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모한다.”
전쟁을 앞두고 둘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성화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민기가 떨어지는 눈물을 커다란 손으로 닦아냈다. 붉어진 눈 주위와 코끝이 아름다웠다. 차가운 바람에 나무가 흔들리던 날이었다. 민기가 성화의 입술 위에 자신의 입술을 겹쳤다.
花郞
온 마을에 화랑을 모집한다는 얘기가 돌았다. 그 얘기에 성화는 화랑에 지원했다. 허여멀겋게 분칠하고 눈가를 붉게 칠한 화랑들이 제멋대로 돌아다니며 서로를 견제할 때 무표정으로 가만히 서 있는 성화의 옆으로 민기가 다가왔다. 민기가 옆으로 와서 성화에게 말을 걸었다.
“난 송민기. 넌 이름이 뭐야?”
“박성화.”
시끄럽게 떠드는 화랑들의 목소리 때문에 민기가 성화의 말을 듣지 못하였다. 시끌벅적한 화랑들의 목소리가 잦아든 건 화랑들의 앞에 서 있는 풍월주 때문이었다. 풍월주는 화랑들을 조용히 시켰다. 뒤죽박죽 서 있던 화랑들이 열 맞춰 섰다. 풍월주가 세속 5계를 읊었다.
사군이충(事君以忠, 임금을 충성으로 여김)
사긴이효(事親以孝, 부모를 효로 섬김)
교우이신(交友以信, 친구는 믿음으로 사귐)
임전무퇴(臨戰無退, 전투에 임해서는 물러나지 않음)
살생유택(殺生有擇, 생명을 죽일 때는 가림이 있어야 함)
풍월주가 세속 5계를 읊고 밖으로 나갔다. 몇몇 화랑들은 서로를 깔아뭉개며 싸움을 시작했다. 서로를 때리는 소리가 건물 안을 가득 채웠다. 성화가 창틀에 기대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화랑들의 같잖은 싸움에 말려들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을 바라보며 온갖 생각을 정리했다. 옆에 민기가 다가왔다.
“성화 화랑이라고 했나?”
민기의 물음에도 불구하고 성화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민기가 성화의 어깨 위로 손을 올렸다. 성화가 민기를 노려봤다. 민기가 성화의 눈빛을 보지 못하였는지 건물 안에서 싸우는 그들을 이야기 했다.
“저들은 들어봤는지는 몰라도 질 안 좋기로...”
성화가 자리를 떴다. 성화가 아무 말 없이 움직이는 바람에 성화의 어깨에 기대어 말하던 민기가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민기가 성화를 어이없다는 듯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아랫입술을 콱 깨물었다. 자존심 상했다는 의미였다. 그런 민기의 주변으로 번듯하게 생긴 화랑들이 다가왔다.
“성화 화랑. 유명해. 보통 아니래. 괜히 엮이지 마.”
민기가 그들의 말을 무시하고 넓은 보폭으로 성화에게 다가갔다. 성화는 연못 앞에 서 있었다. 민기가 성화의 옆에 섰다. 성화가 연못에서 한 걸음 떨어졌다. 경쟁을 일삼는 이곳이기에 단 한 순간도 긴장을 놓칠 수 없었다. 민기의 움직이지 말라는 말에 성화가 두려움에 몸을 돌렸다. 성화의 옷이 바람에 의해 날렸다. 민기가 성화의 눈을 바라봤다. 성화의 눈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성화가 큰 숨을 들이쉬고는 말했다.
“이곳은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곳이요. 그 누구도 단 한 순간도 긴장을 풀면 안 된다고 생각하오.”
“혼자의 힘으로 강해지기는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으신가 보오. 얇디얇은 나뭇가지 하나는 한 손가락으로도 충분히 부술 수 있지만, 얇디얇은 나뭇가지가 여러 개가 겹쳐지면 두 손으로도 부수기 쉽지 않은 것이오.”
성화가 민기를 뒤로한 채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 안에는 모두가 무리를 지어 방을 차지한 후였다. 성화가 비어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민기는 성화의 뒤를 따라 그 방으로 들어갔다. 성화가 이불 위에 앉아 얼굴에 칠해진 분칠을 옷 소매로 닦아냈다. 성화의 원래의 얼굴이 드러났다. 풍월주가 화랑들을 모았다. 풍류도의 내용을 풍월주가 세세히 읊었다.
