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메달
하나로백
* 올림픽 유도 및 국가대표 의료진 시스템의 현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1
“체온 잴게요”
국가대표 선수촌에서는 아프지 않아도 매주 한번씩은 의무실을 찾아가야 한다. 왜냐하면 건강상태를 확인해야 되기 때문이다. 매주 찾아오는 문진 시간. 의무실에 앉아있는 유도선수 정윤호는 선수촌 주치의인 박성화가 체온계를 가까이 갖고 올 때마다 긴장된다.
“37.3도, 윤호선수는 항상 체온이 높게 나오는 거 같아요”
“하하 또 그런가요?”
“귀만 빨간 거 보니까 아픈 거 같진 않고… 조금만 열 가라앉히고 다시 잴까요?”
“네 잠시만요”
성화가 체온을 잴 때마다 윤호의 체온은 항상 높게 잡혔다. 윤호는 왜 자신의 체온이 높게 측정되는지 알았다. 박성화를 좋아하니까. 짝사랑하는 박성화가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오니까 부끄러운 거다. 단 둘이 있는 공간에 뻔히 자신만 바라보고 얼굴 가까이 손을 가져오는 이 감각은 몇 달이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빨리 얼굴의 열아 내려가라… 윤호는 얼굴에 손 부채질을 했다. 시간이 지나니 다시 체온은 정상으로 측정되었고, 상담인지 잡담인지 모를 문진으로 이어졌다.
“컨디션은 점점 좋아져서 올림픽 가서 시차 적응만 잘하면 메달도 가능하겠네요.”
“메달이요? 제가요?”
“네. 금메달이요. 부상 때문에 못 딴 거 선수촌 사람들 다 아는 걸요.”
고등학교 때부터 유망주였던 유도선수 정윤호는 남들이 안타까워할 정도로 메달 운이 없었다. 국가대표 선발전까지는 수월하게 올라가곤 했지만 세계선수권 대회, 아시안 올림픽, 지난 올림픽까지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하여 국제 대회에서 메달을 걸지 못했다. 이번에는 달랐다. 컨디션이 매우 좋았다. 몇 년 전 아팠던 곳들도 깔끔하게 아물었고 근육통도 적었다.
그래도 윤호는 불안했다. 이렇게 큰 대회에서 받아보는 무게감이 처음이라 긴장도 되고, 생각만 해도 너무 떨렸다. 윤호가 이번 올림픽에 출전하면서 세운 목표는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놀랄 정도로 작은 수준이었다. 16강까지 진출, 이게 정윤호의 목표였다.
정윤호를 몇 년째 보고 있는 팀닥터 박성화의 생각은 달랐다. 국내 2위이자 세계 1위인 한국선수도 이기는 유도선수가 정윤호였다. 단지 부상 때문에 국제대회 메달 운이 없었을 뿐이다. 이번엔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원래 다정하게 말을 잘하는 성격의 성화이지만 지금 윤호에게 말하는 건 진심이 담긴 응원이었다.
“내기할까요? 내기 걸면 더 동기부여 될 텐데”
“성화쌤 설마 메달 내기 아니겠죠?”
“맞아요. 윤호선수가 금메달 따는 걸로 내기해요.”
돈 걸면 불법토토 되니까 소원 들어주기 어때요? 성화는 윤호에게 제안했다.
그 대신 윤호 생각에 금메달 못 걸면 박성화만 너무 유리하게 판이 짜이는 거 같다며, 또 다른 내기를 하나 더 걸었다. 올림픽 기간까지 정윤호 안 다치기. 이게 박성화가 이길 수 있는 내기 조건이었다.
윤호는 성화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좋아요. 해요.”
“소원에 박성화 금연 이런 건 말하면 안 돼요. 못 끊어서 겨우 전담 피고 있단 말이에요”
“그건 아니에요!! 다른 거 할 거예요.”
“벌써 정한 거예요? 하하하 금메달 동기부여 확실하네.”
“성화쌤도 정해놨어요?”
“저요? 음… 이제부터 생각해봐야죠.”
