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rple Rain
방패
홍중은 보라색 우산을 들고 본가로 향한다. 비가 내리는 날에는 꼭 보라색 우산을 들어야 했다. 몇 년째 지키고 있는 일종의 의례였다. 보라색 우산에 빗방울이 떨어져 보라색 비와 비슷해진다. 그 생김새가, 온수도 냉수도 아닐 것 같이 보라색이어서 마음이 밍숭맹숭해진다.
홍중에게는 이상한 능력이 있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가끔 국지적으로 보라색의 비가 내리고 있는 걸 본다. 범위는 특정 한 사람의 반경 일 미터 정도 안이다. 그렇다고 그 사람이 언제나 보라색 비를 몰고 다니는 건 아니고, 특수한 때에만 그런 비가 내린다. 어린 홍중은 보라색 비가 자신에게만 보이는 줄 모르고 부모님과 선생님께 이유를 물어보고 다녔었다. 물론 그럴 때마다 돌아오는 대답은 그럴 리가 없다거나, 꿈을 꾼 게 아니냐는 말뿐이었다.
아까도 누군가가 보라색 비를 몰고 다닌 바람에 홍중의 바짓단 끝에 보라색 얼룩이 묻었다. 다른 사람에게 보일 리가 없지만, 타지에 살다 오랜만에 본가에 돌아온 홍중은 신경 써서 그 부분을 문질러 지운다. 그리고는 보라색 비를 쏟아냈던 몇 년 전의 기억을 여럿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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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비가 내렸다. 잃어버린 교과서를 찾느라 학교에서 늦게 나온 홍중은 학교 문밖으로 내리기 시작한 비를 보고 절망했다. 분명 아까는 비가 안 내렸는데, 홍중은 칠칠하지 못한 자신을 자책했다.
어쩔 수 없이, 우산이 없는 홍중은 집까지 달려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밖으로 나가기 전, 신발을 신은 뒤 머리 위에 체육복 상의를 뒤집어썼다. 그렇게 마음의 준비를 하고 바깥으로 발을 내딛으려던 때에,
“홍중아.”
누구의 것인지 단박에 알아차리기 어려운 목소리가 들렸다. 홍중은 뒤를 돌아보았다. 긴가민가한 기억을 더듬어 그의 이름을 생각해냈다.
“성화… 맞나?”
“기억하네.”
홍중의 부모님이 성화의 부모님을 아는지라, 둘은 어릴 때 몇 번 식사 자리에서 만난 적이 있다. 홍중은 그 뒤로 성화와 접점이 없다가, 어머니에게서 성화가 이쪽 고등학교로 전학을 올 거란 소식 정도만 들어보았었다.
“같이 쓸래?”
성화가 보라색 우산을 내밀었다. 거절하기도 애매해 홍중은 고개를 끄덕였다.
같은 우산을 쓰고 걷는 내내 성화는 홍중에게 조곤조곤 말을 걸었다. 기억을 못 할 줄 알았다는 둥, 다른 반이지만 그래도 아는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둥, 주제도 여러 가지였다. 홍중은 자신도 무슨 말을 해야 할 것 같아 고민하다 어렵사리 말을 걸었다.
“너는 뭐 하다가 지금 나왔어? 야자 짼 거야?”
“나 야자 안 해.”
“나도.”
“동아리 오디션 봤어. 춤 동아리.”
홍중은 신기해하면서도 더 이상의 질문은 하지 않았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의외였다. 아마 성화가 얌전히 어른들 말씀을 듣던 모습만 봐서 그렇게 짐작했던 것 같다.
홍중은 성화 덕분에, 어깨를 한쪽만 적시고 집에 올 수 있었다. 와이셔츠 한쪽 소매가 젖어 물에 젖은 색이 되었다. 사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홍중은 지갑에 천 원 몇 장을 더 쑤셔 넣었다.
