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화는 취한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전쟁통 같은 소음을 비틀비틀 헤치고 미닫이문을 열어 밖으로 나갔다. 술집 입구에서부터 열 발자국 정도 멀리 걸어 깜박거리는 노란 가로등 아래에 섰다. 담뱃갑을 탁탁 쳐서 한 개비를 뽑아낸 후 불을 댕겨 훅 빨아들인다. 술 올라. 손가락 시려. 삼월도 추워. 의미 없는 혼잣말을 하면서 멍하니 거리를 쳐다본다. 개같이 술을 퍼마신 사람들이 깔깔대며, 휘청거리며 그의 앞을 지나간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어깨동무하고 허리를 감고, 얄팍한 겉옷을 피부 대신 비비며 지나간다.
아, 외로워. 담배가 타는 이 5분도 견디기 힘들어 당장 장초를 집어 던지고 테이블로 돌아가고 싶어진다. 개강총회 좋지. 오늘 처음 본 애들. 얕게만 알고 있는 많은 동기. 한 번도 단둘이 식사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 아무 말이나 떠들다 보면 혼자라는 느낌이 가시곤 한다. 고개를 푹 숙이고 참을성 있게 필터까지 태운 박성화는 보폭을 크게 걸어 술집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바로 앞에 누가 서 있다. 뭐야.
"선배님 주변에 귀신 많은 거 알아요?"
얘가 이름이 뭐더라.
"20학번 최산입니다."
어, 내 앞에 옆에 자리. 얘는 잔을 안 꺾더라. 말술인가 봐.
"마시는 척하면서 버렸어요. 선배님 이상한 꿈 많이 꾸시죠."
너도 담배 한 대 줄까?
"아니요, 저 안 피워요. 선배님 귀신 좀 떼어 드릴까요."
뭘 뗀다고?
"귀신이요. 가만히 계세요."
징그럽게 왜 안기고 그래. 너 머리에서 향냄새 나. 그래도 안고 있으니까 좋다. 안 외롭고 좋다.
"귀신이 그렇게 많으니까 주변에 사람이 없죠. 선배님 술 너무 많이 드시지 마세요. 귀신 들락날락해요."
응응, 고마워. 고마워. 근데 나 안 취했어. 근데 나 조금만 더 안아주면 안 돼?
"많이 취하셨네요. 여기 가만히 계세요. 제가 짐 들고나올게요."
아니야. 나 안 취했어.
"여기 가만히 계시면 또 안아드릴게요."
오케이잉. 갔다 와.
"선배님 집이 어디예요."
나 너희 집 갈래. 산아. 그리고 선배님이라고 하지 말고 형이라고 해.
"안돼요. 형 집이 어디예요."
서관동 일영아파트 107동 901호
덜그럭거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아, 어떤 새끼가 주말 아침부터 이 난리를 치지. 대충 핸드폰을 들어 시계를 보니 오후 한 시다. 아침은 아니구나. 모로 누워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오후의 느린 햇살이 방바닥을 슬슬 기어 다닌다.
"형, 깼어요?"
깜짝이야. 싱크대 쪽을 바라보자 인상 강한 남자애가 고무장갑을 끼고 침대 쪽으로 몸을 돌리고 있다. 덜그럭거리는 게 옆집인 줄 알았는데 쟤가 설거지하는 소리였나보다. 헉 시발. 황급히 이불을 들춰보자 다행히 어제 입고 갔던 그대로 양말까지 신고 있다. 아무리 그래도 양말이라도 벗겨주지. 발 안 씻고 침대에 눕는 거 극혐.
"형, 이런 집에서 어떻게 살아요."
물소리 사이에 불퉁한 목소리가 섞인다. 아니, 좀 작긴 해도 대학생이 이런 집에 사는 게 얼마나 호사인 줄 아냐? 음주의 여파로 건조한 혀를 놀려 한마디 하려고 했다. 입을 벌림과 동시에 콧구멍에서 뭐가 주륵 흐르길래 닦아냈더니, 피다. 이불이 더럽혀지기 전에 총알처럼 튀어나가서 화장실로 달려들어 갔다. 거울 속 퉁퉁 부은 얼굴 위로 쌍코피가 줄줄 흐른다. 스물 한 살 밖에 안됬는데 어제 그거 조금 놀았다고 쌍코피가 터지냐. 에구, 술을 줄여야지. 다음 주에는 헬스라도 등록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여전히 고무장갑을 낀 채로 화장실 문에 삐딱하게 기대선 애가 말한다.