[똑똑]
“뒤 차례 선수 벌써 왔네. 이제 문진 끝내야 될 것 같네요. 윤호선수, 다음주 인천공항에서 봐요.”
의무실을 나오면서 윤호는 한숨을 푹 쉬었다.
“금메달이라…”
#2
윤호의 소원은 성화한테 고백해보는 것이었다.
성화를 처음 봤을 때부터 윤호는 이 사람이다 싶었다. 너무나도 자기 취향으로 잘생긴 사람, 게다가 다정한 성격과 나긋한 말투. 보면 볼수록 박성화를 안 사랑할 수가 없었다.
“너 성화쌤 앞에 있으면 얼굴 빨개지는 거 알고 있냐?”
“나도 알거든? 체온도 높게 잡혀서 성화쌤이 말해줘”
“완전 좋아한다는 티를 다 내네. 이미 성화쌤도 다 알겠다. 고백이라도 해봐”
“아 됐어. 밥이나 먹으러 가자”
윤호가 성화 근처만 가면 귀가 익을 정도로 빨개지는 거 주변에서 이미 다 봤다. 동료 선수인 민기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하는 조언에 윤호는 ‘불가능하다’라고 마음 속으로 외쳤다.
지금 고백하면 안 된다는 걸 윤호는 알고 있다. 올림픽 기간에 고백했다가 사이라도 틀어지면 건강 체크에도 지장을 줄 수도 있고, 윤호 입장에서도 멘탈이 흔들릴 수 있는 요소이다. 안 될 것이라는 거 알고 있어도 직접 차이는 건 차원이 다를 테니까.
잘 되는 엔딩은 왜 생각하지 않냐고? 몇 달 전에 윤호가 들은 게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박성화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그날 윤호는 진천선수촌에서 훈련을 마치고 동료들과 함께 선수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있었다. 선수촌에서 식사를 할 때 윤호는 살짝 기대하는 편이다. 선수촌에 있는 모든 사람은 회식이 있거나 약속이 있지 않은 한 이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의무실에서 일을 하는 성화도 이곳에서 밥을 먹는다. 즉, 식사 시간은 성화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식당에 들어갈 땐 없었던 성화가 자신이 자리를 잡고 앉고 나니 입구에서 들어오는 게 보였다. 아 오늘도 성화쌤은 여전히 잘 생겼네. 성화의 얼굴을 보니 밥이 더 꿀맛이 되는 것 같았다. 식판에 한가득 음식을 배식받은 성화가 자신의 쪽으로 걸어온다. 제발 얼굴 볼 수 있는 위치에 성화 쌤이 앉을 수 있게 해주세요 하고 윤호는 속으로 빌었다. 그러면 밥 먹으면서 힐끔힐끔 쳐다볼 수 있으니까.
윤호의 희망과는 다르게 성화는 딱 윤호의 뒷자리에 위치한 테이블에 앉았다. 얼굴은 보지 못하지만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거리였다. 성화는 밥을 먹으면서 같은 팀닥터 동료인 홍중과 대화를 나누는 듯했다. 성화와 홍중이 주고받는 대화가 윤호의 귀로 꽂힌다. 그 둘의 대화가 진행될수록 윤호는 지금 옆자리에 앉아 떠드는 민기 목소리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가장 가까이 앉은 민기 이야기보다 성화의 이야기에 더 귀 기울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관심 있는 정도가 다른걸.
“박성화! 너 고백 받았다며?”
“어? 너까지 알고 있어?”
박성화가 고백받았다는 소식은 윤호도 알고 있었다. 고백한 사람이 여자 유도선수였으니까. 꽤 귀여운 얼굴과 러블리한 성격을 가진 그녀가 박성화에게 고백했고, 차인 뒤에 훈련하다가 펑펑 울었다는 거 모르는 유도선수가 없었다. 옆 구역에서 훈련하던 윤호는 심지어 그녀가 우는 걸 직접 봤다. 훈련장에서 이제 성화쌤 어떻게 얼굴 보냐고 말하며 눈물 흘리는 그녀의 모습에 윤호는 성화가 계속 솔로라는 거에 안심하면서도 한편으론 자기도 저렇게 차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 분 좀 안쓰럽던데. 너가 남자 좋아하는 거 모르고 고백 한 거잖아.”