“이번 시험에서 불통을 받은 화랑은 퇴출당할 것이다.”
풍월주가 말 한마디를 남기고 밖으로 나갔다. 많은 화랑들이 툴툴거리며 불평했다. 성화가 책을 들고 방으로 가, 책을 읽었다. 민기는 성화의 옆에 앉아 성화가 공부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민기는 얼마 가지 않아 잠이 들었다. 성화가 민기의 얼굴에 묻은 분칠을 소매로 닦았다. 허여멀건 분칠을 지우자 드러나는 선명한 이목구비에 성화가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송민기...”
성화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밖이 시끌벅적해졌다. 성화는 문을 열어 밖을 보았다. 민기는 잠에서 깨어났다. 모든 화랑들이 밥을 먹겠다고 요란스럽게 소음을 냈다. 성화는 구석진 곳에 가 밥을 먹었다. 민기는 그의 앞으로 와서 밥을 먹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민기의 주변에는 항상 사람이 많았다. 성화의 주변에는 민기가 항상 있었다. 몸을 씻을 때도 함께 했다. 성화의 주변에도 사람들이 생겼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풍월주가 준 시간이 다 되었다. 시험을 보는 성화의 표정은 여유로웠다. 반대로 민기의 얼굴에는 불안함이 가득했다. 풍월주가 종이를 걷어가 화랑들의 답지를 하나하나 읽었다.
“성화 화랑. 통.”
풍월주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머지 화랑들은 전부 불통이었다. 풍월주는 그런 화랑들을 두고 말했다.
“이번 시험에서 퇴출당한 화랑은 없다. 허나 앞으로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될 시에는 퇴출이다.”
풍월주가 밖으로 나가자 민기는 성화의 옆에 딱 붙었다.
“형. 형이랑 함께하고 싶어요.”
성화가 민기에게 징그럽다며 주먹으로 밀어냈다. 민기는 성화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성화의 얼굴에는 행복이 가득했다. 민기가 성화의 옆에서 웃었다며 장난을 걸었다. 훈련하는 시간이 다가왔다. 성화가 말 위에서 활시위를 당겼다. 중심을 잃고 성화가 말 위에서 비틀거렸다. 민기는 그런 성화에게 말 위에서 중심 잡는 법을 알려줬다. 민기 덕분에 성화는 말 위에서 활 쏘는 법을 배웠다. 곧 그들에게 그들이 이끌어야 하는 낭도들이 생겼다. 성화가 끌어내는 화랑조직 안에서 낭도는 종종 화랑을 노렸다. 강한 자들만이 살아남는 이 곳에서 종종 사람들에게 잘 의지하는 화랑들이 있었다. 그중 한 화랑인 민재가 그 예였다. 민재는 낭도들을 끌어낼 화랑으로 다섯 손가락에 꼽히던 화랑이었다. 민재의 낭도는 말을 타고 훈련받던 민재에게 활을 쏘았다. 맹독이 묻어있던 활촉이 정확히 민재의 심장 부근에 날아와 박혔다. 민재가 말에서 떨어졌다. 모든 화랑들이 놀라 민재를 바라보았지만, 민재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 일을 시작으로 낭도들은 화랑들을 노리기 시작했다. 성화도 그 목표가 되지 않았던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성화가 그 목표가 되었을 때마다 민기는 그 낭도를 어떻게든 찾아내 낭도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성화가 아끼던 낭도가 성화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민기가 낭도의 배에 단도를 깊게 쑤셔 박았다. 입으로 피 토를 하며 쿨럭대는 낭도를 보며 성화가 눈물을 뚝뚝 흘렸다. 민기는 그런 성화를 안아 방 안으로 데려왔다. 성화가 낭도의 죽음으로 눈물을 흘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성화는 화랑도에서 낙오자가 된다는 사실을 민기는 알고 있었다. 민기가 성화의 손에 붉은색의 실 팔찌를 묶어줬다. 그리고는 자신의 손목에 묶여진 보랏빛 실 팔찌를 보여줬다. 민기가 성화의 눈을 마주치며 천천히 입을 맞췄다. 성화는 민기를 밀어내지 않았다. 성화의 눈에서 떨어지는 눈물이 입가에 맴돌았다. 살짝만 닿았다 떨어진 입술이 좋았다. 민기가 성화에게 말했다.