"형, 집에 귀신이 너무 많아요."
아니, 얘가 미쳤나! 어제부터 왜 자꾸!
그댈 지키는 기사도
산초
성화가 하는 양을 지켜보던 애는 다시 몸을 돌려 싱크대로 향한다. 어제 설거지 다 하고 나갔는데 뭘 저렇게 씻는대. 휴지로 코를 틀어막고 화장실 밖으로 나간다. 싱크대를 들여다보자 집에 있는 식기란 식기는 다 거품이 칠해져 있다. 양이 얼마 되진 않지만 남의 집에서 이렇게 대공사를 벌려야 하는 걸까. 얘 진짜 이상해.
“미안, 너 이름이 뭐더라.”
“산이요. 최 산.”
“아, 최산. 산아, 뭐 하는 거야. 이걸 네가 왜 다 씻어.”
“뭐가 너무 많이 묻었어요.”
“묻긴 뭐가 묻어! 내가 설거지를 얼마나 깨끗하게 하는데!”
빼액 소리를 지르자 질린다는 표정으로 성화를 돌아본다. 어깨를 건너다보더니 한숨을 푹 내쉰다. 더러운 거 말고 삿된 게 묻어 있어서 그래요. 그냥 침대에 앉아 계세요.
“삿된 거 뭐. 귀신? 그래서 뭐 어쩌라고. 굿이라도 하라는 거야?”
신경질적인 말이 나간다. 숙취 때문에 머리도 아프고, 속도 아프고. 컨디션 너무 안 좋은데 어제 처음 본 후배놈은 자꾸 귀신들렸다고 하지, 집에 귀신이 산다고 하지. 별 미친 새끼 다 보겠네.
“그럴 돈은 있으시구요? 일단 그냥 저기 앉아 있어요. 저 이것만 끝나고 말씀드릴게요.”
최산이 지친 티를 팍팍 낸다. 부탁도 안 했는데 세간살이 전부 꺼낸 사람이 누군데. 박성화는 억울한 가슴을 붙잡고 침대로 향했다. 다시 앉으려다가 생각해보니 너무 찝찝해서 이불과 매트리스 커버, 배게 커버를 다 벗겨냈다. 쟤 저거 하는 동안 빨래 돌리고 샤워해야지. 세탁기에 침구를 집어넣고 속옷과 편한 옷을 챙겨 화장실로 들어갔다. 샤워기를 왼쪽 끝까지 돌리고 머리꼭지부터 적셨다. 차가운 물이 몸에 닿으니 숙취도 좀 내려가는 기분이다. 물기를 꼼꼼히 닦아내고 챙겨 들어온 옷을 입는다. 눅눅한 곳에서 옷 입는 거 진짜 싫은데. 집 안에 처음 보는 놈이 있으니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이십 분 전보다는 상쾌한 마음으로 문을 열었다.
“형. 이리 와서 앉아봐요.”
매트리스 위에 앉아있는 최산이 대충 제 옆을 손바닥으로 탕탕 치며 앉으라고 한다. 표정이 너무 심각해서 저도 모르게 주눅이 든 성화는 잰걸음으로 다가가 궁둥이를 붙였다.
“형. 앞으로 저랑 같이 다니셔야 할 것 같아요.”
“아, 뭐야. 나랑 친해지고 싶었어? 그냥 그렇다고 말을 하지.”
쑥스러운 듯 고개를 숙이고 볼을 긁적이는 박성화의 어깨 주변을 다시 훑은 최산이 마른세수를 한다. 아. 이 인간을 어떻게 하지.
“1월 말에 이사 들어오셨나 보네요.”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조용히 해봐요. 이사 온 날 수도관 터졌죠.”
“그날 마이너스 15도였어.”