“야 누가 들어 조용히 해”
성화 입장에선 난감한 뜬금 커밍아웃 발언이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윤호에겐 횡재였다. 그녀가 차였던 이유가 박성화가 게이였다니. 정윤호에겐 희망과 같은 소식이었다. 자신에게 찬스가 온 건가 싶어서 더 귀를 쫑긋 세웠다.
“너 운동선수랑은 잘해볼 생각 없어?”
“안 사겨”
“왜?? 몸도 좋잖아. 잘생긴 애들도 있고 아 맞다 유도하는 정윤호? 걔 피지컬도 좋고 엄청 잘 생겼... “
“다치는 거 지켜보는 거 싫어. 수입 불안정한 사람도 싫고 금메달이라도 따서 연금 잘 받는 사람이면 모를까”
윤호는 고백도 하지 않았는데 차인 느낌이 들었다. 자신의 이름이 예시로 등판하자마자 성화는 속사포처럼 왜 안되는지에 대해서 반박을 했고, 그 반박에서 자신에게 해당하는 상황이 줄줄 이어졌기 때문이다. 별로라고 말하는 조건의 남자가 지금 당신을 뒤에 앉아있는 걸 아시나요.
전신 근육을 다 쓰는 편이라 다치기 쉬운 유도. 게다가 금메달은커녕 국제대회 메달을 받아본 적이 없는 윤호. 성화가 말한 별로인 이유에 100% 해당했다.
그 말을 들은 이후부터 고백의 가능성을 반포기 했던 윤호였다.
그러다가 성화의 격려와 금메달 내기를 들으니 갑자기 생각난 것이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면 연금 무난하게 나오니까 받아주지 않을까. 그때 별로라고 말한 건 실적없이 계속 다칠 일만 있을 운동선수가 싫은 거지 정윤호가 싫다고는 안 했으니까 괜찮겠지? 싶은 생각에 정윤호는 결심했다.
금메달 따고 소원 말하라고 할 때 고백하기로.
사귀지는 못해도 적어도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건 알아줬으면 하는 거. 그게 바로 윤호의 소원이었다.
#3
정말 성화가 제안한 내기가 동기부여가 된 것일까? 시간은 흐르고 흘러 올림픽 유도 결승전에 정윤호 선수 이름이 등장했다. 모든 상황이 윤호를 도와주고 있는 것만 같았다. 몸 컨디션도 너무 좋았고, 토너먼트에서 결승까지 올라가는 대진 운도 이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윤호의 유도 스타일은 상대방이 방심하는 타이밍에 승부를 거는 것이었는데, 상대방이 흔들리는 타이밍에 제압하면 백이면 백 등을 바닥에 눕혔다.
윤호가 시합할 때마다 좋은 상대를 만난 것도 대진운에 포함되지만, 무엇보다 진짜 운이 끝까지 간다고 느끼는 게 윤호가 참여하지 않은 다른 준결승에서 세계 1~2위가 만나 대결을 했다. 윤호가 각각 1위 / 2위를 만나서 대결을 했더라면 체력을 더 소진해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에너지를 아낄 수 있는 고마운 경기였다.
결승전 당일 라커룸에서 옷을 갈아입으며 윤호는 생각했다. 이번이 금메달을 딸 수밖에 없는 유일한 기회 같다고.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되었다. 옷을 입으면서 손에 땀이 차는 게 느껴진다. 아… 긴장된다.
“컨디션 체크하러 왔어요.”
라커룸에 들어온 팀닥터는 성화였다. 결승 직전 몸 컨디션 체크해주는 성화. 관절이나 근육 상태가 괜찮은지 윤호의 몸을 이리저리 만지는 성화에 얼굴이 화끈거린다.
“다치지 말고. 원래 하던 대로 파이팅.”
“내기 잊지 말아요. 나 이기면 바로 말할 거야.”