다음 날 아침은 구름이 끼어 있었다. 홍중은 등굣길에 있는 편의점에 들러 달달한 음료수를 샀다. 어렸을 때의 취향이 그대로일지는 몰라도, 식당에서 단 음료수를 골라 마시던 성화의 모습을 고려한 선택이었다. 홍중은 학교에 도착해서야 자신이 성화의 반을 모른다는 걸 깨달았다. 어쩔 수 없이 홍중은 삼학년의 모든 반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홍중은 성화를 육 반에서 찾았다. 성화는 엎드려 있었다. 자는 줄 알았는데, 그냥 엎드려서 가만히 있는 상태였다. 홍중은 낯간지러움을 참고 먼저 말을 걸었다.
“저기, 성화야.”
성화가 몸을 일으켰다.
“어제 고마워.”
홍중이 음료수를 건넸다. 성화의 손이 음료수를 받아들었다. 얇은 손이 음료수를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아직 불을 켜지 않은 반에서 성화가 희미한 햇빛에 음료수의 이름을 비추어보았다.
“나 이거 좋아하는데. 고마워.”
성화가 환히 웃었다. 분명 어제 빗속에서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도, 성화는 몇 번 웃었던 것 같다. 그런데도 웃는 낯이 처음이라, 홍중은 자신이 어제 성화의 얼굴을 보지 않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홍중은 인사를 하고 황급히 자리를 떴다.
그날도 학교가 마칠 즈음에 비가 오기 시작했다. 홍중은 우산을 들고 오지 않아 볼멘소리하는 학생들 사이를 당당히, 우산을 들고 가로질렀다. 홍중은 얼른 집에 가야겠다고 생각하며 우산을 펼쳤다.
비는 어제보다 더 맹렬했다. 비가 우산에 떨어진다기보다는, 충돌한다는 표현이 어울릴 지경이었다. 우산을 쓰고 있었지만 워낙에 많이 내리는 비 덕에 소매 끝이 젖어 들어갔다.
“홍중아!”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 홍중은 뒤를 돌아보았다. 조금 낮은 목소리, 성화였다. 성화는 어제의 그 보라색 우산을 쓰고 홍중에게로 달려왔다.
“음료수 잘 먹었어.”
성화가 홍중을 팔꿈치로 한 번 쿡 찔렀다. 홍중은 아하하, 하고 멋쩍게 웃었다. 홍중은 머리를 굴려 다음 말을 골랐다.
“오디션 결과는 나왔어?”
“응. 붙었어.”
“오. 축하해!”
성화가 또 웃었다. 볼 한쪽이 유난히 쏙 들어가는 모양새가 신기했다. 홍중은 어쩐지 성화에게 음료수를 또 사주고 싶어졌다. 성화는 편의점에 가자는 홍중의 말을 흔쾌히 따랐다. 음료수를 하나씩 손에 들고 돌아가는 길에는 어제보다 비가 좀 탁해진 것 같아서, 홍중은 공해가 심한가 생각했다.
홍중은 집에 도착해 옷을 갈아입다 흰 와이셔츠의 소매가 엷은 보라색이 된 것을 알았다. 홍중은 옷 소매를 한참 들여다보았다. 오늘의 하굣길에는 성화도, 그 누구도 보라색 비를 몰고 다니지 않았었다. 그렇다면, 이건 홍중이 내린 비다. 홍중은 의아함도 잠시 보라색 얼룩을 지우러 화장실로 향했다.
부모님은 학교에서 공부를 더 하고 오겠다는 홍중을 굳이 말리지 않으셨다. 홍중은 성화와 말을 튼 뒤로 학교의 정규 일과가 끝나면 무용실에서 성화의 춤 연습을 지켜보며 수학 문제집을 풀었다. 수학 문제가 잘 풀리지 않으면 편의점에 가서 음료수 두 개를 사 왔다. 하나는 자신의 것, 하나는 성화의 것이었다.
춤을 추며 땀을 뻘뻘 흘리는 성화는 홍중이 사주는 시원한 음료수를 맛있게 마셨다. 성화는 얼굴에 느낀 바가 확연히 드러나는 편이라, 홍중은 항상, 꼭, 성화가 음료수의 첫 한 입을 마시는 장면을 관찰했다. 음료수를 마신 성화의 눈은 좋다는 뜻으로 동그래졌다.