“2월 초에 계단에서 굴러서 손목 접질렸죠.”
“내가 폰만지다가 마지막 계단 못 봐서 그래.”
“2월 둘째 주에 오토바이에 살짝 치였고.”
“그건 그 새끼가 운전을 좆같이 해서 그랬고.”
“저번 주에 키우던 강아지 죽었죠.”
“아니, 그걸 네가 어떻게 아냐고…”
“어떻게 알긴요! 지금 집안에 귀신이 득시글거리는데 저한테 못 말해서 안달이에요!”
최산이 바락바락 열을 낸다. 뭐, 더 말해 드려요? 이 정도 되니까 박성화는 슬슬 겁나기 시작했다. 애들이 용한 점집 가면 문 열자마자 어쩌고저쩌고 입을 턴다더니 약간 지금이 그 바이브다. 저에게 일어났던 이런 일들이 다 귀신이 한 짓이라고 생각하면 소름 끼치는데 문득 의문이 드는 것이다. 왜? 왜 나한테만 그래?
“일단 형 기운이 귀신이 되게 좋아하는 기운이에요.”
“나 기 안 약한데….”
“약하고 자시고의 문제가 아니고요. 그냥 형 기운이 맛있는 거에요.”
“아… 어…”
“그리고 이 집터가 안 좋아요. 골라도 뭐 이런 집을 골랐대.”
“여기 진짜 싸… 보증금 100만 원에 월세 20이야.”
미치겠다는 듯 가슴을 팡팡 친다. 으휴! 으휴! 싼 데는 다 이유가 있다고 부모님이 안 가르쳐줬어요? 부모님 두 분 다 멀쩡하게 살아계시네! 가족도 화목하고! 박성화는 울상이다. 어떡해. 귀신들이 진짜 다 말해주나 봐.
“야, 진짜 미안한데, 그런 거 인제 그만 말해. 나 진짜 무서워…”
“봐요, 형. 여기 위치가 맨 끝 방이잖아요. 벽 하나가 아예 텅 빈 거잖아요. 이런 데를 귀신들이 좋아해요. 그래서 많이 모여 있단 말이야. 근데 거기 막 냄새가 엄청나게 좋은 영혼이 하나 들어 왔어. 근데 자기네가 있는지도 몰라. 막 장난치면 다 당하면서 절대 자기네 귀신들 탓인지는 몰라. 언제까지 모르나 보자고 더 심한 장난을 치고 싶지 않겠어요?”
들어보니까 말이 된다. 얼굴을 똑바로 보고 주절주절 말을 뱉는 최산의 눈을 들여다보는데 얘가 자꾸 제 뒤를 힐끔거린다. 등 뒤로 소름이 지르르 내려 죽을 지경이다. 뭔데, 누가 있는데. 누굴 자꾸 힐끔거리는데.
“이제 상황 파악이 좀 돼요?”
“산아… 그래서 나 어떻게 해야 해…”
거의 울먹거리는 성화의 손을 덥석 잡더니 말한다. 일단 이사부터 하구요. 성화는 고개를 끄덕인다. 혹시 모르니까 일단 저랑 같이 사는 거로 해요. 남이랑 같이 사는 거 싫은데… 그럼 다음 주에 버스에 치이시던가요. 눈물이 핑 돈다. 얘네는 내가 뭘 어쨌다고 그렇게까지 날 괴롭혀…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는 성화의 등을 토닥인다.
“제가 지켜드릴게요.”
얜 어디서 날 언제 봤다구 대뜸 지켜준대… 진짜 이상한 애야.
시작은 2월 중순, 대학교 전체 오티 날이었다. 학과별로 모여서 대절한 버스를 타고 간다기에 갓 성인이 된 최산은 새벽 버스를 타고 서울 땅을 밟았다. 피곤해서 죽을 것 같았는데 이놈의 서울 땅에는 무슨 사람도 귀신도 이렇게 많은지. 도저히 지하철을 탈 힘이 없어서 택시를 타고 교문 앞에 내렸다.