“알았어요. 정윤호 선수. 제 내기도 잊지 말아주세요. 아프지 마.”
성화는 윤호의 어깨 두 번 가볍게 토닥이는 것으로 컨디션 체크를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 다른 경기에 참여하는 선수 컨디션 관리를 하기 위해 떠났다.
결승에 올라온 선수는 세계 2위 선수였다. 내심 윤호는 세계 1위 선수가 준결승에서 이겨서 올라오길 바랐다. 왜냐하면 세계 1위선수는 한국 선수였고, 그 선수는 윤호와 대결을 하면 항상 졌던 선수였으니까, 이길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 선수는 준결승에서 졌고, 다른 나라의 선수가 윤호의 상대로 올라왔다. 지금 만난 이 선수는 대회에서 처음 몸을 맞대어보는 선수였다. 세계 2위라는 타이틀답게 많은 시합 자료들은 있었다. 태릉에서부터 경기 스타일은 경기 영상 등을 보면서 분석을 했지만 직접 내가 느껴본 게 아니니까 어떻게 기술을 걸어야 할지 확신이 서진 않았다.
결승은 시작되고 엄청난 긴장감이 경기장을 채웠다. 세계 2위 선수도 윤호를 낯설고 어려워했고, 윤호도 마찬가지였다. 서로 기술을 언제 걸지 눈치를 보면서 체력을 소진할 뿐이었다. 2:2로 서로 추가 점수를 내지 못한 채 1분여 남짓 남은 시간. 자신도, 상대방도 점점 체력이 바닥으로 향해가는 게 느껴진다.
조급함을 먼저 드러냈던 건 윤호의 상대 선수였다. 상대가 기술을 쓰기 위해 몸의 각도를 비트는 순간 윤호는 이를 역으로 이용했다. 상대방 선수를 넘어뜨려 누르기를 시도했다. 상대방 선수는 눕혀졌고, 이대로 되었다 방심하며 무게를 실으려고 노력한 탓일까? 상대방 선수가 누운 상태에서 온 힘을 다해 업어치기를 시도했다. 윤호의 몸이 붕 떠 뒤집히고 이내 바닥에 등이 부딪치는 감각이 전해질 때 깨달았다. 아…. 졌구나.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그렇게 정윤호 선수는 유도 결승에 패배해 은메달을 획득했다.
#4
메달 단상에 서서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윤호를 보며, 언론은 처음 국제대회의 메달이라 감동스러워 우는 것이라 평가했다. 감동스러운 건 윤호가 우는 이유의 10%가 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윤호 혼자만 알고 있는 듯했다.
항상 긍정적인 윤호였기에 금메달을 놓친 것에 대한 아쉬움으로 눈물을 보이는 건 다들 예상하지 못하나 보다. 윤호는 뛰어난 선수인 게 맞지만 이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표로 정해주고 용기를 줬던 건 박성화였다. 그리고 그 박성화가 제안한 내기는 더 동기부여를 더해주었던 것이었고.
성화 덕분이라는 걸 말할 기회는 이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야만 가능했다. 자신에게 힘을 주었던 사람에게 마음을 전하지 못하는 현실감이 몰려와서, 윤호는 그 상실감에 계속 울었다.
언론 취재, 스태프 와 관계자들이 찾아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에도 윤호는 그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고, 라커룸에 혼자 짐을 챙기는 시간이 되어서야 겨우 진정했다. 지금도 코는 훌쩍이지만 이 정도만 해도 많이 진정된 편이었다.
“제가 메달 가능하다고 했잖아요.”
“어? 성화쌤”
그런 윤호에게 성화가 찾아왔다. 다른 국제대회에선 각 운동 종목 팀별로 팀 닥터들이 동행할 수 있지만, 올림픽은 국가대표 주치의들만 동행할 수 있다. 5명도 안 되는 주치의가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선수들을 다 봐야 하기에 성화는 경기 시작 전 윤호를 찾아왔다가 다시 다른 종목 경기장으로 이동하러 떠났다. 주치의 일정이 다 끝나고 나서야 윤호를 축하하기 위해 찾아왔다.