“연모합니다.”
성화는 느낄 수 있었다. 여태껏 다른 화랑들이 성화에게 말했던 사랑과는 달랐다. 존경의 의미가 아닌 마음 깊이서부터 나오는 깊은 마음이었다. 화랑도를 이끌어 나갈 국선이 발표되는 날이었다. 풍월주의 말이 나올 때마다 긴장감이 고조되었다. 빽빽이 서 있는 화랑과 낭도들 사이에서 민기가 성화의 손을 꽉 잡았다.
“화랑도를 이끌어 나갈 국선은...”
분위기가 모두 고조되었다. 성화가 두 눈을 꼭 감고 속으로 빌었다. 풍월주가 시간을 끌다 입을 열었다.
“앞으로의 화랑을 이끌어 나갈 국선은 선우 화랑”
성화보다 민기가 오히려 더 아쉬워했다. 성화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다. 모두가 선우 화랑에게 박수를 쳤다. 단 한 명만 빼고. 선우 화랑을 아니꼽게 보던 무리의 중심이었다. 선우 화랑이 성화에게 와서 손을 내밀었다. 덕분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며 밝게 웃었다. 성화는 축하한다고 말하며 잘 부탁한다고 말했다. 성화가 이불 안으로 들어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민기가 옆에 누워 아쉽지 않냐고 묻자 성화가 이불 속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형. 열심히 했으니까 괜찮아.”
민기가 성화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성화가 민기의 손을 이불 속으로 잡아끌었다. 성화가 민기의 손에 愛를 썼다. 민기가 성화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성화가 이불 속에서 민기를 끌어안은 채 잠이 들었다. 성화가 화랑에 지원한 지 3년째 되는 날이었다. 민기가 성화를 깨웠다.
“전쟁이래요. 형. 우리 죽어서도 사랑해요. 꼭.”
“야. 그게 무슨 소리야. 우리 살아서 봐야지. 우리 꼭 행복하게 오래 살아야지.”
“형. 그럼 이겨요. 우리.”
“민기야. 우리 도망가자. 여기서 조금만 도망치면 우리 살 수 있어.”
“형. 형이 정말 아끼던 낭도 기억나죠? 걔가 형 잘 따르던 이유는 형이 도망치지 않는 게 좋아서였대요.”
“민기야... 우리 도망가자. 논두렁에 죽은 사람처럼 숨어버리자. 응?”
“성화 화랑. 세속 5계. 임전무퇴. 신라의 화랑으로. 신라의 자랑스러운 화랑 박성화 화랑으로. 가자.”
“살아서 보자.”
“마지막으로 말할게.”
“사랑해.”
전쟁을 앞두고 둘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성화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민기가 떨어지는 눈물을 커다란 손으로 닦아냈다. 붉어진 눈 주위와 코끝이 아름다웠다. 차가운 바람에 나무가 흔들리던 날이었다. 민기가 성화의 입술 위에 자신의 입술을 겹쳤다. 달콤한 사랑도 잠시 성화와 민기가 갑옷을 입었다. 화랑들이 전쟁터로 나갔다. 선우 화랑이 활시위를 당겼다. 병사의 가슴에 정확히 화살이 꽂혔다. 화살통에서 화살이 하나둘 없어질 때마다 성화의 옆에 있는 동료들이, 성화의 아래에서 훈련하던 낭도들이 하나둘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성화가 칼을 휘둘렀다. 성화의 얼굴에 피가 튀었다. 성화의 뒤로 누군가가 부딪혔다. 성화가 적군의 가슴 부근에 칼을 깊숙이 찌르고 뒤를 돌았다. 뒤에는 피를 흘리며 쓰러져있는 민기가 보였다. 민기가 성화의 얼굴을 보고 애써 미소 지었다. 성화가 민기에게 조용히 말했다.
“내가 네 몫까지 죽일게.”