대충 지도를 살피고 학과 건물을 향해 걸어가는 중이었다. 앞서 가는 남자가 다섯 명은 되는 영가를 달고 걸어간다. 어깨에 올라타서 덩실덩실 춤을 추는 손목 없는 놈, 물구나무를 서서 손으로 달리는 놈, 무르팍에 달라붙은 아기, 남자보다 앞서서 뒷걸음질로 걸으며 끊임없이 주절거리는 피범벅의 여자, 등에 업혀서 몸을 자꾸 좌우로 흔들어 대는 늙은이. 아이고 저 사람 무슨 배구부라도 차리려나. 옆으로 지나치면서 약한 것들을 적당히 쫓아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빠른 걸음으로 남자의 뒤에 따라붙자 귀신 눈깔 여덟 쌍이 나를 빤히 돌아본다. 업힌 늙은이는 눈알이 파인 채다. 뭘 봐, 씹새끼들아.
저들을 알아본다는 것이 신기했던 건지, 남자에게 다가오지 말라는 건지 다섯이서 아구창을 벌리고 바락바락 지르는 소리에 귓구멍이 찢어질 것 같다. 아, 얘네 뭐가 이렇게 뚜렷해. 내가 새벽차만 안 탔어도. 벌써 체력이 방전될 것 같았기에 귀신들을 그냥 내버려 두기로 한다. 마음속으로 차 조심, 사람 조심 하세요. 대충 무운을 빌어주고 남자를 앞질러 학과 건물로 향한다. 등 뒤에서 귀신 악 지르는 소리가 안 떠나는 걸 보니 남자도 이 건물을 향해 오나 보다. 완전히 무시하기로 한다. 아는 척 안 할 테니까 제발 닥쳐주라. 다 때려치우고 따뜻한 집에 가서 눕고 싶었다.
역시나 그 남자는 같은 과였고, 끊임없이 눈앞에서 알짱거렸다. 어떻게 저렇게 살지. 검게 복슬거리는 머리에 눈도 댕그란 게 어디 가서 귀신 쓰였다는 말은 못 들었을 법한데 곁에 있는 그 다섯 명의 귀신은 최산만 보면 깩깩 소리를 질러 댔다. 얼마나 유별난지 오티 장소에 있던 지박령들이 기를 못 펴고 구석에서 우물거릴 정도로 소란을 피워 댔다. 남자는 술 박스를 옮기다가 발등을 찧고, 양파를 썰다가 손가락을 베고, 마이크 줄에 걸려 넘어지고 아주 난리가 났다. 여기 보라고 더 못된 짓을 하는 것 같았다. 그 와중에 그 사람 이름은 물어봤다. 박성화라고 했다. 이름도 좋으면서 뭐 저런 걸 달고 다녀. 집 터가 문제인가.
이렇게 있다간 2박 3일 안에 미치고 작두라도 탈 것 같아서 성화가 잠든 사이에 물구나무서서 겅중겅중 뛰는 귀신 하나를 본보기로 조졌다. 혀를 뽑아다가 모가지에 둘둘 감으니 억,억 하는 소리 밖에 못 내게 되었다. 같이 있던 귀신들이 쟤 보라면서 깔깔 넘어가기에 손바닥에 불을 놓아 밑에서부터 절절 타들어 가게 뒀다. 바삭바삭 재로 부서지는 영가를 보는 귀신들의 웃음소리가 잦아들었다. 조용히 안 하면 너네도 성불 못 하게 그냥 태워버릴 거야. 다음 날은 잘 지나갔다. 성화는 여전히 앞에서 얼쩡거려도 귀신들은 입을 다물고 최산을 본체 만체 고개를 돌렸다. 귀신들을 눈으로 좇다 보니 박성화를 너무 많이 쳐다봤다. 저런 걸 달고도 실실 웃는 얼굴이 바보같고 예뻤다. 나중에 시간이 되면 나머지 넷도 떼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개강 첫 주 금요일에 개강 총회를 한다기에 새로 사귄 동기들과 왁자하게 떠들면서 문을 열고 주점으로 들어섰다. 와, 쟤네 아직도 있어. 성화 옆에, 뒤에, 앞에 앉아서 난리를 치던 영가들이 최산이 문 열고 들어오는 걸 보자마자 입을 다문다. 성화는 이미 술이 올랐는지 발간 볼을 방긋 올리고 고개를 젖혀 숨넘어가게 웃는다. 부러 그의 대각선에 앉는다.
