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색무취의 그대
킷캣
“이름은?”
“김홍중.”
“생년월일은?”
“1998년 11월 7일.”
박성화는 아무것도 적은 것이 없는 백지에 홍중이 말한 답을 적었다. 성화는 쓱 주변을 둘러보았다. 홍중과 성화처럼 둘씩 짝을 지어 마주 보고, 서로에 관하여 묻고 답하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문답을 하는 것이 아니라 수다를 떠는 아이들도 있었다. 성화는 다시 홍중을 보았다. 홍중은 그런 성화를 향하여 미소지었다. 성화는 그 미소의 의미를 몰라야 했다. 성화는 인간 최초로 의도치
않게, 인간의 형태인 ‘신’을 인터뷰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
홍중을 인간의 ‘형태’라는 표현으로 설명하는 이유는 굉장히 단순하지만, 복잡하다. 김홍중은 인간이 아닌 신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신이 자신들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을 거로 생각하는데, 완전히 틀린 생각이다. 신은 어떠한 형태를 띠지 않았다. 그저 ‘빛’으로 존재하며, 세상을 보살폈다. 빛 속에서 생명을 창조하였고, 생과 사를 관장하였다. 신은 이치에 맞게 세상을 운영하였다. 각자 고유의 색을 가지고 사는 생명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면서 종종 간절한 기도도 한 번 들어주고, 그렇게 살았다.
이렇게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신이 신체를 가지고 지상에 발 디딘 것은 순전히 한 인간 때문이었다. 모든 생명은 자신의 색을 지니고 살았다. 악하다 해서 검은색이 아니었고, 생각이 많아서 다채로운 빛깔을 지닌 것도 아니었다. 신은 색의 근원, 빛 그 자체라 모든 생명체의 색이 보였다. 지구에서 호흡하고 심장이 뛰는 한, 모든 생명체에게 고유의 색이 있었다. 그것이 신이 창조한 많고 많은 이치 중 하나이고, 핵심이었다. 결국 그 색을 부여할 수 있는 것은 신이라는 빛, 그 자체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핵심 이치에 균열이 발생하였다. 신도 지나칠 뻔할 정도로 작은 균열이었다. 하늘을 내려다보면서 겨우 찾은 어긋나버린 생명이었다. 색이 없었다. 어떠한 빛깔을 띠지 않았다. 분명 그 생명을 만든 건 홍중 자신이었다. 인간의 표현을 빌려 보자면, 자신의 손끝에서 나온 생명체였다. 자신이 창조한 생명체들은 모두 고유의 색을 가지고 있었다. 태어났는데 색이 없는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세상의 이치에서 엇나간 존재. 색이 없으면, 생명으로서 일생을 다 하였단 뜻이었다. 죽거나, 설령 살아도 죽기 직전의 모습으로 어딘가 이상이 있어야 했다. 그러나 저 인간은 멀쩡히 일상을 살고 있었다.
신은 호기심이 많았다. 문제가 발생하면 원인을 찾아야 했고, 원인을 기반으로 해결책을 모색해야 했다. 자신이 만든 세계가 저런 작은 균열과 오류로 무너질 수는 없었다. 저 무색의 인간을 직접 눈으로 보고 알아야겠다. 왜 색이 없고, 어떻게 색을 돌릴지를 말이다. 그렇게 신은 인간의 형태를 빌렸다. 인간의 세계에 잠깐이라도 섞여 살기 위하여 외관을 인간의 규칙에 맞게 꾸몄다. 하얀 피부, 큰 눈, 오똑한 코, 인간에게 매력을 끌 수 있는 요소, 인간과 어울려 살 수 있는 목소리……. 그렇게 꾸미고 무색의 인간이 사는 대한민국 서울에서 섞여 살기 위하여 한국어를 입 밖으로 내뱉었고, 이름도 지었다. ‘김홍중’이라는 있을 법하지만, 개성 있는 이름으로. 그렇게 준비를 마치고 신은 지상에 내려왔다.
