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골드
익명
박성화는 마리골드를 좋아했다. 꽃이라면 다 좋아했지만, 꽃말이 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이라면서 하루는 마리골드 화분을 사 오면서 별이라고 이름도 붙여주었다. 여름이 오면 흐드러지게 핀 마리골드 화분을 보면서 흐뭇하게 웃기도 했다. 윤호야 이거 봐 우리 별이 많이 컸지, 창가에 앉아 노란 꽃이 핀 화분과 함께 햇빛을 받는 박성화를 보고 있으면 거짓말 조금 더해 어느 게 꽃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런 말을 입 밖으로 꺼내면 부끄러워하는 것까지 전부 사랑스러웠다. 분명 박성화는 그랬다. 꽃을 좋아하는 사랑스러운 사람. 그리고 내가 사랑했던 사람.
"형, 보고 싶어요"
오늘로 이 집이 빈 지도 꼭 일 년이 지났다. 일 년 전 박성화는 400일 서프라이즈 이벤트를 한다며 단골가게에서 산 딸기케이크와 마리골드 꽃다발을 들고 오다가 음주운전차량에 치여 마지막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처음 병원에 연락을 받았을 땐 내 세상이 무너져 내려앉는 줄 알았는데, 박성화의 소식을 듣고는 끝까지 붙잡아있던 마지막 희망마저 모두 무너져버렸다. 창백한 모습으로 침대에 누워 아프다고 말도 못 하고 차갑게 식어버린 박성화는 내가 알던 박성화와는 너무 달랐다. 형 왜 누워있어요? 손은 왜 이렇게 차. 아니잖아 아니라고 말해, 나 안아줘야죠. 빨리 사랑한다고 말해줘요. 하얀 천으로 덮인 박성화의 손을 잡고는 펑펑 울었다. 이렇게라도 따뜻한 손을 잡고 싶어서. 간호사가 날 밖으로 이끌 때도 그저 눈물만 났다. 그 뒤로 일주일 동안은 정말 울기만 했다. 둘이 같이 살던 집에 박성화의 흔적이 너무 많아서, 창가에 아직도 노란 빛을 뽐내며 피어있는 마리골드와 잠을 잘 때도 침대에 배인 박성화의 향기에 한번 이제는 다시 따뜻해질 수 없는 침대 속 온기에 두 번. 밥을 먹을 때도 앞치마를 두르고 저녁을 준비하던 박성화가 생각나서, 씻을 때도 너무나도 당연해져 버린 박성화의 칫솔을 보고서. 시도때도없이 눈물이 나왔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났을 때였나 박성화가 꿈에 나왔다. 너무 울지 말라고, 너라면 분명 나보다 좋은 사람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이제 자기를 잊으라며 네가 잊지 못하면 나도 편하게 갈 수 없다고 마지막 키스라며 짧게 입을 맞추었을 때 잠에서 깼다. 꿈속의 박성화는 여전히 아름다웠고 입술의 감촉도 생전의 박성화처럼 따듯하고 부드러웠다. 그 이후 다시 박성화를 만나려 계속 박성화는 생생했던 입술의 감촉만 남겨두고는 다시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박성화를 만나려 또 일주일을 잠에 들려고 노력을 했다. 일주일하고도 하루가 지난날 잠에 들고싶은데 이상하게 새벽 3시까지 잠이 오지 않는 날, 그날 박성화의 물건들을 정리했다. 자주 입었던 옷들, 칫솔, 베게, 늘 옆에 두고 자던 인형까지. 딱 하나 꽃다발에 있는 카드가 붙어있는 마리골드 화분을 빼고는 전부 정리했다. 마리골드화분마저 없으면 박성화는 이제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을 거 같아서, 처음엔 너무 힘들어서 물을 줄 생각도 못 했었는데 한번 시들어 죽을 뻔 했을 때를 보고는 아무리 힘들어도 노란 꽃이 피는 화분에는 꼬박꼬박 물을 주었다. 그러다 문득 언젠가 박성화는 나에게 자기는 나중에 꼭 나랑 꽃을 보러 가고 싶다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이때도 마리골드 화분에 물을 주면서 말했었는데.
