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 Collab Season 3
COL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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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색은 노랑

星影

홍섷노랑

살다 보면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도망가고 싶은 그런 날이 있다. 홍중은 성화가 행복하길 바랐고, 성화는 홍중이 행복하기를 바랐다. 둘은 서로가 행복하기를 바랐다. 그게 전부였다. 이상하게 비가 많이 내리던 날, 홍중은 아파트 자전거 보관소 벽에 기대앉아 우는 성화를 봤다. 항상 보면 밝아 아픈 구석 하나 없어 보이던 아이였다. 홍중과 성화는 그전까지 접점이 없었다. 초중고를 같이 다녔지만 한 번도 같은 반이 된 적이 없어 이름 정도만 아는 아이에 불과했다. 오지랖 부리기를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었지만, 그날은 그러고 싶었다. 거세지는 빗줄기처럼 성화의 슬픔도 커졌다. 홍중이 가방에 있던 미지근해진 탄산음료를 꺼냈다. 학원 아래 편의점에서 1+1행사로 팔던 것이었다. 홍중은 다가가 캔을 내밀었다. 성화가 충혈된 눈으로 홍중을 바라봤다.

 

“앉아도 돼?”

 

홍중의 물음에 성화가 시선을 피했다. 홍중이 가방과 우산을 내려 두고 앉았다. 바닥의 차가운 온기가 엉덩이에 고스란히 느껴졌다. 성화가 소매로 얼굴을 벅벅 닦았다. 둘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냥 그날의 눈물이 빗줄기에 씻겨나가길 바랄 뿐이었다. 남들이 몰랐으면 좋겠는 일에 대해 눈물을 흘리는 것을 남들에게 들키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다. 홍중이 탄산음료 캔을 땄다. 탄산이 빠져나가는 소리가 울렸다. 홍중이 바닥에 내려둔 우산을 만지작거렸다. 언제부터 썼는지 모를 비닐우산이었다.

 

“우리 비 맞을래?”

 

별생각 없이 내던진 말이었다. 응. 나지막이 성화의 목소리가 울렸다. 둘은 굵은 장대비를 맞으며 조용히 걸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빗줄기를 맞으며 홍중이 눈물을 흘렸다. 속에 응어리진 것들이 전부 씻겨 내려가기를 원했다. 홍중이 코를 훌쩍거렸다. 그 소리에 성화가 홍중을 바라봤다. 누군가 아픈 곳을 후벼판 것처럼 눈물을 흘렸다. 뺨을 타고 내려오는 눈물이 빗줄기에 씻겨 내려갔다. 옷이 홀딱 젖었다. 눈물은 살아있기에 흘릴 수 있는 것이었다. 살아있는 것들은 전부 운다. 동물도, 사람도, 식물들도. 홍중이 우는 모습을 본 성화가 말했다. 울지마. 목소리가 젖어있었다. 홍중이 안 울었다며 웃어 보였다. 휘어진 눈꼬리는 슬픔을 담고 있었다. 눈물 아니고 빗줄기라고 홍중이 덧붙였다. 성화가 얘기하진 않았지만, 눈물과 빗물은 큰 차이를 담고 있었다. 교복이 물에 젖어 무거워졌다. 밤이 짙어질수록 비는 더 세졌고 몸이 으슬으슬 떨리기 시작했다. 둘이 자전거 보관소로 갔다. 몸에서 젖지 않은 곳을 찾을 수가 없었다. 물에 젖은 생쥐 꼴이었다. 서로의 모습을 보고 웃었다.

 

“감기 걸리겠다.”

 

홍중이 머리를 털며 말했다. 성화가 홍중이 줬던 탄산음료를 마셨다. 탄산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갔다. 홍중이 우산을 두고 가방만 집었다. 다음에 보자는 말을 남기고 둘은 각자 떠났다. 그리고 둘은 다음날 나란히 결석했다. 열감기였다. 몸이 뜨거웠다. 하루종일 온몸이 쑤시는 듯한 고통에 움직일 힘조차 없었다. 둘 다 종일 누워있었다.

 

색들은 각각 의미를 담고 있다. 빨간색은 사랑 그리고 위험을 의미한다. 보라색은 화려함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우울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리고 노란색은 희망과 행복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위험과 불안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들의 색은 노란색이었다. 희망과 행복을 위해서는 위험과 불안이 언제든 존재하는 법이다.

홍중과 성화는 그날 이후 만나는 일이 없었다. 학교에서도, 그리고 그 장소에서도. 둘은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그 장소에 왔다. 그날처럼 그 장소에 있을까 궁금했을 뿐이다. 홍중은 매일같이 탄산음료를 샀고, 집에는 매일 탄산음료가 늘어났다. 하루에 한 캔을 마셨는데 나머지 한 캔을 먹어줄 사람이 없었다. 매일 탄산음료를 먹으니 이제 탄산을 입에 대기도 싫었다. 하루하루 날이 가면 갈수록 홍중의 머릿속엔 성화뿐이었다. 이상하게 생각하면 설레었다. 열이 나지도 않은데 얼굴이 붉어지는 건 덤이었다. 그건 성화도 마찬가지였다. 학교에 있으면 홍중의 웃음소리가 종종 들려왔다. 그럴 때면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다. 아픈 것도 아닌데 이상했다. 그날 먹은 탄산음료가 잘못된 걸까? 온종일 터질 것 같이 뛰는 심장에 그 장소를 찾았다. 오늘은 홍중이 먼저 와 있었다. 홍중의 옆엔 오렌지 주스가 놓여있었다.