그 사람을 만나기까지 어려운 것은 없었다. 홍중은 고등학교로 전학을 왔고, 그 사람과 같은 반이 되도록 자신의 힘을 조금 섰다. 인간의 모습을 했다고 신의 힘이 사라질 리가 없었다. 춘추복을 입는 10월 초 홍중은 드디어 숨을 쉬는 생명이 각자의 색을 뽐내는 다채로운 2학년 3반의 교실에서, 어떤 색도 가지지 않은 박성화를 처음 만났다.
-
“좋아하는 건 있어? 그, 취미 같은 거.”
홍중은 저번 주 통성명과 생일만 알고 어색한 침묵으로 보낸 50분의 시간을 만회하고자 성화에게 좀 더 적극적으로 질문하였다. 성화는 홍중을 묵묵히 보다가 대답하였다.
“너는?”
홍중은 역으로 질문하는 성화의 말에 음, 하고 고민하였다. 홍중은 평생 취미를 가진 적은 없지만, 자신이 하는 일들이 싫은 적은 없었다. 이곳으로 온 이후부터는 집에서 재스민을 키우는 데 열중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홍중은 성화의 질문에 명쾌히 대답하였다.
“나는 무언가를 돌보는 게 재밌더라. 재스민 같은 거 키우고 그런 거 있잖아.”
너는 어때, 성화야? 홍중은 다시 성화에게 질문하였다. 한참 동안 고민하다가 성화는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답하였다. 글쎄. 잘 모르겠어.
-
어쩌다 홍중과 성화는 서로를 캐묻게 된 것일까. 이것은 홍중의 ‘신의 뜻’으로 한 일이 아니었다. 학교의 뜻이었다. 매주 수요일 7교시 진로 시간은 원래 자습 시간으로 보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이 학교 학생들이 진로 시간에 아침에 못 잔 잠을 보충하거나, 배고픈 배를 잡고 매점에 가거나 떠들기만 하였다. 결국, 선생님들은 진로 시간의 활용 여부에 관하여 회의를 하였고, 이 버리는 시간을 생활기록부에 한 자라도 더 적는 시간으로 만들자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하여 매주 수요일 7교시는 반 아이들은 각자 2명씩 짝을 지어 서로에 관하여 인터뷰를 하는 시간이 되었다. 학기 말엔 이렇게 주고받은 질문과 답을 정리하여 발표하는 시간을 가짐으로써 생활기록부를 채우는 활동을 하나 더 하는 것이었다. 이 활동에 대한 내용을 담임에게 들었을 때, 홍중은 성화와 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더 알고 싶었다, 아니 더 알아야 했다. 왜 박성화라는 인간은 색이 없는지. 세상의 이치에서 완전히 어긋난 생명체였다. 이것이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신인 자신도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빨리 원인을 규명해야 했다. 그러기 위하여, 홍중은 성화를 더욱 자세히 알아야 했다. 담임의 말이 끝나고, 아이들이 하나둘 자신과 함께 인터뷰할 사람을 찾으려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그 때 홍중은 휘적휘적 성화의 자리에 걸어가 명료하게 말하였다.
“너, 나랑 할래?”
그리고 성화는 그 제안을 거부하지 않았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좋아, 하고 대답하였다. 그렇게 둘은 매주 수요일 7교시, 창가에 붙어 있는 성화의 자리에서 백지 2개를 맞대고 인터뷰를 하기 시작하였다. 일주일에 한 번 둘은 서로를 마주 보고 묻고 답하였다. 누군가는 그냥 담소를 나누거나, 빨리 질문 몇 개를 해치워버리고 자습을 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그러나 둘은 누구보다 알차게 50분을 서로를 알아가는데 할애하였다.
-
“너는 내가 궁금하지 않니?”