장마철이 되고 날씨가 더워져도 성화는 매일 춤 연습을 했다. 본인 말로는 애초에 공부는 놓았다고 그랬다. 홍중은 장난식으로 그래도 좀 해 놓기는 하라며 춤을 추는 성화의 옆에서 수학 공식들을 읊었다. 엑스는 이 에이 분의 마이너스 비 쁠마… 성화는 키득거리며 다음 동작을 익혔다. 잠깐 음악이 멈추자, 복도 창문에 물방울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또 비 와?”
“한 이 주 동안은 매일 올걸.”
성화는 홍중의 말에 잠시 연습을 멈추고 열린 창문을 닫으러 복도로 나갔다. 무심코, 홍중은 성화의 모습을 본다. 창문을 닫는 성화의 앞에 온통 보라색 비가 내리고 있다. 성화의 손에 보라색 물방울들이 굴러다닌다. 홍중은 정신이 멍해져 성화를 잠자코 바라만 본다.
“홍중아 왜?”
성화는 그새 창문을 닫고 다시 무용실 안으로 들어왔다.
“어, 그냥. 별거 아니야.”
“뭔 일 있으면 말해!”
성화는 음악을 틀고 연습을 재개했다. 홍중도 다시 문제를 풀려 무릎 위의 수학 문제집을 내려다본다. 그리고는 또 멍해진다. 성화의 손끝에서 떨어지던 보라색 물방울이 문제집에 스며들어있었다.
홍중은 그 뒤로 자신도 모르게 성화를 관찰했다. 비가 오든 오지 않든, 보라색의 비에 둘러싸여 있든 아니든 홍중의 시선은 성화의 쪽으로 이끌려갔다. 성화는 무용실에서 느낌을 살리기 어려운 동작을 반복해본다. 홍중의 눈에 쭉 뻗은 성화의 팔이 보인다. 팔에 얇은 근육이 붙어 매끈하다. 팔이 머리 옆으로 휙 움직인다. 땀에 성화의 머리가 살짝 젖어있다. 홍중은 자꾸만 그 물기가 보라색이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비는 홍중에게 고역이 되었다. 장마철이라 비가 안 내리는 날이 훨씬 적었다. 성화는 홍중과 집 방향이 비슷했고, 홍중은 성화와 빗속을 같이 걸어야만 했다. 그렇게 같이 걷노라면 보라색 비가 흥건해져 소매를 온통 물들여놓았다. 처음 자신을 따라다닌 보라색 비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진한 색이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을 색이니 얼룩이 지는 것을 걱정하지는 않았다. 다만, 성화가 있음을 인지하면 삽시간에 보라색으로 물들어버리는 비가 원망스러웠다.
하루는, 홍중이 비가 오는 하굣길에 성화에게 물었다.
“비는 무슨 색이라고 불러야 할까?”
성화는 별 뜻 없을 법한 질문에도 곰곰이 답을 생각해보았다.
“투명은 색이 아닌가?”
“아마도.”
“그럼… 보라색?”
홍중은 성화의 대답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너도 비가 보라색으로 보여?”
“응? 그러니까, 내 우산은 보라색이니까, 우산에 떨어지면 보라색 비인 거 아닌가 싶어서... 이상한가.”
머쓱하게 웃는 성화의 대답에 홍중은 자신이 더 머쓱함을 숨기려 애를 썼다. 성화는 홍중의 반응이 낯설었는지 홍중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홍중은 성화와 살짝 거리를 벌렸다. 보라색 비의 반경이 넓어졌다. 즉, 자신도, 성화도 보라색 비를 쏟고 있었다. 홍중은 보라색 비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다 자신에게도, 성화에게도, 언제나 보라색 비가 내렸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빌었다. 홍중의 소매에는 보라색이 듬뿍 묻었다.
