冥冥之志
내 사랑을 돌려주세요
현타맨

성화는 눈을 감은 홍중에게 속삭였다. 폐하, 이제 그만 제 사랑을 돌려주시지요. 눈을 감은 홍중은 아무 말도 없었다. 툭 하고 떨어지는 홍중의 손을 떨리는 손으로 잡은 성화는 밖에 서 있던 신하를 불렀다.

"황제가 승하하셨다."

차례로 들어와 울부짖는 신하들을 보던 성화는 그제야 인정했다. 홍중이 자신에게 절대로 제 사랑을 돌려주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홍중의 손이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冥冥之志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외부에 드러내지 않는다는 뜻]

성화는 홍중을 처음 보았을 때부터 마음 한쪽에 홍중을 담아두었다. 그의 나이 13살 때의 일이었다. 성화는 이미 홍중과 결혼하기로 선대 때부터 약속이 되어있었고 황태자에 걸맞은 황태자비가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걸음걸이와 말투, 그리고 습관까지 황태자비처럼 보이려 애쓰는 모습이 불쌍했는지 홍중은 종종 성화를 데리고 자신의 궁에서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눴다. 앞으로 나와 있을 때는 홍중이라 부르시게. 성화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홍중. 참으로 달디 단 이름이었다.

마저 담소를 나누고 홍중의 궁에서 나온 성화가 작게 비틀거렸다. 옆에서 같이 걷던 우영이 기겁하며 비틀거리는 성화를 부축했다. 괜찮으십니까? 단단히 허리를 붙잡고 조심스럽게 한 걸음씩 걸음을 옮긴 우영이 성화를 쳐다보았다. 핏기없이 질린 얼굴이 눈을 감았다. 우영은 가마꾼을 재촉해 자택으로 갔다. 홍중의 궁에 다녀오기만 하면 여지없이 앓아눕는 성화를 보필하는 우영은 참으로 죽을 맛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주인마님의 추궁에도 할 말이 없었다. 그저 몸이 조금 좋지 않아 그러십니다. 우영의 대답은 늘 똑같았다.

홍중이 열여섯이 되자마자 황제는 성화를 정식으로 황태자비로 맞이했다. 황태자에게는 이미 첩이 많았다. 성화는 그런 첩들을 보살피며 불편함이 없는지, 무슨 일이 없는지 살폈다. 홍중은 그런 성화를 마주할 때마다 칭찬했다. 성화는 홍중의 칭찬에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아닙니다. 제가 할 일인걸요. 그 말을 내뱉는 성화의 소매 아래 주먹 쥔 손이 자꾸만 떨렸다. 우영은 허리를 숙인 채로 떨리는 손을 마주 해야만 했다. 우영은 밤마다 성화가 울며 잠자리에 드는 것을 알았다. 가여운 우리 마마. 우영은 허리를 더욱 숙였다.

성화는 홍중이 찾아올 때마다 늘 긴장 했다. 홍중과 대화를 나누고 식사를 하고 나면 우영이 체한 성화를 위해 약을 내왔다. 이제는 적응할 때도 되지 않으셨습니까, 마마. 우영은 하얗게 질려 더욱 야위어진 얼굴을 바라봤다. 마음이 티가 내는 순간 날 내치시겠지. 성화는 우영이 내온 약을 물리곤 쓰러지듯이 자리에 누웠다. 원래 그런 분이시니까. 우영은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성화가 흐느끼는 소리는 문밖까지 들려왔다.