홍중이 성화에게 조금 다른 결의 질문을 던졌다. 늘 인터뷰를 하면서 질문을 하는 건 홍중이었다. 성화가 질문하는 방식은 늘 같았다. 홍중이 질문한 것을 ‘너는 어때?’로 받아치는 것뿐이었다. 물론 홍중의 질문은 끊임없이 나왔다. 그 질문의 본질은 세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질문이었다. 박성화는 왜 무색무취인가를 파악하기 위한 작업이었다. 질문을 쏟아내던 홍중은 문득 질문에 대답하거나 역으로 자신에게 물어보는 것 빼고 말을 하지 않는 성화 자체에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성화에게 물어보았다. 자신에 관하여 물어보라고. 인간의 모습으로 변장한 신에게 한 번 질문해 보라고. 그 말에 성화는 홍중을 보았다. 아무런 모양도, 색도, 냄새도 없는 시선을 홍중에게 건넸다. 홍중은 시선이 따갑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계속되는 성화의 관찰에 홍중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종이에서 펜과 손을 뗀 지는 오래였다. 그냥 그 시선을 받아냈다. 그러나 성화는 약 7분간의 관찰 끝에 홍중에게 아무것도 궁금하지 않다고 대답하였다. 그리고 성화는 그 대답에 첨언하였다.
"미안, 사실……. 내가 관심 있는 게 없어."
"......."
“나에게도 관심이 없고, 누구에게 딱히 집중하고 살지를 않아서……미안, 하지만 질문이 생기면 바로 너에게 물어볼게. 약속해.”
홍중은 머쓱해 하면서도 약속까지 하는 성화를 보고 미안하다는 감정이 들었다. 아. 그렇구나. "아니야, 미안해할 필요 없어. 괜히 몰아붙여서 미안." 홍중의 사과를 끝으로 둘의 세 번째 인터뷰가 종료되었다.
-
세 번째 인터뷰 이후로 중간고사가 겹쳐 인터뷰는 2주 건너뛰게 되었다. 자습 주와 시험 주. 그렇다고 해서 서로 이야기를 아예 안 나눈 것이 아니었다. 종종 자습 시간에 서로의 자리가 가깝지 않은데도, 쪽잠을 자고 있으면 깨워주러 갔다. 홍중과 성화는 점차 같이 있는 시간을 늘려갔다.
성화는 홍중에게 미안하였다. 그렇게 무관심한 사람은 아닌데, 성화가 홍중에게 한 말은 마치 홍중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는 것처럼 말하였다. 자신이 타인에게 궁금한 것이 없는 게 이렇게 안 좋은 결과로 나타난 것 같았다. 성화는 그런 작은 죄책감과 그런 마음을 만회하기 위하여 홍중을 주시하였다. 어떻게든 다음 인터뷰 때 홍중에게 질문하겠다는 일념으로. 성화는 홍중을 유심히 지켜보고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관찰은 성화의 적성에 맞지 않았는지, 빠르게 지쳐버리는 자신을 보고 포기하였다.
성화는 홍중이 처음 전학 왔던 순간을 기억해보았다. 새로운 공간에 왔다는 설렘과 두려움보다는 여유가 느껴졌다. 그리고 자신을 보고 생긋 웃던 미소도 기억났다. 무언가 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반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 것을 보고 도화지 같다고 생각하였다. 하얀 도화지라서 어떤 색도 다 담아낼 수 있는 사람 같았다. 그런 사람이 자신에게 다가와서 물었다. 질문도 명료하였다. 너 나랑 할래. 거절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는 단단함이 느껴졌다. 성화는 그 확신에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좋다고 대답하였다. 18세, 고 2에 갑작스럽게 전학을 왔지만 3월부터 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섞인 홍중이 왜 자신을 인터뷰 상대로 골랐는지 궁금해졌다. 드디어 성화에게 홍중을 향한 호기심이 생겼다.
-
"나 너한테 궁금한 거 있어."
놀랍게도 성화가 먼저 질문하였다. 마지막으로 했던 인터뷰에서 성화는 어느 것에도 관심이 없어 질문할 거리가 없다고 하였다. 홍중은 괜히 신이 나 성화에게 무엇이든 물어보라고 하였다. 홍중은 어떤 것이 성화의 호기심, 질문할 마음을 일으켰는지 궁금하였다.
“너는 왜 나랑 하고 싶었던 거야?”
홍중은 이 질문을 듣고 종이에 끄적이던 행동을 멈추었다. 그리고 성화를 쳐다보았다. 두 사람의 사이를 정의할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이고 근본적인 질문이었다.