며칠 뒤 동아리 공연을 마치고 녹초가 된 성화는 수업이 끝난 홍중을 찾아왔다. 기말고사가 얼마 남지 않아서 공부를 거를 수는 없었다. 그래서, 늘 그렇듯 홍중은 성화와 함께 무용실에 가서 문제집을 펼쳤다. 성화는 오늘은 좀 쉬겠다면서 홍중의 옆에 앉았다. 귀에 이어폰을 꽂는 성화의 옆에서 홍중은 문제집의 젖었다 마른 부분을 만지작거렸다. 보라색으로 말라붙은 동그라미들이 주름져 있다.
홍중은 문제를 풀다 잠이 와서 정신을 차리기 위해 손을 꼬집어보았다. 그러다 툭, 자신의 어깨 위로 떨어지는 성화의 머리에 깜짝 놀라 잠이 달아났다. 성화의 이어폰에서 새어 나오는 노래가 들렸다. 홍중이 모르는 노래였다. 홍중은 어깨를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성화를 깨우지 않기엔 부족했다. 성화는 조금 뒤 눈을 뜨고 하품을 했다.
“미안.”
비몽사몽한 성화는 홍중의 사과를 한참 뒤에 알아들었다.
“내가 미안.”
“뭐가 미안해, 좀 더 자.”
“잠 깼어.”
성화는 홍중이 끄적이는 수식들을 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뭔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어.”
“가르쳐줄까?”
성화의 얼굴이 더 울상이 되는 걸 보고 홍중은 피식 웃었다.
“아 성화야, 너 무슨 노래 듣고 있었어?”
“네가 보라색 비 이야기해서 찾아봤는데.”
성화는 휴대폰 화면을 홍중의 앞에 들이밀었다. 프린스의 퍼플레인, 홍중이 태어나기도 전에 나온, 이름만 들어본 유명한 가수의 노래가 재생되고 있었다. 성화는 이어폰의 한쪽을 귀에서 빼더니 홍중의 손 위에 올려주었다. 성화의 손은 따뜻했다.
“들어볼래?”
홍중은 성화의 말에 따라 한쪽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너 노래 취향이 이랬나.”
“아니, 그냥 한 번 찾아 들은 거야.”
“어쩐지.”
홍중은 흘러나오는 노래를 즐기기는커녕 여러 생각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지금도 학교 옥상에 보라색 비가 쏟아지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부터, 나누어 낀 이어폰의 길이가 짧다는 생각, 성화가 이 노래를 찾아보았다는 생각, 성화의 손이 따뜻하다는 생각까지. 그러다 홍중은 자신의 오른쪽 무릎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진 성화의 왼손을 보았다. 홍중은 괜히 그 위에다 자신의 오른손을 얹어보았다. 이미 노래가 끝나 조용해진 무용실에서 느껴지는 건 빗소리와 성화의 시선뿐이었다. 성화가 손을 오므려 홍중의 손을 잡았다.
“너 귀 빨개졌어.”
성화의 말에 홍중은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고 마찬가지로 붉어진 성화의 귀를 보았다.
일주일 뒤, 삼학년 일 학기의 기말고사가 끝났다. 수시파였던 홍중은 생각보다 저조한 본인의 성적에 기분이 울적해졌다. 홍중은 으레 그랬듯 수업을 마치고 성화의 반으로 찾아갔다. 성화가 홍중을 보고 손을 흔들었다.
“시험 끝났는데, 오늘 연습할 거야?”
“아니. 근데 나 운동장에 체육복 두고 왔어. 같이 찾으러 가 주라.”
성화가 가방을 멨다. 홍중은 성화를 따라 운동장으로 나갔다. 성화가 체육복을 찾을 동안 홍중은 스탠드에 앉아서 손톱을 뜯었다. 겨우 고친 습관인데, 스트레스가 쌓이니 다시 손톱 근처의 살을 뜯게 되었다. 성화는 체육복을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이 잘 안 나는 눈치였다. 홍중이 척 보기에도 체육복을 놔둘 만한 곳에는 아무런 사물도 보이지 않았다.