우영이 신신당부를 하며 조용히 하라 당부했건만 성화가 홍중이 다녀간 후에 운다는 소식은 어느새 홍중의 귀에까지 들려왔다. 홍중은 성화와 함께 궁의 산책로를 거닐며 넌지시 물었다. 비는 요즘 어떻게 지내시오. 돌아오는 답은 늘 그렇듯 평온했다. 저는 늘 같사옵니다. 대답하는 성화의 손이 떨렸다. 홍중은 떨리는 손을 붙잡고 한참을 만지작거렸다. 손이 아주 차갑소. 홍중이 말했다. 성화는 황급히 홍중에 손에서 자신의 손을 빼내어 소매 속으로 손을 감췄다. 여전히 성화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옥체가 상하실까 걱정이 되오니 이만 들어가시지요. 성화의 손이 빠져나가 허전한 자신의 손을 바라보던 홍중은 이만 들어가자는 성화의 말에 수긍했다. 궁으로 들어가 차를 내오겠다는 우영을 저지한 홍중이 성화에게 말했다. 비도 조심히 들어가시오. 몸을 돌려 궁을 빠져나가는 모습에 성화는 한 시진이 넘도록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우리도 이만 들어가자꾸나. 우영은 쓸쓸한 목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언제쯤 아시게 될까. 성화의 손을 잡았을 때 홍중의 귀 끝이 붉어지는 것을 본 우영이 울던 성화를 떠올리며 궁 안으로 들어섰다. 겨울이 시작되려는지 날씨가 꽤 쌀쌀했다.

홍중은 시간이 날 때마다 성화를 찾았다. 성화는 그런 홍중에게 시나 그림을 선물했고 홍중은 그것을 가져가 서라 안에 간직해두었다. 연모의 내용은 담지 않고 오로지 나라의 평화와 성군이 되라는 내용이 전부인 성화의 선물에 홍중은 감탄했다. 비는 참으로 재주가 많소. 성화가 살짝 웃으며 작게 부정했다. 흐뭇하게 성화를 바라보던 홍중은 차를 내오게 했다.

홍중의 입맛에 맞춘 차는 조금 떫었다. 그 대신 같이 먹는 화과자는 맛이 달아 성화는 하나를 다 먹지 못했다. 홍중은 성화의 궁으로 올 때 마다 화과자를 내오게 했다. 색이 참으로 붉었다. 화과자의 반을 가르니 새하얀 앙금이 새어 나왔다. 작은 조각을 입속에 넣는 홍중을 성화는 소리 없이 쳐다보았다. 홍중이 다녀갈 때마다 화과자를 만들어 놓으라 명하는 성화 덕에 홍중은 화과자를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성화의 입속으로 들어가는 붉은 조각을 볼 때면 목이 말라왔다.

많이 드시면 안 됩니다. 오늘따라 유난히 많은 화과자 조각을 입에 가져가는 홍중에 성화가 첨언했다. 식사는 하셔야지요. 성화는 아랫것들을 불러 상을 치우게 했다. 이미 차는 다 마신 상태였다. 홍중은 작게 헛기침을 하곤 수라상을 내오는 하인들을 바라보았다. 먼저 은수저로 독이 있는지 확인하고 기미 상궁이 먼저 수저를 들어 작게 맛보았다. 드셔도 된다는 기미 상궁의 말에 홍중은 수저를 들었다. 도라지도 좀 드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손수 도라지를 잘게 찢어 홍중의 그릇에 옮겨 담은 성화가 말했다. 도라지를 드셔야 성군이 되십니다. 홍중은 그런 성화를 보며 호탕하게 웃었다. 그렇다면 먹어야지요. 나물 쪽으로는 손도 안 대던 홍중이 성화의 한마디에 나물을 집었다. 보고 있던 하인들이 놀란 기색이었다.

우영은 상 아래로 작게 떨리는 손을 바라보며 성화가 우는 모습을 떠올렸다. 홍중이 식사를 끝내고 궁으로 돌아간 뒤 우영은 오랜만에 약을 내왔다. 고마워. 단숨에 약을 들이켠 성화는 쓰러지듯이 엎드렸다. 오랜만에 보는 쓸쓸한 얼굴이었다. 마마. 우영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성화는 답이 없었다. 조용히 밖으로 나가 문을 지키던 하인들을 내쫓은 우영은 흐느끼는 소리에 눈을 감았다. 어찌하시려고 저럴까. 겨울이 다 지나갔지만, 아직 날씨는 쌀쌀했다.