홍중은 대답을 망설였다. ‘세상의 규칙에서 벗어난 원인을 알기 위해서 너와 같이하자고 말한 거야.’라는 대답을 하면 성화는 당연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느냐고 코웃음을 칠 것이었다. 그리고 홍중 역시 이미 신으로서의 목적과 인터뷰를 하는 목적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였다. 세상의 규범을 어기고 엇나가는 무색의 성화는 자신의 일상을 잘살고 있었다. 이미 성화에게서 원인을 알기는 글렀다. 그렇다면 홍중은 미련 없이 인간의 모습을 버리고, ‘김홍중’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다시 있던 곳으로 돌아가면 될 일이었다. 원래 자신의 모습, ‘빛’의 형태로 돌아가면 된다. 인간의 기억은 지워버리면 되고, 학교의 기록 역시 손짓 한 번이면 없던 것으로 돌릴 수 있었다. 하지만 홍중은 여전히 떠날 수 없었다. 어떤 것에도 흥미가 없어 타인과 잘 지내지만 어떠한 질문을 하지 않는 성화가 눈에 밟혔다. 결국 홍중은 성화의 질문에 ‘그냥.’이란 답만 말하고, 자신이 질문을 던졌다. 늘 그랬듯이.
-
홍중은 자신의 거처에 와서 성화의 질문을 되뇌었다. 시든 재스민 잎을 만지작거리면서 계속 고민하였다. 재스민은 홍중의 손길을 받고 다시 생기를 되찾았다. 하지만 홍중은 생기를 되찾을 수 있을 만큼 명쾌한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왜 성화와 계속 인터뷰를 하고 있는가. 자신이 만든 많고 많은 생명체 중 성화에게 눈길이 갔는지를 계속 생각하였다.
홍중은 신이었다. 자동차 밑에 숨어있는 고양이, 누군가의 집에 놓여있는 산세베리아, 냉장고에 있는 사과도 홍중, 아니 신이 만든 것들이었다. 그리고 신은 이러한 생명을 보살폈다. 생명 하나하나에 신의 보살핌이 깃들어있었다. 그 보살핌으로 생명은 자신의 색을 가진 채 죽을 때까지 반짝였다. 신의 보살핌에 세상은 돌아갔다. 신은 다채로운 색으로 빛나는 세상을 보고 자신이 세상을 잘 돌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그러나 우연히 무색의 인간이 눈에 들어왔다. 자신이 잘못 창조한 것인지, 혹 자신의 보살핌을 거부하는 것인지 알고 싶었다. 그렇게 지상의 땅을 밟고, 인간으로 살았다. 그리고 무색의 인간과 더 깊은 유대를 가졌다. 그 무색의 인간은 박성화였다. 박성화와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원래의 목적은 점차 흐려졌다. 처음엔 그저 원인을 알고 싶어서 했던 수요일의 인터뷰였지만, 홍중은 점차 성화를 알고 싶었다. 정보를 수집하기 위한 물음이 아닌 그저 ‘성화’라는 사람을 알고 싶었다. 자신에게 궁금한 것은 없는지, 좋아하고 싫어하는 음식은 무엇인지, 내일은 무얼 하는지, 어떤 것이 성화를 기쁘게 하는지를 알고 싶었을 뿐이었다.
홍중은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색이 없는 이유는 진작에 찾았다. 색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성화는 흰색을 띠고 있었다. 매주 수요일 인터뷰를 할 때 홍중과 성화가 준비하였던 백지처럼 하얀빛이었다. 아무것도 쓰이지 않았다고 해서 무(無)의 상태가 아니었다. 성화는 무색의 인간이 아니었다. 그저 모든 것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는 사람이었다.
훙중은 성화에게 처음으로 질문을 받은 날 저녁, 많은 것들을 수긍하였다. 자신이 무지하였다는 점, 그리고 자신은 성화를 단순히 보살펴야 한다는 마음으로 보고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세상의 이치에 맞다는 것을 알면 떠나야 했다. 지상에 있을 필요가 없다. 그러나 홍중은 떠나지 않았다. 성화를 향하여 인간의 형태를 띠고 온, 신은 ‘김홍중’이라는 사람으로 성화를 좋아하고 있었다. 육체도 없고 무색무취의 ‘빛’이었던 홍중이 성화에 향한 마음을, 보살핌이 아니라 애정의 손길로 성화를 어루만지고 싶다는 마음을 인정하였다.