“축하는 다들 많이 했으니까 전 다른 말 할게요. 몸은 괜찮아요?”
“안 다쳤어요. 졌는데도 다친 곳도 없고 너무 열심히 안 한 티 나죠?”
“무슨 소리야. 국내 남자 유도로는 넘버원인데. 은메달 축하해요.”
성화 입에서 은메달이라는 소리가 나오자마자 윤호는 또 눈물이 난다. 앞에 있는 사람한테 하고 싶은 말도 꺼내지 못하는 현실에 너무 슬프다.
“축하하지 마요 흑… 금메달도 못 땄잖아요. 내기 건 거 망했어요”
“망하긴요. 난 내기 건 거 이겼는데? 경기 잘했어요”
성화는 윤호에게 휴지를 건네주며 윤호를 달랬다. 윤호는 눈물을 닦으며 성화의 얼굴을 봤다. 자신이 우는 이유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듯 웃고 있는 박성화의 모습. 성화의 얼굴을 보니 더 현실감이 커져만 갔다.
예전에 들었던, 성화가 홍중에게 저는 안된다고 말했던 그 음성이, 알아서 재생되는 느낌이었다. 성화에게 자신은 함께 하는 운동선수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닐 것이다.
이제 성화랑 만날 일도 한참 뒤이다. 올림픽에서 유도 일정이 끝나면 팀닥터 든 선수든 폐막식 전까진 자유시간이었다. 이렇게 의무적인 스케쥴로 만나서 잡담 나눌 일도 마지막이고, 따로 부를 구실도 없었다.
“아… 선생님은 내기 이기신 거네요. 소원 알려줘요"
성화의 소원을 윤호는 예측해본 적이 있었다. 신뢰하는 선수와 주치의의 관계. 그 수준이라면 흔한 소원이지 않을까? 따로 밥을 사달라고 하거나 국가대표 선수가 감당할 수 있을, 기분 좋게 사 줄 수준의 선물을 달라는 수준이겠거니 싶었다.
윤호는 전자이길 바랐다. 같이 밥 먹는 자리가 생긴다면 한 번이라도 더 보겠지.
“...”
"소원 아직 안 정하신 거에요?"
"아… 그건 아니에요!”
“그럼 말해줘요."
성화는 조금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윤호 선수의 소원은 뭐였어요?”
"네?"
"윤호 선수의 소원을 들어주고 싶어요. 저."
#5
“박성화! 너 고백받았다며?”
“어? 너까지 알고 있어?”
흔한 선수촌의 식사 시간. 같이 밥을 먹는 주치의 동료, 홍중은 성화에게 짓궃은 질문을 던졌다. 질문을 받은 성화는 고백 받던 당시를 회상했다.
자신에게 고백하는 여자 직원의 말을 듣자마자 떠오른 얼굴이 왜 정윤호일까. 걔였으면 고민이라도 해보지 않았을까? 자신을 볼 때마다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며 살며시 미소 지는 모습은 그녀나 윤호나 똑같았지만 느낌이 달랐다.
윤호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몰랐다. 날 좋아하나? 착각은 들긴 했다. 그런데 간혹 남자 선수들이 남자인 자신이 가까이 다가갈 때 부끄러워서 얼굴이 빨개지는 일도 있어서 확신이 들지 않았다. 세상에 게이가 얼마나 적은지 스스로 잘 알고 있었고 무엇보다 며칠 전 고백한 그녀는 제가 대하는 사무적인 다정함을 썸이라 느끼고 오해했다.
자신도 윤호에 대해서 오해할 수도 있다. 괜한 설레발과 착각을 하지 말자며 스스로 다짐 또 다짐하는 성화였다.
“너 운동선수랑은 잘해볼 생각 없어?”
“안 사겨”
“왜?? 몸도 좋잖아. 잘 생긴 애들도 있고 아 맞다 유도하는 정윤호? 걔 피지컬도 좋고 엄청 잘 생겼... “
자신이 윤호를 떠올린 걸 홍중이 아는 것일까? 홍중이 예시로 언급한 정윤호 이름 세 글자에 성화는 화들짝 놀랬다. 제 마음이 들킨 것만 같았다.