 

“오랜만이야.”

 

성화가 홍중에게 말했다. 홍중의 표정은 생각이 가득했다. 왜 왔어? 그때는 없던 이유가 오늘은 있었다. 보고 싶었다는 말이 목구멍에서 빠져나오지 않았다. 발끝에서부터 올라온 그 말이 목젖에 걸려 나오지 않았다. 오늘은 그때와 달리 비가 오지 않았다. 오히려 꽃들이 방긋 웃는 하늘이 맑은 날이었다. 별은 보이지 않았지만 밝고 둥근 보름달이 뜬 밤이었다. 오늘도 그날처럼 말이 없었다. 둘은 앉아서 서로를 생각했다. 바닥을 짚은 성화의 손 위로 홍중의 손이 겹쳐졌다. 손을 뗄 수도 있었지만 맞닿은 손이 따뜻해서 설레어서 움직이지 않았다. 너무 조용해서 심장 소리가 들릴 것만 같았다.

 

“좋아하는 사람 있어?”

 

홍중이 물었다. 성화는 고민했다. 있다고 하자니 좋아하는 마음이 들킬까 걱정이었고 아니라고 하자니 거짓말을 하는 것 같아서 싫었다. 몇 초간의 고민 끝에 응. 이라는 대답을 했다.

 

“나도 있어. 좋아하는 사람. 오늘 여기 온 이유가 좋아하는 사람한테 어떻게 할지 걱정돼서 온 거야.”

 

직접 말하지는 않았지만,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둘은 서로를 좋아했다. 서로 혹시나 헛다리일까 걱정되는 마음에 고백할 수 없었다. 좋아하는 사람과 못 볼 사이가 되는 것보다는 사랑을 무시하는 것이 나았다. 그러면 적어도 서로를 껄끄럽지 않게 볼 수 있으니까.

 

“바다 가고 싶다.”

 

무의식중에 뱉은 말이었다.

 

“우리 바다갈까?”

 

홍중이 말했다. 주말이 오기까지 3일이라는 시간이 남아있었다. 홍중이 우리 지금 바다 가자. 홍중과 성화가 지갑에 있는 지폐를 꺼냈다. 바다까지 가기 충분한 돈이었다. 최대한 이곳에서 멀리 떨어진 곳을 가고 싶었다. 둘은 집에 가지 않았다. 아침 첫 기차가 오기 전까지 자전거 보관소에서 앉아있었다. 가방에 든 점퍼를 덮었다. 차가운 새벽 공기를 함께 맞았다. 가진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교과서 몇 권이 든 가방과 깡뿐이었다. 휴대전화는 배터리가 없어 전원이 나간 지 오래였다. 시간이 몇 분 느린 손목시계로 시간을 겨우 확인했다. 둘은 무작정 기차에 탔다. 나란히 붙어 앉아 바다로 갔다. 홍중과 성화는 또 결석했다. 이른 아침부터 탄 기차 안은 조용했다. 서로에게 기댔다. 둘은 계획 없이 길을 떠났다. 이대로 시간이 멈추는 것도 좋고, 이대로 세상이 망하는 것도 좋았다. 둘은 낯선 거리를 걸었다. 저 멀리 사람들 너머로 들리는 파도 소리를 찾아 걸었다. 둘은 손을 꼭 붙잡았다. 믿을 곳은 오직 서로뿐이었다. 붙잡은 손으로 전율이 흘렀다. 잔잔하게 타고 올라오는 전율이 서로를 향한 마음을 더 부풀어 오르게 했다. 오후가 돼서야 바다에 갈 수 있었다. 모래 위에 앉았다. 고운 모래가 옷 틈 사이로 밀려 들어오는 것 같았다.

 

“우리 괜찮을까?”

“몰라. 안 괜찮겠지?”

 

말이 없었다. 걱정이 있을 때 서로를 찾아갔는데 이젠 서로 있어서 고민이 생겼다. 불안 속에서 찾아온 사랑은 노란색이었다. 노란색 하트는 좋아함과 우정, 행복을 뜻한다. 그들의 사랑은 노란색이었다. 행복했고, 좋아했고, 우정에 가로막혀 좋아하는 마음을 고백할 수 없는. 해가 지평선 너머로 지고 있었다. 너무 늦기 전에 돌아가야 했다. 홍중이 지는 해를 뒤로 고백했다.

 

“나 너 좋아해.”

 

지금 아니면 다시는 말할 수 없는 말이었다. 그냥 좋아한다는 말 한마디 뿐이었는데 세상이 무너지듯 힘들었던 모든 일이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눈물이 흘렀다. 나도. 그 한 마디가 너무 힘들었다. 이 말을 해야 완전히 사라질 응어리 들을 어찌할지 몰랐다.

 

“나도.”

 

홍중과 성화는 집에 가는 기차 안에서 도란도란 수다를 떨었다. 둘이 만난 이래로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눴다. 둘은 바다에 갔다 온 후로 자전거 보관소에 가지 않았다. 그곳은 아마 다른 힘든 누군가가 차지할 것이다. 행복을 위해 불안과 위험이 존재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이것이 그들의 사랑이 노랑인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