성화가 마지막 남은 병사의 목을 베었다. 그리고 성화는 민기의 시체를 찾았다. 시체에 깔려 민기를 찾기 힘들었다. 시체들 사이에 손목에 매달린 피 묻은 보랏빛 실 팔찌가 눈에 띄었다. 시체들을 치워 민기를 찾아냈다. 온몸이 피범벅이 된 민기를 보며 성화가 눈물을 흘렸다. 성화가 민기의 손목에 달린 실 팔찌 풀었다. 성화가 손에 힘을 주고 잡아당겼다. 이거 왜 안 풀어져. 민기야. 성화가 실 팔찌를 칼로 끊어냈다.
“민기야. 내가 네 몫까지 꼭 살아남을게.”
성화가 손에 보랏빛 실 팔찌 쥐었다. 성화가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어 일어났다. 발을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내디딜 때마다 힘없이 숨을 내쉬는 화랑들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함께 웃고 생활하던 이들을 잃었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성화가 민기가 남기고 간 물건들을 하나둘 정리했다. 민기의 향이 묻어있는 옷들을 손에 쥐었다. 민기가 매일 제멋대로 집어넣을 때마다 성화가 옆에서 개켜둔 옷. 민기의 손자국이 덕지덕지 묻은 풍류도. 그사이 성화가 좋아하던 풀꽃이 말라비틀어진 채 들어가 있었다. 민기가 성화에게 절대로 보여주지 않은 작은 상자 안에는 잔뜩 구겨진 종이들이 가득했다. 글자 위로 먹물이 번진 종이 몇 장과 중간에 쓰다만 종이가 있었다. 가장 위에 가지런히 접힌 편지 한 장을 들어 성화가 읽었다.
愛.
사랑 애. 딱 한 글자였다. 성화가 자신의 옷을 벗어 민기의 옷 옆에 놓았다. 성화가 실 팔찌를 손목에 단단히 맸다. 저승 가는 길에 민기가 자신을 보면 민기가 알아봐달라고. 성화가 강가로 나가 손에 강물을 가득 담았다. 그리고는 손에 담긴 달을 한입에 머금고 성화가 강물로 뛰어들었다. 숨이 막혀왔다. 성화가 아래가 안 보이는 바닥을 바라봤다. 성화가 물속에서 발버둥 쳤다. 성화가 점점 가라앉았다. 성화의 눈이 감겨왔다. 어디선가 민기의 목소리가 들렸다.
“성화 화랑. 왜 여기 왔어.”
걱정스러운 말투로 묻는 민기의 모습에 성화가 민기를 향해 배시시 웃었다. 민기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성화가 마냥 행복하게 말했다. 어린아이처럼 허리를 끌어안고 얼굴을 부볐다.
“내가 달을 먹었는데 달을 먹고 너한테 왔어.”
“형. 내 몫까지 살아준다면서요.”
“숨 막혀서. 죽을 것 같아.”
민기가 성화를 있는 힘껏 밀어냈다. 망부석처럼 떨어지지 않는 성화에 민기가 성화에게 나지막하게 말했다.
“형이 살아야 나도 살지. 다음 생에는 신라의 화랑….”
민기의 말이 더 들리지 않았다. 성화가 물을 컥컥거리며 눈을 떴다. 선우 화랑이 성화를 보며 울었다. 성화가 끔뻑거리며 선우 화랑의 눈물을 닦았다.
“성화 화랑까지 가면 나는 어떡하라고...”
성화가 몸을 일으켰다. 물이라는 핑계로 성화가 눈물을 흘렸다. 성화가 돌아가면 풍월주가 성화를 한심하게 쳐다볼까 걱정했다. 하지만 풍월주는 성화를 딱 하게 바라보았다. 남은 동료라고는 선우 화랑밖에 없으니. 선우 화랑이 성화와 같은 방을 썼다. 선우 화랑이 없을 때 성화가 개켜뒀던 민기의 옷을 입고 단도를 꺼내 들었다. 민기가 쓴 편지를 손에 쥐고 단도를 심장에 찔러넣었다. 선우 화랑이 성화에게 주겠다며 생글생글 웃으며 민기가 좋아하던 과일을 쥐고 들어왔다. 문밖으로 흘러나오는 피에 선우 화랑이 바닥에 과일을 떨어트렸다. 성화의 손에 쥐어져 있던 편지가 피로 번져가고 성화의 피는 땅으로 점점 흘러갔다.
민기야, 다음 생에는 꽃이 아닌 빛으로 태어나자.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