새벽 달빛에 잠이 깬 성화는 궁 안의 산책로를 서성거렸다. 우영은 덩달아 성화와 같이 궁 안에 있는 호수를 바라봤다. 달빛이 호수를 비췄다. 생각이 많은 건지 한참을 호수를 바라보던 성화가 우영을 불러 다시 침실로 들어갔다. 날이 밝아 해가 떠오를 때까지 성화의 침실의 불빛은 꺼지지 않았다. 같이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우영은 성화가 잠드는 것을 확인하고 방을 나섰다. 하얀 입김이 새어 나왔다.

새벽 사이 눈이 내렸는지 궁 안 한가득 하얀 눈이 소복이 쌓였다. 꼭 성화 같다며 조용히 자신의 방으로 걸어가던 우영은 걸어오던 홍중을 발견하곤 걸음을 멈추었다. 황태자비는 아직 자고 있느냐. 우영은 허리를 더욱 숙여야 했다. 우영의 손이 떨렸다. 마마께서는 조금 전 침소에 드셨나이다. 홍중은 그런 우영에게 알겠다며 곧장 성화의 침실로 발을 옮겼다. 꽤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홍중이 침실에서 나왔다. 잠을 자지 못해 버석하게 마른 입술을 연신 혀로 축이던 우영은 홍중이 나가자마자 성화의 침실로 들어섰다. 성화는 아직 자고 있었다. 다리에 힘이 풀려 털썩 주저앉은 우영이 성화를 바라봤다. 깨어계셨다면 좋았을 텐데. 성화가 홍중을 좋아하는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우영은 그런 생각을 하며 내려가 있는 이불을 꼼꼼히 끌어 올렸다.

뒤돌아 누운 성화의 귀가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주무시지 않으셨군요. 우영이 웃으며 말을 건넸으나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우영은 애써 웃음을 삼키곤 침소를 나왔다. 오랜만에 날이 포근했다.

황태자비로 살아온 지도 벌써 6년째가 되던 해의 겨울, 열여섯의 황태자비는 어느덧 스물둘에 황후가 되었다. 종일 찾아오지 않는 홍중을 기다리며 곱게 치장을 한 성화는 예전처럼 소리 내 울 수 없었다. 성화가 잠시 밖으로 나가 있으라 명하면 우영은 하인들을 이끌고 저 멀리서 노래를 불렀다. 성화가 흐느끼는 소리는 밖에서 불리는 노랫소리에 묻혔다. 그것도 잠시 눈물을 그치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곧게 허리를 펴고 보내지 못할 편지를 썼다. 친애하는 홍중에게. 편지는 결국 성화의 손에 재가 되어 흩날렸다. 편지를 쓰는 날이면 성화는 우영에게 다과를 내오라 했다. 먹지도 않을 빨간 화과자는 조각나 짓뭉개 졌다. 차 한 모금도 마시지 않고 다시 치우라고 명하는 성화의 표정이 울고 있지는 않은지 우영은 늘 확인했다. 우는 것이 더 좋아 보일법한 얼굴빛에 우영은 하인들을 물렸다.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홍중이 성화를 찾아올 때면 성화는 늘 그렇듯 빨간 화과자를 내오게 했다. 홍중이 하나를 다 먹을 즈음에도 성화의 화과자는 그대로였다. 황후. 홍중이 성화를 불렀다. 예, 전하. 성화가 예를 갖춰 말했다. 화과자를 좋아하지 않았소? 홍중은 들고 있던 화과자 조각을 입에 넣었다. 새하얀 앙금이 가득 찬 화과자는 예전과 같이 여전히 달았다. 입맛이 변했는지 요즘은 통 입에 맞지 않습니다. 성화는 조각난 화과자를 치웠다. 하나도 먹지 않은 채 그대로였다. 오늘 밤은 황후에게로 오겠소. 홍중이 말을 마치자마자 바로 일어섰다. 성화도 같이 일어서 홍중에게 허리를 숙였다. 소매 사이로 숨긴 손이 자꾸만 떨렸다.