-
성화는 평소 인터뷰 때보다 망설이는 것처럼 보였다. 질문을 준비해왔다면서 성화는 계속 뜸을 들였다. 홍중은 둘 사이의 적막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홍중이 넌지시 물어보았다. 내 질문 먼저할까. 그 말에 용기를 얻은 것인지 성화는 조금 상기된 목소리로 물었다.
“네 이상형이 뭐야……”
그 말을 듣고 홍중은 푸하핫 웃어버렸다. 인터뷰하면서 질문을 준비해오는 데, 항상 예상치 못한 질문들로 당황하게 했다. 어쩌면 신과 처음으로 인터뷰하는 사람인데, 이렇게 신선한 것을 궁금해하는 성화가 좋았다. 신은 성화가 이 질문을 어떤 의도로 했는지 성화의 머릿속을 그냥 읽어버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김홍중은 다르다. 성화가 이 질문을 어떤 의도로 하였어도, 답은 하나다. 어떠한 다른 대답도 하지 않는다.
“너.”
신은 거짓을 말할 수 없기에.
-
둘은 그 이후에 종종 손을 잡고 하교를 하거나, 야자를 하거나 힘들면 어디선가 서로를 끌어안고 있었다. 성화는 이 상황이 꿈만 같았다. 절대로 자신을 좋아할 것 같지 않아 물어본 질문이었는데, 홍중이 자신을 이상형이라고 말하였다. 10월에 자신에게 같이 인터뷰를 하자고 물어보는 그 확신에 찬 그 말투로 대답하였다. 홍중이 대답하고 성화에게 ‘너는?’이라고 물어볼 때까지 성화는 눈만 껌뻑였다. 그리고 용기 내 대답하였다.
“나도……네가 이상형이야……”
그날 남은 30분은 서로의 고백을 장황하게 늘어놓으며 좋은 점들을 또박또박 말하는 시간이었다. 둘은 그렇게 연인이 되었다.
홍중은 성화와 가까워지기 이전에 어떤 친구의 스킨십을 거절한 적이 있었다. 자신이 그렇게 스킨십에 관대하지 않다고 말하였다. 성화는 그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손을 잡으려다가 잡지 않았고, 머리칼을 쓰다듬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걸 보고, 홍중은 그냥 자신이 먼저 하였다. 자신이 먼저 성화 앞에 다가가 눈을 마주쳤고 손을 잡았다. 자신이 만든 창조물을 그렇게 뚫어지라 본 적이 없어 그 점이 어색했지만, 성화를 자주 보다 보니 어색함마저도 좋았다. 그렇게 서로가 존재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성화는 점점 질문이 많아졌다. 홍중에게 이런저런 것들을 물어보았다. 전에는 어디서 살았는지, 그곳은 어땠는지, 혹시 키우는 동물이 있는지. 좋아하면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아지는 건지, 홍중은 좋기도 하였지만, 자신의 생활을 꾸며 내 대답하는 것이 조금은 당혹스러웠다. 하지만 성화의 호기심을 볼 수 있어 즐겁다고 생각하였다.
-
곧 인터뷰를 끝내고 발표할 내용을 정리해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그 말은 기말고사도 역시 코앞으로 다가왔다는 의미였다. 연말 분위기는 학교도 물씬 풍기고 있었다. 진로 인터뷰를 하는 수요일 7교시도 진학 상담으로 인하여 둘은 인터뷰를 할 수 없었다.
결국 홍중과 성화의 인터뷰는 방과 후 사회교과실에서 하기로 하였다. 항상 수요일 7교시에 인터뷰를 할 때는 반 아이들의 말소리로 복작거렸는데, 방과 후에 하는 인터뷰는 조용하였다. 그 조용함 속에서 서로 마주 보고, 왼손을 잡고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홍중아, 너 혹시 향수 쓰는 거 있니?”
