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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사랑

와, 몰라보겠다, 종호야.

그게 이 년 만에 날 보고 형이 처음 한 말이었어요.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서는 형을 알아보고 손을 흔드는 저한테 어떻게 알아봤느냐고도 했죠.

어떻게 몰라보겠어요, 평소에는 쓰지도 않는 인스타그램 피드를 내리고 내리고 또 내려서 매일 밤같이 본 얼굴을.



언제부터였어, 종호야?

형이 한 번쯤은 그렇게 물어봐 주는 상상을 해요. 그러면 뭐라고 대답할까, 궁리하면서 시간을 보냈죠. 언제부터였다고 해야 형이 겁을 먹고 영영 도망가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저는 그게 유치원 때부터였던 거 같아요. 형이 하늘반이고 제가 풀꽃반이었을 때. 엄마의 실수로 도시락통 안에 숟가락이 없던 다섯 살짜리에게 흔쾌히 자기 숟가락을 빌려주던 일곱 살짜리한테 전 사랑에 빠졌던 거예요.

그게 제 가장 오래된 기억이에요. 그러니까 저는 제가 기억하는 한 언제나 형을 좋아한 게 되는 거죠. 저 스스로가 존재한다고 인지했던 모든 순간에, 형을 사랑한 게 되는 거죠.

형이 그런 질문을 하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그것 말고는 다른 답을 찾을 수가 없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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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격 축하해, 멋있다.

테이블 맞은편에 앉은 형이 그렇게 말하는 게 미웠어요. 저도 알아요, 이름을 말하면 누구나 아는 미국의 명문대에 합격한 게 축하받을 일이라는 건. 하지만 축하는 형한테 말고도 무수히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는 아니지만 조금은 아쉬워해 주길 바랐어요.

이 년 동안 보지 못해 이미 마음에서 흐릿해졌더라도, 우리한테는 그 전의 십팔 년이 있었잖아요. 이제 80억에 가까워지는 온 지구의 인류 그 누구도 알지 못하지만 오직 우리 둘만이 아는 순간들이 있었잖아요. 그 순간들을 앞으로 영영 만들 기회가 없다는 사실의 무거움을 함께 나누고 싶었어요.

그러거나 말거나 형은 웃기만 했죠. 차라리 형처럼 신촌에 있는 학교를 다니고 싶다는 얘기를 할 때도요. 대한민국은 최종호를 품을 그릇이 안 되지, 그런 실없는 농담이나 하면서.



언제부터 눈 한 번 안 깜짝이고 그런 농담을 하게 됐어요?

언제나 농담을 하는 건 저였잖아요. 정말 아무것도 아닌 말장난에도 형이 눈살을 찌푸려가면서까지 웃어주는 게 좋아서 그랬어요. 사실 형도 알았죠? 그러지 않고서야 그런 말도 안 되는 거에마저 하나하나 웃어줬을 리가 없잖아요.

차라리 웃어주지 말지. 차라리 눈물 나도록 매정하게 대해주지 그랬어요.



당연히 형도 알았겠죠. 그러지 않고서야 남자 둘이서 연애하는 게 자랑도 아닌데,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얘기를 제일 먼저 저한테 해 주지는 않았겠죠. 너는 내 제일 친한 동생이잖아. 묻지도 않았는데 굳이 그렇게 이유까지 붙여가면서.

제가 그때 놀랐더라면, 화를 냈더라면, 울었더라면, 뭔가 달라졌을까요?

욕이라도 해 볼 걸, 하고 생각할 때가 있어요. 계속 착한 척 굴어봤자 형은 날 좋아해 주지 않을 텐데, 결국 이렇게 될 거 욕이라도 실컷 해 볼 걸. 어쩌라고요, 씨발, 더러워. 그렇게 제 마음마저 함께 싸잡아 짓밟았더라면 조금 나았을까요?

어차피 내팽개치고 도망갈 마음이라면, 그냥 그때 아주 꺾어버릴걸. 지금도 이따금 그렇게 후회해요. 그때 제가 무슨 반응을 보였더라도 형은 그냥 웃어버리고 말 걸 알고 있으면서도 그래요.



너처럼 착한 동생이 있어서 좋아.

형은 입버릇처럼 그렇게 말하곤 했죠. 다른 애들은 동생이 대든다, 버릇없다, 그러면서 동생이랑 매일 같이 싸운다는데. 형이 그렇게 웃을 때마다 저는 따라 웃을 수밖에 없었어요.