“다치는 거 지켜보는 거 싫어. 수입 불안정한 사람도 싫고 금메달이라도 따서 연금 잘 받는 사람이면 모를까”
찔려서인지 평소보다 더 격하게 아니라고 속사포로 변명을 하게 된다. 그리고 윤호의 이름을 꺼낸 홍중은 모르고 있는 듯싶었다. 홍중 뒤편에 윤호가 앉아있는 것을 성화는 알고 있었다.
이러한 연애 가십거리 이야기에서 자신이 등판하는 걸 알고, 엮으려고 하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다는 것은 꽤 불쾌할 만한 일이다. 더군다나 정윤호가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더더욱 싫겠지. 같은 성별에 신체접촉도 잦은 동료 사이이니까.
그래서 더 강한 어조로 이유를 만들어내며 부정한 것도 있었다.
조금 시간이 지났을까 유도선수들이 먹고 있는 테이블은 식사가 끝났는지 식판을 들고 일어났다. 그 안에 윤호도 포함되어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그들은 앉아있는 의자를 끄는 소리를 내었고, 성화는 그 소리에 무의식적으로 시선을 돌렸다. 순간 그 무리 안에 있던 윤호와 눈이 마주쳤다.
성화는 윤호의 얼굴을 봤다. 방금 자신이 한 이야기는 아무것도 못 들은 건지, 아니면 들었어도 자신에 대한 감정이 없는 건지 윤호의 표정은 평소에 보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사실 성화의 팩폭에 정신이 혼미해진 상태였다)
그때부터 박성화는 급속도로 윤호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매주 문진 시간에 체온을 잴 때마다 성화는 윤호에게 온도가 높다고 구박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자기 자신의 손 온도도 윤호 못지않게 높다는 걸 느끼기 시작했다. 앞에 있는 정윤호 선수가 눈치챌까봐 최대한 포커페이스 유지하며 체온을 식혀보라고 다그치며 자신의 마음을 숨기려고 노력했다.
그때 홍중에게 속사포로 말한 건 사실 자신의 이런 마음을 스스로 혼내려는 게 아니었을까? 말로 포장하는 이상형과 현실은 사뭇 다르다는 걸 성화는 인정해버렸다.
1. 다치기 싫다? 이건 맞는 말이다. 중요한 경기를 앞두면 항상 다칠락 말락 하는 정윤호를 보면 박성화의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다.
2. 수입이 불안정한 사람이 싫다? 이건 정윤호라면 타협 가능하지 않을까. 주치의도 의사다. 성화의 월급으로 외벌이 가능하다. 아껴 쓰면 되지.
올림픽 가기 전, 선수촌에서 마지막 문진 시간을 갖는 성화는 윤호의 몸 상태를 보면서 안도했다. 그리고 빌었다. 다치지만 않았으면 좋겠다고, 안 다친 채로 몸 건강하게 나와 오래오래 같이 잘 지냈으면 좋겠다고.
이런 윤호라면 어떤 메달이든 안 따도 함께하고 싶다고.
p.s.
안녕하세요. 하나로백입니다.
우선 합작을 진행해주시고 1시간 지각제출을 배려해주신 총대님께 감사하구요, 함께 섷른합작을 북적거리게 만들어주신 금손 연성러님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신 섷른러 여러분께 감사합니다.
글 소재(은메달)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이미 제목이 대왕스포이지만 안 읽은 분께는 스포일 수 있어요)
은메달은 금메달보다 한 단계 낮아 패배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전체 결과로 보면 2등이라는 높은 등수에요. 윤호에게 은메달은 소원을 이루지 못하는 결과이지만 성화의 마음을 알게 되는 기회로 쓰이기에 좋은 의미이다...를 다루고 싶었습니다.
더 궁금한 점이 있다면 언제든 @one_to_hundred 로 페잉 주세요.
빨리 합작 오픈일이 되어 다른 분들의 합작도 보고 싶네요! 다른 연성러분들은 어떻게 색을 표현하셨을지 궁금하고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