홍중이 황후궁을 나가자마자 바쁘게 움직였다. 새로운 목욕물에 장미꽃잎을 넣고 매끈한 몸에 향유를 발라 향기를 덧입혔다. 성화는 아름다웠지만, 어딘가 모르게 생기가 없어 보였다. 우영은 치장하던 손길을 거뒀다. 우영의 손길이 멈추자 눈을 뜬 성화는 우영을 바라봤다. 우영은 홀린 듯이 말했다. 오늘도 우시는 겁니까? 주제넘은 말에 우영은 황급히 허리를 숙였다. 성화는 아무 말이 없었다. 우영은 곧장 정신 차리고 다시 성화의 얼굴에 분을 발랐다. 꼭 감은 두 눈이 금방이라도 울 것만 같았다. 홍중이 침소로 들어서고 난 후 홍중의 호위 무사들이 침소를 에워쌌다. 우영은 멀리서 침소를 바라봤다. 성화가 울고 있지는 않은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성화가 울면 홍중이 달래 주지 않을 것 같았다. 마마는 울음이 많으신데 어찌하고 계시는지 침소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겨울은 여전히 추웠다.

날이 밝고 우영이 맨 처음 본 것은 홍중에게 기대 기절한 것처럼 누워있는 성화였다. 홍중은 성화를 챙기라 명하고 손수 이불을 덮어준 후 침소를 나섰다. 땀에 젖어 곤히 자는 성화의 몸을 닦기 위해 이불을 치웠다. 성화의 몸에 붉게 찍혀있는 흔적들이 홍중이 다녀감을 의미했다. 어떤 곳은 새파랗게 멍이 들어 당분간 성화의 몸에 남아있을 것이다.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지 않는 둘의 속마음이 궁금했다. 높으신 분들이라 그런지 우영은 평생을 모셔온 성화의 속내도 알길이 없었다. 우영은 천에 물을 적셔 성화가 잠에서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닦았다. 눈이 내린 동백나무에서 빨간 동백꽃이 피었다.

황제가 새로운 후궁을 들였다는 소식에 성화는 마시던 차를 엎질렀다. 우영은 성화의 옷을 닦으며 넌지시 말했다. 마마. 성화는 우영을 물렸다. 우영과 하인들이 밖에서 노래를 부르고 성화는 오랜만에 울음을 참지 못했다. 울음을 그친 성화는 우영에게 궁궐 밖으로 나가 한 노인에게 무엇인가를 가져오라 시켰다. 글을 읽지 못하는 우영은 성화가 챙겨준 종이를 가지고 노인이 사는 곳으로 찾아갔다.

계십니까. 끼익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짙은 약 냄새가 우영을 덮쳤다. 노인에게 종이를 보여주자 노인은 그저 허허 웃었다. 후회할걸세. 한참을 종이를 들고 머뭇거리던 노인은 결심한 듯 주머니를 우영의 손에 올렸다. 우영이 그 주머니를 들고 길을 나서는 것을 보던 노인이 집으로 다시 들어갔다. 이젠 보지 못할 테지. 노인은 자신을 부축하는 아들의 얼굴에서 어릴 적 성화를 떠올리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는 눈을 뜨지 못했다. 노인의 유언에 따라 약을 모조리 태워 없애는 아들의 뒷모습에서 약 냄새가 쓰게 진동했다. 약을 다 태운 뒤 아들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산골 약방네가 노인네 죽고 아들은 다른 곳으로 떠났담서? 아들이 떠난 지 한 달 뒤에나 그런 소리가 마을에 퍼졌다. 그 소문은 옆 동네 양반집 규수가 저희 동네 한량과 결혼한다는 소식에 다시 잠잠해졌다.