성화가 먼저 질문하였다. 성화는 홍중에게 안겼을 때, 향기가 너무 좋다고 생각하였다. 따뜻한 그 향을 오랫동안 맡고 싶었다. 그래서 홍중을 오랫동안 끌어안은 적이 있었다. 그 향이 사라질까 봐 붙잡고 싶었다.
“어? 나 쓰는 향수 없는데.”
성화는 홍중의 답을 듣고 화들짝 놀랐다. 끌어안을 때마다 나는 좋은 향기가 분명히 났는데, 아무것도 쓰지 않는다는 홍중의 대답은 놀라웠다. 성화가 말도 안 된다고 말하는 걸 보고 홍중은 웃음이 났다.
“살냄새 아니야? 사람들은 나보고 어떤 향도 안 난다고 그랬던 사람도 있었어.”
그 말에 성화는 ‘이해는 되지 않지만, 네 말이니 믿겠다’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서로 마주 보는 구조로 앉아있던 성화가 홍중의 자리로 다가갔다. 그리고 성화는 홍중을 향하여 팔을 벌렸다.
“안아줘.”
성화의 말에 홍중은 성화의 품에 다가갔다. 안으니 오는 따듯함은 아무래도 좋았다. 그 상태로 오래 있었다. 그리고 방과 후가 끝나고 석식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그 소리를 듣고 성화는 홍중의 품에서 벗어나려고 하였다.
그때 홍중은 품에서 벗어나려 하는 성화를, 자신을 향하도록 돌렸다. 그리고 홍중은 자신의 손으로 성화의 양 볼을 감싸고 자신의 입술을 성화의 입술을 맞대었다. 그리고 홍중은 이내 입술을 떼려 하였으나, 이번엔 성화가 자신의 손을 들어 올려 홍중의 볼을 잡고 입맞춤을 멈추지 않았다. 오랜 키스 후 붉게 상기된 얼굴, 뜨겁게 오른 공기의 온도를 느끼며 서로의 입술이 떨어졌다. 키스 후 성화는 홍중에게 말하였다.
“홍중아, 너와의 입맞춤에서 햇살의 맛이 나.”
-
홍중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처음 지상에 내려왔을 때와 몸 상태가 다르다고. 인간의 형태를 띠기 위하여 만든 신체는 절대로 자신의 몸이 아니었다. 결국 '껍데기'를 빌린 것이었다. 그 껍데기가 빠르게 닳아가는 것을 느꼈다. 애초에 홍중은 오래 머무를 계획이 없었기 때문에 신체를 튼튼하게 만들지 않았다. 홍중은 처음으로 창조물을 만드는 데 있어 후회라는 것을 하였다. 박성화라는 사람 때문에, 그냥 걔랑 오래 있고 싶다는 마음이 후회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고 있었다.
언젠가 홍중은 성화에게 진실을 말해야 했다. 진리 그 자체이자 세상의 이치를 만든 사람이기에 신은 절대 거짓을 고할 수 없었다. 언젠가 말해야 하는 진실이었다. 하지만 홍중은 두려웠다.
도대체 신을 두렵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 자신이 신이라고 말하면 떠날 것을 두려워하는 것일까. 하지만 성화의 성격상 자신을 떠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 그저 홍중이 두려운 것은 언젠가 성화의 곁을 떠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성화에게 진실을 말하고 자신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지상에서 소멸하는 것이 두려웠다.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 때문에 성화는 홍중과 있었다는 기억을 하고 가슴 아파할 틈도 없을 것이다. 홍중은 그걸 걱정하는 것이 아니었다. 성화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야 하는 자신이, 둘의 사랑을 기억할 사람이 지상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두려워하였다.
홍중은 자신의 거처에 있는 시든 재스민 잎을 만졌다. 자신의 손끝에 닿는 생명은 생기를 얻었다. 당연하였다. 홍중의 뿌리는 신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재스민이 살아나지 않았다. 홍중은 돌아오지 않는, 시든 재스민 잎을 보고 마음을 굳혔다. 이제는 떠날 때가 되었다고.
