 끌고 갔다. 우영이 성화의 손을 잡는 순간부터 우영과 성화를 보고 많은 사람이 손가락질 했다.
“저기 호모 새끼들 지나간다.”
“박성화 아빠 목사래.”
“시발 그럼 애비가 호모 새끼대신 호모 새끼 죄 용서해달라고 하는 거야?”
“미친 새끼 쟤네 듣겠다.”
우영은 자신을 욕하는 것은 참을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자신에게 성화에게 날아오는 말들은 우영의 심장에 커다란 상처를 남겼다. 그렇게 아파본 적이 없는데 처음으로 가슴이 찢어지듯 아파왔다. 우영은 그날 처음으로 성화가 우는 모습을 봤다. 두려움으로 가득 찬 눈물을 뚝뚝 흘리는 그 모습을 봤다.
“형 미안해요.”
“아니야. 미안해.”
오히려 제게 사과하는 성화의 모습에 우영은 성화의 얼굴 위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줬다. 그런 다음 성화를 안았다. 성화는 우영을 밀어냈다. 우영은 성화를 아무 말 없이 바라봤다. 성화는 우영에게 할 말이 있는 표정으로 우영의 눈을 바라봤다. 성화는 우영의 눈을 맞추고 말했다.
“우영아, 헤어지자.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더 이상 성화를 잡아봤자 성화에게 상처만 남길 것을 알기에 우영은 성화를 놓아줬다. 놓아줄 수밖에 없었다. 성화는 우영에게 아파 보이는 미소를 보이며 헤어지자는 말을 전했다. 성화가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교실로 갔다. 우영이 마른세수를 하고 있을 때 윤호가 왔다.
“야. 가자. 종 치겠다.”
“내가 왜 그랬을까?”
성화는 자신의 사물함에서 우영이 준 담요를 꺼내 자리에 앉았다. 성화가 담요를 두르고 엎드렸다. 우영의 향기가 배어있는 담요가 성화의 몸을 감싸고 있었다. 우영이 안아준 그때의 기억이 성화의 마음을 괴롭혔다. 성화가 눈을 감고 기도를 했다.
주여. 어떤 일이 있더라도 절 지켜주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남들과는 조금 다른 사랑이었을 뿐인데 그것이 죄가 된다면 저를...우영이를...꼭 구원해주세요. 그리고 저를 이 고통 속에서 빠져나갈 수 있게 도와주세요. 얼른 주님의 곁으로 갈 수 있게 도와주세요. 아멘
머리끝까지 뒤집어 쓴 담요가 우영의 향이 잔뜩 묻은 담요가 성화를 진정시켜줬다. 성화는 그날 집에서 들은 말에 의해 마음에 푸른 멍이 들었다. 그 이후로 성화는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우영은 매일 성화의 반을 지나갔지만, 성화의 책상은 비어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성화의 모든 흔적이 사라져있었다. 윤호를 통해 들은 성화의 소식은 성화가 파리로 갔다는 그런 말들뿐이었다. 우영은 그 소식을 들은 날 교회로 갔다. 비가 오는 날이었다. 우영은 예배당 의자에 앉았다. 평소에는 앞에서 신을 믿으라며 강요하는 목사가 우영을 두려운 표정으로 바라봤다. 기도하는 목사의 눈을 바라보며 우영은 기도했다.
신이시여.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제가 그에게 고백하기 전으로 돌려주시고 만일 시간을 되돌리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제게 제 사랑을 돌려주세요.
아멘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하나님이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교회에서 말하는 주는 우영에게 믿음이라는 말을 하는 신이었을 뿐이었다. 인간은 의지가 필요할 때 신을 찾는다며 우영은 신을 찾았다. 처음으로 간절하게 신을 찾았다.
신은 성화를 사랑 앞에서 포기했다. 성화를 지옥으로 떨어트렸다. 모든 걸 잃어버린 채로 모든 것을 잊지 못한 채로 지옥으로 가게 만들었다. 성화는 파리에서 행복하지 않았다. 그저 그런 학교에서 그저 그런 삶을 살았다. 한국과 다른 점이 없었다. 딱 하나만 바뀌어있을 뿐이었다. 옆에 우영이 없다는 점. 그것만이 차이였다. 파리에서 11월 26일이 오는 날이면 성화는 혼자 케이크를 사서 불었다. 우영이 생각나서 울었다. 매년 케이크를 한 조각 먹고 버리기를 반복했다. 11월 27일이면 하숙집에서 단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했다. 꼭 11월 27일은 아팠다. 온몸이 끊어지도록 아팠다. 그럴 때마다 성화는 우영에게 문자를 보낼까 말까 고민했다. 매년 보고 싶다는 말을 썼다 지웠다 반복했다. 지우개로 지우다가 너덜너덜해진 종이처럼 성화는 하루하루 너덜너덜해졌다. 그렇게 5년을 지내고서야 성화는 한국에 들어올 수 있었다. 한국에 올 수 있던 이유는 아버지가 아프다는 형의 메일을 받았기 때문이다. 성화가 캐리어를 끌고 아버지가 계시다는 병원으로 갔다. 성화는 반기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면서 아버지의 앞에 섰다.
“아버지. 다녀왔습니다.”
성화의 손 위로 따뜻하고 거친 손이 겹쳐졌다. 미안하다고 말하는 아버지에 성화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성화는 울지 않으리라고 다짐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바닥으로 떨어지는 눈물이 단단했다. 바닥에 닿자마자 바로 조각조각 흩어졌다. 성화처럼 단단해 보이지만 여렸다. 성화는 자신이 어릴 적 살던 집으로 갔다. 그곳은 여전했다. 성화가 어렸을 때처럼 초등학교 운동장에는 뛰어노는 아이들이 있었고 놀이터에는 그네 타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리고 놀이터 옆 벤치에 앉아 노란색 바나나맛 우유를 먹는 우영이 있었다. 어릴 때부터 쭉 우영은 바나나맛 우유를 좋아했다. 성화가 캐리어를 끌고 우영의 앞으로 갔다. 성화가 깊게 잠긴 목소리로 우영을 불렀다.
“우영아. 보고 싶었어.”
우영이 성화에게 딸기 우유 하나를 내밀었다. 성화는 우영이 주는 딸기우유를 받았다. 우영이 성화의 딸기우유에 노란색 빨대를 꽂아줬다. 둘 사이에는 아무 말도 없었다. 성화는 그냥 있는 것 자체로도 행복했다. 우영은 자신이 어떻게 지냈는지 성화에게 말해주었다. 우영에게도 특별한 일은 없었다. 옆에 있던 성화가 없었다는 점. 딱 하나였다. 우영은 자신의 기도문을 성화에게 말해줬다. 성화가 기도가 현실이 되었냐고 물었다. 그러자 우영은 고개를 흔들었다. 우영은 성화에게 말했다. 사랑했던 사람이 돌아온 거지 그때 그 사랑이 돌아온 게 아니라고. 신은 마지막까지 성화를 비참하게 만들었다. 신은 성화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상처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