“안녕, 친구 이름이 모야?”
“최 산입니다.”
“마셔, 사나.”
“넵, 감사합니다.”
주사가 몸으로 치대는 건지 양쪽에 앉은 선배들한테 팔짱을 끼고 머리를 부비고 난리다. 선배들은 나름 이 사람 옆에 새내기가 못 앉게 신경 써주고 있는 모양이었다. 성화야, 너 요즘 새내기들한테 이렇게 하면 대자보 붙는다. 머가아아. 질질 늘어지는 발음이 귀엽다. 아, 저 형 짜증 나. 얘드라 나 담배 피우고 올게. 박성화가 갑자기 벌떡 일어난다. 비척비척 걸어나가는 몸에 귀신들이 금붕어 똥 마냥 매달려 따라간다. 아. 진짜 짜증 나.
적당히 시간을 두고 밖으로 나왔다. 노란 가로등 아래 서서 휘청휘청 거리는 박성화가 보인다. 고개를 푹 숙이고 담배를 피우길래 앞에 가서 섰어도 쳐다보질 않는다. 필터 끝까지 피워 꽁초를 만들고서야 고개를 든다. 머야. 발음이 질질 샌다. 귀신들이 좋다고 와하하 넘어간다. 니들 지금은 웃고 있지. 선배님 주변에 귀신 많은 거 알아요?
“서관동 일영아파트 107동으로 가주세요.”
겨우 택시를 잡아 성화를 구겨 넣었다. 일영아파트가 어디 붙었는지도 몰랐는데 굽이굽이 차를 타고 들어가는 곳은 딱 봐도 귀신 터다. 기사에게 카드를 도로 건네 받고 한숨을 푹푹 쉬며 팔 척 사내를 끌어내렸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9층에 도착하자 박성화 집을 단박에 알아볼 수 있었다. 복도 맨 끝 오른쪽 집에서 시커먼 대가리 하나가 비죽 나와 있다. 치렁치렁한 머리를 산발하고 이빨을 따각따각 부딪힌다. 옆에서 같이 걷던 귀신들이 손을 마구 휘젓는다. 하지 말라는 뜻이겠지. 문 앞에 당도하자 대가리만 빼고 있던 귀신은 아예 상반신을 죽 빼고 최산의 얼굴을 훑는다. 실핏줄이 다 터진 눈알을 휙휙 사방으로 굴린다.
누군데. 너 누군데.
“알 거 없고 비밀번호 뭐야.”
누군데. 너 누군데.
“알 거 없다고 했다. 비밀번호 뭐야.“
누군데! 너 누군데!
비린내나는 아가리를 짝짝 벌리고 소리를 지르길래 입속에 팔을 쑥 집어넣었다. 혀를 밖으로 쭉 잡아당기자 흰자를 까뒤집는다. 아브브, 아부브브. 몸을 뒤틀며 벌건 게거품을 질질 흘린다. 아니, 서울 귀신들은 원래 이렇게 말을 안 듣나? 육십킬로가 넘는 남자를 한 팔에 낀 최산은 울고 싶어졌다.
“…비밀번호 뭐야.”
“삼! 치! 릴! 리! 우리 집 비,번 삼 치릴 리!”
박성화가 갑자기 고개를 쳐들고 말한다. 삼칠일이, 삼칠일이! 목청은 뭐가 이렇게 큰지 온 복도에 쩌렁쩌렁 다 울린다. 형 내일 비밀번호부터 바꾸셔야겠네요. 키패드를 누르고 방 안으로 들어가자 헛웃음이 터진다. 화장실이며, 침대 밑이며, 커튼 뒤며, 식탁이며 구석구석에 귀신 안 붙은 곳이 없다. 누구야, 누구야. 저들끼리 웅성대며 둘을 빙 둘러싼다. 일단 취객을 침대에 곱게 눕히고 이불을 엎어 줬다. 단내 섞인 숨을 푸푸 뱉으며 자는 모습이 귀여워 볼을 살살 건드렸다.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꼼꼼하게 구경하는데 귀신들도 똑같이 눈깔을 부릅뜨고 최산을 구경한다. 거봐, 내가 집이 문제일 줄 알았어.