-
지금까지 한 인터뷰를 정리하여 발표하는 날에 눈이 펑펑 왔다. 학생들도 겨우 등교를 하였고, 차를 몰고 온 선생님들은 오늘 학교 운동장에 차를 버리고 가야 하냐며 한숨을 쉬었다. 출석번호 순서대로 발표해서 김 씨인 홍중과 박 씨인 성화는 첫 시간에 발표를 할 수 있었다. 홍중은 성화와 인터뷰를 하면서 더욱 친해져서 행복했던 시간이라고 발표를 마무리하였다. 성화는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발표 끝에 자신의 진솔한 마음을 표현하였다.
"내년에도 홍중이랑 같은 반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이상입니다. 발표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말을 듣고 반 아이들은 훈훈하다며 감탄을 뱉기도, 박성화 오글거린다면서 장난스럽게 야유하기도 하였다. 성화는 발표가 끝나자마자 홍중을 보고 웃었다. 홍중은 성화가 한 말이 너무 좋았다. 하지만 그 약속을 지킬 수도 없다는 것이 비참했다. 그러나 홍중은 돌아가야 했다. 자신이 원래 있던 곳으로, 자신의 본분인 보살피는 자의 역할에 충실해야 했다.
-
진로 시간이 끝나고, 정규 수업 시간 후 방과 후 시간에 홍중과 성화는 눈으로 덮인 교정을 걸었다. 뽀드득거리는 눈을 밟으면서 성화가 입을 열었다.
"내년에도 같이 있자. 같이 밥 먹고 같은 시간표로 수업을 듣자."
홍중은 그 말에 대답하였다. 더는 미룰 수 없는 진실을, 절대 거짓을 말할 수 없는 홍중이 진짜 자신을 드러내는 대답을 하였다.
"나 오늘이면 없어. 너 이제 나 못 봐."
성화는 그 말에 걸음을 뚝 멈추었다. 홍중은 이러한 반응을 예상하였다. 분명 자신에게 화를 내고 분노할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성화는 홍중의 예상과 다른 반응을 보였다.
"......또 전학 가는 거야? 그런 거라면 학기 중에는 못 보더라도 방학에 만나면 되고."
그 말을 하면서 눈물을 글썽이는 성화를 보고 홍중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 하는 수 없이 홍중은 추위에 빨개진 검지 손가락을 들어 하늘을 가리켰다. 그리고 손가락을 빙글, 돌렸다. 땅으로 내려오던 눈이 공중에서 멈추었다. 성화는 하늘을 보고, 홍중을 봤다. 그리고 또 하늘을, 홍중을 번갈아 보았다.
"......인터뷰 때 왜 이런 건 이야기 안 했어."
성화는 글썽이던 눈물을 툭툭 흘리면서 웃었다. 홍중은 그냥 웃으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화를 내지 않고 그냥 자신을 그대로 받아주었다. 홍중은 새삼 깨달았다. 하얀색의 박성화는 어떤 색이든 거부하지 않고 물들여진다고, 설령 그것이 색을 정의할 수 없는 난해한 신의 것이라도 말이다.
시간이 멈추고, 눈은 공중에 떠 있는 상태. 김홍중과 박성화만 움직이고 있었다. 성화는 자신이 먼 옛날에 본 드라마를 회상하면서, 홍중에게 네가 무슨 도민준이냐고 물었다. 그 말에 홍중은 그 외계인도 자신이 만들었다고 대꾸하였다. 그렇게 멈춘 시간의 틈에서 둘은 교정을 뛰어다녔고, 벌렁 드러눕기도 하였다. 홍중은 성화에게 마지막까지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함께 웃으며 놀았다.
어느 순간 멈춘 시간을 다시 가게끔 돌려놓아야 할 시간이 왔다. 홍중은 시간을 돌려놓는 동시에 지상에서 떠날 것이다. 성화에겐 그것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홍중은 그저 성화에게 다가가 팔을 벌리고 말하였다.
"성화야, 안아줘."
홍중이 말을 하지 않았지만, 성화는 그것이 마지막 포옹임을 알았다. 성화는 홍중에게 다가가 힘껏 끌어안았다. 어떠한 향도 나지 않는다고, 무취(無臭)라고 자신을 지칭하는 홍중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게 안고 있다가, 성화는 반짝이는 유리 조각처럼 사라지는 홍중의 볼을 잡고 키스하였다.