우영이 주머니를 성화에게 건네었다. 다른 말은 없으셨니. 주머니를 만지작거리던 성화가 우영에게 물었다. 후회하실 거라고 하셨습니다. 우영이 답했다. 그래. 우영은 품에서 종이를 꺼내어 성화가 보는 앞에서 태웠다. 종이가 재가 되어 흩날렸다. 홍중은 그 주머니를 열어 차를 내오라 시켰다. 우영은 주머니를 소중히 가져가 정성스럽게 차를 우렸다. 가져온 주머니가 비어갈수록 성화는 자주 아팠다. 그리고 그 소식을 들은 황제가 성화를 찾아왔다. 홍중은 우영에게 차를 내오라 명했다. 눈치껏 주머니를 열어 차를 우린 우영이 다과상을 내왔다. 빨간 화과자가 질리지도 않는지 홍중은 작게 조각난 것을 입으로 가져갔다.

저를 사랑하십니까. 아무런 말이 없던 성화가 홍중을 똑바로 바라보며 한 말이었다. 홍중은 대답하지 않고 일어섰다. 저를, 사랑하십니까. 성화가 한 번 더 되물었으나 홍중은 답하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방 밖으로 나가려 하자 성화가 말했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묻겠습니다, 홍중. 끝이 떨리는 목소리에 홍중이 멈칫했다. 저를... 사랑하십니까. 성화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홍중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황후궁을 나갔다. 다 마신 찻잔을 손에 쥐고 이리저리 굴리는 성화의 모습에 우영은 자리를 피했다. 밖으로 나간 우영이 하인들을 데리고 노래를 불러도 울음소리는커녕 성화의 눈가에 물기 하나 어른거리지 않았다.

홍중이 그렇게 성화를 등지고 나간 날부터 홍중은 침소 밖을 나서지 못했다. 황궁 최고의 명의도 홍중의 병을 치료하지 못했다. 홍중은 열에 들떠 사람을 잘 알아보지 못했다. 성화야. 황후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미약해 잘 들리지 않았다. 아픈 황제 대신 황후인 성화가 국정을 다스렸다. 황제의 자리가 굳건하니 걱정하지 말라며 국정을 논하는 성화의 표정에서 황제를 걱정하는 듯한 기색이 감춰지지 않았다. 신하들은 예를 갖춰 성화에게 절을 올렸다.

홍중은 전과 다르게 성화를 곧잘 찾았다. 하지만 성화는 그런 홍중의 소식을 듣고도 황제의 침소에 발걸음 하지 않았다. 국정이 바쁘다는 이유였다. 후궁들이 매일 홍중을 뵙기를 요청했지만, 홍중은 성화만을 찾았다.

성화가 침소에서 잠을 청하려 누우려 할 때 홍중이 들어왔다. 오랜만에 정신이 든 건지 말끔한 차림이었다.

이 밤에 언질 하나 없이 무슨 일이십니까. 성화의 물음에도 홍중은 입을 열지 않았다. 순간 휘청하고 홍중의 몸이 무너져 내렸다. 성화가 황급히 다가가 홍중을 부축했다. 자신의 다리에 홍중의 얼굴을 눕힌 성화가 홍중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홍중은 자신의 얼굴을 만지는 성화의 떨리는 손을 단단히 잡았다. 성화야. 성화는 울음을 참으려 안간힘을 썼다. 네가 그랬느냐. 홍중은 성화의 손에 짧게 입 맞췄다. 울음을 참으려 입술을 깨무는 성화에 홍중이 손을 성화의 입술로 가져갔다. 흉이 지겠구나.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저를 사랑하십니까. 울먹이는 성화의 말에 홍중은 답하지 않았다. 한마디만 해주셨으면 이렇게까지 하지는 않았습니다. 절절하게 사무치는 성화의 마음에 홍중이 성화의 눈가를 닦아주었다. 그렇게 느꼈다면 그런 것을 왜 물어보느냐. 홍중이 힘겹게 말을 이어갔다. 성화는 홍중의 손을 잡아 내렸다.

그렇다면 저를 사랑하셨습니까. 홍중은 눈을 감은 채로 답이 없었다.

겨울바람이 차갑게 둘 사이를 휘감아도 춥지도 않은지 성화는 홍중의 손을 잡고 있었다.

다시 겨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