모습이 흐릿한 순서대로 없애고 보니 해가 중천에 떴다. 한 열 명 정도 남았다. 이것들은 여기서 죽어도 안 떠나겠다고 하는 걸 보니 지박령인 듯해서 손을 놨다. 거의 탈진한 상태가 되어 라면이라도 끓여 먹으려고 찬장을 열었더니 여긴 무슨 귀신 안 붙은 구석이 없어. 찬장을 하나씩 열면 그 좁은 데서 몸을 구겨 넣고 살던 것들이 와작작 튀어나온다. 최산의 볼 위로 뜨거운 눈물이 흐른다. 내가 저 형이 뭐가 좋다고 이 고생을 사서 해? 그래도 저 치가 삿된 거 묻은 그릇에 밥 먹는 게 싫어서 식기란 식기는 다 꺼내서 씻기 시작했다. 우우웅. 뒤돌아보자 박성화가 대충 잠에서 깼는지 침대 위에서 바르작 거린다. 설거지만 다 한 뒤에 저 사람을 앉혀 놓고 진지하게 얘기를 좀 해야겠다.
어떻게 이러고 살아요? 응, 뭐가? 박성화는 정말로 별 생각이 없는 사람이었다. 최산의 기가 워낙 강한 탓에 쌍코피를 흘리고도 그냥 에구, 술을 줄여야지. 하고 말더라. 어제 술이 떡이 되어서 껴안았던, 사지 멀쩡한 사내를 집에 들여놓고 경계심도 없이 샤워를 후루룩 하고 나오기도 했다. 여기 앉아보라고 옆자리를 팡팡 치자 잔뜩 주눅들어서는 곁으로 오는데 젖어서 고불한 머리카락에선 물이 똑똑 흐르지, 뜨끈한 살냄새랑 바디워시 향이 섞여서 코를 간지르지. 그냥 최산만 죽을 맛이었다.
밤새도록 귀신들이 귀에 대고 조잘거렸던 일들을 줄줄이 읊어주자 사색이 된다. 영가들은 눈치도 없이 하나씩 자기가 한 일이라며 자랑스럽게 박수를 깔짝깔짝 친다.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박 터지는 소리를 내는 인간을 앞에 두고 인내심이 다 닳아버려 냅다 소리를 지르고 만다. 기죽은 토끼 마냥 눈을 까는게 또 귀여워서 귓가에 열이 훅훅 오른다. 박성화 뒤에 선 피범벅의 여자가 입 모양으로 말한다.
너. 얘. 조. 아. 하. 지.
껙껙거리며 웃음을 참는 여자를 노려보는데 박성화가 와들와들 떨면서 말을 한다. 산아. 그래서 나 어떻게 해야 해. 최산은 얼굴 가득 번지려는 미소를 겨우 잡아 누른다. 저는 형님이 이 말을 하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처음부터 저는 형님을 도와드리고 싶었거든요. 박성화의 손을 꼭 잡았다. 손에 땀 난 거봐. 귀여워.
“일단 이사부터 하구요.”
성화는 눈썹을 팔자로 떨어뜨리고 고개를 끄덕인다. 젖은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최산은 충동적으로 뒷말을 덧붙인다.
“혹시 모르니까 일단 저랑 같이 사는 거로 해요.”
“남이랑 같이 사는 거 싫은데…”
“그럼 다음 주에 버스에 치이시던가요.”
주변에서 말을 듣던 귀신들이 어이가 없다며, 자기가 언제 그런 짓을 한다고 했느냐며 언성을 높인다. 아, 조용히 좀 있어 봐. 고개를 숙이고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기 시작한 성화의 등을 토닥인다.
“제가 지켜드릴게요.”
그러려고 제가 왔어요. 시작은 짝사랑이라도 좋아요.
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