"윤호야 우리 나중에 꼭 같이 꽃 보러 가자"
"꽃? 지금도 보고 있잖아요. 여기 내 앞에 성화꽃"
"그게 뭐야"
내 어깨를 팡팡 치며 부끄러워하던 박성화가 당장에라도 보고 싶었다. 그때 당장 꽃을 보러 갔어야 했는데, 박성화가 꽃을 좋아하는 걸 뻔히 알면서 왜 보러 가지 않았을까 후회가 됐다. 가서 사진이라도 많이 찍어둘걸 지나간 일을 후회해봐도 야속한 시간은 되돌아오지 않았다. 일 년이 지난 지금도 길을 지나다가 작은 꽃망울이라도 보면 박성화 생각이 났다. 예전처럼 눈물이 펑펑 나진 않아도 슬프긴 했다.
텅 빈 집과 달력을 번갈아 보며 이젠 정말 박성화를 떠나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분명 박성화가 해준 김치볶음밥을 먹으며 일과를 말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일년이나 지났다. 이제 정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나갈 채비를 한 뒤 마지막까지 남겨둔 마리골드 화분을 챙겼다. 박성화의 무덤에 심어두려고, 생전에 아꼈던 꽃이니까 분명 좋아해 주겠지 싶어서. 화분과 함께 차에 타 박성화가 묻힌 곳으로 향했다. 형 잘 지냈어요? 전 형 없이 잘 못 지내겠던데, 그곳에선 행복한 거 맞죠? 이거 심어두고 갈게요 별이 기억하죠? 이제 형 잊을 거에요. 그래도 생각나면 종종 올게요 너무 서운해하진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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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마리골드는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늘따라 빛을 받으며 반짝이고 있었다. 성화형이 하늘에서 보고 있는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은 조금 편했다. 그렇게 집에 돌아와 오랜만에 펑펑 울었다, 이제 집에 박성화의 흔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어서, 정말 마지막인 거 같아서. 그렇게 울다가 지쳐 잠이 들었을 때 그렇게 보고 싶어도 오지 않던 박성화가 오랜만에 꿈에 나왔다.
"윤호야 내가 했던 말 기억 나? 마리골드의 꽃말이 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이란 거, 분명 너는 나 없이도 행복할 수 있을 거야 나는 우리 윤호 믿어 내가 항상 지켜보고 있을게 그래서 나중에 네가 나를 다시 만나면 그땐 네 이야기를 들려줘 나도 여기서 있었던 일을 말해줄게. 알았지? 그럼 나중에 만나, 꼭 나중이어야 해 알았지? 난 백 년이고 천 년이고 기다릴 수 있으니까 최대한 행복하게 오래 살다가 와 알았지? 이제 진짜 안녕이야 행복해야 해"
박성화는 끝까지 착하고 사랑스러운 모습이었다. 내가 사랑했던 그 모습 그대로 마지막 인사를 건네던 그 모습은 내가 박성화를 만나면서 본 모습 중 가장 아름다웠다. 환하게 빛나는 미소, 이러면 당분간 또 박성화 못 잊을 거 같은데. 오늘 잠은 다 잔 거 같다.
아 맞다 형. 알고 보니까 마리골드가 천수국하고 만수국 둘로 나뉘더라고요, 천수국 꽃말은 이별의 슬픔이고 만수국 꽃말이 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이래요. 알고 있었어요? 난 몰랐는데 형이 좋아하니까 한번 알아봤어요. 근데 형이 키우던 꽃, 천수국이던데요? 그래서 내가 형 죽고 엄청나게 슬펐나 봐요. 아 미안해하진 않아도 돼요 사실 나도 몰랐으니까. 그래서 만수국으로 하나 샀어요 형만큼 잘 키울 자신은 없지만 그래도 키워보려고요, 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 형도 거기선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사랑해요 성화형.
p.s.
갓생에 치여 막판에 원래 쓰려던거 갈아엎고 후다닥 썼는데 재미있으셨다면 좋겠어용.. 이번이 첫 합작이라 엉성한것도 많지만 착한 섷른러여러분들은 화 안내실거죠? 섷른러 다 착해잉.. 암튼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