그도 그럴 게, 너무 비겁하잖아요. 우린 정말 친형제 사이도 아닌데, 이 친형제 아닌 친형제 같은 관계를 볼모로 제가 착하게 굴기를 강요했던 거잖아요. 그런 식으로 저를 계속 바보처럼 웃게만 만들었잖아요.

형이 그럴 때마다 솔직히 화가 났어요. 제가 부서진 심장에서 피를 흘려가며 붙잡고 있지 않았더라면 형이 선선히 놓아버렸을 관계를, 친형제라는, 정신 차려 보니 맺어져 있는, 조금 소홀히 한다고 해서 망가지지는 않는 관계 따위에 우리를 비교한 거잖아요.

우리는 그런 나태하리만치 운명적인 관계가 아니잖아요. 서로를 붙잡고 놓지 않으려고 기를 써야 곁에 있을 수 있는 관계잖아요. 끊임없이 우리 사이의 관계를 재정의해야, 그리고 다시 이름 붙여야만 하는 관계잖아요.

물론 형은 제게 착한, 가장 친한 동생이라는 이름표를 붙여버리고는 거들떠보지도 않았지만, 그래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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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연락해.

왜 그런 빈말을 했어요? 제가 연락을 하고 싶었다면 진작 했겠죠. 정말 저랑 연락하고 싶은 거였다면 형이 먼저 했겠죠. 이 년 동안 둘 다 아니었는데, 갑자기 저희 사이에 한나절의 시차가 생긴다고 해서 없었던 게 생길 리가 없잖아요.

왜 그런 빈말을 해서, 제가 빈 웃음을 지어 보이게 만들어요?



형은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될 말들을 종종 했죠.

너 생각나서 사 왔어, 너 이거 좋아하잖아. 너랑 같이 가고 싶었는데 아쉽다, 이담에 꼭 같이 가자. 너는 나 안 보고 싶었어?

그 모든 말들에 대한 대답이 긍정이라는 게 더 분했어요. 저한테는 마음도 없으면서, 제 맘을 속속들이 알고 저를 이유도 없이 유인하는 것 같았죠. 사실 그게 형이 모든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라는 걸 깨달았을 때도 여전히 분했어요. 제가 형한테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서가 아니라, 형의 호의를 착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만 같았죠.

저한테 제일 먼저 자랑했던 첫 남자친구도 실은 그런 식이었잖아요.



형이랑은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어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건 둘째치고 눈빛부터 날카로웠고 말투는 거칠고 신경질적이었죠. 뭐가 그렇게 좋냐는 제 질문에 형도 바로 대답하지 못했잖아요. 나를 사랑한대, 라는, 그런 이유도 아닌 이유만 간신히 뱉었죠.

그때 막 고 삼이 된 형이 독서실에 간다는 핑계를 대고 끌려다닌 신촌의 곳곳을 기억해요. 저는 형을 따라 독서실에 간다는 핑계를 대고 정말로 형을 따라다녔죠.

왜 네가 여깄어? 형이 그렇게 묻는 게 그때는 솔직히 황당했어요. 그때 제가 형 앞을 가로막지 않았더라면, 형은 그대로 그 사람을 따라 모텔로 따라 들어갔을 거잖아요. 형이 원하는 건 내가 형을 단념하는 거였지, 그 사람에게 형을 허락하는 게 아니었잖아요. 내가 보기를, 내가 알기를 원했던 거잖아요.

그런데 왜 울었어요, 일부러 맞은 건 안 아프대도.



엄마한텐 절대 말하지 마. 형은 훌쩍이는 와중에도 저한테 그랬죠.

그런 소리는 왜 한 거예요? 내가 절대 말하지 못할 걸 알았잖아요. 제가 뭐라고 할 수 있었겠어요? 형을 좋아한 나머지 형 뒤를 몰래 밟다가 다른 남자랑 모텔에 들어가려는 걸 잡았다고? 그렇게 해서 얻는 건 형의 원망밖에 없었을 텐데도?

형이 원래 그런 인간 관계적 셈에 취약하다는 걸 잘 알면서도 속상했어요. 그러니까 형이 그 지경까지 온 것 같았죠. 저한테 직접 칼을 꽂았으면 됐을 텐데, 그런 식으로 형 스스로한테 칼을 들이밀다가 생채기가 난 것 같았어요.

정말 제가 아니었더라면, 형은 그 휘황찬란한 불빛과 술 냄새, 그리고 토사물로 가득한 모텔 거리에서 눈물로 저한테 빌지 않아도 되었을까요? 그랬다고 하더라도 제가 형을 좋아하지 않는 일은 없었을 거라고 하면, 저를 이기적이라고 욕할 거예요?