설상가상 일기예보도 정확하지 않았다. 머리를 긁적이는 성화의 위로 하나둘씩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분명 스탠드 위에 천장을 설치한다고 했었는데, 예산을 날려 먹은 건지 실행되지 않은 덕에 홍중도 비를 맞게 되었다. 다행히 가랑비 수준이었다. 성화는 체육복을 찾는 걸 포기하고 홍중에게 달려와 홍중의 옆에 앉았다.
“어딨는지 도저히 모르겠어.”
“강당에는?”
“아까 강당이랑 무용실이랑 다 돌았는데…”
“그럼 내일 분실물함 가 보자.”
“그래.”
말이 없어진 둘의 머리 위로 보라색 비가 꾸준히 내렸다. 홍중은 가만히 앉아 앞을 바라보았다. 시야가 보라색으로 물들었다.
“힘들어?”
성화는 홍중의 기색을 살폈다. 홍중은 고개를 돌려 성화의 얼굴을 보았다. 보라색 물방울이 조금 묻어 있다.
“성적 나와서.”
“아.”
성화는 홍중을 가만히 내버려 두고 앞을 보았다. 성화의 코끝이 보라색으로 물든다. 홍중은 성화도 이 광경을 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우리의 주변에 내리는 보라색 물줄기들을 본다면, 무슨 말을 할까 궁금했다.
“성화야, 너 저번에, 비가 보라색이라고 했었잖아.”
“응.”
“네 말이 맞는 거 같아.”
“그래? 보라색 비, 예쁘겠다.”
성화가 음료수를 건네받던 손으로 입을 가리며 살짝 웃었다. 홍중은 자기 마음에도 보라색 비가 가득 들어찬 것 같아 충동적으로 하고 싶은 말을 뱉었다.
“성화야, 나 한 번만 안아줘.”
성화는 홍중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성화에게 안긴 홍중은 성화의 등이 보라색으로 물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성화를 오래도록, 온통 보라색으로 물들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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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다른 지방에 있는 대학교에 가니 자연스럽게 서로 만날 기회가 없어졌다. 듣자 하니 성화는 댄서를 준비 중인 것 같았다. 춤을 그렇게 좋아하던 성화니까, 놀랍진 않았다. 홍중은 무대 위에서 조명을 받으며 몸을 움직이는 성화를 떠올려본다. 분명 그때보다 실력이 늘었을 거고, 더 반짝반짝 빛이 날 테다. 홍중은 성화의 공연을 보고 싶어졌다.
오랜만에 돌아온 고향은 은근 많은 구석이 바뀌어 있었다. 자주 가던 가게도 없어졌고, 보도블록도 다시 깔아서 색이 달라졌다. 무엇보다, 비가 투명했다. 당연했다. 성화가 있어야 보라색 비가 내릴 거니까. 홍중은 자신의 보라색 우산을 조금씩 돌리며 걸어본다.
홍중은 편의점에서 성화가 제일 좋아하던 음료수를 산다. 맛은 여전한데 용량이 줄어든 것 같다. 상술인지, 먹는 양이 늘어나서 그런지 고민하며 밖을 걷던 때에, 저 멀리에서 익숙한 인영이 보인다. 보라색 우산을 쓴 사람이 휴대폰과 거리를 번갈아 바라본다. 길을 찾는 듯하다. 순간 홍중의 눈앞이 보라색 비로 물든다.
“성화야.”
홍중이 성화를 부른다. 성화가 길을 찾다 말고 홍중을 바라본다. 곧, 성화의 주변에도 보라색 비가 쏟아진다.
p.s.
안녕하세요! 이번 섷른 합작에 홍섷 Purple Rain이라는 글로 참여하게 된 방패입니다. 퍼플레인 커버를 듣고 상상해보았던 내용을 홍섷으로 풀어보았어요. 아직 추울 때 장마철을 담은 글을 내려니 좀 머쓱하지만, 보라색 비를 그려보며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모두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섷른 아자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