햇살을 머금은 그 입맞춤을 끝으로 홍중은 사라졌다.
세상의 이치에 맞게 시간은 갔고, 눈도 땅으로 떨어졌다. 성화의 눈물도 눈과 같이 떨어졌다.
-
시간에 날개라도 달린 듯 빨리 갔다. 성화는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고, 수험생이라는 이유로 담임들은 여러 가지 말들도 압박도 하고 위로도 하였다. 성화는 같은 반 친구들과 잘 지내면서 수업을 듣고 일상을 살았다. 친구들과 선생님 모두 홍중을 기억하지 않았다, 아니 기억하지 못하였다. 성화만 홍중을 기억하고 있었다. 종이에 이리저리 쓰인 홍중에 관한 정보들, 그것뿐이었다.
성화는 슬펐다. 하지만 가끔 길을 걷다가 익숙하고 자신이 사랑한 향기가 나면, 태양을 바라보았다. 밝고 하얀 태양 빛이 환하게 자신을 비추고 있었다. 성화는 무색무취의 태양 빛을 보면서, 홍중을 떠올렸다.
자신의 얼굴에, 손에 닿는 따스함이 홍중을 닮았다고 생각하면서 미소 지었다.
-
신은 다시 제 일들을 하였다. 어떠한 형태를 띠지 않고 빛의 형태로 생명을 지켜보고 보살폈다. 색이 없던 성화가 자신 역시 받아들였던 그 기억을 떠올리면서, 자신의 창조물에 애정을 주면서 살았다. 종종 지상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성화를 향하여 반짝였다.
‘김홍중’이라는 사람의 형태로 갈 수는 없지만, 무색무취의 형태로 성화에게 닿으러 갔다.
열을 품은 빛의 형태로 너에게 도달하는 동안에도 온기를 품고,
네가 수많은 색을 조우하는 순간들에 함께할 수 있기를 바라며.
p.s.
안녕하세요, 여러분 킷캣입니다. 다들 건강히 잘 지내시는지요? 합작에 참여하면서 오랜만에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우선 합작 제출 글을 검토해준 친구, 멋진 작품으로 함께한 참여진 여러분, 그리고 섷른 합작주님께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1회, 2회 섷른합작을 보다가 제가 참여진이 되니 감회가 새롭네요. 그래서 좀 잘 쓰고 싶었는데, 잘 쓰고 있는건지 많이 망설였습니다. 제가 분투하여 쓴 글이 여러분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흰색이란 색은 신기합니다. 어떠한 것이 섞이지 않은 가장 깨끗한 색이고, 너무 깨끗해보여 종종 아무것도 없는 색이라고 여기기도 합니다. 하얀 도화지나 검은색 종이를 보고 아무 것도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종이의 색이 있는데 우리는 종종 간과합니다.
여러분들이 읽으신 저의 글 <무색무취의 그대>에서도 성화는 그런 존재로 나옵니다. 신마저도 색이 없다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성화는 인간 중에서 신과 가장 가까운 모습을 보이는 사람입니다. 신은 빛의 형태로 존재하고, 그 빛은 태양빛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태양 빛의 흰색과 성화의 흰색이 비슷한 맥락으로 적용된다고도 볼 수 있겠군요.
무언가가 하얗다고 말할 때 쓰는 ‘희다’라는 표현은 중세 국어의 해를 뜻하는 단어로 파생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시작한 글입니다. 흰색이 태양의 밝고 환한 빛을 상징하는 색이고 모든 사물의 색을 볼 수 있게 하는 빛임에도 불구하고, 무색무취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런 생각을 제가 좋아하는 불멸자X필멸자 조합으로 썼는데…재미있었는지 모르겠어요.
섷른 합작으로 처음 홍섷을 썼는데, 그렇기 때문에 더욱 의미 있고 기억에 남네요… 또 저만 후기 길어질 것 같네요, 세상에! 마지막으로, 제 글 속 홍중이와 성화의 관계처럼, 여러분도 누군가의 무색무취의 그대이길 바라요. 저도 그런 사람이 되기를 꿈꾸고 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