그렇게 물어볼 걸, 저는 형한테 그 별것도 아닐 욕을 먹기가 싫어서 입을 꾹 다물고 있었던 거예요. 이기적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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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형이 했던 말을 이렇게 곱씹어 볼 때가 많아요.

처음에는 내가 뭔가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닌가 불안해서였어요. 형이 실은 나를 좋아한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는데 내가 놓친 건 아닌가, 미처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무언가 있는 건 아닌가, 하고. 단어와 단어 사이를, 웃음과 웃음 사이를, 들숨과 날숨 사이를 몇 번이고 머릿속에서 반복하고 또 반복했어요.

이따금은 꿈에서 형이 한 말들을 그렇게 곱씹기도 했어요. 종호야, 사실은, 나도 너를. 그런 말들은 수백 수천 번을 곱씹어도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았어요. 눈을 뜨면 형은 너무나 완벽하게 결백한 미소를 짓고 있었으니까.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웃어 보였으니까. 결국 그 앞에서 저만 나쁜 사람이 된 거죠. 매번 그렇게.

이제는 그냥 습관이에요. 몇 번씩 본 영화의 명대사가 토씨 하나도 틀리지 않고 떠오르는 것처럼, 그냥 불현듯 그렇게 떠오르곤 해요.

그럴 때마다 처음의 감정을 그대로 느끼는 것마저, 꼭 영화의 명대사 같아요.



형은 정말로 단 한 순간도 저를 좋아한 적이 없나요?

정말 단 한 번도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지 않았나요? 정말 단 하룻밤의 잠도 설치지 않았나요? 단 한 번도 공책 귀퉁이에 어지러운 마음을 깨알 같은 글씨로 한 자 한 자 새겨보지 않았나요? 그걸 눈물로 뭉개서 지운 적은요?

제가 그 모든 걸 수십 수백 번 반복할 동안에, 정말로 단 한 번도?



사실 형이 저를 좋아한 적이 없어도 괜찮아요. 아니, 좋아한 적이 없어야 해요. 좋아한 적이 있었는데, 제가 그걸 눈치채지 못하고 스쳐 지나갔다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그랬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지금의 제가 한없이 비참해져요. 형이랑 같이 있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꿈을 잠깐이라도 꾸는 제가 싫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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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탑승 안내가 나오고 있어요. 핸드폰을 꺼내서 마지막으로 인스타그램 피드를 확인해 봐요. 형은 그사이에 바다로 여행을 갔네요. 사진에 같이 나온 건 없지만, 태그가 되어 있지는 않지만, 찍어준 사람은 형의 지금 남자친구겠죠.

이제는 모텔에 들어가려는 걸 잡아줄 수도, 잡을 구실도 없다는 게 절 미칠 것 같은 기분으로 만들 때도 있었어요. 그러면서도 인스타그램을 지우지는 못했어요. 감히 카카오톡 창에 메시지를 보낼 생각은 하지 못했죠.

실없는 농담은 역시 그 사람한테 옮은 건가요? 카페에서 골랐던 스트로베리 레모네이드 같은 음료 취향은요? 이젠 어디까지가 제가 알고 있던 형이었고 어디까지가 바뀐 형인지 모르겠어요. 실은 형에 대해 많이 아는 게 없다는 사실이 저를 슬프게도, 오히려 안도하게도 해요. 다만 그 사람이 형에게 많은 사랑을 쏟아부어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형은 곁에 그런 사람이 꼭 필요하니까요. 형이 돌려주는 사랑은 아끼고, 받는 사랑만 컸으면 좋겠어요.

형이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를 받은 건 비행기 모드를 켜기 직전이에요. 잘 다녀와, 밥 잘 챙겨 먹고. 두 개로 나뉘어 온 그 메시지에 또 생각이 잔뜩 몰려들어요. 또 그걸 형의 목소리로 잔뜩 재생하고 한 글자 한 글자를 과대 해석하고 화내고 슬퍼하다가 우는 혼자만의 밤들이 언젠가는 찾아오겠죠. 지금은 그러지 않기로 마음먹으면서 비행기로 올라타는 통로를 걸어요.

저는 지금 형으로부터 도망가는 거니까요. 형으로부터, 그런 형을 좋아하는 것으로 정의되어 온 지금까지의 저로부터 도망가는 거니까. 아주 잠시만, 태평양을 건너는 동안만이라도, 박성화 없이도 최종호가 살아 있을 수 있는지 시험해 보려고요.

그러니까 메시지는 읽지 않을 거예요. 정말 버틸 수 없어질 때까지는 절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